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인사이드] 줄리안 어산지의 특출한 탐사보도 기록... 언론의 새로운 역사를 쓴 위키리크스
[WIKI 인사이드] 줄리안 어산지의 특출한 탐사보도 기록... 언론의 새로운 역사를 쓴 위키리크스
  • 최정미 기자
  • 최초작성 2019.04.23 07:16
  • 최종수정 2019.04.25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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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an Assange’s extraordinary record of investigative journalism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이 줄리안 어산지 석방 시위를 벌이고 있다. [WSW 캡쳐]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이 줄리안 어산지 석방 시위를 벌이고 있다. [WSW 캡쳐]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의 체포와 미국으로의 송환 시도에 대해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정면 공격이라는 평가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와 민주당, 영국과 호주 등의 미국의 동맹국들은 정부의 불법 행위들을 폭로하는 비밀 자료 공개와 같은 탐사보도를 범죄화하는 선례를 굳히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왔으며, 이는 몇 세기에 걸쳐 폭정과 싸워오며 확립한 언론의 자유의 기능을 말살시키기 위한 시도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어산지의 저널리스트로서의 기록은 동시대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탐사 저널리스트 존 필저는 2018년 6월 호주 사회주의 평등당 연설에서 "내 생애 어떤 탐사보도도 탐욕스런 권력에 책임을 묻는 데 있어 <위키리크스>가 해 온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어산지는 <위키리크스> 설립 이후 쓴 2006년 단편 에세이에서 그의 프로젝트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개념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권위주의 체제는 진실과 사랑, 자아 실현에 대한 사람들의 의지를 눌러서 이에 반대하는 힘을 만든다. 권위적인 통치를 지원하는 계획들이 일단 드러나면, 더 큰 저항이 초래된다. 따라서 권위주의 세력들은 저항이 헛된 것이 되거나 민낯의 권력이 저항을 더 강하게 누를 때까지 그런 계획을 감춘다"고 썼다.

2007년 8월 <위키리크스>는 케냐 정부의 공직 부패에 관한 조사와 관련한 비밀 보고서를 공개했다.

2004년에 만들어진 이 자료로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던 전 대통령 대니얼 아랍 모이와 그의 가장 가까운 조력자가 가난한 자국으로부터 1억달러에 이르는 경제를 탈취한 것이 드러났다. 이 폭로는 엄청난 분노를 촉발시켰고, 2007년 하반기에 치러진 케냐 총선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07년 11월 <위키리크스>는 관타나모 수용소의 운용 규정을 공개했다. 이는 관타나모 수용소에 대한 미군의 정책을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송환된 용의자들을 불법적으로 수감시켜 왔다. 폭로된 자료에 따르면, 미군은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적십자 단체가 일부 수감자들을 만나는 것을 막기도 했다. 이전에 미국 정부는 이에 대한 사실을 부정한 바가 있다.

2008년 2월 <위키리크스>는 스위스 은행인 줄리우스 베어의 케이맨제도 지점에 관한 기록을 공개했다. 2천개의 기업과 40명의 정치인들을 포함한 갑부들의 계좌들을 상세히 다룬 이 자료는 막대한 규모의 탈세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줄리우스 베어 은행은 <위키리크스>를 고소하고 사이트를 닫도록 하는 미국의 명령을 받아내려고 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후에 항소에서 미 수정헌법 제1조 언론의 자유를 내세운 판사에 의해 판결이 뒤집어졌다. 스위스 검찰은 자료 정보원이었던 은행 지점장 롤프 엘머를 기소하고 구속시켰다.

또한 2008년 <위키리크스>는 영국 극우정당 국민당과 미 공화당 부통령 후보 사라 팔린에 대한 폭로를 게재했다.

<위키리크스>의 초기 공개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재빠르고 가차없었다.

미 국방부의 사이버 방첩 평가사정부가 2008년 3월 8일 작성한 비밀 문서에는 <위키리크스>를 무너뜨리기 위한 계획이 상세히 적혀있었다. ‘위키리크스, 해외 온라인 참고 사이트인가, 정보기관인가, 반란단체인가, 아니면 테러단체인가?’라는 제목의 이 문서는 폭로와 범죄 고발의 위협 등으로 <위키리크스>의 구심점인 신뢰감을 무너뜨리기 위한 조치를 촉구했다.

