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케네디 대통령 암살 개입 미스테리 ‘산토 트래피칸테'
[WIKI 프리즘] 케네디 대통령 암살 개입 미스테리 ‘산토 트래피칸테'
  • 최석진 기자
  • 기사입력 2019-07-08 08:07:45
  • 최종수정 2019.07.08 0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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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 트로피칸테 [ATI]
산토 트로피칸테 [ATI]

산토 트래피칸테 주니어는 말수가 적고 평범한 남자였다. 그는 한 여자와 49년간을 해로했다. 하지만 그는 카스트로 이전 시기 쿠바 암흑가의 가장 강력한 보스이기도 했다. 당시 그의 영향력은 쿠바를 넘어 플로리다를 비롯해 미국 각지에 미쳤다.

트래피칸테는 카스트로가 집권하고 나서 투옥되고 추방되자, 남은 생의 대부분을 카스트로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보냈다. 일부 사람들은 그가 저 유명한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도 개입되었을 것이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통령 암살까지 획책할 정도의 강력한 힘을 지녔던, 흔히 ‘조용한 남자(Silent Don)’라고 불렸던 산토 트래피칸테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산토 트래피칸테의 부상(浮上)

트래피칸테는 조직 폭력 범죄에 이미 깊숙이 개입되어있던 가족 사이에서, 1914년 미국 플로리다의 탬파에서 태어났다.

대부분의 20세기에 악명을 떨치던 폭력단들처럼 그의 아버지인 산토 트래피칸테 시니어도 이태리의 시실리에서 자라나, 미국으로 이민온 후, 범죄 세계의 거물이 되었다.

트래피칸테 시니어는 당시 플로리다와 쿠바에서 유행하던 ‘볼리타(bolita)’라는 경품 도박 세계를 거머쥐고 있다가, 1940년 탬파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보스 이그나시오 안티노리가 갑자기 사망하자 플로리다 암흑가의 실권자로 등극하게 되었다.

이때쯤에는 이미 트래피칸테 주니어는 벌써 플로리다와 쿠바 및 미국의 여타 지역에 마약을 공급하는 배들을 관할하는 전권을 맡고 있었다. 당시에는 마약이 미국 내 다른 지역으로 이송되기 전 플로리다의 항구들을 통과해야하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플로리다에서의 트래피칸테 주니어의 위치는 마약 수송에 절대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또, 트래피칸테는, 아버지의 명령으로, 쿠바에 카지노를 개설하고, 그 또한 악명 높던 조폭 두목 찰스 럭키 루치아노와 메이어 랜스키와 협력해서 헤로인 밀수에 손을 대기도 했다.

보스의 아들에서 보스로

1950년 나이가 든 트래피칸테 시니어는 기력이 쇠하기 시작했다. 그는 위암 치료에 전념해야 해서 믿을만한 후계자를 물색해야 했다. 그의 후계자로 트래피칸테 주니어만한 인물이 있었을까?

트래피칸테 시니어는 4년 뒤 아들에게 탬파 지역과 쿠바를 근거로 하는 범죄 왕국을 남겨놓고 죽었다. 아버지 트래피칸테가 자수성가한 조폭 보스였던 반면에 그의 아들이 그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을 많지 않았을 것이다.

트래피칸테는 쿠바에서 루치아노와 랜스키의 지역 담당책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가꿔나갔다. 그러는 사이 그는 탬파로 들어오는 마약을 통해해서도 꾸준히 돈을 벌었다.

그때 감비노 패밀리의 보스 알버트 아나스타시아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트래피칸테는 56명의 다른 조폭들과 함께 이 문제를 토의하던 중 모두 함께 검거되었다.

트래피칸테는 체포는 되었지만, 간신히 기소는 면할 수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경찰의 레이더망을 피해 다녔다. 그가 경찰의 눈초리를 피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그의 스타일에 있었다. 1980년대 그의 전성기 때 재산이 약 250억 달러에 달했던 트래피칸테는 말수가 적고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는 평범한 차를 타고, 조용한 마을에서 보통 사람들이 사는 집에 살며, 한 여자와의 결혼 생활만을 유지했다. 그는 대체로 조용한 남자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래피칸테 주니어는 무자비한 전형적인 조폭 보스 형에 속한 인물이었다. 이 사실은 그가 1953년, 탬파 조폭 권좌를 놓고, 사망한 보스 이그나시오 안티노리의 아들 조 안티노리와 마지막 경쟁을 벌일 때 입증되었다. 그는 조 안티노리를 끔찍한 방법을 동원해 제거해버렸다.

