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진단] 폐쇄적 민족주의와 대중주의에 갇힌 21세기 ‘정신 승리법’
[WIKI 진단] 폐쇄적 민족주의와 대중주의에 갇힌 21세기 ‘정신 승리법’
  • 편집국
  • 승인 2019.07.29 14:17
  • 수정 2019.07.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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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진정되기는 커녕 ‘정치화’되고 있다. 경복궁 앞에서 “아베 정권을 규탄하고 강제 징용에 대한 배상과 사죄, 우리 사회 내부의 친일적폐 청산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렸다. 북 치고 장구 친다고 사태가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벌이는 불매운동이 일본을 꺾을 수 있는 유효한 카드가 될 수 있을까.

냉정하게 보자. 2018년 한국은 일본에 305억 달러를 수출했고, 일본은 한국에 513억불을 수출했다. 불매운동이 극한으로 치달았다고 가정할 때 절대액으로 보면,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수출하는 일본이 불리하다. 하지만 비율로 계산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한국과 일본의 GDP는 각각 1조7천억달러, 5조2천억달러다. GDP에 대비 시킨 무역의존도를 보면, 한국의 대일 의존도는 1.8%(305/17000)이고 일본의 대한국의존도는 1.0%이다. 수출에서 한국이 일본에 의존하는 정도가 약 2배 정도 크다. 의존도가 높은 쪽이 불리하다. 그렇다면 일본이 칼자루를 잡은 셈이다.

불매운동은 효과적이지 않을 뿐더러 냉정을 잃게 한다. ‘유니클로’를 안 입고 일본 여행을 안가겠단다. 유니클로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과, 일본여행객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사람은 한국인 아닌가.

일본의 수출규제는 한국의 급소를 찌른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이 수출 규제하는 3개 품목 5000억원을 수입해 무려 170조원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제조한다. ‘1대 340’의 구조다. 1을 지렛대로 340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카드이다. 일본산 소재와 부품에 대한 의존은 오랜 한·일간 국제 분업의 결과이다. 국제 분업을 통해 그동안 한국과 일본 모두 ‘교환의 이익’을 누려왔다.

이 분업 구조를 일본이 깬 것이다. 이들 제품을 빠른 시간 내에 국산화하거나 또는 대체재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 경제로서는 어려움이 클 수 밖에 없다. ‘소금을 구하지 못해 무한정 팔 수 있는 빵을 만들지 못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한국 경제 IMF행의 나비 날개짓인가

김영삼 대통령은 1995년 11월 14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사이다 발언’을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장쩌민 국가주석에게 “난징 대학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계속되고 있다.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일갈 했다. 일본은 경악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발언이 2년 뒤 ‘한국경제의 IMF행 급행열차의 나비 날개 짓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국은 1996년 12월 29번째로 OECD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명실상부 부자클럽의 일원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샴페인에 취했다. ‘원 고(高)’와 여행자유화 조치 등의 영향으로 1996년 중 경상수지 적자는 무려 230억달러를 기록했다. 해외부문에서 달러를 벌기는커녕 소진한 것이다.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 때 ‘IMF행’이라는 굴욕을 겪게 된 결정타는 ‘일본의 단기외채 회수’였다. 미국의 신용평가기관 S&P는 1997년 9월에서 11월까지 3개월 동안 한국을 빠져나간 일본 자금이 9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Barrons, 1998. 1. 26 ‘Costly Lessons’) IMF사태가 터진 후 국회 청문회에서 나온 자료에 따르면 1997년 말 일본 은행들이 한국에서 뺀 돈이 120억 달러에 달했다.

일본의 무역보복 철회하라! 광화문 아베 규탄 집회 [최지환 기자]
일본의 무역보복 철회하라! 광화문 아베 규탄 집회 [최지환 기자]

한국 경제가 금융위기로 치닫던 1997년 11월말, 한국에서 가장 먼저 빠져나간 자금은 일본 엔화 차관이었다. 한국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나라가 일본이라고 생각해 왔던 뉴욕, 런던, 홍콩의 금융시장은 큰일이 난 걸로 보고, 앞 다퉈 한국에서 돈을 뺐다. 개방경제에서는 ‘시장참가자의 급격한 신뢰 변화’(swings in confidence) 그 자체가 위기요인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외형적 경제성장을 높이 평가하고 유입되었던 외국자본이 급격히 철수함으로써 경제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천둥소리에 놀란 양떼들이 좁은 계곡을 서로 밀치며 도망치듯 외국은행들은 한국을 빠져나갔다.

