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제천 화재'로 국회 불려온 충북 공무원들 "지휘라고 하면 안 돼, 지원이야"
[WIKI 프리즘] '제천 화재'로 국회 불려온 충북 공무원들 "지휘라고 하면 안 돼, 지원이야"
  • 윤여진 기자
  • 승인 2019.07.11 18:00
  • 수정 2019.07.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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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민 29명 목숨 앗아간 참사 다루는 '제천화재평가소위' 백태  
보상 협상에서 '법적 책임' 부정하는 이시종 충북지사는 '불출석'
권은희 의원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은 달라"... '충북도 책임' 강조
충청북도가 11일 '제천화재관련평가소위원회'에 제출한 '제천화재 관련 업무보고' 책자. [사진=윤여진 기자]
충청북도가 11일 '제천화재관련평가소위원회'에 제출한 '제천화재 관련 업무보고' 책자. [사진=윤여진 기자]

11일 오전 10시 25분 국회 4층 복도 끝 원탁 테이블. 행정안전위원회 산하 '제천화재관련평가소위원회'(제천소위) 위원장인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이 이날 열린 2차 회의의 정회를 선언하자 정장 차림의 50대 공무원들은 우르르 회의장에서 나와 복도 끝에 자리를 틀었다. 

정장 무리 중 화재진압 업무의 실무 책임자로 보이는 남성은 누군가에게 '코치'를 받고 있었다. 그는 이날 업무보고에 배석한 권대윤 충청북도 소방본부장으로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대비하는 듯했다. 

권 본부장에게 코치해준 사람은 권석규 충북 재난안전실장이다. 그는 '제천화재 관련 업무보고' 책자를 펴 "19:07 도지사 현장도착 및 상황 수습·지원체계 확립 지시"라고 쓰인 부분을 가리켰다. 

충청북도가 11일 제천화재관련평가소위원회에 제출한 '제천화재 관련 업무보고' 책자 중 이시종 충북지사의 조치사항. [사진=윤여진 기자]
충청북도가 11일 제천화재관련평가소위원회에 제출한 '제천화재 관련 업무보고' 책자 중 이시종 충북지사의 조치사항. [사진=윤여진 기자]

"상황 수습 지휘 체계가 아니라 지원 체계야. 헷갈리면 안 돼."

12분 뒤인 오전 10시 37분 회의 속개와 동시에 '충북 공무원들'을 향한 의원들의 질의가 쏟아졌다. 

자유한국당 이진복 의원은 정장 무리를 향해 "권대윤 소방본부장 나와 계시는가"라고 물었다. 권 본부장의 예상과 달리 질문과 답변 과정에서 '도지사 지휘'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충북 공무원들'이 지휘라는 말에 민감하게 대비한 이유는 금방 드러났다. 

'충북 공무원들'이 계속해서 보상금이 아닌 위로금이라는 단어를 쓰자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이 한창섭 충북도 행정부지사에게 따져 물었다. 한 부지사는 이날 이시종 충북도지사를 대신해 출석했다.

"보상금과 위로금은 무슨 차이인가?"

11일 제천화재관련평가소위원회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 [사진=연합뉴스]
11일 제천화재관련평가소위원회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소병훈(왼쪽) 의원. [사진=연합뉴스]

한 부지사는 "유족과 위로금을 협의할 때 논의한 문제인데, 보상과 위로 차이는 법적 책임과 관련 있다"며 "법적인 의미에서 배상·보상은 과실이 있고 그런 법적 책임이 있을 때 보상하도록 규정한다"고 설명했다. 

소 의원은 도중에 말을 자르고 "법을 떠나서, 법법 하지 마십시오"라고 언성을 높였다. 

회의장에서 오간 질문과 답변에서 알 수 있듯 충북도는 '제천 참사'에 대한 법적 책임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제천화재 법적 책임은 과연 충북도에 없을까 
지난 2017년 12월 21일 충북 제천시 하소동의 한 복합스포츠센터에서 불이 나 29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쳤다. 건물 1층 주차장 천장 배관에 달라붙은 얼음을 녹이기 위해 설치한 보온등에 축적된 열이 주변 보온재로 퍼지면서 불이 붙었다. 

불씨는 삽시간에 '필로티' 구조인 지상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 16대로 옮겨붙었다. 가연성 소재가 산화되면서 생겨난 유독 가스는 주차장 내 건물 출입구를 타고 건물 내부로 확산해 질식사의 원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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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스포츠센터 건물 1층 주차장 천장 배관에 달라붙은 얼음을 녹이기 위해 설치한 보온등에 축적된 열이 주변 보온재로 퍼지면서 주차된 차량 16대로 불이 옮겨붙었다. [사진=윤여진 기자]

인명 피해가 커진 이유는 2층 목욕탕의 탈출구가 막혔다는 데 있다. 시신 29구 중 18구는 2층에서 수습됐다. 지상 주차장으로 빠져나가기 전 거쳐야 하는 자동문은 잠겨버렸고,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비상구는 목욕탕 바구니가 가득한 철제 선반에 가로 막혔다. 

유일하게 남은 탈출구인 통유리는 여성의 힘으로 깰 수 없었다. 실제 구조대가 밖에서 유리를 깨고 2층에 진입한 시각은 불이 난 지 55분이 지난 오후 4시 43분으로 그때 그곳은 이미 '생지옥'이었다. 

건물 1층 주차장 천장 배관에 달라붙은 얼음을 녹이기 위해 설치한 보온등에 쌓인 열이 주변 보온재로 퍼지면서 불이 붙었다. 
사망자 29명 중 18명이 2층 여성 목욕탕에서 발견됐다. [사진=윤여진 기자]

유가족들은 현장에 도착한 오후 4시에 바로 현장 지휘관이 2층 진입을 지시했으면 일부는 살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쉬이 접을 수 없다. 유족 중 한 명은 2층 희생자와 오후 4시 17분 44초까지 전화했다는 통화기록을 경찰에 제출했었다.

