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日강제징용 판결은 법리 남용" 현직 부장판사, 대법원 정면 비판 파문 확산
[전문] "日강제징용 판결은 법리 남용" 현직 부장판사, 대법원 정면 비판 파문 확산
  • 강혜원 기자
  • 기사승인 2019-07-31 16:49:46
  • 최종수정 2019.08.0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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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부장판사의 대법원 강제 징용 판결 3가지 반박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

현직 부장판사가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김태규(52·사법연수원 28기)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3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징용 배상 판결을 살펴보기’라는 제목의 A4용지 26쪽 분량의 글을 올렸다. 그는 "외교분쟁은 양국 정부 간 충돌에서 발생하는데, 법원의 판단이 일부 원인 제공을 했다는 것이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며 "나라면 2012년 대법원이 파기환송하기 전의 1· 2심 판단대로 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글이 온라인과 매체를 통해 확산되자 "정말 논리가 정연하고 용기 있는 판단을 내렸다"는 지지자들과 "한-일 경제전쟁 와중에 일본에 유리한 글을 쓰는 것은 토착왜구 쪽 아니냐"는 비판론자들로 갈리고 있다.    

그러나 일본과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 임원들은 "한-일 양측이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은채 달리고 있는데,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 경제는 파국을 향해 치달을 수 밖에 없다"며 "일본 쪽 입장에서 볼 때, 또한 국제 법률적인 시각에서 이 사안을 어떻게 볼 수 것인지 되새기게 하는 글"이라는 평가가 많다. 김 부장판사를 지적하기 보다, 이같은 시각을 참고해 한-일 문제를 원점부터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제 때 강제징용 피해를 입은 여모씨 등 4명은 지난 2005년 자신들이 일했던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피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으나 2012년 대법원은 신일철주금에 배상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후 열린 파기환송심은 대법원 취지대로 신일철주금이 피해자 4명에게 각각 1억원씩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고, 작년 10월 대법원은 판결을 확정했다.

김 부장판사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3가지 의문점을 제기했다. 첫째 소멸시효의 장벽을 어떻게 넘었나, 둘째 법인격의 법리를 어떻게 넘었나, 셋째 일본 법원 판결의 기판력(旣判力·확정판결된 사건을 다시 재판해 뒤집지 못하도록 하는 효력)이라는 장애를 어떻게 넘었나 등이다.

그는 소멸시효에 대해 "일본과 국교가 회복된 1965년을 기준으로 봐도 40년의 세월이 흘렀다"면서 "민법 제766조에서 정하는 불법행위의 소멸시효 기간을 훌쩍 넘어섰다"고 했다. 민법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의 소멸시효’를 규정하고 있다. 김 부장판사는 "3심이 소멸시효의 벽을 넘어선 논리는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에 반하여 권리 남용이 되므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며 "보충적이고 거의 수용하지 않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이유로 소멸시효를 부정했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법대를 졸업한 김 부장판사는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과 대법원 연구관을 지냈고, 대구·울산지법에서 부장판사를 지냈다.

강제징용 배상 대법원 판결. [연합뉴스]
강제징용 배상 대법원 판결. [연합뉴스]

■ 징용 배상 판결을 살펴보기 [김태규 부장판사] 전문

지금에 한국과 일본 사이의 경제분쟁을 바라보면서 어떤 이는 이참에 일본에게 본때를 보여 보고 싶을 것이고, 어떤 이는 일본과의 불필요한 분쟁을 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두 나라의 경제분쟁으로 불안해진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애당초 그리 사이가 좋을 리 없는 일본이지만 구체적인 경제적 불이익을 언급하면서 한국을 압박한 것은 참 이례적이라 생각된다. 어느 각료의 망언이 있었느니, 신사를 참배했느니, 군국주의자들의 시위가 있었느니 등의 뉴스는 접했어도 일본 정부에 의한 경제적 압박은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는 그리 쉽게 확인되지 않는다. 거기에다 이러한 분쟁이 오롯이 대법원의 최근 징용관련 판결에서 근원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그것이 하나의 단초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어서 궁금함을 더했다. 대개의 외교분쟁이라는 것이 양국 정부 사이의 충돌에서 발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법원의 판단이 일부 원인제공을 하였다는 것이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