당시 정부와 대기업, 금융기관이 단기외채를 많이 끌어온 것은 실책이었다. 경제는 호황이고 비싼 금리의 장기외채보다는 단기차입금의 금리가 쌌기 때문에 좋은 조건의 돈을 빌렸던 것이다. 하지만 단기 외채의 단점은 은행들이 ‘만기 연장’(rollover)을 해주지 않으면 흑자 도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통’인 자신의 정적(政敵) 박태준을 일본에 급파했다. 하지만 그는 단기외채 만기연장에 실패했다. 결국 IMF로 갈 수 밖에 없었다.

한국 개도국 지위 잃을 수도

한국 통상은 일본의 수출규제에 이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개발도상국 제외’ 발언으로 인해 또 다시 악재를 맞이할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개도국 지위는 일종의 특혜이다.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으면 협약 이행에 많은 시간이 허용되고 농업보조금 규제도 느슨하게 적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 26일 사실상 선진국으로 도약한 국가가 개발도상국 지위에 따른 혜택을 받는다며, 무역대표부(USTR)에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지만, 주요 20개국(G20) 가입국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한국의 개도국 지위 또한 위태롭게 됐다. 한미 간의 공조가 튼튼하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으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혈맹을 외치지만 신뢰관계에는 이미 금이 갔기 때문이다. 
 
한·미·일 3국 위원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우리 대표단은 한·일 무역 분쟁을 해결하는 데 미국이 중재자로 나서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마크 내퍼 미국 국무부 한국·일본 담당 부차관보는 “한·일 모두 미국의 맹방이어서 미국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서 중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정부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미 국무부는 한·일 갈등에 대해 ‘한·일 간 해결이 우선’이라며 한·일 대화를 독려하는 것 외에 중재에 나설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7월 19일 한·일 갈등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관여를 요청해 왔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양국이 모두 원하면 관여할 것’이라며 당장 중재에 나설 계획이 없음을 시사했다.

아베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사진기자단]
아베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사진기자단]

한·일 긴장관계 원인은 누가 제공 했나 

우리는 일본 쪽이라고 답한다. 일언반구 예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수출규제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이 촉발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30일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배상은 끝났는데 무슨 소리냐”며 항의했다. 일본은 올해 1월 양자협의, 5월에는 중재위 개최를 요구했지만 한국은 이를 모두 거부했다. 하지만 중재위를 거부한 것은 명분을 저버리는 것이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당시 “협정 이행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쪽이 요구하면 협의를 통해 제 3국에 의뢰해 중재위원회를 둘 수 있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한·일 갈등의 본질은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손해배상이 종료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이다. 우리는 아니라고, 일본은 그렇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 입장은 일관되지 못했다. 2005년 노무현 정부는 민관합동위원회를 열어 “강제징용 피해배상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끝났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당시 총리였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동위원장이었고, 당시 민정 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은 정부 측 위원이었다. 민관합동위원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자 등 3가지 문제는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렇다면 강제징용문제는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는 1965년 일본과 한일협정을 맺었다.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한일 협정 이후 불거진 모든 문제는 ‘협정이 잘못됐다’는 전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한일 협정이 한국에게 불리하게 그리고 불평등하게 체결됐다고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겠지만 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리(앞선 정부)가 체결한 조약을 우리(후속 정부)가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강제징용 노동자 배상은 사법부 판결’이므로 삼권분립의 원칙에 의거 한국 정부는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은 “한일기본협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복선(伏線)을 깔고 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한국과 한국의 사법부가 다르다고 볼 수는 없다. 만약 어떤 나라가 조약을 체결하고 그 나라의 사법부가 이를 뒤집는 판결을 내리면 어떤 조약도 맺을 수 없다. “사법부 판단이기에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대응은 국제 외교에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국가와 그 국가에 속한 대법원이 별개일 수는 없다.   

