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초대석] 윤덕민 前원장 "'2015 위안부합의'는 진일보한 합의였다"[2부]
[WIKI 초대석] 윤덕민 前원장 "'2015 위안부합의'는 진일보한 합의였다"[2부]
  • 조문정 기자
  • 승인 2019.07.24 12:58
  • 수정 2019.07.2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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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정부자금 세탁해 '아시아여성기금' 조성... 김영삼 대통령 "日정부에 배상 요구하지 않겠다"
日, 정부예산으로 '화해·치유재단' 출범·합의문에 사죄 표명... 韓, 사법자제원칙·국제법 존중해야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사진=김정훈 기자]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당시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공공외교를 소홀히 한 점은 매우 아쉽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일 위안부 합의문을 만듦과 동시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위로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사진=김정훈 기자]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합의문 중 가장 진일보한 합의였다고 평가합니다. 민간기금이 아닌 일본 정부예산으로 보상하고 사죄를 표명했다는 점에서 지난 20년간 우리 정부가 일본에 요구해온 요소를 충족한 합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의 건전한 시민사회가 우리 편이 돼야 한다’는 점을 잊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와 같은 우익,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이 아닌 우리의 주장이 옳다고 일본 시민들에게 인정받아야 합니다. 일본 시민들이 아베 쪽 주장에 더 설득된다면 우리가 지고 있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27년간 국립외교원에 몸담은 외교안보 전문가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위키리크스한국'과의 인터뷰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차이점을 언급하며 "한국이 혼자의 힘으로 일본을 제어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윤덕민 전 원장은 최근 고조되고 있는 한일 갈등과 관련해 "옛날에는 우리에게 과거사라는 지렛대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과거사 문제로 일본으로부터 역공을 당하는 형국이 됐다"며 "우리는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와 위안부 문제 모두 '피해자들의 가슴 아픈 역사'로 동일시하지만, 국제사회는 그렇게 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는 전시(戰時) 여성에 대한 명백한 인권 침해라 미국이 일본에 대해 항의할 수 있는 명분이 있지만,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배상과 법적 책임까지 일단락됐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위안부 문제에서 한국의 편에 섰다. 2007년 미국 하원 연방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발의됐고, 2012년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은 위안부(comfort women)를 성노예 피해자(enforced sex slaves)로 불러야 한다며 일본을 압박했다.

그러나 윤 전 원장은 "미국의 입장이 과거와는 다를 것"이라며 이제 미국이 한국의 손을 들어주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당시 미국은 우리 편을 들어 일본을 압박했지만, 지금은 양쪽 사이에서 어느 편도 들 수 없게 됐다. '서로 잘 지내라'고 말하는 수준에서 한일 문제에 관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일본에 대해 참 무지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일본 사회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사회 분위기, 그리고 미흡한 대미(對美)·대일(對日) 외교를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일본을 하나의 군국주의 사회로 보고, 모든 일본인을 아베 총리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일본을 "우리보다 먼저 민주주의를 시작한 다원주의적 시민사회"라고 평가했다. 이어 "산케이신문 등 일부를 제외한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의 대한(對韓) 경제보복을 규탄하는 글을 굉장히 많이 싣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언론 지형은 어떤가.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글이 실리면 '이적 행위다', '토착 왜구다'라고 몰아세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의 건전한 시민사회를 우리 편으로 만들 것'을 제언했다. 그는 "아베 총리와 같은 우익,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이 아닌 우리의 주장이 옳다고 일본 시민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일본 시민들이 아베 쪽 주장에 더 설득된다면 우리가 지고 있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대미(對美)·대일(對日) 외교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우리나라 대사관, 특히 주일 대사관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옛날에는 일본 정계나 외무성 관료들과 네트워크가 있어 정보를 미리 입수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주일 한국 대사관이 제대로 기능했다면 일본이 보복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신호를 사전에 탐지했을 것"이라며 "일본에서 그런 신호를 탐지하지 못했다면 우리 외교의 최전선에 있는 중요한 기능들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정부는 작년 10월 우리 대법원에서 일본 기업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리기 전부터 미국을 줄기차게 방문했어야 한다. 앞으로 일본이 어떻게 나올지를 예상해 우리 정부의 운신 폭을 다지는 노력을 해야 했다"며 "일본이 이미 8개월간 미국 인사들을 두루 만나며 기반을 모두 다지고 보복조치를 취하고 나서야 우리가 미국에 달려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WIKI 초대석] 윤덕민 前원장 "韓 정부·기업이 주도해 재단·특별법 만들고 日기업이 '자발적 참여'" [1부]

