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비밀문서] 긴박했던 1980년 5월 17일...'서울의 봄' 3김 체포로 끝나고 전국은 공포로 덮이다
[WIKI 비밀문서] 긴박했던 1980년 5월 17일...'서울의 봄' 3김 체포로 끝나고 전국은 공포로 덮이다
  • 특별취재팀
  • 기사승인 2019-05-17 07:07:46
  • 최종수정 2019.05.17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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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5일. 민주화를 열망하며 서울역에 모인 10만여 명의 대학생과 시민들. [연합뉴스]
1980년 5월 15일. 민주화를 열망하며 서울역에 모인 10만여 명의 대학생과 시민들. [연합뉴스]

1979년 10⋅26 사태 이후 정치권과 대학가에서는 민주화를 위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됐다. 이듬해인 1980년 봄부터 대학생들은 비상계엄 철폐와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며 거리 시위에 나섰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광장에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갖고 수만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비상계엄 해제와 조기 개헌을 요구하는 집회를 진행했다.

반정부 시위에 참가하는 학생들의 숫자는 더욱 불어나 오후에는 10만명에 육박했다. 학생들은 서울역에서 중앙청까지 진출을 시도했고, 정부 측은 경찰봉과 최루가스로 무장한 경찰들만으로 저지선을 지키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 무술 전투경찰까지 투입했다.

신군부는 미국과 병력은 투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지만, 중앙청 주변에는 베레모를 착용하고 무기를 휴대한 특수부대 군인들이 배치됐다. 무기를 사용하지는 않았고 발포도 없었지만, 미국과의 약속은 어긴 셈이다.

시위는 점차 거칠어졌다. 학생들은 최루가스와 경찰봉을 날리는 경찰의 강경진압에 흥분하기 시작, 돌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학생들은 페퍼포그 차 몇 대를 불태웠다. 이같은 과정에서 진압 경찰 한 명이 사망했다.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군인들의 발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그러나 시위가 더 확산되는 것을 우려한 지도부는 다음날인 16일 해산을 결정했다.

이른바 ‘서울역 회군’으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군부와 권력의 요직을 장악한 신군부의 권력 장악 계획은 결정적인 호기를 맞게 됐다. 신군부는 17일 초저녁 폭동진압 경찰이 이화여대에 난입, 그 곳에서 열리고 있던 학생대표회의를 중단시키고 17명의 학생 지도자들을 체포했다.

신군부는 이어 이날 24시를 기해 신군부는 전국으로 비상계엄을 확대했다. 신군부는 20일로 예정된 임시 국회를 무산시키는 한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상황은 다시 완화됐다. 학생 시위대 지도부의 온건파들이 시위의 기세를 누그러뜨리는데 성공해 예정돼 있던 다음날(16일. 금) 시위를 철회한 것이다.

주말인 17일(토)과 18일(일) 서울 거리는 평온을 되찾았다.

학생들과 계엄당국은 다음 전략을 짜는데 부심했다. 학생들은 잠시 시위를 멈추고 △20일까지 계엄령을 해제할 것 △80년말까지 정권이양을 완료할 것 △신현확 총리와 전두환 장군의 사퇴일정을 공표할 것 △모든 양심수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학생대표, 야당지도자들 체포... 신군부의 폭거 시작되다

신군부는 ‘학생들의 요구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며 대학 폐쇄, 비상계엄 확대를 선포했다. 이어 야당지도자들인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이 차례로 체포되거나 가택연금됐다.

이날 밤 9시 30분경 미국 관리들은 청와대로부터 ‘5월 18일 1시를 기해 전국적으로 계엄령이 실시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아침이 되자 대학 캠퍼스는 군인들에 의해 점거됐다. 서울은 명실상부하게 계엄령 치하로 접어들었다. 탱크로 무장한 군병력이 주요 도시에 투입됐다.

그날 밤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는 전화와 전보로 워싱턴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전두환이 중심적이지만, 반드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지 않은 한국 군부는 학생들과 어쩌면 전체 정치권에 강력한 탄압을 가하기 위해 한국 정부의 합법적 권위를 무시했다. 군부에 의한 사실상의 정권 인수가 진행 중인 것 같다. 속수무책인 대통령과 각료들은 그들의 결정을 추인했다.”

글라이스틴은 “위컴 장군의 조속한 서울 귀임과 공식성명 발표, 최 대통령과 군부 지도자들을 만나 미국의 항의를 전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 정부는 18일(일) 최 대통령과 이희성 계엄사령관과의 면담을 추진할 것과, 미국 정부의 고위 정보대표로 하여금 이들과의 대화내용을 전두환 장군에게 전달할 것을 지시했다. 동시에 워싱턴에서는 홀브룩 차관보가 국무부, 국방부, 국가안보회의, CIA 고위급이 참석한 가운데 김용식 주미대사를 초치해 미국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기로 했다.

▶카터 대통령 “한국 군부의 행동은 내란 위협 고조”

글라이스틴 대사는 이희성 계엄사령관, 최 대통령을 잇따라 만나 한국 정부의 가혹한 조치들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전달했다.

“5월 17일 군부의 행동은 합법 정부의 대외 신뢰도를 손상시키며 민주발전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여망을 좌절시키고, 내란의 위협을 높일 수 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북한의 개입 위험도 높인다고 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양국 관계를 ‘특히 어려운 시기’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이건 지미 카터 대통령의 지시입니다.”

대사는 워싱턴에서 발표될 비판적인 성명서를 읽어보도록 했다.

< 미국 정부는 계엄령이 대한민국 전역에서 확대된 것과 대학의 폐쇄, 그리고 상당수의 정치, 학생 지도자들이 체포된 것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우리는 정치적 자유화를 위한 과정은 법의 존중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정부가 취한 행동은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한다. 최 대통령은 일찍이 밝힌 헌법 개정과 민의에 의한 민간정부 선출을 위한 노력이 즉시 재개될 것을 바라는 우리의 희망을 자차 강조했다... 미국 정부는 대한민국의 현 상황을 이용하려는 어떠한 외부의 기도에 대해서도 방위조약 의무에 의거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다.>

글라이스틴은 “미국은 사태 전개에 심각하게 우려할 뿐만 아니라 사전에 아무런 협의도 없었던 점에 놀라움과 충격을 금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특히 정치 지도자의 체포와 같은 행동은 최 대통령이 밝힌 정치 개혁 계획이나 대다수 한국민들의 여망에도 부합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즉시, 그리고 공개적으로 민간정부 선출을 위한 노력의 재개 신호를 보낼 것과 3김의 석방, 국회 개원(20일)이 중요하다고 최 대통령, 계엄사령관에게 강조했다.

한편, 서울의 움직임과 별도로 남쪽에서 초대형 태풍이 몰려오고 있었다.

광주에서는 18일 신군부의 5⋅17 군사 쿠데타에 항거해 비상계엄 해제와 신군부 세력 퇴진, 김대중 석방, 민주주의 실현 등을 요구하는 대규모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발생했다. 하지만 신군부는 공수 부대를 동원하여 이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이 사태가 대한민국 정치사를 뒤흔들 핵폭탄급 태풍으로 발전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특별취재팀= 최정미, 최석진, 박정우 기자]

< 참조 문서>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408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204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TATE281946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088_e.html

▷http//wikileaks.org/plusd/cables/1979STATE320837_e.html

▷Massive Entanglement, Marginal Influence / William Gleysteen

6677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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