◎ 사건의 경과

사건의 경과는 대강 이러하다. 원고들(1941년대 이후 ‘관(官) 알선’이나 ‘징용’을 통해 일본제철 주식회사에서 노무에 종사하였던 이들 또는 그 상속인들)은 2005년 2월 28일경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일본제철 주식회사(이하 ‘신일본제철’이라고만 함)를 상대로 자신들이 그 의사에 반하여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에서 강제노동에 혹사를 당하고 임금마저 강제로 저축을 당하여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였다는 등의 주장과 함께 그에 대한 위자료를 구하는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제1심 법원은 ① 원고들의 청구가 일본 법원에서 있었던 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된다는 점, ② 강제노동에 관한 국제노동기구(ILO) 제29호 조약에 근거하여 국제법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원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 ③ 구 일본제철과 신일본제철이 법인격이 같다고 볼 수 없다는 점, ④ 원고들의 위자료 청구권이 소멸시효가 완성하였다는 점 등을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다만, 제1심 법원은 구 일본제철이 우리 국내법을 위반하여 불법행위를 했다는 사실은 인정하였다. 원고들이 장차 일본에서 처하게 될 노동의 내용이나 환경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 채 일본정부와 구 일본제철의 조직적인 기망에 의하여 동원되었고, 어린 나이에 가족과 이별하여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였으며, 구체적인 임금도 모른 채 강제로 저금을 당하였고, 상시 감시를 당하여 이탈이 불가능하였다는 등의 사실인정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제1심 법원의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은 다른 법리에 대한 판단과는 달리 그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어 그 후 일어나는 항소심(2심), 상고심(3심), 파기환송 후 항소심(환송 후 2심), 재상고심(환송 후 3심)에서 대체로 그대로 받아들인다. 

제1심 법원은 1965년 체결된‘국교정상화를 위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그 부속협정의 하나로‘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하 청구권협정이라 함)과 관련하여서도 이러한 청구권협정으로 원고들의 위자료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였다. 다만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일본이 자신들의 국내의 조치로 해당 청구권이 일본 내에서는 소멸한 것으로 처리하더라도, 대한민국이 이를 외교적으로 보호할 수단을 상실한 것이라 본 것이다.

제1심 판결에 대하여 패소한 원고들은 항소를 하였고, 이에 대하여 제2심은 제1심 판결을 그대로 인용하고 다소의 추가 판단을 더하면서 원고들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원고들은 다시 대법원에 상고를 하는데, 이 제3심에서 결과는 뒤집히게 된다. 당시 제3심은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되는 소부(小部)에서 이루어지는데, 당시 주심대법관은 김능환 전 대법관이었다.

이미 제1심과 제2심에서 판단하였던 것처럼 구 일본제철의 불법행위는 인정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청구권협정과 관련하여서는 제1심과 제2심에서 더 나아가 원고들의 위자료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외교적 보호권’도 소멸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취한다. 여기에다가 제1심과 제2심을 통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는 이유가 되었던 기판력 저촉, 법인격의 동일성 여부, 소멸시효 등에 대한 제1심과 제2심의 원고들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인 다음, 제2심 판결을 파기하여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하였다. 종전과 전혀 다른 접근의 판결로 평가할 수 있다.

환송된 판결을 받은 서울고등법원은 대법원의 환송취지에 맞추어 원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이는 판결을 하고 그 위자료 금액으로 원고들에게 각 1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하였다.