(http://www.wikileaks-kr.org/news/articleView.html?idxno=60739)

다음은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 이후 적절한 후속 대응이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의 사과가 있어야 하고 돈의 성격은 배상금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아쉬운 일입니다. 그동안 한일 양국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여러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특히 1993년 8월 '일본군 관여와 강제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고노 담화'가 나왔습니다. 당시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은 "위안소는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됐고, 위안부가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위안소에서 비참하게 살았다"며 "군의 개입으로 많은 여성의 명예와 존엄성을 심각하게 손상시킨 행위였다. 일본 정부는 치유할 수 없는 정신적·육체적 상처를 입은 위안부 여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참회의 뜻을 전한다"고 공식적으로 사과했어요.

이어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일본 총리도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도미이치 총리는 "아시아 국가 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안겨줬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뜻을 전했죠.

이처럼 일본 정부는 여러 번 총리들을 통해 사과를 표명했고 위안부 할머니들께 사과편지를 보내기도 했어요. 1995년에는 재단법인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을 조성해 4600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런 방식으로 할머니들께 일부 배상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일본 정부에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께 보상했어요. 멋있는 모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는 월 200만 원 정도에 달하는 금액을 매달 위안부 할머니들께 드리고 있습니다. 할머니들께서 겪으셨던 고초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이지만, 독립유공자 등 다른 국가 유공자에 비하면 국가로서 상당한 조치를 취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김영삼·김대중 정권을 포함해 역대정부가 이러한 기조를 이어왔어요."

▷그때 아시아여성기금의 틀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배상 문제가 잘 마무리됐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아시아여성기금이 존속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이 조성될 때까지만 해도 다 잘 되는 듯했지만, 결국 엎어졌습니다. 사실 아시아여성기금은 대부분 일본의 정부자금으로 조성됐지만, 일본 정부는 정부자금을 세탁해 표면적으로는 민간자금으로 기금을 조성했어요. 아시아여성기금을 엎어지게 한 패착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일본 정부는 왜 정부자금이 아닌 민간기금으로 관여하느냐', '일본 정부가 배상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편법을 썼다'는 반발이 나왔죠. '일본 정부가 공식적이고 직접적으로 사과하고 법적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의 입장이었습니다.

네덜란드, 필리핀 등 일본 위안부 피해국들은 한국을 제외하고  모두 이러한 일본식 프로세스를 받아들였습니다."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어땠나요?

"우리 정부의 입장은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법적 책임을 지겠다'고 명기한다고 해서 법적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쉽게 얘기하자면, 법적 책임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밝히고 △사죄하고 △배상하는 일련의 법적 프로세스라고 볼 수 있죠.

핵심 쟁점이 무엇이었는지 봅시다. 진상은 이미 다 드러나 있었어요. 책임자를 처벌해야 하는데 책임자가 모두 사망했습니다. 군이 위안부 문제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고노 담화'를 통해, 그리고 일본 총리들이 여러 차례 사죄도 했어요. 따라서 가장 큰 쟁점은 배상이었습니다."

▷ 일본은 어떤 입장이었나요?

"당초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모든 문제가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포괄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다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돌아가 봅시다. 한일 양국이 청구권협정을 체결했던 1965년 당시는 위안부 문제가 표면화되기도 전이었습니다. 위안부 문제가 드러난 것은 1980년대였으니, 1965년 청구권협정에 위안부 얘기가 들어갈 수 없었죠. 일본은 강제징용 '등'이 청구권협정으로 최종 해결됐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는 청구권협정에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문제로 봐야 한다고 반박했습니다.

일본은 결국 한국 정부의 입장을 수용해 '위안부 문제는 새로운 문제'라는 관점에서 '고노 담화' 등 일본 총리의 사과가 나왔습니다. 일본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위안부 문제에 전시 여성 인권 문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영삼 해법'으로 일단락된 듯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2006년 한 변호사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위안부 문제가 다시 불거졌습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64명을 대리해 "한일청구권협정과 관련해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지 않는 국가의 부작위로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받았다"고 주장했어요. 쉽게 말해서 헌법재판소에 가서 '왜 양국 사이에 분쟁이 있는데 분쟁해결 절차대로 하지 않느냐. 분쟁해결절차를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은 위헌이다'고 따진 것이죠. 그해 헌법재판소는 일본군 위안부 및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부작위 위헌결정(2006헌마788)을 내렸습니다.

