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인사이드] 버지니아 울프의 비극적 운명에서 탄생되는 자살방지 어플
[WIKI 인사이드] 버지니아 울프의 비극적 운명에서 탄생되는 자살방지 어플
  • 최석진 기자
  • 기사승인 2019-05-23 07:24:50
  • 최종수정 2019.07.05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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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오른쪽)와 조카 안젤리카 가넷. [연합뉴스]
버지니아 울프(오른쪽)와 조카 안젤리카 가넷. [연합뉴스]

디지털 기기들이 인간의 심리, 감성, 정서까지 관장하는 세상이다. 인간 심리의 극한에서 이루어지는 자살이라는 행위도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감지되고 방지되는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미국 인터넷 사이트 ATI(allthatsinteresting.com)는 6일(현지시간) 어플 개발자들이 버지니아 울프(1882-1941)의 비극적 자살을 통해 일반인들의 자살을 미연에 방지하는 앱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많은 작품을 남기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영국의 여류 작가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이야기는 한 세기 이상의 세월이 지나고도 현대 문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남기 유명 소설 「댈러웨이 부인」이나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같은 페미니즘 에세이들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가 하면 그녀의 자살에 얽힌 이야기도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1941년 이른 봄 호주머니에 돌들을 가득 채우고 집 근처 강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 뒤에는 일생을 비극적 운명과 정신적 질병에 맞서 싸운 한 여인의 암울한 이야기가 도사리고 있다. 물론, 그녀는 결국 자신을 괴롭히는 상념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비극의 주인공

버지니아 울프는 1882년 1월 25일 영국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어린 시절 이름은 ‘아델린 버지니아 스티븐(Adeline Virginia Stephen)’이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부모, 레슬리 스티븐 경과 줄리아 스티븐은 런던 사회의 유명 인사였다. 아버지 레슬리 경은 「영국 인명사전(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의 편집장이었고, 어머니 줄리아는 자신의 직업인 간호학에 대한 글을 썼다.

버지니아 울프와 자매인 바네사는 처음에는 학교에 가지 않고 아버지의 넓은 서재에서 홈스쿨링으로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들은 이후 곧바로 ‘킹스칼리지 런던’의 여성학부에 입학하였다.

버지니아 울프와 남편 레오나르드 울프.
버지니아 울프와 남편 레오나르드 울프.

버지니아 울프는 킹스칼리지를 졸업하자마자 문학의 길로 빠져들었다. 그녀는 ‘블룸즈버리 그룹(Bloomsbury Group)’이라는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의 집단에 회원이 되었다. 그녀가 남편인 수필가 레오나르드 울프를 만난 곳도 이 그룹에서였다.

레오나르드와 버지니아는 1912년 결혼하고 나서 곧바로 ‘호가스 출판사(Hogarth Press)’를 인수하고, 지그문트 프로이트나 T.S. 엘리엇과 같은 유명 작가들의 책을 출판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1915년 이 출판사를 통해 자신의 첫 번째 소설 「출항(The Voyage Out)」을 필두로 자신의 책들을 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은 것은 네 번째 작품 「댈러웨이 부인(Mrs. Dalloway)」이 나오고 나서였다. 1925에 출간된 이 소설은 페미니즘이나 정신질환, 동성애와 같은 근대적 테마들에 천착함으로써 큰 명성을 얻었다.

이후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이나 「3기니(Three Guineas)」와 같은 페미니즘 에세이들뿐만 아니라 「등대로(To the Lighthouse)」, 「올랜도(Orlando)」와 같은 유명 소설들을 내놓고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들 모두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그녀에게 혁명적이고 탁월한 작가라는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그때 이미 그녀는 몇 번의 자살 시도 경력을 지니고 있을 정도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버지니아 울프를 자살에 이르게 한 주요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생전에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른 것을 얻기 위해 꿈을 잃어버리는 일’이라는 말을 했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몇 번의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어린 시절 꿈들의 대부분을 상실했다. 그 첫 번째는 그녀의 이복오빠들인 조지 덕워스와 제럴드 덕워스에게 당한 성폭행의 트라우마였다. 그녀는 개인적 에세이를 통해 이 성폭행이 그녀 나이 6살 때부터 23살이 되어 집을 떠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가해졌다고 폭로했다.

버지니아 울프 정신 질환 원인의 대부분이 이 성폭행 때문에 촉발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1895년에 발생한 어머니의 죽음은 그녀 트라우마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13살에 처음으로 정신 발작을 일으켰다.