2009년 <위키리크스>의 폭로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 해 1월 <위키리크스>는 전년도 석유 계약과 관련한 부패 스캔들에 책임이 있는 페루 기업가들과 정치인들의 통화내용을 공개했다.

그 해 중반에 <위키리크스>는 전년에 발생한 이란 나탄즈 핵시설의 사고에 대한 이란의 공식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전쟁 위협이 고조된 가운데 일어난 이 재앙과 관련해 상세하게 기술돼 있었다. 이로 인해 서방 정보기관들로부터 나온 악성 컴퓨터 바이러스가 이 사고를 일으킨 것이라는 의혹이 일었다.

또한 2008년 아이슬란드에 금융 위기가 닥치기 하루 전 날 아이슬란드 은행에서 막대한 자금이 경영진들에게로 흘러들어갔고 큰 규모의 부채가 탕감된 사실, 비밀 유출을 막기 위한 영국 국방부의 조치, 아이보리 코스트에 유독물질을 버린 기업에 대한 증거, 9/11 테러와 관현된 자료, 호주 정부가 금지한 인터넷 사이트 리스트 등을 <위키리크스>가 폭로했다.

호주 정부가 금지한 사이트에는 뉴스와 정치 관련 사이트들이 포함돼 있다. 당시 호주 정부는 아동 포르노 등의 불법 사이트들을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라고 주장했지만, 거짓임이 드러났다.

2010년 2월 <위키리크스>는 전 세계 수백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레이캬비크 13’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의 외교 전문을 공개한 것이다. 미군 내부고발자 첼시 매닝이 유출한 자료들의 첫번째 공개였다.

이 자료들은 아이슬란드의 금융위기 이후 일어난 ‘아이스세이브’로 알려진 외교적 분쟁과 관련한 숨겨진 정보들을 상세하게 보여줬다.

아이슬란드 3대 은행 중 하나인 란즈방키가 2008년에 파산했다. 정부 당국은 구제를 거부했고 영국과 다른 유럽 국가들의 지점들로부터 들어온 34만건 이상의 예금들에서 약  67억 유로(한화 약 8조 5천억원)가 사라졌다. 이로 인해 외교적 분쟁과, 대중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한 합동적인 시도가 촉발됐다. 

그 해 4월 <위키리크스>는 악명높은 ‘부수적 살인’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은 2007년 7월 미군 헬기가 바그다드를 공격하며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들을 살해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미군은 초기 공격 후에 시체들을 수습하고, 부상자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을 향해서 또 다시 발포했다.

살인마를 방불케 하는 미군들의 대화 내용도 담겨 있는 이 영상은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고, 미국의 신식민지적 지배의 범죄적인 특성을 상세하게 보여줬다.

이는 미국과 그 동맹국 뿐 만이 아닌 언론 기업들의 폐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당시 언론들은 불법적인 공격의 구실이었던 대량살상 무기에 관한 거짓을 부추겼다. 후에 이들은 미군과 동맹국군과 투합하여 침략을 자유로 묘사했다.

미국 정부는 이 폭로에 마녀사냥으로 대응을 시작했다. 2010년 5월 매닝을 체포한 것이다. 매닝은 FBI 정보원 애드리언 라모에 의해 덫에 걸렸다.

아프가니스탄 비밀문서를 폭로하는 줄리안 어산지. [EPA=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비밀문서를 폭로하는 줄리안 어산지. [EPA=연합뉴스]

그 해 6월, <위키리크스>는 아프간전의 기록들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2004년 1월부터 2009년 12월까지의 9만건 이상의 미군의 분쟁사건과 정보 보고서가 포함돼 있다. <위키리크스>는 이 자료들의 공개에 있어 <뉴욕타임즈>와 <가디언>, 그 외 주류 언론사들과 협력했다.

이 자료들로 최소 195명의 민간인이 나토군에 의해 사망한 것이 드러났다. 이전에는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다. 탈레반 지도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이나 미군의 점령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불법적으로 암살하는 비밀 부대가 미군 내에 존재한다는 것도 드러났다.

<가디언>은 이 외 끔찍한 사고들에 대한 보도로 이목을 끌었다. 여기에는 2007년 프랑스군이 어린이들이 탄 버스를 폭격해 8명이 부상당한 것과, 같은 해 미군이 버스를 공격해 15명의 민간인 승객들이 사망한 것, 2007년 폴란드군의 보복성 박격포 공격으로 결혼식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한 것을 보도했다. 공개된 자료들 안에는 그 밖에 많은 비슷한 사건들이 있다. 