헌법소원에서 패소한 우리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1년 12월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일본 대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웠어요. 일본 정부는 "각국 정부는 외국 공관의 안녕과 품위를 유지할 책임이 있다"는 '빈 협약'을 근거로 한국 정부에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습니다. 소녀상 건립이 한일 관계를 악화하는 또 하나의 계기이자, 2012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계기가 됐습니다. 그 후 한일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었습니다. 2012년 일본은 한일통화스와프 규모를 줄였고, 2015년 통화스와프 협정 만기가 도래하자 재체결하지 않고 종료했어요. 2017년에는 부산 주한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 건립을 문제 삼으며 통화스와프 협정 재체결 협상 중단을 발표했습니다."

▷그렇다면 원장님께서는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합의문 중 가장 진일보한 합의였다고 평가합니다. 민간기금이 아닌 일본 정부예산으로 보상하고 사죄를 표명했다는 점에서 지난 20년간 우리 정부가 일본에 요구해온 요소를 충족한 합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일 위안부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는 2016년 '화해·치유재단'을 출범하는 데 정부예산 10억 엔을 출연했습니다. 민간기금이 아닌 일본 정부예산으로 출연금이 조성됐어요. 합의문에는 고노 담화에 입각해 '일본군의 관여하에 견딜 수 없는 피해를 줬다'고 사죄하는 구절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2015년 위안부합의'가 파기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일본 정부가 합의문에 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표현 때문에 논란이 됐습니다. 그리고 당시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공공외교를 소홀히 한 점은 매우 아쉽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일 위안부 합의문을 만듦과 동시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위로했어야 했어요. '나라가 제대로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할머니들을 한분 한분 포옹하며 위로했다면 합의안이 뒤집어지는 일까지는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면서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는 굴욕외교의 상징으로 전락했습니다. 전임 정부가 했던 합의를 문재인 정부가 일방적으로 파기해버리자 일본도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우리 대법원이 일본제철·미쓰비시(三菱)중공업 등 일본기업들에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렸고요."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사진=김정훈 기자]
“우리는 일본을 하나의 군국주의 사회로 보고, 모든 일본인을 아베 총리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산케이신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의 대한(對韓) 경제보복을 규탄하는 글을 굉장히 많이 싣고 있다.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글이 실리면 '이적 행위다’, ‘토착 왜구다’라고 몰아세운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더욱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사진=김정훈 기자]

▷한일 정부 모두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일본은 치밀하게 준비해왔는데, 한국은 치밀하지 못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우리는 총론에는 강한데 각론에는 약합니다. 총론적으로는 일제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는데, 각론으로 들어가 일본이 왜 나쁜지, 실질적으로 어떻게 피해를 줬는지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데는 실패하곤 했습니다. 우리가 총론으로, 피상적으로 일본을 공격하면, 일본이 반발하는 구조가 지난 수십 년간 고착화했죠. 일본이 꼼짝달싹 못하도록 정밀하게 각론을 준비해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볼까요? 위안부 문제는 일본 시민단체들이 발굴해낸 이슈입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사할린 동포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할린 동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애썼던 사람은 센고쿠 요시토 전 관방장관이었습니다. 인권변호사 출신이었던 그는 2009년 일본 민주당 정부 때 관방장관을 했던 실세였습니다. 그가 주도해, 한반도 강제병합(국권침탈) 100주년이 되던 2010년 "정치·군사적 배경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해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는 내용의 '칸 총리 담화'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분은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사할린에 강제 징용당했던 동포들이 귀국할 수 있도록 큰 노력을 했습니다.

센코쿠 장관은 사할린동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을 여러 번 찾았지만 한국사회가 이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는 점을 알고 낙담한 적이 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그분의 노력이 결실을 보아 사할린 동포의 고국귀환이 실현되었지만, 일본이 제공한 자금으로 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이 정착할 아파트를 지어야 하는데 정작 님비현상이 일어나 주민들의 반대로 아파트를 짓는 데 난항을 겪은 바 있습니다. 그분에게 부끄러운 일이지요.