이러한 서울고등법원의 환송 후 제2심 판결에 대하여 피고(종전 신일본제철 주식회사가 합병 등을 통해 신일철주금 주식회사로 변경됨, 이하 여전히 신일본제철로 표시함)가 재상고를 하였고, 이러한 재상고에 대하여 대법원이 2018년 10월 30일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하면서, 원고들과 신일본제철 사이의 판결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최종적으로 선고되어 확정된 환송 후 제3심은 전원합의체(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재판부)에서 판단되었는데 13명의 대법관 중에서 11명의 다수의견 및 별개의견으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는 입장이었고, 나머지 2명은 반대의견을 견지하였다.

서울중앙법원 제1심(2008년 3월 선고/ 원고들 청구기각/ 원고들 패소) =>
서울고등법원 제2심(2009년 7월 선고/ 원고들 항소 기각/ 원고들 패소) =>
대법원 제3심(2012년 5월 선고/ 제2심 파기 환송/ 원고들 승소) =>
서울고등법원 환송 2심(2013년 7월 선고/ 원고들 청구 인용/ 원고들 승소) =>
대법원 재상고 3심(2018년 10월 선고/ 피고 상고 기각/ 원고들 승소)

◎ 나라면 아마 최초 제1심과 제2심 판결처럼 판단하였을 것이다.

2012년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로 결론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심급제도라는 것이 하급심의 잘못된 판결을 상급심이 바로잡는 제도라고 단순하게만 접근하고 보면, 일응 위 대법원의 판결로 서울중앙법원의 제1심 판결과 서울고등법원의 제2심 판결은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이 이르게 된다. 그러나 위 대법원 판결이 있기 이전에 나로 하여금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 판결하라고 한다면 나의 판단은 제1심이나 제2심의 판단과 다르지 않다. 인정되었던 사실관계나 일부 법리에 대하여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결론에 있어서는 서울중앙법원이나 서울고등법원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다. 아마 법원의 상당수의, 좀 더 솔직해지면 대부분의 판사들이 새로운 대법원 판결이 없는 상태에서 판단하라고 하면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판사들의 판단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판사들이 법리를 몰라서도 아니며, 판사들이 원고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일본을 두둔해서 그러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현존하는 법률, 법학의 일반적인 법리 그리고 대법원과 각급 법원이 쌓아온 선례를 통해 보편적인 법의 잣대로 판단하면 그리 가는 것이 맞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원고들의 청구가 부당해서가 아니다.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들이 흘렀고, 사건의 당사자가 바뀌었으며, 이미 법적인 판단도 있었고, 전국가적 차원에서 벌어진 역사적인 사실에 기초하여 그에 대한 국가 간의 협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모든 것이 법적 판단의 장애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 처음 드는 의문, 소멸시효의 장벽을 어떻게 넘었나.

대법원의 제3심 판결이 있고 나서, 먼저 든 생각은 대법원이 소멸시효의 벽을 어떻게 넘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소멸시효라는 법률용어는 더 이상 법률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법의 문외한이라고 하더라도 법적 안정성을 위하여 인정되는 소멸시효제도가 모든 문명국가에서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안다. 법률문제로 상담을 하는 사람들도 먼저 나서‘이건 시효가 얼마나 됩니까?’, “너무 오래되어서 시효에 걸리겠지요?”라고 묻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니다.

