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57) 한미안보협의회 유보... 계속되는 카터의 냉대에 속타는 전두환
청와대-백악관 X파일(57) 한미안보협의회 유보... 계속되는 카터의 냉대에 속타는 전두환
  • 특별취재팀
  • 승인 2019.07.19 08:05
  • 수정 2019.07.1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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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9월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 [MBC 캡처]
1980년 9월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 [MBC 캡처]

카터 행정부는 한미안보협의회 승인의 표시를 유보했다. 양국 국방장관 회의가 병행하는 안보협의회의는 무기한 연기돼 있었다. 각료급 회담도 열리지 않았다.

일부 친미적인 한국 관리들만이 워싱턴의 환영을 받았지만 그들도 미국의 강력한 ‘조언’을 들어야 했다.

경제 관련 임무를 띤 소수의 인사들과 미 육군 참모총장, 그리고 미국의 선거 후 국방장관이 특별사명을 지니고 한국을 방문한 것을 제외하면 미국의 주요 인사 중 한국을 찾은 사람은 없었다. 전두환이 가장 참기 힘들었던 일은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와의 의례적 교류를 최소화한 점이었다.

미국의 상징적인 자세는 특히 12-12 사태 후 가끔 표시된 분노로 점철됐다. 그러나 1980년 중반을 고비로 대부분의 분야에 걸쳐 정상적인 관계가 회복돼 양측에는 상당한 관용이 형성돼 있었다. 글라이스틴 대사도 한국 관리들과 폭넓은 친분관계를 유지했다. 전두환과 대사와의 관계는 유보적이었지만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대사는 전두환이 미국 정책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이해를 왜곡시킨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지만 둘은 종종 민감한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 정중하게 논의했다.

유보적 태도를 유지한다는 정책이 달성하지 못한 것은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민의에 기초한 새로운 정권의 탄생이라는 미국의 기본적 목표를 향해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던 점이다.

미국 관리들은 전두환을 ‘유신의 아들’이라고 칭했다.

그의 정권이 ‘민주주의’의 필요와 ‘질서’를 혼합했지만 후자 쪽에 역점을 두었던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대통령을 간접선거로 뽑도록 돼 있었지만 신헌법은 선거인단 수를 늘리고 그들의 선출도 반은 민주적으로 진행하도록 했으며 대통령 임기를 단임으로 제한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명 국회의원을 없앤 점이다.

전두환이 그런 구조의 틀 안에서 선임한 각료들 중에는 경제기술관료를 포함해 유능한 인물들이 많았다. 숙정과 기강확립의 절차를 걸친 관료들의 도움으로 그들은 경제조건의 개선에 급격한 진전을 이룩했다.

그것은 한국 국민들이 가혹한 통치하에서도 동요하지 않은 중요한 이유였다. 매사에 적극적인 전두환은 각료들과 긴밀히 접촉하면서 일했다. 그는 가끔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적극적인 습득자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 덕목도 새로운 시대의 압제적 성격을 감추지는 못했다. 미국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는 계엄령 하에서 실시됐다. (계엄령이 해제된 것은 1981년 1월 24일로 전두환의 백악관 도착 9일 전이었고, 2월 25일 대통령선거가 있기 약 한 달 전이었다.)

전두환은 이렇다 할 경쟁후보가 나서지 않은 가운데 현정부의 회유와 조작에 순응한 보수적인 선거인단에 의해 대통령에 선출됐다. 국회가 다시 구성돼 일부 야당인사들을 포함해 여러 명망 있는 정치인들이 당선됐지만 강력한 인물들이 많이 빠져 있었다.

수천 명의 정치인 언론인 학자 노동 지도자들이 감옥에 가지 않은 상태에서 피선거권이 박탈돼 있었기 때문이다.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의 유신시절에 버금가는 독재정부였다. 5월 17일의 대대적인 정치적 압제에 동원했던 완력 행사는 없었지만 새로운 정권은 전횡적 통치와 어느 분야든 반대자들을 뻔뻔스럽게 위협하는 수단을 동원해 통제를 유지했다.

[위키리크스한국=특별취재팀]

청와대 백악관 x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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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문서>
https://wikileaks.org/gifiles/docs/15/1556806_korea-assassination-history-.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088_e.html
http://timshorrock.com/documents/korea-the-cherokee-files-part-one/
https://www.38north.org/2017/10/tshorrock100317/
http://www.eroseffect.com/powerpoints/NeoliberalismGwangju.pdf
https://kr.usembassy.gov/wp-content/uploads/sites/75/2017/05/The-Kwangju-Incident.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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