이런 식의 부끄러운 사례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일본 여기저기에 우리 징용 피해자분들의 유골들이 있는데 유골을 수습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너무 미흡합니다.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요즘 들어서야 그런 논의를 하는 듯합니다."

▷위안부 문제와 사할린 동포 문제 등을 발굴해낸 주인공이 일본 시민사회 단체였다니 놀랍습니다.

"우리는 일본을 하나의 군국주의 사회로 보고, 모든 일본인을 아베 총리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민주주의를 시작한 다원주의적 시민사회입니다.

산케이신문을 비롯한 일부를 제외한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의 대한(對韓) 경제보복을 규탄하는 글을 굉장히 많이 싣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론 지형은 어떻습니까.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글이 실리면 '이적 행위다', '토착 왜구다'라고 몰아세웁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더욱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본의 건전한 시민사회가 우리 편이 돼야 한다'는 점을 잊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와 같은 우익,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이 아닌 우리의 주장이 옳다고 일본 시민들에게 인정받아야 합니다. 일본 시민들이 아베 쪽 주장에 더 설득된다면 우리가 지고 있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사진=김정훈 기자]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정부는 작년 10월 우리 대법원에서 일본 기업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리기 전부터 미국을 줄기차게 방문했어야 한다. 앞으로 일본이 어떻게 나올지를 예상해 우리 정부의 운신 폭을 다지는 노력을 해야 했다. 일본이 이미 8개월간 미국 인사들을 두루 만나며 기반을 모두 다지고 보복조치를 취하고 나서야 우리가 미국에 달려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사진=김정훈 기자]

▷아베 총리의 집안 자체가 '반한(反韓) 집안'이라서 '한국 때리기'에 매진한다는 일종의 음모론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라고 보시나요?

"아베 총리의 고향이자 지역구인 야마구치현은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의 태동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정부 관계자가 기자 간담회에서 자신의 안이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요시다 쇼인'도 좋아할 안이라고 했죠. 요시다 쇼인은 19세기 정한론을 주장한 일본 사상가입니다. 코미디 같은 일입니다.

물론 아베 총리가 역사 수정주의자이긴 합니다. 역사 수정주의자들은 일본이 훌륭한 일본 역사를 너무 저평가하는 바람에 일본이 20여 년간 정체기를 겪었다고 주장합니다. 옛날 청년들은 가미카제 특공대가 돼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요즘 역사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아 청년들이 초식동물이 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일본 역사가 바르고, 공정하므로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죠. 그들은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 등을 거론하며 '왜 우리는 맨날 사과해야 하느냐', '있지도 않은 위안부 문제로 왜 우리가 사과해야 하느냐'고 주장하곤 합니다."

▷아베 총리가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을 확보했지만, 승리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개헌 가능 의석수인 85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아베 총리가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만들기 위해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꺼내 들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듯합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음모론을 언급하자면 끝도 없습니다. 일본이 한국에 보복하지 않았더라도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에 선거판이 불리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일본 기업의 재산을 압류해 현금화한다면 일본이 보복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 시점을 8월로 예상했는데 일본이 한 달 앞서 보복했습니다. 그 정도는 참의원 선거 영향이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본에 대해 참 무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정부 내에 일본에 대한 정보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대사관, 특히 주일 대사관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옛날에는 일본 정계나 외무성 관료들과 네트워크가 있어 정보를 미리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주일 한국 대사관이 제대로 기능했다면 일본이 보복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신호를 사전에 탐지했을 것입니다. 일본은 일정 부분 열린 사회입니다. 일본에서 그런 신호를 탐지하지 못했다면 우리 외교의 최전선에 있는 중요한 기능들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정부는 작년 10월 우리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대해 배상 판결을 내리기 전부터 미국을 줄기차게 방문했어야 합니다. 앞으로 일본이 어떻게 나올지를 예상해 우리 정부의 운신 폭을 다지는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일본이 이미 8개월간 미국 인사들을 두루 만나며 기반을 모두 다지고 보복조치를 취하고 나서야 우리가 미국에 달려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미중 패권경쟁(무역전쟁)과 한일 갈등이 어떤 양상으로 맞물려 돌아갈 것이라고 보십니까?

