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협력사 언맨드솔루션의 레벨4 '위더스' 탑승
"아빠 무서워요" "괜찮아, 아빠가 있잖아"
'덜컹' 소리와 함께 몸으로 흡수된 충격을 뒤늦게 체감하는 사이 가장 먼저 위험을 알아차리고 주변에 알린 건 아이였다. 4살 여자아이는 "아빠 무서워요"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몸을 가장 안전한 부모의 품에 맡겼다. 그제야 기자는 '자율주행차엔 운전자가 없다'는 사실과 함께 조금의 두려움을 자각했다.
다행히 자율주행차의 기본 공식인 '페일 세이프'(Fail Safe·기계가 고장 났을 때 작동하는 안전한 상태)가 작동했다. 전기를 공급하는 배터리와 자율주행을 가능케 하는 배터리가 구분된 까닭이다. 자율주행 배터리로만 움직이는 자동문은 좌우로 활짝 열렸고, 아이와 아빠는 무사히 차량을 빠져나갔다.
사실 몸에 가해진 충격은 크지 않았다. 22일 서울시와 국토교통부가 주관한 '상암 자율주행 5G 페스티벌'이 열린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1.1km 구간을 달린 자율주행차 중 '완전 자율주행' 단계인 레벨4를 획득한 무인전기셔틀 '위더스'(WITH:US)의 평균 주행 속도는 10~15km/h에 불과했다.
이날 위더스의 급정거는 기계적 결함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자율주행 중 우발적 사건을 뜻하는 '해프닝'이 발생한 건 역설적이게도 사람의 마음 때문이다.
위더스 개발사에선 보다 시각적인 효과를 보여주고자 차량 내부에 향후 생길 관제소에서 쓸 교통 신호 데이터 수신 모니터를 설치했다. 모니터엔 수많은 점으로 표시된 경찰청에서 보내온 교통신호가 잡혔다. 이날 자율주행이 일시 허용된 교차로 구간엔 유턴 신호가 끊기지 않았다. 차량 상층부에 설치된 안테나가 'V2X'(Vehicle to Everything·차량과 사물의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를 통해 이 신호를 수집했다.
사람 마음은 알고리즘에 담을 수 없던 걸까. 위더스가 다른 자율주행차에 월드컵북로를 내줘야 할 시간이 다가온 오후 1시 30분. 차에 탑승한 개발사 직원이 주행 속도를 수동으로 5km/h 정도 높였다. 가속 상태에서 유턴 구간에 다다랐다. 이때 차체에 부착되지 않고 문틈에 끼워져있던 모니터가 그대로 차량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그러면서 좌석 아래에 있던 시동 장치를 건드려 차량을 멈춰세웠다. 알고리즘에 없던 변수들이 겹치면서 '급정거'라는 결과를 만든 셈이다.
4살 아이에게 잊을 수 없는 자율주행의 기억을 심어준 위더스의 개발사는 언맨드솔루션이다. KT의 자율주행 사업 협력사이기도 한 직원 35명의 이 회사는 지난 4월 열린 WIS 2019(World IT Show 2019)에서 국내 중소기업으로는 처음 레벨4의 자율주행을 선보였다.
내년 하반기쯤 상용화 단계를 내부 검토 중인 위더스의 활용 범위는 '셔틀'이다. 대학 캠퍼스나 공항 내부, 전시회에서 일정 구간을 사람을 한 번에 6명씩 태워 왔다 갔다 하는 용도다. 이 정도 통제된 공간에선 충분히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언맨드솔루션은 향후 택시나 구급 차량 역시 자율주행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이같은 목표엔 충분한 전기 충전소가 운행 구간에 설치돼야 하며, 배터리 구동 시간을 배로 높이고 충전 시간을 축소하는 기술이 개발돼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현재 위더스의 배터리 가동 방식은 '1시간 자율주행-1시간 전기충전'이다. 리튬 재질로 만들어진 구동 배터리로는 최대 2시간 30분까지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이같은 한계로 언맨드솔루션은 자율운행의 구간을 이날 시연한 월드컵북로 구간 1.1km를 넘어서는 데 단기 목표를 두고 있다. 다음 목표는 월드컵북로에서 출발해 가장 가까운 전철역인 디지털미디어시티역을 거쳐 돌아오는 3.5~4km 수준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9년, 스마트폰 보급률은 1%에 불과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 수치는 90%를 넘어섰다. 자율주행차 역시 상용화가 시작되면 무서운 속도로 보급될지 모른다. 그 무렵엔 4살 아이에게 두려움을 선사한 이날의 우연 또한 알고리즘의 일부로 포섭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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