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초대석] 이성현 세종硏 센터장 "지난 10년 韓中관계의 '비대칭화', 우리가 자초했다" [2부]
[WIKI 초대석] 이성현 세종硏 센터장 "지난 10년 韓中관계의 '비대칭화', 우리가 자초했다" [2부]
  • 조문정 기자
  • 승인 2019.06.20 08:45
  • 수정 2019.06.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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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인도·싱가포르·일본에 우호적... 韓에 '괘씸죄' 적용
최대 실책은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中 전승절 참석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사진=위키리크스한국]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위키리크스한국DB]

"한국의 지난 10년 대(對)중국 외교는 한·중관계 '비대칭화' 심화의 과정이었습니다. 우리가 자초한 측면이 큽니다. "

미·중 관계와 북·중 관계 분야의 권위자인 세종연구소 이성현 중국연구센터장은 '위키리크스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인도, 일본, 싱가포르 정부가 어떻게 대중·대미 외교를 펼치고 있는지를 비교·분석하며 "한국 정부의 대중·대미 외교를 되짚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성현 센터장은 한국 정부의 가장 큰 외교 실책으로 2015년 9월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석했던 일을 꼽았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내부에서도 '미국의 동맹인 한국이 설마 전승절에 참석할까' 기대하지 않았는데,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참석하면서 중국은 한국을 '조공국'인 듯 얕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한국 정부의 안이한 대응이 한중 간 비대칭적 외교관계를 초래했다. 미국은 한국이 중국에 기울고 있다는 '중국 경사론'을 제기했다. 한국은 미중 분쟁에서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센터장에 따르면 중국은 미중 갈등 심화에 대비해 주변국을 △철석같이 미국 편을 드는 국가, △중국에 우호적인 국가,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국가,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중국에게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국가'다.

이 센터장은 "중국은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국가에 '괘씸죄'를 적용해 확실하게 불이익을 준다"며 "미중 갈등을 틈타 이익을 취하려 하면 본때를 보여주는 식으로 다른 국가에 경고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중 패권전쟁이 앞으로 30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서 '화웨이 사태'와 같이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과 달리 인도, 일본, 싱가포르 정부가 어떻게 대중·대미 외교를 펼치고 있는지 이 센터장의 분석을 들어봤다.

다음은 이 센터장과의 일문일답이다.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한다고 하셨는데, 미·중 사이에서 선택하지 않은 국가도 있을까요?

"대표적으로 인도가 그런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는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서 러브콜을 받고 있으니까요.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을 '인도·태평양'이라는 명칭으로 바꿨고, 주한 미군과 주일 미군을 관할하는 태평양 사령부도 지난해 5월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명칭을 공식 변경했습니다. 일본, 호주 등 전통적인 아시아·태평양 동맹국과 거대 신흥강국 인도가 힘을 합쳐 중국의 굴기를 포위한다는 목적입니다. 즉,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인도가 미국 편을 들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6월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제임스 매티스 당시 미 국방부 장관이 지켜보는 앞에서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모디 총리는 “인도·태평양은 자연 지리적인 개념이지 어떤 그룹을 형성해 그 지역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특히 어떤 특정 국가를 견제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인도와 중국이 신뢰 속에서 서로 협력하는 것이 아시아와 세계의 더 나은 미래에 도움이 된다고 굳건히 믿는다”고 말했죠.

그로부터 4개월 후 인도는 한 술 더 떠 '러시아판 사드'라고 불리는 러시아산 미사일 방어 체계 'S-400'을 구매하기로 결정합니다. 미국의 사드보다 성능은 우수하면서 가격은 저렴하다는 이유에서죠. 물론 러시아 측의 주장이긴 한데, 싸고 좋다는 이유로 러시아제 무기를 사들이겠다니 미국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입니다. 랜들 슈라이버 미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는 "미국은 인도의 S-400 구매계획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인도에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인도는 러시아의 S-400 대신 미국의 방공 미사일 시스템을 구매하라는 미국의 제안까지 거절했습니다."

