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재산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르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숨겨진 이야기
[WIKI 프리즘] 재산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르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숨겨진 이야기
  • 최석진 기자
  • 승인 2019.06.03 07:27
  • 수정 2019.06.07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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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세계 경제의 절반을 주무르던 전설적 가문
암스첼 메이어 로스차일드(왼쪽)과 그의 다섯 아들들. 네탄, 살로몬, 제임스, 칼, 암스첼. [ATI]
암스첼 메이어 로스차일드(왼쪽)과 그의 다섯 아들들. 네탄, 살로몬, 제임스, 칼, 암스첼. [브라잇사이드]

세계에서 가장 부자 가문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유대계 독일인으로 출발한 로스차일드 가문은 그들이 쌓은 부(富)만큼이나 숱한 화제를 낳고 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어마어마한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포브스> 지에서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재산이 수많은 후손들에게 나눠서 상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정확한 재산 규모는 분명하지 않지만 3,500억 달러에서 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로스차일드 가족원들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그들 중 일부 구성원들은 전통적인 가족의 사업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 중에는 박물관 문서 보관 업무를 지원하거나 지구온난화 때문에 발생하는 북국의 얼음 유실을 방지하는 사업에 힘을 보태기도 한다.

▷18~19세기.. 세계 정치 경제를 주무르다

1세대 로스차일드 가족들의 집에는 붉은 방패 위에 황금 독수리가 새겨진 금속판이 붙어있었다. 독일에서는 ‘붉은 방패’는 곧 로스차일드를 의미한다.

18세기에 암쉘 메이어 로스차일드는 독일의 한 도시에서 은행을 설립한 후 5명의 아들들에게 물려주었다. 자식들은 사업 수완을 발휘해서 독일에만 있던 하나의 은행을 유럽 각지의 다섯 개로 늘렸다. 이들 다섯 개의 은행들은 서로 잘 협력하였으며, 형제들도 사이가 좋았다.

로스차일드 가족들은 각지로 물품을 배달하는 운송회사를 차려, 세계에서 그때 그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운송 수단으로 비둘기를 이용하기도 했는데, 이 덕택으로 각지에서 새로운 일이 발생할 때마다 제일 먼저 그 소식을 접할 수가 있었다. 나아가, 필요한 경우 운송 직원들을 통해 자기들에게 유리한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이처럼 로스차일드 가문이 자신들의 사업을 활용해서 각지로부터 빠른 정보를 취득할 수 있었던 시기는 1815년 유럽 여러 나라들이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전쟁을 치르던 때였다. 정보원들은 전쟁에서 영국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비둘기를 날려 이 소식을 재빠르게 로스차일드 가족에게 알렸다.

로스차일드는 주식 브로커를 통해 지니고 있던 주식을 다소 싼 가격에 내다팔도록 했다. 사람들은 그의 이러한 움직임을 영국이 전쟁에서 패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주식을 엄청나게 싼 가격에 마구 팔았다. 그러나 이는 로스차일드의 '작전'이었다.

로스차일드는 거의 모든 주식을 싹쓸이할 수 있었다. 그는 단 하루 만에 막대한 부를 쌓게 되었다. 그는 영국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미리 알 수 있었고, 영국의 승리는 주식 가격의 폭등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었다.

19세기에 로스차일드 가족들은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반드시 지켜야하는 강령을 제정하였다. 이 강령에는 여성은 재무(財務)는 관여할 수 없도록 되어있었다. 돈을 만지는 일은 남자들만의 권한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로스차일드 가족들은 가문의 부를 지키기 위해 사촌들과 결혼하는 족내혼을 지켜야 했다. 이러한 족내혼의 결과 윗대 선조들의 숫자가 감소하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2명의 부모와 외가 포함 4명의 조부모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라이오넬 월터 로스차일드의 경우를 예를 들어 살펴보면, 그는 한 명의 증조부와 한 명의 증조모가 있었을 뿐이다.

19세기 말경이 되면 로스차일드 가문은 세계 경제의 거의 반을 통제하게 된다.

그들은 러일전쟁 때는 일본 측에 돈을 대기도 하고, 유럽의 철도 가설에 투자를 했으며, 수에즈 운하 건설에도 자금을 투자했다. 이렇게 해서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은 곧 부(富)와 동의어가 되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신화 같은 이야기가 있다.

