청와대-백악관 X파일(37) 글라이스틴 미 대사 "광주에 동원된 어느 군부대도 미군 통제 아래 없었다" 주장
청와대-백악관 X파일(37) 글라이스틴 미 대사 "광주에 동원된 어느 군부대도 미군 통제 아래 없었다" 주장
  • 특별취재팀
  • 기사입력 2018.12.30 18:00
  • 최종수정 2018.12.3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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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청와대 백악관 x파일

비상계엄 확대에 동원된 한국군 부대는 2가지 범주로 나뉜다. 1980년 5월 정상 경계 상태에서 원래 연합사 작전통제권에 속하지 않았던 부대와 연합사 작전통제권에서 해제된 부대로 나눌 수 있다.

특전사에서 동원한 여단과 광주에 기지를 둔 한국군 2군 휘하 31사단은 연합사 작전통제권 하에 있었던 적이 없다. 20-보병사단 예하 부대는 연합사 작전통제권으로부터 해제된 바 있다.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미국 대사는 "광주에 배치된 어느 군부대도 당시 미군 당국의 통제권 아래에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미국 관리들은 5월 18일(일) 오전, 비상계엄 확대에 항의하고 그 범위와 의미, 특히 김대중 등 정치 지도자들의 체포 사실을 확인하는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주한 미국대사관 관리들은 광주의 상황이 서울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몰랐으나, 5월 19일(월) 오전 데이비드 밀러 광주 미국문화원장이 대사관에 전화를 해왔을 때에 비로소 미국은 광주에서 일어난 폭력사태에 대해 처음으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밀러 원장은 광주시민들로부터 “시내에서 심각한 폭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특전사 부대가 몇 명의 사망자를 비롯한 많은 부상자 발생에 책임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보고했다. 서울에 있던 한 미군 관리도 5월 19일 광주에 있는 친지로부터 그와 비슷한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광주의 상황은 당시 폭력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던 서울의 상황과는 크게 대조적이었기 때문에 미국대사관은 처음에는 사태의 심각성을 쉽게 파악할 수 없었다는게 미국측의 주장이다.

미 대사관은 이제까지 있었던 시위와 마찬가지로 광주에서 어떤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인명손실 없이 통제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계엄 아래에서 엄격한 검열을 받던 한국 언론들은 5월 18일(일)과 19일(월)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아무런 보도도 하지 않았다.

5월 19일과 20일 사이의 광주의 사태 전개에 관한 미국대사관의 단편적인 지식은 데이비드 밀러 광주 미국문화원장으로부터 얻은 약간의 정보와 광주시에서 12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미 공군기지의 관리가 보낸 제한적인 관찰보고, 그리고 차츰 외국 언론의 보도에 의존한 것이었다.

미국대사관으로부터 안전상의 이유로 외부로 나오지 말라는 명령을 받은 밀러 원장의 정보는 빈약할 수 밖에 없었다. 공식적인 한국의 소식통들은 광주에 특별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거나 아니면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했다.

5월 19일 위컴 장군이 미국에서 돌아왔다. 위컴 장군은 광주의 심각한 상황이 한국을 외부의 침공으로부터 방위하는 임무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해 계속 정확한 정보가 필요할 것이라고 인식했다.

위컴 장군은 가능한 한 모든 채널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했다. 주요 채널은 유병현 장군과 한국 합참의장이었다. 위컴 장군은 글라이스틴 대사와 계속 연락을 취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비롯한 관리들에게 자제하도록 노력하고, 광주 시민들, 종교 지도자과 연락을 취하며, 과도한 군사력 이용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시를 신중히 고려하도록 촉구했다.

광주민주화항쟁 진압의 핵심은 특전사와 20사단 이동문제였다. [연합뉴스]
광주민주화항쟁 진압의 주축은 특전사와 20사단이었다. [연합뉴스]

광주항쟁 진압의 핵심은 특전사와 20사단의 이동문제였다.

미국은 특전사 부대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없었고, 부대가 광주로 이동한 것에 대해서도 사전에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특전사 부대는 한미연합사 작전통제권 하에 있지 않았다. 마침내 미국이 광주에서 일어난 상황의 전모를 파악했을 때, 글라이스틴 대사는 특전사 부대의 과잉진압이 비극의 직접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5월 20일. 미국관리들은 한국군 당국이 광주에 20사단 부대를 투입할 것을 고려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사단은 정규부대로서는 드물게 폭동진압 훈련을 받은 부대였다 한국 당국은 광주시민들이 광주에 투입된 특전사 부대에 비해 20사단이 공격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의 미국 관리들은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한 협상이 실패할 경우, 특별히 훈련된 20사단 병력을 투입하는 것이 특전사 부대를 계속 동원하는 것보다 낫다는데에 동의했다.

그래서 위컴 장군과 글라이스틴 대사는 한국 당국의 문의에 대해 워싱턴 상부와 협의한 후, 특전사 부대를 20사단 부대로 대체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마지못해 수용한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위컴 장군은 북한의 계속적인 위협을 고려하여 20사단의 중포대가 언제나 동원될 수 있게 서울 근처에 남아 있도록 요청하였고, 그 요청은 수락되었다.)

20사단은 이미 연합사 작전통제권 하에 있지 않았으므로 계엄사가 20사단 예하 부대를 광주로 이동시키는데 대해 연합사에 통고할 의무는 없었으나 5월 20일에는 이를 통고해 왔다.

이는 12월 12일 연합사 작전통제권하에 있던 한국군 부대를 사전통보 없이 이동시킨대 대하여 위컴 장군이 여러차례 강경 항의했기 때문이라고 미국 측은 생각했다. 사실, 20사단이 서울 근처에 있는 본래의 작전지역으로부터 이동하게 되면 군 비상시에 이용하기 어려워질 것이었다.

그 후에 나온 출판물과 인터뷰에서 글라이스틴 대사는 미국이 20사단의 이동을 '승인'했다고 말했으며, 1980년 5월 23일 미 국방부 대변인은 미국이 광주에 파견된 부대를 연합사 작전통제권에서 해제시키는데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어떤 용어가 사용되었던 간에 일단 작전통제권을 갖게 된 이상 한국 정부는 주권국가로서 미국 정부의 견해와는 관계없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대로 20사단을 배치할 권한을 가지게 됐고, 미국측은 한국군이 어떻게 활용할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문 및 참조 문서>

https://wikileaks.org/gifiles/docs/15/1556806_korea-assassination-history-.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088_e.html

https://www.cia.gov/library/readingroom/docs/CIA-RDP83B00100R000300020001-1.pdf
http://timshorrock.com/documents/korea-the-cherokee-files-part-one/

https://www.38north.org/2017/10/tshorrock100317/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204_e.html
http://www.eroseffect.com/powerpoints/NeoliberalismGwangju.pdf

6677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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