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외계인을 조사했던 ‘프로젝트 블루 북’ UFO의 진실은...
[WIKI 프리즘]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외계인을 조사했던 ‘프로젝트 블루 북’ UFO의 진실은...
  • 최석진 기자
  • 기사승인 2019-02-20 07:33:32
  • 최종수정 2019.06.08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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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 [연합뉴스]
UFO [연합뉴스]

이 광활한 우주에 진정 우리 뿐인가? UFO와 외계인은 실제하는가?

오랫동안 인류는 이같은 의문에 골몰해 왔다. 특히 달에 첫 발을 디딘 이후 이러한 의구심은 더욱 증폭돼 왔다.

바로 이 질문에 인류는 아직도 정확한 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고대에는 날아가는 별똥별이 외계 생물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이른바 징표들은 더욱 발달된 형태를 띤다. 공중에 떠다니는 불빛이나 비행체의 사진들, 그리고 실제로 납치되었었다는 직접적인 증언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환상은 어디까지이고 실재는 어디서부터 존재하는가?

도대체 공중에 떠 있는 발광체나 불분명한 물체들, 혹은 오싹한 목격담들은 얼마나 사실일까? 그리고 이들이 사실이라면 정부는 이런 사실 전부를 대중들에게 숨기고 있는 것인가?

▶‘프로젝트 블루 북’의 탄생

외계 생명체 신봉자들, 특히 외계인 신봉자들이 대중의 조롱거리가 되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한 때는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적지 않게 놀라게 된다.

사실 과거 한 시기에 미국 공군이 UFO를 콕 지목해 UFO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밝혀내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한 적이 있다. 이 프로젝트가 바로 ‘프로젝트 블루 북’이다.

모든 것은 1947년, 나단 트위닝이라는 육군 중장이 펜타곤에 비밀 메모를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날아다니는 원반들’이라는 제목을 단 이 메모는 트위닝이 원반같이 생긴 일단의 비행체들을 우연히 목격한 내용을 세세하게 담고 있다. 그는 이 원반체들이 수직상승률과 함께 뒤집기 등의 기동성에서 가공할 능력을 보여주었고, 다른 비행체들의 접근이나 레이더의 추적을 피하려는 것이 분명한 움직임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트위닝의 메모를 필두로 오하이오 데이턴 인근의 라이트 페터슨 공군 기지에서 ‘프로젝트 사인(Project Sign)’이 개시되었다.

‘프로젝트 사인’은 이후 ‘프로젝트 그러지(Project Grudge)’로 대체되었지만, 두 계획 모두 쓸 만한 자료나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 ‘프로젝트 블루 북’이 새롭게 탄생한 이유였다.

‘정보공개법’에 따라 드러난 정부 자료에 따르면 ‘프로젝트 블루 북’은 1952년부터 1969년까지 공식적으로 운영되었다. ‘프로젝트 블루 북’과 관련된 사실들이 대중에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들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증가하는 음모론, 그리고 드러난 사실에 대한 함구의 흔적들은 여기저기 남아있다.

넘쳐나는 허구에서 사실을 이끌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어떤 언급에서도 두 가지 점은 일관되게 사실과 일치한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 첫 번째로 UFO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지와, 두 번째로 수집된 모든 UFO 관련 자료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이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프로젝트는 탄생하였다. 비슷한 종류의 조사가 전에도 있기는 있었지만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근거가 있는 최종적인 자료를 수집하기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

공군 장군들의 호위 하에 프로젝트 참여 요원들은 UFO를 찾기 위해 실질적으로 시간을 투자했다. 냉전의 삼엄함으로 인해 미국 대중들이 알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서 공포심을 지니고 있던 때였다. 특히 하늘로부터 오는 미확인 물체들이나 러시아 방향에서 오는 물체들을 극도로 두려워하던 때였다.

 ‘프로젝트 블루 북’의 목표 중에는 이러한 공포를 제거하고, 소련 사람들이 외계인과 결탁했다거나 미국이 또 다른 외계의 적들로부터 공격의 위협에 놓여있다는 주장들이 허구임을 입증하기 위함도 있었다.