"한국의 운신 폭이 좁아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외교가 이 정도가 된 적은 없었습니다. 중국은 사드 보복을 진행하고 있고 여차하면 '화웨이 보복'까지 할 수도 있습니다. 일본은 보복에 나서고 있고, 북한은 '오지랖 떨지 말라'며 여차하면 도발하겠다고 합니다. 미국은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천명하며 동맹을 경시합니다. 한국은 사면초가에 몰렸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지혜로운 외교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만 통용되는 우물 안 개구리 논리는 이제 버려야 합니다. 위안부합의 문제도,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도 모두 '사법부발(發) 위기'입니다. 국제 규범과 국제법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사법자제의 원칙'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외교와 국내법 사이에 간극이 있으면 행정부와 협의하고 신중하게 판단하며 국제법을 존중하는 것이죠.

그런데 사법자제의 원칙이 존중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내 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2위였습니다. 해외와 관련된 많은 거래가 지금 이 순간도 일어나고 있죠. 국제법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이 이번 한일 갈등을 한미일 3각협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한국과 일본을 연쇄 방문해 이란 인근 호르무즈 해협의 민간 선박 보호 연합체와 관련해 한국과 일본의 동참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볼턴 보좌관이 이번 방한에서 '호르무즈 호위 연합체' 동참을 요청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한국이 혼자의 힘으로 일본을 제어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우리에게 과거사라는 지렛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과거사 문제로 일본으로부터 역공을 당하는 형국이 됐습니다. 일본이 우리에게 경제보복 조처를 하자마자 우리 정부가 가장 먼저 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미국에 중재역할을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입장이 과거와는 다를 것입니다. 그동안 미국은 위안부 문제에서 한국의 편에 섰습니다. 2007년 미국 하원 연방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2012년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은 위안부(comfort women)를 성노예 피해자(enforced sex slaves)로 불러야 한다며 일본을 압박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우리 편을 들어 일본을 압박했지만, 지금은 양쪽 사이에서 어느 편도 들 수 없게 됐습니다. 미국은 '서로 잘 지내라'고 말하는 수준에서 한일 문제에 관여할 수 있을 겁니다."

▷미국의 관점에서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는 어떻게 다른가요?

"위안부 문제는 전시(戰時) 여성에 대한 명백한 인권 침해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일본에 대해 항의할 수 있는 명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는 다릅니다. 1965년에 한일 청구권협정이라는 국가 간 조약으로 배상금과 법적 책임까지 일단락된 문제를 우리 정부가 다시 제기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제사회의 시각에서는 '조약의 해석문제'입니다.

미국이 과연 한국 편을 들 수 있을까요? 예전에는 우리에게 도덕적 우위가 있었지만, 우리 스스로가 국제규범을 위반하면 우리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와 위안부 문제 모두 '피해자들의 가슴 아픈 역사'로 동일시하지만, 국제사회는 그렇게 보지 않고 있어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이 한국에 대해 수출 규제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설이 돌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묵시적인 동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미국의 동맹국에 대해 보복하면서 일본이 미국의 입장을 살피지 않고 했을 리는 없습니다. 일본은 자국의 대한(對韓) 경제보복 조치에 미국이 개입하기 쉽지 않으리라는 점은 사전에 간파했을 것입니다. '한국에 보복조치를 가해도 미국이 중단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시작했겠죠.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사전에 '승인'했거나 '묵시적으로 동의했다'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일본이 상당히 용의주도하게 외교에 임하고 있습니다. 대미(對美) 공공외교를 통해 한국의 부당함을 '세일즈'하고, 한국에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성을 환기했을 것입니다."

▷ 아베 일본 총리는 북핵 협상 테이블에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거론하려고 해왔습니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는 북핵 협상에 방해요인이 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핵 협상에 앞서 무엇부터 했습니까? 오토 웜비어 등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들을 고국으로 데려왔습니다. 민주국가의 지도자라면 당연히 자국민들을 데려오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아베 총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하면 북핵 문제를 훼방하는 것이 되고, 트럼프 대통령이 하면 잘한 것이 되나요?

미국은 전쟁실종자(MIA) 문제에도 나서며 실종 미국인의 유해를 송환받기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납북자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현재 우리 국민 6명이 북한에 억류돼 있는데 우리 정부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에 억류돼 있는데. 인권 문제에 대해 왜 이렇게까지 관심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납북자 문제를 거론한다고 해서 북한이 미국과 핵협상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주장은 구실에 불과합니다."

[위키리크스한국=조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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