판사들도 실무를 처리함에 있어서 시효에 대하여 민감하다. 시효를 챙기지 못하고 판결을 하였다가 상급심에서 결과가 뒤집히면 판사 스스로 심한 자괴감을 느낀다. 상급심 판사들에 의해 기본적인 것도 챙기지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을까 하는 창피함 때문에, 적어도 시효만큼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또 시효가 인정되면 그것을 이유로 해서, 간단히 원고가 청구하는 것을 배척할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한 사실관계나 법리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 판결을 쓸 때 큰 수고를 덜 수 있으니 시효를 제대로 찾아내는 것이 판사에게는 업무의 피로도를 줄이는 유혹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사건에서 원고들은 1945년 8월 경부터 같은 해 12월 경 사이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그 시점부터 따지면 이 사건 소가 최초로 제기된 2005년까지 보더라도 약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일본과 국교가 회복된 1965년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4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민법 제766조에서 정하는 불법행위의 소멸시효 기간인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의 소멸시효’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법원 실무에서 거의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소멸시효 제도를, 그것도 법정 소멸시효 기간을 한참을 도과한 시점에서 제기한 사건에서 어떻게 극복하였을까 하는 것이 이 사건 판결에 관한 소식을 접하였을 때의 나의 첫 의문이었다. 당연히 신묘한 비책에 대한 호기심이 동하였는데, 정작 판결문을 찾아본 다음 느낀 소회는 역시 특별한 논리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제3심이 소멸시효의 벽을 넘어선 논리는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에 반하여 권리남용이 되므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극히 보충적이고 거의 수용하지 않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이유로 소멸시효를 부정한 것이다.

소멸시효라고 하더라도 일체의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철칙일 수는 없다. 대법원의 과거 판례들도 “소멸시효는 객관적으로 권리가 발생하여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때로부터 진행하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동안은 진행하지 않지만,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경우라 함은 그 권리행사에 법률상의 장애사유가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사실상의 권리의 존재나 권리행사 가능성을 알지 못하였고 알지 못함에 과실이 없다고 하여도 이러한 장애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이러한 법리에 기초해서 제1심 법원은 우리와 일본 사이에 청구권협정이 체결되고 발효되는 1965년 이전까지는 법률상의 장애사유가 있다고 보았고, 이후 이러한 법률상의 장애가 걷어진 시점부터 소멸시효가 기산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엄격히 말하면 대한민국이 해방된 1945년 이후에는 원고들이 소를 제기하는데 장애가 없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해방 이후 건국을 거치고 나서 일본과 수교하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있었다는 사정도 굳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국내에서 소를 제기하는 데에는 어떠한 법률상의 장애가 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웜비어 가족이 미수교국인 북한을 상대로 미국 법원에 제소한 것이 쉬운 예가 될 수 있음). 그러나 미수교를 법률상의 장애사유로 보더라도 1965년 이후에는 그 장애가 해소된다.

제1심 판결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한 것으로 충분히 수긍할 만하고 법률적 장애에 대한 해석이 다소 확대되기는 하였지만 적절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수교여부가 법률적 행위인 것은 의문이 여지가 없으므로 그러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부분에 대하여 ① 개인청구권이 포괄적으로 해결된 것이라는 견해가 있고, ② 일본에서 청구권 협정의 후속 입법인 재산권조치법을 제정하였으며, ③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소를 제기하자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인식이 서서히 부각되고, ④ 2005년 1월에 청구권협정관련 문서가 공개되며, ⑤ 2005년 8월 26일 한일회담문서공개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의 공식적인 견해가 표명되는 등의 일이 있었는데, 그러고 나서야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없어졌다고 판단하였다.

아마도 나열한 사유들이 법률상의 장애사유라고 보기는 어려우니, 사실상의 장애사유라고 정리를 하고, 이러한 사실상의 장애사유를 이유로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하는 권리남용으로 본 것이라 생각된다.

제3심은 소멸시효의 중단에 관하여 법률상의 장애라는 한계를 넘지 못하게 되자 사실상의 장애라는 사정을 최대한 강조하고 여기에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하여 그 장애를 넘은 것으로 지극히 이례적이고, 우리의 사법 판단에서 이러한 예가 몇 번이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아가서 원고들이 소를 제기하자 새로운 인식이 부각되어 장애가 없어졌다는 논리는 도통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러면 원고들이 소를 제기하는 순간에 법률상의 장애가 소멸되는 것으로 된다는 논리인데, 그것은 소멸시효 제도를 형해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 법인격의 법리를 어떻게 넘었나

원고들을 고용한 업체는 구 일본제철이다. 그리고 이 구 일본제철은 전쟁이 끝나자 일본 국내법인 회사경리 응급조치법(1946년 8월 15일 법률 제7호), 기업재건 정비법(1946년 10월 19일 법률 제40호)에 따라 1950년 4월 1일 해산되었고, 구 일본제철의 자산을 출자한 야마타 제철 주식회사, 후지제철 주식회사, 일철기선 주식회사, 하리마내화연와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이중 야마타제철 주식회사가 1970년 3월 31일 일본제철 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였고, 1970년 5월 29일 후지제철 주식회사를 합병하여 신일본제철이 된다.

