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정의 외교 프리즘] 트럼프의 '2019 어프렌티스'와 南·北·美·中·日의 성적표는?
[조문정의 외교 프리즘] 트럼프의 '2019 어프렌티스'와 南·北·美·中·日의 성적표는?
  • 조문정 기자
  • 승인 2019.07.02 08:25
  • 수정 2019.07.02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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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9~30일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어프렌티스(Apprentice)' 동아시아 편을 찍고 돌아갔다. 어프렌티스는 2004~2007년 트럼프가 진행하던 미국 NBC방송의 취업 서바이벌 리얼리티 TV쇼다. 시즌 6을 끝으로 하차했던 그의 진행본능이 이번 회의를 계기로 발동한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중·일 정상에게 과제를 던졌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씩만 생각해보자. 중국은 '대중 무역수지 적자 완화'와 '기술굴기 포기', 일본은 '미일 안보전략 개정'과 '대일 무역적자 해소', 한국은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대미 투자 확대', 북한은 '판문점 깜짝 정상회동'이라는 과제를 받았다.

모두 쉽지 않은 과제다. 프로그램 출연 당시에도 트럼프는 '하루 만에 장난감을 개발하라'는 식으로 팥쥐 어머니 뺨치는 어려운 과제를 내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매회 탈락자 1명을 검지로 가리키며 "당신은 해고야(You are fired)"라고 비수를 꽂곤 했다.

물론 국제관계는 방송과 다르다. 일국의 지도자가 어쩌다 과제를 소홀히 한 상대국에게 '귀국은 해고요'라며 즉흥적으로 동맹을 파기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한국 경제인과 대화하는 트럼프 대통령[사진=연합뉴스]
한국 경제인과 대화하는 트럼프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0일 오전 한국 재벌 회장들을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로 불러 '화웨이 제재 동참 요구'가 아닌 '대미 투자 구애'를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등을 '출석 부르듯' 하나하나 일으켜 세웠다. 미국 루이지애나에 3조 6000억원을 투자해 에틸렌 공장을 완공한 롯데 신동빈 회장에 대해서는 "너무너무 훌륭한 일을 많이 했다"고 치켜세웠다. 

역시 '현실판' 어프렌티스는 '방송용' 어프렌티스와 다르긴 달랐다. 등장인물들을 '견습생(apprentice)'이 아닌 '사업 천재(Business Genius)'라고 띄워주며 검지가 아닌 엄지를 들었으니 말이다. 

이날 오후 트럼프 대통령은 무대를 비무장지대(DMZ) 오울렛초소로 바꿨다. 트럼프 대통령은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제가 취임하고 올해 7천억 달러의 국방비를 의회로부터 승인받은 덕분에 이제 미군이 필요한 장비와 인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자화자찬했다. 

트럼프를 군사분계선 이북으로 안내하는 김정은[사진=연합뉴스]
트럼프를 군사분계선 이북으로 안내하는 김정은[사진=연합뉴스]

'동아시아판' 어프렌티스의 절정은 판문점에서 펼쳐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땅을 밟은 첫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 등극했으니 말이다. 약 25분 전까지만 해도 DMZ에서 "최신 함정, 항공기, 원자력 잠수함을 구매할 예정이고, 이제 미사일 유도구축함, 쇄빙선, 프리빗함을 구매할 수 있다"며 뽐냈던 그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넘었다. 힘이 있어야 평화도 있다는 현실주의자인 기자가 보기에도 뭔가 모순적이다.

의도된 반전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는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아이돌 그룹 '워너원'의 인기곡)"인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김 위원장과의 깜짝 회동' 예고편을 흘린 시간은 미국의 TV 시청률이 가장 높은 황금 시간대였다. 전날 민주당 대선후보 1차 TV 토론회에 쏠렸던 관심을 '역사적인 판문점 회동'으로 되찾아오겠다는 심산이 아니었겠는가.