가문의 한 구성원이 남긴 일기에 따르면,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로스차일드 가문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어느 날 앨리스 로스차일드 남작부인의 집을 방문한 여왕이 실수로 남작부인 집의 잔디밭을 발로 밟자, 남작부인이 갑자기 여왕에게 잔디에서 벗어나라고 소리를 쳤고, 여왕은 순순히 그 말에 따랐다고 한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윤리의식도 세간의 흥미를 끄는 요소이다.

1861년 러시아 정부가 로스차일드 가문에 자금을 빌리려다가 거절당한 일이 있었다.

문제는 그 돈이 폴란드에서 벌어진 민중들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소요되리라는 점이었다. 그 돈을 빌려주기만 했다면 로스차일드 가문은 막대한 돈을 회수할 수 있었지만 가문은 민족해방운동을 진압하는 데는 돈을 빌려줄 수 없었던 것이다.

나폴레옹과의 전쟁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협조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가문은 영국군이 무기 생산에 필요한 값비싼 금속들을 수송할 수 있도록 자금을 댔다.

로스차일드 가문 200년 기념 행사. 왼쪽부터 제이콥, 암스첼, 가이, 에드몬드 로스차일드. [ATI]
로스차일드 가문 200년 기념 행사. 왼쪽부터 제이콥, 암스첼, 가이, 에드몬드 로스차일드. [브라잇사이드]

▷20세기.. 윌터 로스차일드 덕택에 생물학 진전 이루다

누구나 인정하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가장 뛰어난 수집가는 페르디난드였다. 그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페르디난드는 자신이 수집한 모든 수집품들을 영국 박물관에 기증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박물관 운영자들은 그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들은 페르디난드를 부추겨서 자신들의 자금으로는 구입할 수 없는 고가의 수집품들을 구매하도록 했다. 그들은 페르디난드가 언젠가는 그 수집품들을 박물관에 기증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로스차일드 가문 대부분의 여성들은 고집이 세고 의지가 강한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기질은 남자들만의 특질이었다.

월터 로스차일드는 독특한 취미로도 유명하다.

그는 나비를 수집했다. 그가 수집한 나비 숫자는 약 225만 종에 이른다.

그의 취미는 이 뿐 만이 아니다. 그는 세계의 오지를 여행하기 좋아했다. 그이 이러한 모험 정신 덕으로 캥거루나 벌레와 같은 새로운 종의 동물들과 곤충들이 발견되었다. ‘로스차일드 버드윙(나비)’, ‘로스차일드기린(Rothschild's giraffe)’, ‘발리흰찌르레기(Leucopsar rothschildi)’ 등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명명되었다.

2차 세계대전에 있었던 일이다.

로스차일드 가족 중 한 사람을 포로로 잡은 독일군들이 조건을 제시했다. 독일군들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철강 공장과 어느 정도의 현금을 주면 포로를 놓아주겠다고 제안했다. 로스차일드는 이 조건을 수락했지만, 보답으로 포로와 함께 공장에 대한 매매 대금을 요구했다.

이 협상은 매우 긴 시간을 두고 진행되었고, 마침내 독일군은 로스차일드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로스차일드는 석방되었지만 이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며칠 뒤 독일군이 철강공장이 위치한 지역을 점령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독일군은 공장 대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어져버렸던 것이다.

▷21세기... 와인 사업, 기록 보존, 환경운동 등 다양한 활동

로스차일드 가문은 전 세계에 와인 재배 농장을 보유하고 있다.

‘샤토 라피트 로쉴드(Château Lafite Rothschild)’는 그 중 가장 유명한 농장이다. 또, 로스차일드 소유의 이스라엘 와인 라벨에는 ‘에드몬드 제임스 드 로스차일드(Edmond James de Rothschild)’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로스차일드 가문 소유 회사 중 한 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고, ‘재무의 귀재(Mozart of finance)’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였다.

캠브리지 대학에는 ‘로스차일드 기록보관소(Rothschild Archive)’라는 장소가 있다. 엠마 로스차일드(Emma Rothschild)는 가문의 역사를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엠마 로스차일드는 옥스퍼드에 입학한 최연소 기록으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15살에 옥스퍼드 대학생이 되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후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로스차일드는 ‘어드벤처 에콜로지(Adventure Ecology)’라는 환경운동 단체를 이끌고 있다.

2006년 데이비드 로스차일드는 북극의 얼음을 탐사하기 위한 원정대를 꾸렸다. 2007년에는 에콰도르 밀림을 여행하며 자연보호와 삼림파괴 방지 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2010년에는 1만2500개의 폐 플라스틱 물병으로 만든 배를 타고 태평의 반을 건너는 데 성공했다.

[위키리크스한국=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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