충북 소방당국은 유족들의 입장에 수긍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법적 책임도 질 수 없다는 태도다. 사고 당일 제천소방서 선착대는 119종합상황실이 화재 신고를 접수한 지 7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선착대엔 화재진압대원만 있었고 그 즉시 필요한 건 구조가 아닌 '불길 차단'이라는 임무가 먼저라는 논리다.

화재로 재가 돼버린 충북 제천시 하소동 복합스포츠센터의 필로티 구조 1층 지상주차장. [사진=윤여진 기자]
화재로 재가 돼버린 충북 제천시 하소동 복합스포츠센터의 필로티 구조 1층 지상주차장. [사진=윤여진 기자]

진압대원 13명은 1층 주차장 차량 16대와 건물 외벽으로 번진 불을 진화하는 데 집중했다. 건물 외벽이 가연성인 '드라이비트' 소재인 데다 1m 옆의 LPG탱크가 화염에 노출돼 폭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6분 뒤 도착한 구조대 역시 건물 오른쪽 3층 창문에 매달린 사람을 구조하는 게 우선이었다고 항변한다. 구조에 필요한 '에어 매트리스'를 바닥에 깔고 설치하는 데 출동한 4명 전부가 필요한 까닭이다. 구조대는 '요구조자' 구조가 끝난 오후 4시 15분부터 2층 진입을 시도했다. 

경찰은 유족의 주장을, 검찰은 충북 소방당국의 주장을 각각 옳다고 판단했다. 충북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지난해 5월 2층 진입 등 인명구조 지휘를 소홀히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이상민 당시 제천소방서장과 김종희 당시 지휘조사팀장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하지만 청주지검 제천지청은 지난해 10월 "불길 확산 위험 속에서 진압에 집중한 소방관들에게 인명 구조 지연으로 인한 형사상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모두 '혐의없음'으로 불기소처분했다. 

유족들은 '법적 책임'을 계속 구했다. 지난해 11월 대전고검에 항고했고 다음 달 기각됐다. 검찰의 불기소처분 불복 절차인 재정신청을 대전고법에 냈지만 이마저도 지난해 3월 "소방 지휘부의 조처가 최선이었다고 할 수 없지만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보기엔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권은희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은 다르다"

제천화재관련평가소위원회 위원장인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이 11일 회의 도중 고민에 빠져있다. [사진=연합뉴스]
제천화재관련평가소위원회 위원장인 바른미래당 권은희(가운데) 의원이 11일 오전 회의 도중 고민에 빠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족들이 이제 구할 수 있는 책임은 '형사책임'이 아닌 '민사책임'이다. 11일 제천소위에 참석한 경찰 수사과장 출신 권 의원도 회의를 본격 진행하기 전에 "형사책임과 민사책임은 다르다"고 발언했다.

국가배상법은 지방자치단체가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규정한다. 

'제천소위' 위원장 권 의원은 충북도의 과실을 주장한다. 사고 당시 법정 기준 대비 소방 현장 인력은 58.5%로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고, 이 수치는 전국 지자체 중 뒤에서 3등이었다. 사고 당시 구조대는 먼저 신고된 '고드름 제거' 작업을 끝내고 나서야 현장으로 이동할 정도로 구조 인력이 부족했다. 

사고 당시 "2층을 진압하라"는 상황실과 "1층 주차장이 우선이다"라는 현장의 판단이 달랐던 데는 '무전기 오작동'이 이유로 꼽힌다. 평소 장비 관리에 허점이 있었다는 것인데, 사고 당시 충북도의 디지털 무전기 보유는 전체 무전기 중 51.5%에 불과했다. 

이시종 충북지사가 지난 2017년 12월 23일 오전 10시 제천체육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들어가고 있다.  [사진=윤여진 기자]
이시종 충북지사가 지난 2017년 12월 23일 오전 10시 제천체육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들어가고 있다. [사진=윤여진 기자]

하지만 이 지사는 민사책임 역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국가·충북도·제천시를 상대로 제소하지 않을 때만 위로금을 줄 수 있다는 원칙을 세웠다. 더군다나 유족이 요구한 '도지사 책임인정'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나온다. 이 때문에 충북도와 유족 간 보상 협의는 지난 4월 26일 결렬된 상태다. 

이 지사는 '제천소위' 출석도 거부하고 있다. 도지사가 국회 소위에 참석한 전례가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실상은 조금 다르다. 자칫 책임 인정으로 이해되는 발언을 해 향후 민사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읽힌다.  

실제 민주당은 이시종 지사를 적극 방어하고 있다. 애초 권 의원은 소위원장 권위를 이용해 11일 회의에 이 지사와 이상천 제천시장을 부르겠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상임위원장으로서 권 의원에게 보고를 받은 민주당 소속 전혜숙 행정안전위원장은 충북도와 제천시에 공문을 보낼 때 이 지사와 이 시장을 빼고 "충남도·제천시 관계자"로 대체해 11일 회의에 참석하라고 했다. 권 의원은 전 위원장이 자신의 권한을 침해했다며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이날 '제천소위' 회의는 오후까지 이어질 예정이었으나 한국당의 요구로 회의는 오전까지만 진행됐다. 소위 위원으로 새로 보임된 한국당 김성태 의원은 정장 무리들을 바라보며 "이 사람들한테 뭘 보고받나"라고 일갈하며 산회를 요구했고, 권 의원은 받아들였다. 회의가 끝난 후 유족들은 단체로 김 의원 사무실인 의원회관 910호를 찾았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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