'동상이몽' 북미 정상은 각자의 목표를 위해 판문점에서 '오월동주'한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는 재선 승리다. 김정은 위원장의 목표는 '66시간 열차 대장정'에도 결렬된 하노이회담에 따른 대내 위상 회복과 북미 대화 불씨 살리기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그렇게 각자의 목표를 이뤘다. 이 정도면 괜찮은 성적표다.

오사카서 '무역담판' 돌입한 트럼프와 시진핑[사진=연합뉴스]
오사카서 '무역담판' 돌입한 트럼프와 시진핑[사진=연합뉴스]

시진핑 주석의 성적표도 그만하면 괜찮다.

시 주석은 지난 29일 오사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무역담판을 벌여 미국의 대중 추가 관세를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까지 살짝 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IT 기업들과 시 주석의 요청에 따라, 우리 국가안보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중국 기업이 (미국 IT 기업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고 말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말만 믿고 안도하긴 이르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범용 상품만 해당한다. 국가 안보 우려와 관련된 어떤 장비도 상무부의 거래 허가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CG=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CG=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성적표는 어떨까? G20 정상회의 개최 업적을 오는 7월 21일 참의원 선거에 활용하려던 그의 전략은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아베 총리는 사전에 미국 정부로부터 이번 회동과 관련한 정보를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하나의 모순이 등장한다. G20 정상회의에서 '자유무역'을 강조하던 일본 정부가 불과 이틀 뒤인 1일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핵심소재 등 3개 품목 수출 과정에서 허가 신청을 면제하는 '화이트 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이 밝힌 이유는 "한일 간 신뢰가 훼손돼서"다.

일본의 의도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를 취함으로써 참의원 선거에서 우익 표를 결집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보복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는 방침이다. 아베 총리의 미소가 눈에 선하다.

'환구시보’ 등 중국 언론은 미국의 '반(反) 화웨이 전선'을 염두에 둔 듯 "일본이 미국에서 배워 (안보를 내세워) 무역 제재를 한다"고 비판했다. 일단 배운 것을 잘 활용했으니 일본은 낙제는 면했다고 볼 수 있다.

얘기 나누는 남북미 정상[사진=연합뉴스]
얘기 나누는 남북미 정상[사진=연합뉴스]

한국의 성적표는 어떤가? 과장을 보태 '두 번 죽었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일단 일본으로부터 세게 한 방 맞았다면, 미국과 북한에게는 아프게 꼬집혔다. 그나마 한국 기업들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재선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트럼프의 욕망 덕분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하라'는 압박은 덜했다. 

그런데 북한에게는 정말 세게 꼬집혔다. 지난 27일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국장은 "남한 당국은 제집의 일이나 똑바로 챙기는 게 좋을 것"이라고 우리 정부를 비방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53분간 단독 회동하도록 '들러리'를 자처해 자리를 피해줬다. '제집'인 자유의집을 '어프렌티스 동아시아 편 촬영 스튜디오'로 제공한 셈이다.

공동기자회견 하는 한미 정상[사진=연합뉴스]
공동기자회견 하는 한미 정상[사진=연합뉴스]

이게 다가 아니다. 이날 용산 미군기지로 떠나기 전 한미 정상은 공동기자회견에서 비핵화에 대한 시각차를 여실히 드러냈다. 

문 대통령이 "영변 핵단지가 진정성 있게 완전하게 폐기된다면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실질적 비핵화의 입구가 될 것"이라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한 가지만 더 답변하겠다"며 "그것(영변 핵시설 폐기)은 하나의 단계"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단계'는 하노이회담의 최대 쟁점이었던 '영변 플러스알파'를 포함한다. 그의 말마따나 1994년 제네바합의 당시 영변 핵시설의 위상과 가치는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된 지금과는 완전히 다르다.

'미쓰비시 강제징용' 피해자들[사진=연합뉴스]
'미쓰비시 강제징용' 피해자들[사진=연합뉴스]

미국과 북한, 일본과 중국은 2019년을 살아가고 있는데, 왜 우리는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북핵 문제에서는 1994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인가.

[위키리크스한국=조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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