한국의 일부 진보 인사들은 “한·일 협정과 별도로 개인에 대한 배상은 살아있다고 주장하는 일본 변호사(우쓰노미아 겐지 전 일본변호사협회 회장)를 거론하며” 작년 10월 대법원 판결은 제대로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같은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언필칭 일본의 양심적인 변호사는 아베의 논리에 반하는 것이지, 우리 대법원 입장을 지지하는 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당신네 소수의견을 보니, 내 주장이 맞는 군”라는 소리 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은 식민모국(母國) 중에서 유일하게 피(被)식민국에 대해 경제적 보상을 제공한 국가이다. 일본이 제공한 보상 6억불은 ‘무상 3억불, 유상 2억불, 상업차관 1억불’이었으며, 이는 당시 일본 외환보유고의 50%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그리고 일본은 자국민과 기업들이 한국에  투자한 자산의 청구권을 포기했다. 그 일환으로 ‘적산(敵産)가옥’으로 불렸던 일본인 소유의 가옥은 한국인에 불하됐다. 하지만 일본을 제외한 여타 식민모국들은 피식민국에 투자한 자산을 강탈당하지 않았으며, 정당한 투자자산으로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따라서 일본은 한국에 나름대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이 그렇게 한 데에는 미국의 압력이 절대적이었지만, 한편으론 “전후복구를 위해서는 철두철미하게 미국 편에 서야 한다”는 일본의 전략적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일협정 당시 공개된 김종필·오히라 메모를 보면 일본은 한국에 지급하는 돈의 명목을 ‘독립축하금’으로 하려 했고, 우리는 ‘청구권자금’으로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의 요구대로 ‘청구권자금’이란 용어가 수용됐다. 한국에는 마땅한 ‘청구의 개념’으로, 일본에게는 “더 이상 다른 형태로 일제강점에 따른 각종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안전장치로 인식됐다. 우리나라 진보 측 인사들은 어이없게도 일본이 우리에게 건넨 돈을 ‘독립 축하금’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일본 편을 드는 것이다. 우리는 축하금 이전에 마땅히 받아야 할 청구금인 것이다. 이를 주장하는 진보 측이 친일행각을 벌인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과 공명당이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을 훌쩍 뛰어넘는 압승을 거뒀다. 아베 총리가 이날 저녁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참의원 당선이 확정된 후보 이름 옆에 종이로 만든 빨간 꽃을 붙여주고 있다. [AFP =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과 공명당이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을 훌쩍 뛰어넘는 압승을 거뒀다. 아베 총리가 이날 저녁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참의원 당선이 확정된 후보 이름 옆에 종이로 만든 빨간 꽃을 붙여주고 있다. [AFP = 연합뉴스]

‘재판거래’라는 낙인

형사 민사 재판도 아닌 대법원 판결에 ‘무슨 거래’가 있었겠는가. 문재인 정권은 양승태 대법원장을 ‘재판거래’ 죄목으로 사법처리했다. 양 전대법원장은 파렴치범으로 몰렸다.

양승태 전(前)대법원장이 한·일 관계를 안정화시키려는 박근혜 정부의 의도를 간파하고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소송 최종심 선고를 지연시켰고, 그 대가로 외교부가 해외 파견 법관 수를 늘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원고 승소 그대로 확정되면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등 반발 할 것”이라는 의견을 김용덕 전 대법관에게 말한 것을, ‘재판에 관여’한 것으로 몰고 갔다. 강제징용 판결을 외교적으로 해결하라고 시간을 벌어준 양승태 전대법원장을 재판거래로 낙인찍어 사법처리 한 것이다.

그를 사법처리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일본이 져야 한다’고 대놓고 주장을 한 셈이다. 그렇다면 일본정부와의 협의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한일 청구권협정 2조 1항은 “한·일 양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 한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개인 청구권 역시 소멸됐다는 것이다.

감성에 치우친 강경론 해법될 수 없어

한일관계는 최악을 치닫는 데, 감성에 치우친 강경론만 난무하고 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본을 평균 이상으로 좋아하는 부류들의 일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한국 내에는 분명히 일본을 평균이상으로 특별히 좋아하는 부류가 있어 보입니다. 이런 부류가 한국사회 내 힘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인 듯 하구요”라고 썼다. “사법농단을 탓하기 전 외교적 거래를 두둔한 부류, 국민 대다수가 반대했던 위안부합의를 강행했던 사람들, 5억불로 일제 36년을 퉁치려 했던 사람들의 일관성입니다”라고도 적었다. 최재성 민주당 의원도 “이 정도 경제 침략 상황이면 의병(義兵)을 일으켜야 할 일이다. 정치인들이 주판알만 튕길 때가 아니다”라고 거들었다.      

정부 여당을 비판하면 '일본을 평균 이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일본을 비판하는 데 동참하지 않으면 ‘토착 왜구’가 된다. 그리고 지금은 ‘의병 운동’을 해야 할 때이다. 그들의 지력은 그 수준이다.

