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곰돌이 푸’의 아름다운 이야기에 가려진 실제 인물 로빈의 삶
[WIKI 프리즘] ‘곰돌이 푸’의 아름다운 이야기에 가려진 실제 인물 로빈의 삶
  • 최석진 기자
  • 승인 2019.01.22 08:17
  • 수정 2019.01.22 0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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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작가 알란 밀른과 곰돌이 푸 [ATI 캡쳐]
영국작가 알란 밀른의 아들과 곰돌이 푸 [ATI 캡쳐]

사랑스런 곰돌이 푸와 그의 숲속 친구들, 그리고 그런 동물 친구들을 도와주는 마음씨 착한 로빈. 전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며 위로와 공감을 자아내게 한 디즈니의 만화영화 ‘곰돌이 푸(winnie-the-pooh)’ 줄거리이다.

하지만 세상에 화려하게 알려진 것들의 이면에는 대부분 또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듯이, 너무도 아름답고 동화 같기만 한 ‘곰돌이 푸’도 역시 어둡고 아픈 비화를 품고 있다.

‘곰돌이 푸’ 캐릭터는 영국 작가 알란 알렉산더 밀른이 1926년 처음 출간해 전 세계 어린이들을 매혹시킨 소설 「위니 더 푸(winnie-the-pooh)」를 배경으로 탄생한 것이다. 소설에는 곰돌이 푸와 그의 인간 친구인 크리스토퍼 로빈이 등장한다. 그러나 작가의 실제 어린 아들이기도 했던 크리스토퍼 로빈 밀른에게 이 소설은 고통 이상의 것이 되지는 못했다.

크리스토퍼 로빈의 무미건조했던 어린 시절

작가 알란 알렉산더 밀른의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작가가 어린 시절에 대해 속 깊은 이해와 공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곰돌이 푸와 아름다운 이야기를 펼치는 실제 인물 크리스토퍼 로빈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년이라고 누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로빈 밀른의 실제 삶은 작가가 마술처럼 불어넣은 상상 속의 소년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실제의 삶 속에서의 작가는 아들과의 관계를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지 조차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과 잘 지내기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크리스토퍼 로빈은 이렇게 털어놓았다.

“당신이 어떤 아버지를 얻게 되는지는 운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랑 잘 어울리는 아빠이거나 그렇지 못한 아빠이거나......불행히도 내 아버지는 후자였습니다.”

세상은 작가 밀른에 대한 환상이 깨지기를 바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조차도 자신의 실제 모습을 한 번도 부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한 인터뷰를 통해 “저는 아이들을 지나치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아이들의 정서에 공감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강아지나 고양이를 바라보며 잠깐 동안 갖게 되는, 짧은 애정 이상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라고 밝힌 적도 있었다.

그러나 밀른은 실제 세상의 이목과는 거리가 먼 ‘꿈속의 아들’을 만들어냈다. 크리스토퍼 로빈 은 자신의 아버지가, 서재에만 틀어박혀, 실제의 아들 위에 상상의 소년을 덧씌우는 글을 쓴 공허한 소설가였음을 세상에 알렸다.

부자간의 관계가 매우 소원했기 때문에 ‘곰돌이 푸’는 자녀를 사랑하는 아빠에게서 나온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대신에 작가 알란 알렉산더 밀른은 그의 아내와 아이의 보모로부터 이따금 부쳐오는 소식을 통해 아이의 습성을 알게 되었다.

“보육원에 찾아와서 저랑 가끔 놀아준 사람은 어머니였고, 어머니는 내 생각과 행동을 아버지에게 알려주었지요. 사실, 아버지의 소설을 위해 대부분의 소재를 제공한 사람은 어머니였어요.”

크리스토퍼 로빈은 이렇게 밝혔다.

크리스토퍼 로빈은, 그의 아버지는 집에 없을 때는 주로 영국 상류층 남성들을 위한 사교모임(젠틀멘스클럽)인 ‘개릭 클럽’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그의 아버지는 ‘개릭 클럽’의 회원이었다.

그러다가 ‘곰돌이 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크리스토퍼 로빈은 불과 7살의 나이에 전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아버지의 명성을 위해 착취당하다

크리스토퍼 로빈은 아버지와 곰돌이와 함께 사진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거나, 수백 명 앞에서 아버지의 책 ‘곰돌이 푸’에 나오는 노래를 불러야했고, 심지어는 소설의 오디오 녹음을 위해 상상 속의 소년 역할을 해야 했다.

크리스토퍼 로빈은 자신이 8살이 되어 기숙학교에 보내지게 될 때까지는 ‘유명세를 꽤나 즐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기숙학교에서 끔찍한 왕따를 경험했다. 반 아이들은, “곰돌이 어디다 뒀냐?‘고 하면서 고함을 지르곤 했다. 그리고 그가 지나갈 때면 그의 아버지 소설에 등장하는 시구(詩句)들을 중얼거리며 놀렸다.

왕따는 언어폭력을 넘어서 물리적 폭력으로 진화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13살 무렵이 되어서는 크리스토퍼 로빈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권투를 배우기 시작했다.

크리스토퍼 로빈은 소설 속의 6살짜리 소년의 모습에 갇혀버린 채, 계집애처럼 비쩍 마른 아이로 성장하면서, 그의 명성을 시기하는 악동 패거리에 둘러싸여서 보내야했다.