트래피칸테는 적들을 과감하게 처리한 후 탬파 지역을 장악했다. 그는 1955년 쿠바로 이주해서 당시 쿠바의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를 만났다. 바티스타는 뇌물을 바치는 조건으로 트래피칸테와 다른 조폭들에게 얼마든지 카지노를 개설하도록 했다.

트래피칸테를 비롯한 조폭들과 바티스타 정권과의 관계는 이권을 중심으로 얽히고설켜 점점 쿠바의 정치 상황과 운명을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쿠바 하바나의 나쇼날호텔 카지노.
쿠바 하바나의 나쇼날호텔 카지노.

산토 트래피칸테와 쿠바

1950년대 피델 카스트로가 정권을 장악했을 때 트래피칸테는 급진 마르크스주의 혁명 세력들이 그를 배척할까봐 두려웠다. 그의 염려는 적중했다. 1959년 카스트로가 권좌에 오르자 한참 성장 중이던 트래피칸테의 마약과 도박 왕국은 철퇴를 맞았다.

트래피칸테는 카스트로에게 다가가려고 온갖 애를 썼으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그는 동료를 잃었을 뿐 아니라 최대 수입원이던 카지노도 마르크스 혁명주의자들에 의해 폐쇄되어버렸다.

트래피칸테는 1978년 법정 증언대에서, 카스트로 정권이 얼마나 신속하게 카지노들을 모두 닫아버렸으며, 그런 다음 자기들의 편의대로 다시 열었는지에 대해 증언한 적이 있다. 이후 카스트로는 카지노 소유자들에게 노동자들의 밀린 임금을 지불하도록 조치한 후 다시 폐쇄해버렸다.

더욱 주목할 점은 카스트로가 트래피칸테를 투옥시키고, 쿠바를 떠나도록 강요했다는 사실이다. 트래피칸테는 나중에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저는, 쿠바 관리들이 제가 바티스타 정권의 부역자라는 이유로 저를 감옥에 집어넣으려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제 아파트를 급습해서, 돈을 찾기 위해 가구들을 헤집어놓았습니다. 그들은 밤중에 찾아와 저를 숲속으로 끌고 가, 돈을 어디에 감췄는지 다그치는 등, 제가 잠적할 때까지 온갖 짓을 다했습니다.”

트래피칸테는 복역 기간은 길지 않았고, 플로리다로 다시 돌아와 실권을 장악할 수는 있었지만, 그는 한 번도 카스트로를 용서한 적이 없었다.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자신의 왕국을 무너뜨린 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산토 트래피칸테, 카스트로를 죽이기로 모의하다

트래피칸테가 또 다른 조폭 두목 존 로셀리(핸섬 조니)와 가까워지면서 그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로셀리는 새로운 친구에게, 자신이 미국의 CIA와 가깝다고 하면서, 친구의 복수심을 알고 있으며, 미국 정부도 카스트로의 공산 정권을 끌어내리려한다고 알려주었다.

CIA가 트래피칸테나 다른 미국 내 조폭 두목들과 일을 꾸몄다는 이야기는 뭔가 이상하기는 하다. 그러나 냉전 시대의 엄혹했던 반 소비에트 정서를 고려한다면 전혀 못 믿을 이야기도 아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 본다면, ‘적의 적은 동지이다.’는 격언에 딱 들어맞는 경우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로셀리와 트래피칸테는, 시카고 지역 보스인 샘 기앙카나와 함께, 피델 카스트로를 죽이겠다는 멍청한 음모를 꾸몄다. 그들은 카스트로를 단순히 암살하는 방법부터 독이 든 시거를 피우게 한다거나 독 음료수를 마시게 방법까지 다양하게 계획을 꾸몄다.

하지만 그들의 바보 같은 모의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심지어 카스트로에게 독으로 오염된 잠수복을 입히거나 폭탄이 든 조개껍데기를 이용해 날려버린다는 계획도 세웠었다.

결국, ‘피그 만 침공 작전(Bay of Pigs Invasion)’이 실패로 돌아가자 CIA는 카스트로 제거 계획을 포기했으며, 트래피칸테의 복수는 조금도 성공할 수 없었다.

케네디를 죽이겠다는 음모까지?

산토 트래피칸테 주니어나 다른 마피아 보스들과 미국 정부와의 밀접한 관계는 카스트로 제거 계획으로 끝나지 않았다.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 케네디 가문의 수장(首長)인 조 케네디 주니어는 자신의 아들 존 F. 케네디의 당선을 위해 조폭들과의 관계를 활용했다. 하지만 존 F. 케네디의 여러 정부(情婦)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주디스 엑스너는, 케네디를 시카고 보스였던 샘 기앙카나에게 소개해준 사람이 자신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만남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든지 조폭 두목은, 당선이 되면 백악관이 조폭들에게 관대한 조치를 베푼다는 조건으로, 일리노이 같은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주를 케네디 측에 유리하도록 운동을 했다.

