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황이 침체기에 접어든 가운데, 생보업계 4위·손보업계 7위권에 머무는 NH농협생명·손해보험의 실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생명의 지난해 1141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농협손보의 상황도 좋지 않다. 농협손보의 지난해와 전년 대비 순이익 감소율은 93%에 이르며 손보사 중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농협생명의 1000억대 순손실은 한·미 금리 역전에서 기인한 환헤지비용 증가 및 2% 수준의 낮은 자산운용수익률이 배경이다. 농협생명은 지난해 환헤지비용 확대로 986억원을 지출했다.
농협생명은 지난 2017년부터 채권 중심의 보수적인 자산운용 방식에서 벗어나 외화유가증권이나 해외 부동산 등 고수익 자산에 적극 투자해왔다. 거시적인 투자를 진행하는 보험업권 특성상 해외 투자를 늘려왔지만, 시장 환경이 악화하면서 해외 투자가 무조건적인 해법은 아니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당장 자산운용수익률을 끌어올리기도 힘든 상태다. 시장금리가 계속 떨어지고 있고 자본을 끌어올 수 있는 여건도 여의치 않은 탓이다. 게다가 지난 4월 취임한 홍재은 농협생명 사장이 보험업권에서의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도 실적 숙제를 풀어나가기 어려운 이유다.
새 회계기준(IFRS 17)도 실적 개선을 힘들게 하는 요소다. 오는 2022년 보험업계에는 부채를 현행 원가 대신 '시가'로 평가하는 IFRS 17이 도입된다. 이에 따르면 저금리 상태에서도 고금리로 판매된 상품은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이자가 많은데 IFRS 17은 이 차이를 모두 부채로 계산한다. 이에 따라 보험사는 보험금 적립 부담이 커지게 된다.
이에 외형 성장을 위해 저축성 보험을 판매해왔던 생명보험사들이 IFRS 17에 따른 위기를 맞게 됐다. 특히 IFRS 17 논의가 되기 전인 2016년까지 농협생명의 저축성 보험 판매 비중은 70% 수준에 육박했다. 실제로 농협생명의 자산은 출범 5년 만에 60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보장성 보험 판매로 체질 개선에 나선 이후 자산 성장률은 1조원대로 떨어졌다.
농협손보의 실적 개선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손해율이 늘어나고 있는 데다 지난 4월 강원 산불피해로 지급해야 할 보험금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 강추위로 농가피해가 급증해 농협손보의 손해율은 90.76%까지 올랐고, 상반기에는 태풍 '솔릭'으로 인한 피해와 가을까지 지속된 폭염으로 지난해 말 총 89.83%에 달하는 손해율을 기록했다.
농협손보의 화재보험 시장 점유율은 절대적이다. 화재보험금 지급 액수는 아직 논의된 바 없지만, 주택뿐만 아니라 농작물·가축피해도 발생한 만큼 보험금 지급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재해 보험은 농업 조직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성 보험'의 성격이 강한 만큼, 보험료를 섣불리 올릴 수 없어 당장 손실을 보전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업권 자체가 하향 산업이고, 새 먹거리를 찾지 않는 이상 IFRS 17·저금리·저출산에서 오는 불황을 타개하기 힘들 것"이라며 "사업비 지출과 채권 비중을 줄여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IFRS 17에 맞춘 상품 포트폴리오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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