법학에서 사람은 자연인과 법인으로 나눈다. 자연인은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 당연히 권리주체가 되고, 법인은 법에 의하여 사람으로 간주되어 권리주체가 된다. 이런 법리에 비추어 원고들을 고용했던 구 일본제철은 1950년 4월 1일 해산하면서 소멸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비록 구 일본제철의 자산이 출자된 4개의 회사 중의 하나였다고는 하지만, 일본제철은 새로이 태어난 법인이고, 원고들을 고용하였던 회사가 아니다. 그리고 후지제철과 합병하여 새로이 태어난 신일본제철 역시 원고들을 고용했던 기업체가 아닌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법인의 원리에 따르면 원고들은 소멸한 회사를 상대로는 더  이상 손해배상을 구할 수 없게 되고, 새로이 생긴 신일본제철은 원고들 고용한 당사자가 아니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장애를 넘기 위하여 대법원 판결은 공서양속이라는 규정을 사용한다.

일본법인의 법인격 소멸여부, 채무의 승계여부는 당연히 일본 법률(회사경리조치법, 기업재건정비법 등)을 따라야 하는 것이지만, 그러한 일본 법률을 따를 경우에 나타나는 결과가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에 위반될 경우에는 그 일본 법률의 적용을 배제하고, 법정지인 대한민국 법률을 적용하여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 법은 독일, 프랑스 및 일본 등 대륙법계 국가의 입법전통을 따르고 있다. 특히 일본법의 우리 법에의 영향은 상당한데, 오래전부터 국내 법학자들은 일본 법학자들의 법해석에 의존해서 논리전개를 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었고, 법률실무가들도 우리 대법원의 판례가 충분히 형성되기 전에는 자주 일본의 최고재판소 판례를 참조하였으며, 그러한 사정으로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면서 일본어 공부를 하는 것이 하나의 상식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아직도 법 제정이나 개정 과정에서 일본법을 참조하는 것은 여전하리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일본 법률이 터무니없었으면 우리가 수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이 자국의 의회를 거쳐서 제정한 법률을 우리의 공서양속에 반한다고 판단한 것이 지극히 이례적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의성실의 원칙은 지극히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보충적인 법리로 이용되는데, 공서양속위반 금지의 원칙을 적용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판사가 맘대로 공서양속이라고 판단하여 자신의 가치관을 일반 국민에게 강요하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회분위기가 공포분위기가 되면 최고권력자의 의중을 위반하는 것도 공서양속을 위반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법원칙은 지극히 예외적이고 보충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며, 지극히 조심스럽게 접근하여야 한다. 나는 신의성설의 원칙을 인정하는 경우도 잘 보지 못하였지만, 공서양속을 이유로 판단을 하는 경우는 적어도 내 경험의 범위 안에서는 전혀 본 적이 없다.

법인이 법인격을 함부로 남용하여 오로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로만 새로운 법인을 만들거나 허상의 법인을 만들 경우에 그 법인격을 남용하였다고 하여 그 법인격을 부인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도 신의성실의 원칙의 다른 발현형태라고 할 수 있어서, 이를 인정한 선례를 찾아보기가 그리 쉽지 않다.

◎ 일본 법원에서 이루어진 판결의 기판력이라는 장애를 어떻게 넘었나.