전쟁 기록은 수많은 아프간 사람들이 미군의 점령에 반대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미국이 승리하고 있다는 주장이 거짓임도 보여줬다.

2010년 10월 <위키리크스>는 40만건 이상의 이라크전 기록들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아프간전 자료들과 비슷한 기간 동안의 기록들이다. 이라크전 기록은 거의 11만명의 사망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이 중 6만 6천명 이상이 미군에 의해 민간인으로 기록됐다.  미국 당국에는 15,000명의 민간인 사망이 알려졌으며, 대중들에게는 은폐됐다.

<위키리크스>의 공개 자료들은 검문소와 그 외 지역에서의 비무장 민간인들에 대한 미군의 잔혹한 공격을 상세히 다뤘고, 미군이 미군 주도의 점령을 위한 암살단 기능의 이라크 민병대를 구축하고 있었다는 것도 보여줬다. 또한 미군과 친미 이라크인이 자행한 고문 사건들과 이러한 전쟁 범죄에 대한 조사를 군 고위 지휘부가 거부한 것에 대한 내용들도 들어있다.

2010년 11월 <위키리크스>는 또 한 번 주류 언론들과 협력해서 매닝이 유출한 25만 건 이상의 미국 외교 전문들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 문서들로 전 세계 각 국가 내 또는 세계적인 정치 사안들을 장악하고 있는 범행, 모의, 음모에 대한 전례없는 폭로가 이뤄졌다.

<월드소셜리스트웹사이트>는 11월 30일 초기 폭로의 일부들을 인용했는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돼 있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장군과 예멘의 부패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의 대화를 기술한 2010년 1월의 한 전문에는 미군이 비밀리에 일으킨 공습에 대한 책임을 예멘 정권이 지기 위한 거래가 도모됐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 전문이 작성돼 보내지기 몇 주 전에 미국의 크루즈 미사일이 예멘의 어느 작은 마을을 초토화시켰고, 이로 인해 55명이 사망했으며, 이들 중 최소 41명은 여성과 어린이들이었다.

미국 외교관들에게 외국 정부와 유엔 관료들의 신용카드 번호부터 항공사 마일리지 번호, 인터넷 비밀번호, 근무 일정, 심지어 DNA 샘플 등의 개인 정보를 수집하도록 지침을 내리고 있는 국무부의 전문들이 있었다.

온두라스 주재 미국 대사관의 2009년 10월의 한 전문은 온두라스 대통령 마누엘 젤라야 체제의 전복이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쿠데타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 전문은 쿠데타와 뒤이은 탄압을 위한 미국 정부의 지원과 은폐를 보여줬다.

이러한 전문들로 전 세계 국가들에 대한 정치적 음모와 워싱턴의 불법적인 모의 활동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호주에서는 미 대사관의 보호받는 정보원들로 이뤄진 노동당 내의 비밀 집단이 2010년 6월 당시 총리였던 케빈 러드가 자리에서 물로나도록 한 일이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 전문들에는 전면적인 전쟁을 막기 위해 워싱턴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중국의 부상에 제한적으로 정책을 맞춰야 한다는 러드의 제안에 대한 미국의 높은 적개심이 담겨 있었다. 미국은 전문을 통해 러드가 물러나는 것이 호주 통합을 위한 것이고, 중국을 향한 대규모의 미군 증강을 위한 것이라고 명확하게 표현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서의 미국의 신식민주의가 드러난 전문들도 있다. 수백건의 재판에 전문들이 증거로 제출됐으며, 이를 통해 탄압받은 사람들이 검찰에 맞서는 길을 찾기도 했다.

튀니지에서 작성된 전문에는 미국 정부의 지지를 받고 있던 벤 알리 대통령 정권의 부패에 대해 미국이 잘 알고 있음이 드러났다. 알리는 미국의 지원을 받고, 가족과 함께 자국의 부를 탈취하고 있었으며, 양국이 관타나모 수용소에 억류돼 있는 튀니지 국민들의 권리를 말살시키는 데 공모한 것이 이 전문들을 통해 드러났다.

이 자료들이 공개된 지 두 달도 안 된 2011년 1월, 튀니지에서 노동자들과 청년들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 수십년 독재를 무너뜨렸다.