▶프로젝트 블루 북의 참가자들

‘프로젝트 블루 북’의 첫 번째 책임자는 에드워드 J. 루펠트 대위였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육군항공병으로 참가하여 훈장을 받기도 한 유능한 공군 장교였다. ‘UFO(Unidentified Flying Object)’란 명칭을 만들어낸 사람도 루펠트 대위였다.

그는 각 UFO 목격담들의 진위 여부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데 전념했다. 그는 텍사스에서 목격된 UFO인 ‘러벅 발광체(Lubbock Lights)’나 1952년에 워싱턴 D.C.에서 발생한 레이더 사건을 자세히 조사했다.

루펠트 팀 과학 자문단의 책임자는 시카고 출신의 뛰어난 천문학자 J. 알렌 하이네크가 맡았다. 히스토리 채널의 TV 시리즈에서는 하이네크 역을 ‘왕좌의 게임’에서 리틀 핑거로 잘 알려진 에이던 길런이 맡게 된다.

과학자인 하이네크가 참여함으로써 이 프로젝트는 어느 정도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게 되었다. 상공의 신비한 발광체를 찾아 나선 군인들의 단순한 집단을 넘어 지구를 넘나드는 생명체를 탐구하는 과학적 팀이 꾸려진 것이다.

하이네크는 신비스러운 발광체가 자연 현상이며, 비행체는 정말 비행기이거나 소행성이고, 때로는 구름을 잘못 본 것이라고 해명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처음부터 이 프로젝트에 회의를 지닌 채 참여했으며, 때로는 ‘이상한 현상들’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로 치부하는 데 너무 열을 올렸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로젝트 기간 내에 발생했던 몇몇 사건들은 하이네크의 흥미를 유발시켜, 그는 ‘프로젝트 블루 북’이 종료된 한참 뒤까지도 이들 몇 가지 UFO 사건들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다. 사실, ‘조우(遭遇, close encounter)’라는 신조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도 하이네크였다.

초기에 지녔던 냉소적 회의로부터 마음을 바꾼 이유에 대해, 하이네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많은 의견들이 있는 경우에는 모든 것을 다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목격자들의 정확성이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소수이기는 하지만 공군 조종사들에 의한 보고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들 조종사들이 매우 훈련이 잘 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들 때문에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일부 육군 장군들이 거의 20년간이나 진행된 ‘프로젝트 블루 북’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았다. 각각의 장성들은 서로 다른 정권에서 복무하고, 다른 목표를 지녔고, 자신들이 구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다른 해석들을 내렸다. 그래서 때로는 이들 책임자들이 찾아낸 결과들은 전임자들의 그것들과 상치(相馳)하는 경우도 있었다.

‘프로젝트 블루 북’를 놓고 변화가 가장 심했던 기간은 아마도 헥토르 퀸타닐라 소령 때다. 퀸타닐라 소령의 감독 하에 프로젝트는 변화를 겪었는데, 일부 연구들은 외부 세력들의 압력에 따라 수행되었다. 이전 장군들이 책임자였을 적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이 시기 프로젝트 내용에 변화를 가져온 것들 중 하나는 같은 장소에서 수년 동안 출몰하던 몇몇 발광체에 대한 확인이었다. 퀸타닐라 소령 팀은 전임 연구자들이 수년 동안 목성을 UFO로 착각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들은 이외에도 몇 가지 유사한 착오들을 찾아냈다.

퀸타닐라 소령 하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의회 청문회 개최였을 것이다.

1966년 뉴잉글랜드 북부 지방에서 일단의 외계 생명체와의 접촉으로 의심되는 사례들이 보고되었다. 하늘을 가로질러 일정한 형태의 불빛들이 반짝였고, 주민들은 공중을 떠다니는 원반 형태를 목격했다. 이 사건은 국회의원들의 관심을 끌어 급기야 하원군사위원회의 명으로 청문회까지 열렸다.