▷미국은 어떻게 대응했나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미국은 인도가 너무 중요해서 제재를 가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은 '적성국 제재법'(CAATSA)에 따라, 러시아와 군사-정보 분야 거래를 하는 나라들을 자동으로 제재 대상으로 삼습니다. 미국은 S-400을 구매한 혐의가 있다며 중국에 제재를 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인도를 예외로 삼았어요. 인도에 제재를 가하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지장을 줄 수 있고, 인도가 중국 편을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패권 도전국인 중국도 인도를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인도는 이웃국인 파키스탄과 중국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S-400을 도입했어요. 그런데 중국이 인도에 대해 경제 보복을 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한국이 사드를 도입하자 치졸하게 보복했던 중국이 왜 인도에 관대할까요? 핵보유국이자 이웃국인 인도가 미국 편을 들까봐 불안해서입니다. 중국은 2017년 인도와의 접경지역인 도클람(인도명 도카라, 중국명 둥랑(洞郞)에서 인도와 73일간 대치했어요. 결국 중국이 양보해서 무력대치가 끝났습니다. 중국은 인도군이 먼저 철군했다며 자국의 외교적 승리라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중국이 이 지역에 도로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포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한국은 왜 인도처럼 외교적 자율성을 가질 수 없을까요?

"인도는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국력이 있기에 그럴 수 있었어요. 미국도 인도가 필요하고, 중국도 인도가 필요합니다. 아쉬운 쪽은 인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에게는 인도만큼의 외교 맷집과 국력이 없습니다. 한국은 중견국이고 ‘미들파워’이지만 강대국은 아니에요. 박근혜 정부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한국이 미중 양측에서 러브콜을 받는 상황"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된 적이 있었죠. 사실 한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러브콜'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사드 사태를 생각해봅시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 철폐를 한국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의 척도로, 미국은 사드 배치를 굳건한 한미동맹의 척도로 봤어요. 한국이 장기간 미중 사이에서 애매한 입장을 취하자 중국은 더욱 분노해 보복 수위와 기간을 넓혔고 미국은 한국이 동맹처럼 행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에게 무역뿐 아니라 북한 문제도 의존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양측 모두에게 빚을 진 상황입니다. 아쉬운 쪽은 미국과 중국이 아니라 한국입니다."

▷결국 국력이 뒷받침돼야 대중·대미 외교도 잘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한국 같은 중견국은 대중·대미 외교를 잘할 수 없을까요?

"싱가포르가 바로 그런 국가입니다. 싱가포르는 크기가 서울만 한 작은 도시 국가이지만 미국과도 잘 지내고 중국과도 잘 지냅니다. 

그 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싱가포르는 처음부터 일관된 입장과 원칙을 유지했다는 사실을 들 수 있겠습니다. 중국과의 교류는 환영하지만, 중국의 공산주의 체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죠. 그러면서 중국을 적대시하는 느낌을 주지 않게 중국 측에 꾸준히 설명해줬어요. 싱가포르는 주변 국가들이 중국과 수교한 후에 중국과 수교한다는 원칙도 지켰습니다. 

싱가포르 내 화교들의 자본과 투자도 그 비결 중 하나입니다. 화교들은 중국과 마찰이 생기면 중국 정관계 인사들과의 인맥을 통해 갈등을 조율하죠. 중국이 싱가포르의 강점인 금융-보험 서비스업, 고부가가치 제조업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하기도 하고요. 

또한, 싱가포르는 중국과 대만이 관계를 개선할 수 있도록 '물밑 연락 채널'로서 적극적으로 양측을 중재해왔어요. 반면 한국은 북한 문제 때문에 미국과 중국 양국에 의존하고 있어 운신의 폭이 훨씬 좁아요.“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사진=위키리크스한국]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위키리크스한국DB]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같이 미국의 동맹국이자 중국의 이웃국인 일본은 어떤가요?

"미국의 자국 중심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돌파하기 위해 양국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요. 최근 인민일보 6월 17일 자에 '중일 우호 왕래'(中日友好往来) 에 대한 칼럼이 실렸을 정도입니다. 아베 총리와 시진핑 주석은 G20 정상회의 개막식 전날인 27일 일본 오사카에서 중일 정상회담을 갖습니다. 작년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현직 일본 총리로서 7년 만에 방중한 데 이어, 현직 중국 주석이 11년 만에 방일합니다.

아베 총리가 지난해 10월 방중해 일대일로 참여를 약속했죠. 왜 그랬을까요? 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우군을 확보해야 하는데, 중국의 일대일로(新실크로드 전략) 사업 참여국이 잇따라 이탈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대중 관계를 회복해 미국의 통상압박을 이겨내는 동시에 외교 무대에서 입지를 회복하려고 합니다. 또한, 미국이 앞으로 유럽, 남미, 대서양, 서태평양에만 신경 쓰고 태평양 지역을 포기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대비책을 세우는 셈이죠."

▷ 중국은 일본을 한국보다 훨씬 우호적으로 대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도 한국처럼 미국의 동맹국이고 동중국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두고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였는데도요.

"일본은 처음부터 확실히 미국 편을 들어서 중국이 일본에 헛된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회유할 수 없는 국가를 건드려봐야 국력 낭비라고 생각하죠. 