판결이 선고되고 확정되면 기판력이라는 것이 생긴다. 그래서 동일한 판결에 대하여 다시 재판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분쟁해결을 위해 존재하는 재판을 무한 반복하여 남용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유지하자는 취지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판력과 관련하여 우리 민사소송법은 일정한 요건이 갖추어 지면 다른 나라 법원이 한 판결에 대해서도 기판력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외국 법원의 판결에 대하여 그 기판력을 무시하고 한국법원이 다시 판결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도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일본 법원의 판결이 확정되어 기판력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대한민국 법원이 원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장애도 넘어야만 하였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서도 우리 대법원은 일본(오사카 고등재판소)의 판결이 공서양속을 위반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제217조(외국재판의 승인) ①외국법원의 확정판결 또는 이와 동일한 효력이 인정되는 재판(이하 "확정재판등"이라 한다)은 다음 각호의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승인된다.  <개정 2014. 5. 20.>
1. 대한민국의 법령 또는 조약에 따른 국제재판관할의 원칙상 그 외국법원의 국제재판관할권이 인정될 것
2. 패소한 피고가 소장 또는 이에 준하는 서면 및 기일통지서나 명령을 적법한 방식에 따라 방어에 필요한 시간여유를 두고 송달받았거나(공시송달이나 이와 비슷한 송달에 의한 경우를 제외한다) 송달받지 아니하였더라도 소송에 응하였을 것
3. 그 확정재판 등의 내용 및 소송절차에 비추어 그 확정재판 등의 승인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아니할 것
4. 상호보증이 있거나 대한민국과 그 외국법원이 속하는 국가에 있어 확정재판등의 승인요건이 현저히 균형을 상실하지 아니하고 중요한 점에서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을 것
 우리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1항 제3호에서 외국 법원의 판결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아니하여야 한다.’는 점을 외국판결의 승인요건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역시 원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이기 위한 어려운 법적 장애를 공서양속으로 극복한 것인데, 문제는 그 일본 판결이 대한민국의 어떠한 공서양속을 위반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이와 대하여 대법원은 현행 헌법 전문 속의“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 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 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표현 등을 인용한다. 모든 논거를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이 부분만 보더라도 예상 밖의 논리전개라는 생각이 든다.

헌법이라는 것이 기본적인 국가기구 및 국가질서에 대하여 규정하고, 또 국가와 국민간의 관계 및 국민의 기본권 보호 등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어, 헌법의 규정이 사인 간의 분쟁에는 개입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헌법을 사적 분쟁의 공서양속에 관한 판단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이 특이할 뿐만 아니라, 그 근원을 헌법의 개별규정이 아닌 헌법 전문에서 찾았다는 점이 더 이례적이다.

◎ 결국 신의성실과 공서양속으로 중요한 장애를 다 넘은 것인가.

앞서도 지적하였듯이 원고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소멸시효, 법인격의 소멸, 기판력의 승인이라는 엄청난 장애를 넘어야 했는데, 이러한 장애를 대법원은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공서양속위반 금지의 원칙과 같은 보충적인 원칙들로 쉽게 넘어 버린 것이다.

신의성실로 소멸시효를 부정하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의문을 가지겠지만 법률가라면 신의성실의 원칙이 가지는 실무에서의 위상을 안다. 마땅히 내세울 만한 법률규정이나 법리 없이 신의성실의 원칙만 내세우면서 변론을 전개하면 법률가들은 감지를 한다. 판사는 마땅히 내세울 만한 법리가 없지 않나 생각할 여지가 많고, 상대편 변호사도 맘대로 공세를 취해도 되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민법 제2조에서는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한남용 금지를, 민법 제103조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위반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들 규정들이 지극히 예외적이고 보충적인 규정으로 그리 쉽게 적용될 수 있는 법조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연하면 이들 조항을 주된 도구로 이용해서 판결을 하게 된다면 굳이 다른 모든 법률조항은 없어져도 된다. 판사가 사안을 바라보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신의성실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거기에 배치되는 것을 권한남용이라고 이해하면서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굳이 다른 법률 조항은 없어져도 되는 것이다.