발광체들은 날아다니는 광고판과 공군 군사훈련이라고 해명되었지만 추측은 여전히 난무했다. 청문회에는 하이네크까지 불려 나왔다. 그는 의원들의 질문에, 외계 생명체와 관련된 의문을 확실하게 해소할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했다고 증언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가 선의의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다.

퀸타닐라 소령도 ‘프로젝트 블루 북’의 변화에 따른 결과들에 책임을 나눠가진다. 하이네크의 지도 아래 프로젝트는 과학자들과 연구자들 사이의 소통에 진전을 꾀했다. 하이네크는 이 프로젝트에는 대중들의 관심만큼 과학적 측면에서 세부사항들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다고 믿었다.

다시 말해, 군부의 관심은 대중들이 UFO가 실재하지 않는다고 알아차리도록 하는 데 있는 반면에, 하이네크는 진짜 UFO를 찾고 싶었다. 이러한 변화들이 거의 이행 단계에 접어들고, 초점이 진짜 과학 쪽으로 방향을 틀 즈음에 느닷없이 파국이 찾아와 하이네크를 실망시켰다. 연구가 충분히 진전되기도 전에 프로젝트가 끝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사실, 하이네크는 나중에 자신이 공개적으로는 공군의 회의적 정서에 보조를 맞추기는 했지만, 자신이 했던 많은 조사들은 단순한 설명만으로는 부족한 것들이었다는 소리를 자주 하곤 했다. 하이네크는 이후 퀸타닐라의 접근법을 두고, ‘자신의 가설과 다르면 어떤 증거도 무시해버리는 매우 무식한 방법이었다.’고 폭로했다. 그는, 퀸타닐라 소령 아래에서는 ‘어처구니없는 학교의 깃발이 깃대 봉 꼭대기에서 드높이 휘날리는 시기였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결과물들

17년의 활동 기간 동안 ‘프로젝트 블루 북’은 12,618건의 UFO 자료들을 수집했다. 이들 자료들 중 11,917건은 구름에 가려 분간이 어려웠던 항공기 불빛, 공군의 비밀 훈련, 또는 미국 남서부 사막의 신기루 등으로 해명되었다.

하지만, 음모론자들의 선물이라도 된 양, 701건의 사례들은 ‘미해결’인 채로 남았다. 연구자들이 701건을 풀어볼 시간이 부족했든지, 아니면 이들이 진짜로 공중을 날아다니는 외계인들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1969년 미 공군성 장관인 로버트 C. 시먼스는 UFO가 국가안보와 관련되어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으므로 ‘프로젝트 블루 북’을 끝낸다고 발표했다.

일부 연구들은 다음 해 1월까지 지속되기는 했지만, 프로젝트는 1969년 12월 17일 공식적으로 임무를 종료했다.

‘프로젝트 블루 북’은 다음 네 가지 요소들이 UFO 목격담들과 관련이 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1. 미국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집단 히스테리
1. 거짓말을 해서라도 명성을 얻고자하는 개인적 바람
1. 정신병리학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
1. 기존에 존재하는 물체들의 오인

이 발표들에는 UFO가 존재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단호한 입장도 포함되었다.

1. 공군에 의해 조사되고, 평가되고, 보고된 어떤 UFO도 우리 국가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표시를 나타낸 적이 없음
1. ‘미확인’으로 분류된 목격담들이 현대의 과학적 지식을 넘어선 기술적 진보나 원칙을 나타냈다는 어떤 증거도 공군에 제출되거나 공군에 의해 발견된 적이 없음
1. ‘미확인’으로 분류된 목격담들이 외계 생명체의 이동 수단임을 나타내는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음

‘프로젝트 블루 북’은 대중의 UFO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도화선이 되었지만, 신비로운 목격담은 자연 현상의 탓이라는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고 막을 내렸다.

하이네크는 자신의 연구를 계속 진행하며, 1973년 ‘UFO연구센터(CUFOS)’를 차렸다. CUFOS가 맡았던 수많은 조사들 중 80% 정도는 설명이 가능하며, 20% 정도 만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위키리크스한국=최석진 기자]

 

 

6677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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