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원격의료 핑계로 국민을 기업 위한 '테스트베드'에 눕혀선 안 돼
[기자수첩] 원격의료 핑계로 국민을 기업 위한 '테스트베드'에 눕혀선 안 돼
  • 손의식 산업팀장
  • 기사승인 2019-07-31 14:48:41
  • 최종수정 2019.07.31 14: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위키리크스한국 손의식 산업팀장]
[사진=위키리크스한국 손의식 산업팀장]

강원도가 디지털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되면서 '원격의료'라는 낯익은 키워드가 도마에 올랐다.

원격의료는 말 그대로 생체신호 웨어러블 기기 등을 활용해 원격으로 환자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시스템이다. 당연히 의료인의 영역이다. 그리고 의료를 중심으로 기술과 통신 등 다양하고 세밀한 영역들이 최적의 조화를 이뤄야 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강원도가 원격의료 추진과 관련해 의료계와 어떤 사전 협의도 없었다. 심지어 강원도의사회장조차 해당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

강원도는 "중앙부처와의 협의에서 사업계획이 변경되는 급박한(?) 과정에서 의사협회나 관련 단체와 협의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고 한다. 협의하려 했으나 물리적으로 시간이 안 됐다는 것인데, 순서가 잘못됐다. 중앙부처와 협의 이전에 지역 의료계 및 의사협회와의 협의가 선행됐어야 마땅하다.

강원도에서 필요한 것이 미충족 필수의료의 강화인지 원격의료 실증사업인지, 만일 필요한 사업이라 추진한다면 도내에서 의료 접근성이 가장 열악한 격오지는 어디인지, 도민의 건강과 생명을 감안할 때 원격의료 추진과 대면진료를 위한 동선 개선인지 등 지역 의료계와 협의할 내용이 산더미다.

그러나 강원도와 복지부는 의료계는 배제한 채 그들만의 협의만 진행하다가 의료계가 거리로 나서서 피켓을 드니 이제야 늦은 협의를 하겠다고 한다.

그동안 의료계가 원격의료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해 온 것을 생각하면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테이블에서 마주하기 쉬운 상대는 아니다. 이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제도적 근거와 로드맵이 없는 상태에서 당연히 어려운 상대일 수 밖에 없다.

일차의료기관 주도로 원격의료 실증사업을 하겠다고 하지만 이 사업에는 분명히 상급종합병원도 포함돼 있다. 강원도청에 따르면 실증사업은 일차의료기관이, 관련 연구는 상급종합병원이 한다는 것인데 두 종별 의료기관의 역할이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 연구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는 모르는 일이다.

실증사업 이후에도 원격의료가 지속적으로 민간 일차의료기관의 역할로만 남을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웨어러블에서 시작한 원격의료가 어느 기기까지 어느 영역까지 확산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만 모르고 있는 건지 사업 주체도 모르고 있는 것인지조차 모를 일이다.

이처럼 우려되는 문제에 대한 제도적 해결 방안, 의료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을 해답, 원격의료가 기업에 휘둘려 오남용되지 않고 순수하게 일차의료의 영역으로 남을 수 있는 시스템 등에 대한 로드맵과 약속이 없는 한 의료계와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강원도는 문제를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문제를 어떻게 막을 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없다. 의료계와 협의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특구로 지정된 상태에서 의료계와 무슨 협의를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의 강원도 디지털헬스케어 사업은 도민의 건강을 향한 진정성보다는 의료 관련 산업의 발전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산업의 발전이 아무리 중요해도 도민의 건강과 생명과는 바꿀 수 없다. 도민을 도내 154개 기업, 87개 바이오기업, 20개 IT 기업을 위한 '테스트 베드'에 눕혀서는 안 된다.

강원도가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것은 충분히 축하할 일이지만 원격의료 실증사업은 원점에서 재논의가 필요하다.

'뿌리가 다르면 줄기가 다르고 줄기가 다르면 아지가 다르다'는 말이 있다. 무엇이든 근본이 가장 기본이며, 그에 따라 모든 현상과 결과가 좌우됨을 뜻하는 말이다.

의료의 기본은 대면진료다. 의사가 보고 만지는 것이야 말로 의료의 정석이다. 그리고 강원도의 기본은 강원도민이다. 강원도가 원격의료 실증사업에 앞서 성과만 바라보지 말고 기본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위키리크스한국=손의식 산업팀장]

sus@wikileaks-kr.org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