어머니의 죽음에 이어진 몇 년 어간에 울프는 일련의 트라우마를 더하게 된다. 그녀의 이복자매인 스텔라가 2년 뒤 사망하고, 1904년에는 그녀의 아버지마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결과 그녀는 얼마 있지 않아서 짧은 기간이기는 했지만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작가로서의 성공과 레오나르드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에도 불구하고 우울증과 정신질환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그녀는 몇 번의 자살 시도를 감행했고, 조현병 뿐만 아니라 환각 증세에도 시달려야 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러 치료를 받았지만, 당시의 정신질환 연구 수준에서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그녀가 받았던 치료 중에는 몇 개의 이를 뽑는 처치법도 있었는데, 이는 정신질환이 치아의 감염과 관련이 있다고 여긴 1920년대의 일반적 치료법이었다.

평생 정신질환에 시달렸던 버지니아 울프.
평생 정신질환에 시달렸던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의 유서와 마지막 순간

1941년 3월 28일 아침 레오나르드 울프는 29년을 함께 한 아내에게 뭔가 나쁜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레오나르드는 서섹스 주의 자택 밖에 있는 울프의 서재에서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집에 들어와 휴식을 취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이것이 그가 나눈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레오나르드가 사무실로 떠난 사이 울프는 털 코트를 걸치고 부츠를 신고 현관문을 걸어 나가 자택 옆에 있는 우즈 강에 이르렀다. 한 두 시간 뒤 걱정이 된 레오나르드가 그녀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을 때 그가 발견한 것은 두 장의 유서 뿐이었다. 한 장은 남편에게 또 한 장은 자매인 바네사에게였다.

버지니아 울프가 남편에게 남긴 유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여보, 내가 다시 미쳐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요. 그토록 끔찍했던 순간들을 또 겪을 수는 없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도저히 회복하지 못할 거예요.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또, 집중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려해요.”

그녀의 마지막 절규는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내 생의 모든 행복을 당신에게 빚졌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나를 너무나도 잘 참아주었던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다른 사람들도 이 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거예요. 누군가가 나를 구해줄 수 있었다면 그건 바로 당신이었을 거예요. 당신의 확실한 호의(好意)말고는 모든 것이 다 사라져버렸어요. …… 우리보다 더 행복했던 부부는 없을 거예요.”

레오나르드는 아내의 유서를 읽자마자 근처로 그녀를 찾아 나섰다. 그는 금세 강둑에서 그녀의 발자국과 지팡이를 발견했다. 하지만 강물이 벌써 그녀를 휩쓸고 가버린 뒤였다.

버지니아 울프의 시신은 3일 뒤 영국 남동부 근처까지 쓸려내려가서 발견되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이 공표되었을 때 T.S. 엘리엇은 글을 써서 ‘세상이 끝났다(the end of a world)’고 심정을 토로했다.

버네사 벨이 그린 버지니아 울프
버네사 벨이 그린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가 남긴 영원한 유산

버지니아 울프는 사망 후에 화장되어, 그 재는 부부가 살던 자택의 뒷마당에 있는 두 그루의 느릅나무 아래에 뿌려졌다. 그 느릅나무 두 그루는 평소 ‘버지니아 나무’와 ‘레오나르드 나무’라고 불렸다. 레오나르드는 아내의 비석에 그녀 소설 「파도들(The Waves)」의 마지막 문구를 새겨 넣었다.

‘너에게 대항해 굽히지 않고
단호히 나 자신을 내던지리라
죽음이여!
파도가 바닷가에 부서진다.’

버지니아 울프는 미완의 소설 하나와 자서전을 남겼다. 유서는 그녀가 남긴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명성과 그녀에 대한 기억은 영원히 계속되고 있다. 그녀의 소설들은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으며, 에세이들은 그녀를 근대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만들고 있다.

그녀는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디 아워스(The Hours)」를 통해 되살아나기도 했다. 마이클 커닝햄은 「디 아워스」로 퓰리처 상을 받았으며, 「디 아워스」는 각색되어 니콜 키드먼이 버지니아 울프 역을 하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나아가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은 앱 개발자들의 영감을 자극해, 자살을 방지하는 어플을 만들도록 하기까지 이르렀다.

개발자들은 자살 시도 예상자들이 평소 남긴 글들을 추적해 자살 경향을 추측하는 앱을 개발하는 중이다. 개발자들은 버지니아 울프가 남긴 개인 서한 및 일기 등과 비교해가며 자살 위험군의 SNS 포스팅이나 이메일, 문자 메시지 등을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해당자들이 남기는 글 등에 부정적 변화가 감지되면 이 앱은 이를 자동적으로 보호자들에게 통보하는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졌다.

버지니아 울프가 남긴 유산은 그녀 자신의 생과 사보다 넓고도 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녀는 한 때 이런 글을 남겼다.

"별 같은 존재를 생각할 때면 인간사는 너무나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지요. 그렇지 않나요?"

[위키리크스한국=최석진 기자]

 

6677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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