2016년 여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설치에 대해 중국 측의 경제보복이 벌어졌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중국의 경제보복을 탓하기 전에 중국 측 입장을 들어봐야 한다며 초선의원 6명이 중국으로 갔다. 동맹국인 미국 측 반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민주당은 ‘국익의 관점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일축했다. 그 논리를 그대로 인용하면 ‘경제보복을 하는 일본의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일본을 방문할 것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중국은 가고 일본을 가지 않는다면, 더불어 민주당은 ‘중국을 평균 이상으로 숭상하는 사람들’로 이뤄진 정당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 방문 공식연설에서 “중국은 단지 중국이 아니라 주변국들과 어울려 있을 때 그 존재가 빛나는 국가이다. 높은 산봉우리가 주변의 많은 산봉우리와 어울리면서 더 높아지는 것과 같다. 중국몽(夢)이 중국만의 꿈이 아니라 아시아 모두, 나아가서는 전 인류와 함께 꾸는 꿈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자기를 낮추는 것이 외교가 아니다. 그리고 중국몽이 왜 전 인류의 꿈인가. 상대국의 동의를 구했나를 묻고 싶다. 중국에 치욕적으로 굴종하는 더불어민주당이다.  

무역전쟁으로 한일 관계가 대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연합뉴스]
무역전쟁으로 한일 관계가 대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연합뉴스]

에필로그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에 대해 우리 정부는 강경대응 방침을 굳히고 있다. 향후 WTO 제소를 비롯 필요한 대응조치를 취해나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존재감을 들어내기 위한 방어적 언사에 지나지 않는다.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일종의 ‘내용 없는 큰 소리’(cheap talk)인 것이다.

WTO 제소는 실효적인 조치가 될 수 없다. 일본이 통상 분야에서 한국만 차별한 게 아니라 한국을 ‘우대 지위에서 배제하는 형식’(white list 배제)을 취했기 때문이다. 형식상 ‘합법적’이지만 불공정한 결정으로 한국이 불이익을 받는 경우 WTO에 ‘비위반 제소(non-violation complaint)’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지 2~3년 걸리고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한일관계가 악화되어 확전될 경우 일본의 금융압박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4대 주요 은행(미쓰비시파이낸셜그룹, 미쓰이스미토모, 미즈호, 야마구치)들이 올 3월말 기준으로 국내 기업들에 빌려준 자금 규모가 총 18.3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이 빌린 돈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또한 5월말 현재 주식·채권 시장에도 12.4조원 넘는 일본계 자금이 들어와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금융회사나 기업들이 협조하지 않는 경우,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일본과 글로벌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은 이미 위안부 소녀상 설치를 문제 삼아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을 중단시킨 상태다. 

‘Intel Inside’는 인텔사의 불후의 마케팅 명작이다. 인텔의 칩이 없으면 기기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Japan inside’라는 현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핵심 부품·소재 없이는 스마트폰 자동차 정밀화학 등 국내 산업이 안 돌아간다. 병원의 초음파 CT 등은 일본산이 태반이고, 방송도 일본 장비 없이는 촬영·송출이 어렵다.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한·일 관계의 빛나는 전범(典範)이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죄가 담긴 최초의 공식 합의 문서다. 한국도 금융·투자·기술이전 등 일본의 대한국 경제지원의 기여를 인정했다.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가자고 외친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국내정치를 겨냥한 과잉 민족주의, 반일 정서를 떨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일 부추기기’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려 했다면 이는 미래를 착취한 것이다. 혹여 일반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이용해 외교 현안을 해결하려 했다면, 이는 ‘외교 무지’를 드러낸 것이다.

아베를 규탄하는 촛불집회 등, 과잉민족주의와 대중주의에 기댄 맞보복은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려는 아베와 일본 우익에 오히려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다. 루쉰(魯迅)이 ‘아큐정전’에서 중국의 정신적 성장을 막는 고질적 후진성으로 지적했던 ‘정신승리법’이 떠오른다. 지고도 이겼다고 끊임없이 자기최면을 걸었던 100년 전의 중국인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시대착오적 ‘21세기 정신승리법’으로 과연 승리할 수 있을 가.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아작도 남아있습니다”라는 이순신 장군의 충정을 그 뜻도 모른 채 천박하게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극일’은 일본 보다 더 잘사는 것이고 또 일본 보다 더 많은 국제사회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불매운동과 촛불집회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가. “현재가 과거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고 한 윈스턴 처칠의 말을 곱씹어야 한다. *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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