미국 정부 기관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잡지 <포린어페어즈>는 ‘최초의 위키리크스 혁명?’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지배계층의 두려움에 대해 보도하면서, ‘우리는 또한 튀니지를 위키리크스가 사람들을 벼랑끝으로 몰고 간 최초의 국가로 볼 수 있겠다’라고 기술했다.

그로부터 몇 주 뒤, 수백만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한 이집트 혁명이 일어났다. 이는 튀니지 혁명의 영향을 그대로 받은 것이었다. 미국의 후원을 받고 있는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 정권 또한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 전문들 가운데에 등장했다. 해당 전문들은 무바라크 정권의 부패와, 정치적 수감자들에 대한 고문과 불법적인 심문에 있어 CIA와의 공모를 보여줬다.

외교 전문 폭로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아주 신경질적이었다. 미국의 고위급 정치인들은 어산지를 테러리스트라며 비난하고 그의 암살을 촉구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첼시 매닝을 전례없는 판결을 집행하도록 하는 조항들로 기소하고, <위키리크스>를 기소하기 위한 비밀 대배심을 구성했다. 미국에 협력하고 있는 스웨덴 당국은 어산지에 대한 가짜 성범죄 수사를 시작했다

호주 노동당 정부의 지원으로 가해진 탄압은 결국 2012년 6월 그가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 들어가 정치적 망명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어산지는 제한된 상황 속에서도 계속해서 <위키리크스>를 이끌었다.

2011년 4월 <위키리크스>는 관타나모 파일을 공개했다. 이는 불법적으로 수감된 최소 150명의 아프간과 파키스탄 민간인들에 대한 자료이다. 미국 당국 또한 이들이 테러와 무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들 수감자들 중에는 14세의 소년과 89세의 노인도 있었다.

2012년 2월 초 <위키리크스>는 550만건이 넘는 미국의 전략연구소 스트랫포의 내부 문서들을 공개했다. 이 문서들을 통해 이 기업이 민간 정보기관의 역할을 한 것이 드러났는데, 이들은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의 시위자들과 환경 운동가들을 감시하는 일도 했다.

2012년에서 2015년 사이, <위키리크스>는 시리아 파일, 170만건의 1970년대 이후 미국 외교 파일, 90개의 주요 감시 업체들의 활동을 폭로하는 문서, 미국 지배 하의 환태평양 협정 확립을 둘러싼 비밀 협상, 전세계 사우디 대사관들의 50만건 이상의 전문 등을 공개했다.

2015년 6월과 7월에는 미국 국가안전국 NSA가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와 그의 두 전임자들, 여기에 독일과 브라질 정부까지 감시해온 것을 보여주는 문서 시리즈를 공개했다. 미국 정부의 반복되는 국제법 위반들을 보여주는 여러 폭로 중 일부에 불과했다.

2016년 7월, <위키리크스>는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의 유출된 이메일들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자칭 사회주의자인 버니 샌더스에 불리하고 힐러리 클린턴에 유리하도록 대선 경선을 조작하기 위한, 민주당의 자체 규정을 위반하는 음모가 드러났다.

2016년 10월 7일, <위키리크스>는 클린턴 선거운동본부장 존 포데스타가 보낸 이메일들을 공개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의 이메일들과 마찬가지로 보도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이 이메일들에는 여러 은행과 기업 포럼에서 열린 힐러리 클린턴의 연설 녹취록들이 들어있었는데, 이를 통해 클린턴이 월가에 대한 지지와 금융 과두정치의 약속, 불법적인 전쟁을 더욱 일으킬 의지를 적극 보여준 것이 드러났다.

이에 대한 대응은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앞잡이 역할을 했다는, 어산지와 <위키리크스>에 대한 증거없는 고발이었다. 언론들은 <위키리크스>가 수십만 건의 러시아 문서들을 공개한 사실들은 가린 채, 군국주의 지배계층의 대표자인 클린턴에 대한 폭로를 경시하거나 무시했다.

히스테리적인 반러시아 운동이 <위키리크스>, <월드소셜리스트웹사이트> 같은 반전과 진보 관련의 많은 웹사이트들을 검열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군국주의와 전쟁의 확대를 촉구하는 데 이용됐다.

2017년 3월 <위키리크스>는 30년 이상 자행돼온 CIA의 범행 수법에 관한 최대 규모의 폭로를 ‘볼트 7’이라는 제목으로 게재했다.