중국은 미중 갈등 심화에 대비해 국가를 △철석같이 미국 편을 드는 국가(일본), △중국에 우호적인 국가(미얀마와 필리핀),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국가,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중국은 자국에 우호적인 국가에 대해서는 확실히 자국 편으로 묶어두기 위해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시켜주는 등 경제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국가에는 '괘씸죄'를 적용해 확실하게 불이익을 줍니다. 미중 갈등을 틈타 이익을 취하려 하면 본때를 보여주는 식으로 다른 국가에 경고하려는 목적이죠. '시범 케이스'로 한국이 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하다 '괘씸죄'로 불이익을 받았다고 하시니 궁금합니다. 대중·대미외교에서 한국은 어떤 실책을 저질렀나요?

"중국에 시장경제(market economy) 지위를 부여했던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봅시다. 한국은 중국이 시장경제 지위를 달라고 하자 그것을 가장 먼저 준 나라 중 하나입니다. 당시 한중 협상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이 매우 원하는 걸 주었는데 한국이 얻어낸 것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한중 무역이 증가하고 있던 참이었으니까 '우호' 차원에서 줬겠죠. 미국과 유럽은 아직도 중국에 시장경제 지위를 주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외교 실책은 2015년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석했던 일입니다. 사회주의 국가들끼리 모이는 행사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특히 미국의 동맹국으로서는 유일하게 한국만이 참석했죠. 그때부터 중국이 한국을 외교적으로 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라고 해도 안 올 줄 알고 찔러봤는데 오란다면 오는구나'라고 생각하고 과거 중국에 조공을 바치던 국가로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작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국은 지난해 제주도에서 열린 한국 관함식 행사 하루 전 참석을 취소했습니다. 국가 간 관계는 상호적이어야 합니다. 올해에는 중국에서 열었습니다.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한국도 가지 않아야 하는데 갔죠. 한국이 아쉬운 모습을 보인 셈입니다. 이러면 중국의 길들이기에 말려듭니다. 요즘 한중 간 '비대칭 관계'는 우리 스스로가 자초한 측면이 큽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체 왜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을까요?

"2013년 2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자 중국이 평소보다 더 엄중하게 항의했습니다.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를 초치하고 베이징에 주재 북한 공사를 2번이나 초치하는 등 예전보다 강경하게 나왔죠. 중국 관영매체인 환구시보를 통해 '북한과의 동맹을 끊고 석유 제공도 중단해야 한다'고까지 했어요.

그러자 한국에서는 중국의 대북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는 판단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시진핑이 막 중국의 지도자가 된 시기였고, 중국 최대의 명절인 춘절 기간에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니 중국은 '남의 잔칫날에 잿밥을 뿌리느냐'며 불쾌해했습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중국의 대북 인내심이 한계점에 도달한 이참에 중국을 확실히 우리 편으로 끌어 들어야 한다'는 친중 전략을 내놨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국 동맹국으로서는 유일하게 천안문 망루에 오른 무리수를 두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한국은 일종의 '외교보험' 차원에서 중국 전승절에 참석했습니다. 무슨 얘기냐하면 중국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시기에 우리가 도와주며 선의를 베풀면 나중에 우리가 중국의 도움이 필요할 때 중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는데 오판이었어요. 결국 본전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 후 북한이 제4차 핵실험을 했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에게 전화했지만 시 주석은 받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천안문 망루에 서 있는 사진 한 장이 전 세계에 내보낸 시그널은 엄청났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나란히 오른쪽으로 두 번째에 앉았는데 최룡해 당시 북한 노동당 비서는 구석에 앉았다며 한국 언론은 당시 '한국 외교의 승리'라고 자화자찬했죠.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이 사건은 서방 국가들이 한국의 '정체성'에 의구심을 갖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서방의 모 대사관에 근무하는 한국의 한 외교관은 당시 서방 국가 외교관에게서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이 어떻게 그런 열병식에 참석할 수 있느냐’며 한 시간 동안 설교를 들었다고 합니다. 한국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본 것입니다."