크리스토퍼 로빈에게 기숙학교 시절이 시련의 시기였다면, 성년이 된 후의 삶은 더 혹독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인기가 더해지는 소설 속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로빈으로 클 수 밖에 없었다. 그를 동경하는 세상과 아버지로부터의 기대가 너무 커서, 그가 삶을 살아가면서 실패를 겪을 때마다 그 무게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다가왔다.

크리스토퍼 로빈은 아버지 작품에서 나오는 수익을 노골적으로 거부했다. 하지만 그는 대학 졸업 후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간신히 입에 풀칠하며 어렵게 살아야 했다.

크리스토퍼 로빈은 이 시기 동안 그가 아버지에게 얼마나 분개했고,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았는지를 회상했다.

“내게는 거의, 아버지가 어린 내 어깨를 딛고 명성에 올라선 것처럼만 느껴졌고, 죄 없는 내 이름을 빼앗고, 작가 알란 알렉산더 밀른의 아들이라는 허명(虛名)만을 안겨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밀른 가정의 파멸

이 시기 크리스토퍼 로빈의 유일한 위안은 사랑하는 연인 레슬리 드 센린코트와의 만남이었다. 레슬리는 그의 사촌이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로빈의 부모는 레슬리가 로빈 고모부의 딸이었기 때문에 이 둘의 만남을 탐탐치 않게 여겼다. 레슬리의 아버지는, 로빈 고모인 다프네 밀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로빈의 가족은 이 둘을 떼어놓기 위해 할 수 일은 뭐든지 했다.

크리스토퍼 로빈의 부모는 그가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서, 부모가 냉정하고 무심한 사람들이라고 터뜨리자 아들과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그는 작가 알란 알렉산더 밀른의 아들로 사는 삶이 실제로는 어떠했는지에 대해 책을 쓰고 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그 책은 결코 동화책이 될 수는 없었다.

이로 인해 로빈의 어머니는 격분해서 아들의 동상을 부순 후 땅에 묻어버렸다.

로빈의 아버지도 이후 아들과 거의 대화를 끊고 살았다. 어머니는 완전히 대화를 단절해버렸다. 심지어는 임종의 순간에 아들이 대화를 간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절했다. 어머니의 마지막 인생 15년 동안 그는 어머니를 단 한 번 보았을 뿐이다.

로빈은 결국 레슬리와 결혼해서 클레어라는 딸을 얻었는데, 클레어는 뇌성마비 환자였다. 크리스토퍼 로빈과 아내는 데본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며, 조용하지만 행복한 생을 살았다. 부모와는 끝내 화해를 하지 못했지만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살며, 세 권의 자서전을 펴냈다.

사실, 크리스토퍼 로빈은 죽기 직전에, 그가 평생 애증 관계에 있던 ‘곰돌이 푸’와 화해를 했다고 밝혔다.
“세상이 믿든 말든, 이제야 위축되지 않고 그 네 권의 책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곰돌이 푸’를 정말 사랑합니다.”

크리스토퍼 로빈을 그린 영화

작년에 크리스토퍼 로빈과 곰돌이 푸의 이야기를 기발하게 다시 풀어낸 영화가 이완 맥그리거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졌다. 호평을 받기는 했지만 이 영화는 크리스토퍼 로빈의 어린 시절과 성인의 삶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했다.

영화 ‘굿바이 크리스토퍼 로빈’은 밀른과 아들 크리스토퍼 사이의 역사적 기술에 더 주력하고 있지만,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고단했던 어린 시절과 성년의 삶을 완전하고 진실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크리스토퍼 로빈의 자서전에 천착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영화 ‘굿바이 크리스토퍼 로빈’

크리스토퍼 로빈과 곰돌이 푸는 로빈의 아버지가 잊혀지다시피 한 ‘곰돌이 푸’의 저작권을 포기하고 거의 40년이 지난 후인 1987년 재회했다. 그리고 어느 바의 사장인 E.P. 듀튼이 로빈에게 곰돌이 푸를 되살려내자고 제안했지만 그는 이를 거절했다.

크리스토퍼 로빈이 그의 곰돌이 판권을 뉴욕공립도서관에 기증하기로 결정하자 대중들은 매우 감동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로빈에게 이는 어린 시절에 감정적 정서를 함께 나누지 못한 곰돌이를 어른이 되어서 넘겨주는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내가 지금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 하고 싶지, 아주 오래 전에 좋아했던 것들과 함께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는 이런 식으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 장난감들은 여러분들의 과거나 현재 장난감과 똑같습니다. 그 장난감들이 호주나 일본의 어린들에게 알려져 있다 해서 그것들을 더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크리스토퍼 로빈의 아버지는 숲 끝에는 어린 소년과 곰돌이가 언제나 즐겁게 놀 수 있는 환상적인 장소가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그곳은 로빈에게는 다른 어린이들의 마음속에나 있는 장소였다.

실제 소년은 성인으로 자라났다. 그는 놀이를 멈췄으며, 더 이상 곰돌이도 필요하지 않았다. 크리스토퍼 로빈은, 아버지의 꿈속에만 있던 한 소년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었다.

“두고두고 애증관계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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