이를 통해 전세계 컴퓨터 해킹과 관련한 CIA 부서의 활동들이 상세히 드러났고, CIA는 세계 최대의 악성 컴퓨터 바이러스 공급자로 낙인 찍혔다.

또한 이 자료들로 이 CIA 부서가 컴퓨터 시스템을 해킹하고 러시아와 이란 등 다른 국가의 소행인 것처럼 보이는 흔적을 남기기 위한 기술을 개발해온 것과 스마트 TV와 기타 가전제품들로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던 것이 드러났다. 또 CIA는 첨단 자동차들의 컴퓨터 시스템을 원격으로 조정하는 기술을 개발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술들은 암살 작전에 사용될 수 있다.

‘볼트 7’ 자료 공개로 어산지에 대한 미국 정부의 추격은 더욱 거세졌다. 결국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불법적으로 축출되고 영국 경찰에 체포됐으며, 이는 미국 송환을 목표로 한 것이다.

어산지와 <위키리크스>는 독특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록을 갖고 있는 매체이다.

지난 4월 12일 호주 사회주의 평등당의 오랜 지도자인 닉 빔즈가 시드니에서의 당 대회에서 어산지를 다음과 같이 옹호했다.

"줄리안 어산지는 노동자와 청년, 전세계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저널리스트로서 그의 의무를 수행했다. 이제 우리가 그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 어산지 지지 운동을 결집하고, 조직하고, 촉구하고, 발전시키자! 그가 한 일 때문 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노동자 계층의 권리를 지키는 것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대의는 우리의 대의이다. 그를 지키는 것은 우리를 지키는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12일(현지시각) 위키리크스 창립자인 줄리언 어산지의 체포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어산지를 석방하라’고 적은 펼침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시드니/EPA 연합뉴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12일(현지시각) 위키리크스 창립자인 줄리언 어산지의 체포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어산지를 석방하라’고 적은 펼침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시드니/EPA 연합뉴스

Julian Assange’s extraordinary record of investigative journalism

The illegal arrest of WikiLeaks founder Julian Assange inside Ecuador’s London embassy, and the attempt by the US to extradite him on concocted conspiracy charges, are a frontal assault on freedom of the press.

The Trump administration, with the support of the Democrats, and US allies including Britain and Australia, is seeking to establish a precedent that criminalises genuine investigative journalism, including the publication of classified material exposing government illegality.

This is nothing less than an attempt to abolish the function of a genuine free press, established over centuries of struggle against despotism.

The attacks on Assange are opposed by masses of workers, students and young people around the world. Corporate media outlets, however, have responded to Assange’s arrest by escalating their protracted campaign of slanders and lies against him.

They have adapted themselves to the bogus US charges against Assange, with many alleging that he is not a journalist and that WikiLeaks merely “dumps” material it receives online. Australian journalist Peter Greste, for instance, wrote within hours of Assange’s arrest: “To be clear, Julian Assange is not a journalist, and WikiLeaks is not a news organisation.”

Such individuals and media organisations only demonstrate that they are the servile mouthpieces of governments, intelligence agencies and the corporate elite. Speaking for the most affluent layers of the upper-middle class, they are no less hostile than Assange’s persecutors to the publication of material that threatens the status quo.

In reality, Assange’s record as a journalist is unparalleled in the contemporary period. As world-renowned investigative journalist John Pilger told a Socialist Equality Party rally in June, 2018: “No investigative journalism in my lifetime can equal the importance of what WikiLeaks has done in calling rapacious power to account.”

When a full record of WikiLeaks investigative exposures is published, it will span volumes.

In a 2006 essay, written shortly after the founding of WikiLeaks, Assange, then the publisher’s editor-in-chief, explained some of the conceptions underlying the project.
He wrote: “Authoritarian regimes create forces which oppose them by pushing against a people’s will to truth, love and self-realization. Plans which assist authoritarian rule, once discovered, induce further resistance. Hence such schemes are concealed by successful authoritarian powers until resistance is futile or outweighed by the efficiencies of naked power.”

In August, 2007, WikiLeaks published the secret report of a Kenyan government investigation into official corruption. The document, produced in 2004, revealed that previous US-backed President Daniel Arap Moi and his closest associates had looted the impoverished country’s economy to the tune of hundreds of millions of dollars. Its publication sparked mass anger and impacted on the Kenyan national election held in late 2007.