그러나 케네디는 당선이 되고 백악관에 입성하자 약속을 차버렸다. 그는 자신의 동생 로버트 F. 케네디를 신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했는데, 로버트는 조직 폭력 범죄를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로버트는 악명을 떨치던 노조 지도자 지미 호파를 기소해서 유죄를 받게 만들기도 했다.

로버트 F. 케네디는 법정에서 시카고 보스 샘 기앙카나를 대놓고 조롱하기까지 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조폭들과의 약속을 어겼을 뿐 아니라 마피아를 지속적으로 압박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세간의 이야기대로, 케네디의 백악관 행을 도왔던 조폭 보스들은 복수를 다짐하게 되었다.

1963년이 되자, 조폭들은 케네디에게 당할 만큼 당했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 지미 호파의 변호사를 역임했던 프랭크 로가노는 나중에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지미는 나에게, 뉴올리언스의 보스 카를로스 마르셀로와 트래피칸테에게 이야기해서 대통령을 죽이자는 말을 전하도록 했다. 호파는 이렇게 말했었다. ‘그를 죽일 수밖에 없어.’”

대통령 암살 모의에 숨은 뜻은 존 F.케네디를 혼내줄 뿐 아니라 거머리 같은 그의 동생 로버트가 더 이상 자기들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었다.

당시 유명 검사였던 빈센트 버글리우시는 「다시 쓰는 역사 :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이라는 책을 썼으며, 저 유명한 찰스 맨슨 패밀리 실제 범죄 사건을 다룬 「헬터 스켈터(Helter Skelter)」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증인의 증언을 인용해서 조폭들의 케네디 암살 모의가 실제 있었다는 추가 증거를 제시했다. 그가 언급한 증인은, 자신이 뉴올리언스의 조폭 두목 마르셀로가 다음과 같이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 개(JFK)는 꼬리(RFK)만 자르면 당신을 끝까지 물고 늘어질 거요.”

트래피칸테가 JFK 암살에 관여됐을지 모른다는 마지막 증거는 한 증인으로부터 나왔다. 그 증인은 트래피칸테가 혼자 다음과 같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보고했다.

“JFK는 1964년 선거에는 나올 수 없을 거야. 한 방 맞을 거거든.”

그 다음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진행되었다. 케네디는 1963년 11월 암살자의 총탄에 사망했다.

케네디 암살의 배후에 마피아의 음모가 개입되었는지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그러나 1992년 기밀 해제된 문서에 따르면 트래피칸테는 임종 순간에 대통령 살해 사건에 자신이 개입되었다는 고백을 유언으로 남긴 것으로 되어있다.

대법원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산토 트로피칸테.
대법원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산토 트로피칸테.

산토 트래피칸테의 증언

대통령 살해 사건이 있고 15년이 지나서 트래피칸테는 사면을 조건으로 ‘케네디 대통령 암살특별위원회(the House Select Committee on Assassinations)’에서 증언을 했다. 이 때 위원회 의장은 사전 증언을 통해 로셀리로부터, 트래피칸테와 동료들이 대통령을 죽이기 위해 명사수 리 하비 오스왈드를 사전에 준비시켰다는 자백을 받아낸 사실을 언급했다.

그런데 트래피칸테의 증언을 앞두고 누군가 때 맞춰 로셀리를 죽여버렸다.

또, 사전 증언에서 로셀리는 오스왈드의 살해범 잭 루비를 트래피칸테와 관련지어 증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산토 트래피칸테는 자신이 JFK나 RFK의 목숨을 원했다는 모든 혐의에 대해 단호하게 부인했다. 그리고 그는 무사히 풀려났다.

케네디 암살 사건의 대혼란이 지나간 후 트래피칸테는 한껏 자세를 낮추고 살았다.

관계 당국은 불법 행위에 가담한 사실을 들어 트래피칸테를 지속적으로 법정에 세웠지만 노회한 조폭 보스는 그 때마다 유죄를 교묘히 피해나갔다. 그러다가 1987년 마침내 그는 72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오는 날 산토 트래피칸테의 범죄 유산은 산토 트래피칸테 3세라는 이름을 이어받은 그의 조카에게 이어지고 있는데, 산토 트래피칸테 3세는 1992년 조직 사기죄로 기소되기도 했다.

트래피칸테는 루치아노 사후 조폭 시대의 원형을 유지하던 마지막 생존자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배후에 대한 진실은 그의 죽음과 함께 묻혀버렸을지도 모른다.

[위키리크스한국=최식진 기자]

6677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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