이전에 동료가 “법률과 법리만 없으면 재판 힘 안 들이고 편하게 할 수 있을 텐데, 법률과 법리 때문이 그게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상충하고 뒤섞인 복잡한 법리 앞에서 해결책이 안보이니 답답한 마음에서 한 농담이다. 판사를 제약하고 판사를 법적 영역 속에 묶어두는 것이 법규정과 법이론이다. 그를 통해 국민들이 판사들에 의한 자의적인 전횡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법규정과 법이론을 무력화시키는 손쉬운 방법이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공서양속위반 금지의 원칙과 같이 추상적이고 애매하며 보충적인 원칙들의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이것을 전면에 내세우면 판사는 무서울 것이 없다. 그래서 판사들끼리 재판과 관련하여 논의를 할 경우에도 함부로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그 파생원칙, 공서양속위반 금지의 원칙으로 쉽게 피해 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그런데 2012년의 대법원 판결은 원고들의 청구가 넘어야 할 주요 장애요소에 대하여 신의성실, 권리남용, 반사회질서 등의 법리를 통해 제거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러한 법리의 남용은 그 하나의 사건에서는 법관이 원하는 대로 판결을 할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다른 민법의 일반조항들을 무력화시킬 우려가 있다. 민법의 법조항과 법리들을 이러한 보충적인 법리로 허물어버리면 앞으로 많은 소송당사자들이 법원을 찾아와 자신들에게도 이러한 법 적용을 하는 특혜를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법률은 특정한 한 사건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또 대한민국의 과거뿐만 아니라 앞으로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이 땅에서 살아가게 될 모든 사람들을 규율하는 법규범이다. 그리고 이러한 법률은 이미 다른 선진 문명국가에서 검증을 거쳐 그 타당성이 확인된 법규범이다. 비록 안타깝고 판결로 도와주고 싶어도 함부로 그러지 못하는 것이 이러한 사정 때문이다. 판사는 일을 하면서 안타깝고 답답하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경우를 상시로 경험한다. 그런 직업이다. 그렇지만 법이 있고, 또 그것은 자의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되는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때로는 야속한 소리를 듣고 때로는 원망도 들으면서 법을 적용시켜 가는 것이다. 어려운 한 사람의 말을 듣자고 들고 그 사람 편을 들자면, 또 다른 상대가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분쟁이다.

◎ 청구권 협정 제2조가 달리 해석될 수 있나.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되었는가 여부가 원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각 심급의 판단도 다양하게 나뉜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조항인 청구권 협정 제2조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3. 2.의 규정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체약국의 관할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와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청구권협정의 해석과 관련하여 이 조항을 먼저 적는 이유는 이 문구를 법률가가 아닌 일반 평균인의 입장에서 읽더라도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조약의 해석은 1969년 체결된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Vienna Convention on the Law of Treaties, 이하 ’비엔나협약‘이라 한다)’을 기준으로 한다. 비엔나협약 제31조(해석의 일반규칙)에 의하면, 조약은 전문 및 부속서를 포함한 조약문의 문맥 및 조약의 대상과 목적에 비추어 그 조약의 문언에 부여되는 통상적 의미에 따라 성실하게 해석하여야 한다.