In November 2007, WikiLeaks published a 2003 copy of “Standard Operating Procedures for Camp Delta,” outlining official US army policy at its brutal Guantanamo Bay prison, where individuals have been illegally detained after rendition operations. The document indicated that the US was preventing the Red Cross from accessing some of the prisoners, a claim the government had previously denied.

In February 2008, WikiLeaks released records of the Cayman Islands branch of Swiss bank Julius Baer. The material, detailing the accounts of 2,000 corporations and ultra-wealthy individuals, including 40 politicians, resulted in allegations of tax avoidance on a vast scale.

The bank responded by suing WikiLeaks and securing an injunction in the US which took down its main website. The decision was subsequently overturned on appeal by a judge, who cited the freedom of the press provisions in the First Amendment of the US Constitution. Swiss prosecutors charged and jailed Rolf Elmer, a bank manager who was the source of the material.

During 2008, WikiLeaks also published exposures of the extreme right-wing British National Party, and material on the Republican vice-presidential candidate Sarah Palin.
The US response to WikiLeaks’ early publications was swift and brutal.

A secret memo, issued by the Cyber Counter-intelligence Assessments Branch of the US Defence Department on March 8, 2008, detailed a plan to destroy the organisation. It was headlined: “Wikileaks.org—An Online Reference to Foreign, Intelligence Services, Insurgents, or Terrorist Groups?” The document called for measures to undermine the “feeling of trust” that is WikiLeaks’ “centre of gravity,” including through threats of “exposure [and] criminal prosecution.”
In 2009, the number of WikiLeaks publications expanded dramatically.

In January, the organisation published intercepts of the phone conversations of Peruvian businessmen and politicians implicated in a corruption scandal relating to oil contracts the previous year.

In the middle of that year, it released official Iranian reports into a major nuclear accident at the country’s Natanz nuclear facility the previous year. The details of the disaster, which occurred amid stepped-up US and Israeli war threats against Iran, led some to suspect that the accident may have been caused by a malicious computer virus originating from Western intelligence agencies.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이 줄리안 어산지 석방 시위를 벌이고 있다. [WSW 캡쳐]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이 줄리안 어산지 석방 시위를 벌이고 있다. [WSW 캡쳐]

Other publications exposed the transfer of vast sums of money from Icelandic banks to their executives and the writing off of major debts on the eve of the country’s 2008 financial crisis; a British Ministry of Defence document outlining measures to prevent leaks; evidence of corporate dumping of toxic material in the Ivory Coast; documents relating to the

September 11 terrorist attacks, and the list of websites banned by the Australian government. The latter included news and political sites, exposing the fraudulent character of government claims that the blacklist only targeted child pornography and other illicit content.

In February 2010, the year that WikiLeaks came to the attention of millions of people around the world, the organisation published a US diplomatic cable dubbed Reykjavik 13. It was the first material released, which had been leaked by the courageous US army whistleblower Chelsea Manning.

The document detailed previously hidden information about the diplomatic dispute, known as Icesave, that followed Iceland’s financial crisis.

Landsbanki, one of the country’s three largest banks, went bankrupt in 2008. With the national financial authorities rejecting a bailout, over 340,000 retail deposits from the UK and other European nations lost an estimated €6.7 billion in saving, triggering diplomatic recriminations, and a coordinated attempt to mitigate public anger.

In April, WikiLeaks published the infamous “Collateral Murder” video, showing a July 2007 US army helicopter airstrike in Baghdad. It documented US soldiers firing on unarmed civilians. The brutal attack resulted in up to 18 deaths, including two Reuters journalists. After their initial attack, the US forces shot at a group of people who had come to collect the bodies and tend to the wounded.

The footage, which included the murderous comments of the US soldiers, shocked masses of people, revealing, in graphic detail the criminal character of the US neo-colonial occupation.

It was an indictment, not only of the US and its allies, but also of the corporate press, which had promoted the lies about “weapons of mass destruction” used as the pretext for the illegal invasion, before “embedding” themselves with the US and allied military, and presenting the brutal occupation as a “liberation.”

The US government responded by launching a witch-hunt throughout the military, culminating in the May 2010 arrest of Manning, after she was entrapped by an FBI informant named Adrian Lamo.