▷미국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천안문 망루에 오르고 한 달 뒤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있었죠. 그 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천안문 망루에 오른 이유'를 해명하고 '굳건한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공동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에게 (내가) 유일하게 요청한 것은 우리는 중국이 국제규범과 법을 준수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라며 "만약 중국이 그런 면에서 실패한다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기자회견에서는 좀처럼 하지 않는 발언이에요. 점잖은 오바마 대통령이 '남중국해 문제에서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박근혜 대통령의 면전에서 망신을 준 셈입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수년간 미·중의 주요 이슈인 일대일로(一帶一路), 남중국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사드, 인도·태평양전략, 화웨이 등 현안마다 한국은 우유부단하게 눈치를 보다 민첩하게 기회를 낚아채지 못했습니다. 양쪽과 제대로 '로맨스'는 즐기지 못하고 '바람둥이'란 낙인만 찍혔습니다. 미·중의 한국 불신은 수년간 누적되며 미덥지 못한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어줬습니다.

국가 간에는 '시그널 외교'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에겐 당신 밖에 없다'고 믿게 만드는 게 시그널 외교죠. 한국의 대통령이 천안문 망루에 올랐을 때 이미 한국은 시그널 외교에서 실패했습니다.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봐야 이미 실기한 셈입니다."

▷최근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대만을 싱가포르·뉴질랜드·몽골과 함께 "4개 국가"로 표현한 것은 어떤 시그널로 봐야 할까요?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폐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요? 

"강대국은 최종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폐기한다'고 발표하지 않습니다. 중국에게 대만은 ‘국가의 생존’이 달린, ‘타협의 여지가 없는’ 핵심이익입니다. 대만은 넘어서는 안 되는 '마지노선'이에요. 그런데 미국은 중국이 절대 넘지 말라는 '마지노선'을 넘으며 '어쩔 거냐'고 떠보죠. 중국으로서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을 것입니다. 

미국의 '찔러보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6년 12월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대통령이든 당선인이든 대만 총통과 접촉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버렸죠. 오히려 차이잉원 총통이 트럼프에게 통화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며 중국을 도발하지 않으려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공개해버렸습니다."

▷ G20 정상회의가 미중 갈등이 봉합하는 계기가 될까요? 박사님께서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중 관계가 완전히 파탄이 나거나,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앞으로 계속 협의하기로 동의했다'며 악수하고 헤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중 정상은 악수하며 '우리는 좋은 친구'라고 하겠죠. 일종의 국내 정치용 메시지일 뿐이에요. 강대국들은 국제무대에서 이 같은 쇼맨십을 잘하죠. 

정말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G20 정상회의에서 얼굴을 붉힌다면 우리 생각보다 더 빠르게 미중 관계가 악화하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농업지역을 노리고 미국산 농축산물에 최대 관세율(25%)을 적용하기로 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농민들의 표심을 의식한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타협점을 모색할까요? 

"트럼프 대통령의 30년 전 인터뷰를 보면 그의 반중 정서가 상당히 오래전부터 누적, 형성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불공정한 무역으로 미국을 이용했다'고 생각해왔어요. 트럼프 대통령의 반중 정서는 주로 무역 때문에 형성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이오와주, 미시간주, 오하이오주 등 보수적인 농민들의 표심을 의식해 대선을 앞두고 중국과 타협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이는 일시적인 전술이지 전략적 변화는 아닙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들은 이번 기회에 중국의 부상을 확실히 눌러야겠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더불어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이고 여당인 공화당과 주요 싱크탱크들까지, 그리고 미국 사회 전체가 대중 경계 분위기로 들어갔습니다. 미국 사회의 반중 정서는 트럼프 혼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집단의식'입니다.

미중 전쟁은 앞으로 30년간 계속될 수 있습니다. 이 숫자의 근거는 시진핑이 2049년까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 일컫는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겠다고 한 것에서 드러납니다. 그때까지 미국을 추월하겠는 거예요. 그 해는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미중 무역협상이 타결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서로 간에 마지노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미국 물건을 더 살 용의가 있습니다. 아주 많이 살 용의도 있어요. 미중 무역 불균형을 바꿀 수 있다면요.

미국은 중국을 믿지 못합니다. 일시적인 조치가 아닌,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중국에 법을 바꾸라고 요구했는데, 중국은 법을 바꿀 수는 없다고 나왔습니다. 미국은 중국 국유기업에 대한 개혁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국유기업은 사실 공산당의 자금줄입니다. 공산당이라는 몸에 혈액이 돌아가게 만드는 조직이죠. 그러니까 한 중국학자가 그런 요구는 "우리 공산당보고 팔에 칼을 긋고 자살하라는 것과 같다"라고 반발합니다. 공산당으로서는 들어줄 수 없는 요구입니다.

서로의 요구수준과 개혁의 차이가 너무 달라서 중국도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고 미국도 중국에 양보할 수 없어요. 미중 양국은 이제 위기가 촉진될 수 있는 '구조적 갈등'(structural conflict) 단계에 왔습니다."

[위키리크스한국=조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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