In June, WikiLeaks began publication of the Afghan war logs, comprising over 90,000 incident and intelligence reports from the US military, from January 2004 to December 2009. The organisation partnered with the New York Times, the Guardian and other prominent corporate outlets in the release.

The documents detailed at least 195 civilian deaths at the hands of NATO troops, which had previously been hidden from the public. They exposed the existence of a secret “black unit” within the US military, tasked with illegally assassinating suspected Taliban leaders and opponents of the occupation.

The Guardian drew attention to other horrific incidents, including a 2007 strafing of a bus of children by French troops, which wounded eight; a US patrol machine-gun attack on civilians in a bus which killed 15 passengers the same year; and a 2007 revenge mortar attack on a village by Polish troops that decimated a wedding party. Many other similar events were documented.

The logs exposed the fraudulent character of claims that the US was “winning,” pointing to the mass opposition of Afghan people to the occupation.

In October 2010, WikiLeaks began publishing more than 400,000 war logs from Iraq, covering the same period as the Afghan documents. The Iraq logs documented the deaths of almost 110,000 people, including more than 66,000 people labelled by the US military as civilians. This included 15,000 civilian deaths, which were known to the US authorities, but publicly suppressed.

They detailed brutal US military attacks on unarmed civilians at checkpoints and elsewhere. The publication established that the US army was actively cultivating sectarian Iraqi militias that functioned as death squads for the US-led occupation. The logs record incidents of torture by US troops, and their Iraqi proxies, and the refusal of military high command to even investigate such war crimes.

In November 2010, WikiLeaks, again partnering with prominent media outlets, began publishing more than 250,000 US diplomatic cables, which had been leaked by Manning.

The documents provided an unprecedented exposure of the daily criminality, intrigues and conspiracies that dominate official politics within each country and on a global scale. A WSWS perspective on November 30, cited some of the initial revelations contained in the documents, including:

* A January 2010 cable describing a conversation between General David Petraeus and the corrupt dictator of Yemen President Ali Abdullah Saleh in which a deal was hatched for the Yemeni regime to take responsibility for air strikes secretly being carried out by the US military. Just weeks earlier a US cruise missile had devastated a Yemeni hamlet, leaving 55 people dead, at least 41 of them women and children.

* State Department cables instructing US diplomats to gather personal information ranging from credit card and frequent flyer account numbers to Internet passwords, work schedules and even DNA samples on officials of foreign governments and the United Nations.

* A cable describing how the US government worked to intimidate Germany into dropping arrest warrants against CIA agents involved in the kidnapping, detention and torture of an innocent German citizen.

* An October 2009 cable from the US Embassy in Tegucigalpa recognising that the overthrow of Honduran President Manuel Zelaya constituted an illegal and unconstitutional coup. The cable documents Washington’s support and cover-up for that coup and the repression that followed.

The cables uncovered political conspiracies and Washington’s illegal intrigues in countries all over the world.

In Australia, for instance, they established that a cabal within the Labor Party, which had removed sitting Prime Minister Kevin Rudd in June 2010 had been composed of “protected sources” of the US embassy.

The cables documented the intense hostility of US officials to Rudd’s proposals that Washington make a limited accommodation to China’s rise in the Asia-Pacific to head off a full scale war. They made plain that his removal was aimed at integrating Australia, ever more directly, into a massive US military build-up directed against Beijing.

Other cables exposed neo-colonial operations in Asia, Africa and throughout the Middle East. Cables in the tranche have been submitted as evidence in hundreds of court cases, including those in which oppressed peoples have sought to challenge their persecutors.

Cables from Tunisia documented intimate US knowledge of the gross corruption of the Washington-backed regime of President Ben Ali. They demonstrated that Ali had the support of the US, as he and his family were looting the country’s wealth, and that the two countries had collaborated in abrogating the rights of Tunisian citizens detained in Guantanamo Bay.

In January 2011, less than two months after the documents were released, a mass movement of Tunisian workers and youth toppled the dictatorship, which had been in power for decades.

Foreign Affairs magazine, which has close ties to the US state apparatus, summed up the fears of the ruling elite, with a featured article titled “The First WikiLeaks Revolution?” It stated:

“we might also count Tunisia as the first time that WikiLeaks pushed people over the brink.”

Within weeks, the Egyptian revolution, involving millions of workers, had broken out. It had been directly inspired by the Tunisian uprising. The US-backed dictatorship of Hosni Mubarak also featured in diplomatic cables, documenting its corruption and collaboration with the CIA in the torture and illegal interrogation of political prisoners.

The US response to the publication of the diplomatic cables was hysterical. Senior US politicians denounced Assange as a terrorist and called for his assassination.

The Obama administration prosecuted Chelsea Manning on counts carrying an unprecedented sentence and impaneled a secret Grand Jury to concoct charges against WikiLeaks. The Swedish authorities, undoubtedly acting in concert with the US, launched a bogus investigation into sexual misconduct against Assange.

The immense persecution, aided by the Labor government in Australia, eventually compelled him to seek political asylum in London’s Ecuador embassy in June, 2012.

Despite the restrictions imposed upon him, Assange continued to lead the work of WikiLeaks.

In April 2011, WikiLeaks had published the Guantánamo Files, documenting the illegal imprisonment of at least 150 Afghan and Pakistani civilians, who the US authorities knew had no connection to terrorism. They included a 14-year-old boy and an 89-year-old man.

Beginning in February 2012, WikiLeaks released over 5.5 million internal documents from Stratfor, a US-based company. The documents showed that the corporation operated as a private intelligence agency, including by spying on Occupy Wall Street protesters and environmental activists.

Between 2012 and 2015, WikiLeaks releases included the Syria files; 1.7 million US diplomatic files from the 1970s; documents exposing the activities of 90 major surveillance companies; the hidden negotiations surrounding the establishment of the US-dominated Trans-Pacific Partnership; and more than 500,000 cables from Saudi Arabian embassies around the world.

In June and July 2015, WikiLeaks published a series of documents showing that the US National Security Agency had spied on French President Francois Hollande and his two predecessors, along with the German and Brazilian governments. The revelations were yet another exposure of the repeated violations of international law by the US government.
In July 2016, WikiLeaks began publishing leaked emails from the Democratic National Committee, demonstrating a plot, in contravention of the organisation’s own rules, to rig the Democratic Party presidential primary against self-declared “socialist” Bernie Sanders and in favour of Hillary Clinton.

On October 7, 2016, WikiLeaks published a trove of emails sent by John Podesta, the chairman of the Clinton campaign. As with the DNC leaks, the information was highly newsworthy. The emails included transcripts of speeches given by Hillary Clinton to various bank and corporate forums, where she boasted of her support for Wall Street, commitment to the interests of the financial oligarchy and willingness to launch further illegal wars.

The response was to accuse Assange and WikiLeaks, without any evidence, of acting as stooges of the Russian regime of President Vladimir Putin. Media outlets suppressed the fact that WikiLeaks had published hundreds of thousands of documents from Russia, and sought to downplay or ignore the exposure of Clinton as a militarist representative of the ruling elite.
The hysterical anti-Russian campaign has been used to justify the censorship of anti-war and progressive websites, including WikiLeaks, the World Socialist Web Site and many others, and to push for an escalation of militarism and war.

In March, 2017, WikiLeaks began publishing Vault 7, the most extensive exposure of the criminal methods of the CIA in more than 30 years.

The documents detailed the activities of a division within the agency, involved in hacking computers all over the world. They branded the CIA as the biggest purveyor of malicious computer viruses in the world.

They also demonstrated that the division had developed techniques to hack into computer systems and leave “tell-tale” markers, attributing the attacks to other countries, including Russia and Iran, Vault 7 revealed that the agency was spying on people through smart televisions and other household devices. The CIA was also seeking to develop capabilities to remotely take control of the computer systems in modern cars. Such abilities could be used in assassination operations.

The publication of the Vault 7 documents, led to a major escalation of Washington’s pursuit of Assange, culminating in his illegal expulsion from the Ecuadorian embassy and arrest by British police, aimed at facilitating his extradition to the US.

Assange and WikiLeaks are publishers with a unique and unparalleled record.

As Nick Beams, a longstanding leader of the Socialist Equality Party (Australia), declared at the SEP’s Sydney rally to defend Assange on April 12:

“Julian Assange has performed his duty as a journalist to workers, to youth, to the mass of ordinary people around the world. Now, we are obliged to repay that debt which we owe him. To rally, to organise, to agitate, to develop a movement in his defence.

“And not just because of what’s he’s done, but because of what it means for us. Because that defence of democratic rights is integral to the defence of the rights of the working class as a whole, the world over. His cause is our cause. His defence is our defence.”

 

6677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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