환송 후 제3심 판결에서 반대의견을 밝힌 두 분의 대법관은 이 원칙에 따라 청구권협정을 해석할 경우에 원고들이 국내에서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 판결의 복잡한 논리구조를 다 설명하기는 다소 물리적인 제약이 있으므로 쉬운 접근을 시도하여 보고자 하는데, 이를 위해 “조약의 문언에 부여되는 통상적 의미”라는 표현에 주의를 모아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샌프란시스코 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라는 표현을 살펴보자. 이 표현을 일반인의 평균적인 상식에 비추어 보면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오로지 샌프란시스코 협정 제4조 (a)에 규정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포함하여 더 큰 범위의 청구권을 포함하는 것인가? 국문에 대한 기본적인 인지수준만 가져도 “포함하여”라는 표현의 국어적 의미를 혼동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환송 후 제3심은 청구권 협정과 관련하여 “청구권 협정은 일본의 불법적인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인다.”라고 판시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일본과 청구권에 관하여 협정을 하는 과정에서 요구한 8개 항목(이하 8개 항목이라 한다)에는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라는 문구를 넣어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발생한 손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였고, 청구권 협정은 이 8개 항목을 포함하여 양국 간에 타결된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위와 같은 8개 항목의 내용 중에 일본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것은 없었다고 판단하고, 이러한 사정으로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청구권 협정은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제외한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한 것에 지나지 않는데, 이 범위는 샌프란시스코 협정 제4조 (a)의 범위와 같다고 본 것이다.

환송 후 제3심에 따르면 ‘포함하여’라는 표현이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어색한 결과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어색함은 환송 후 제3심 판결의 다음의 문장에서 드러난다.

“청구권 협정 제2조 1.에서는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라고 하여 위 제4조(a)에 규정된 것 이외의 청구권도 청구권 협정의 적용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위와 같이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은 이상, 위 제4조(a)의 범주를 벗어나는 청구권, 즉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직결되는 청구권까지도 위 대상에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분명히 청구권 협정은 샌프란시스코 협정 제4조 (a)의 범위를 포함한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정작 대법원은 샌프란시스코 협정 제4조 (a)의 범위에 한정하는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고, 포함하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청구권협정은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어서,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여전히 남아있고 개인이 행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청구권협정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제시한 요구서인 8개 항목에는 피징용한국인에 대한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과 같이 일본의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요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8개 항목으로 인해 청구권협정이 불법성을 전제로 한 청구권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되게 되면 원고들의 청구가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자 환송 후 제3심은 위 8개 항목 안에 불법성을 전제로 한 것이 없다는 논리를 전개하게 된다.

즉 8개 항목에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요구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청구권협정은 그러한 불법성과는 무관하다는 것, 샌프란시스코 협정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위와 같은 불법성과 무관하다는 것, 그리고 청구권협정에 ‘샌프란시스코 협정 제4조 (a)를 포함하여’라는 표현이 있어 오해의 여지는 있으나 8개 항목이나 청구권협정에 모두 식민지배의 불법성이 언급되어 있지 않으므로, 그러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논리전개이다.
 
8개 항목에 피징용한국인의 청구권이라는 표현이 분명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반영한 것이 청구권협정이다. ‘문언에 부여되는 통상적 의미’를 추구한다면 이미 개인의 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을 통해 해결된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청구권협정에서 샌프란시스코 협상 제4조 (a)를 ‘포함하여’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청구권 협정은 샌프란시스코 협상 제4조 (a)의 범위에 한정하며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유보한다고 하였을 것이다.

결국 환송 후 제3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8개 항목에서 일본은 불법을 저질렀다고 명시적으로 표시하라고 요구하고, 이에 대하여 일본은 청구권협정에서 불법이라는 것을 명시적인 문장으로 표시하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일본은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 주장을 인정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 형식으로 양국의 조약체결이 가능하였겠는가. 외교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조약의 체결에 외교적 겸양은 반영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과하게 상상하면 일본이 암묵적이고 간접적이지 않은, 오로지 명시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으로만 불법을 자인하고 그것을 전제로 조약을 체결하였어야 하고, 그러한 조약이 아니라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서로 비수교국으로 지냈어야 한다는 논리가 될 수도 있다.

환송 후 제3심 다수의견대로 청구권 협정이 정치적 합의에 지나지 않는다면 일본이 현재의 기준으로도 적지 않는 금액이 3억 달러를 무상지원하고, 2억 달러를 유상지원하며, 한국 내에 있던 약 22억 달러어치의 일본인 재산을 포기 하겠는가에 대하여 고민하여 보면, 별로 그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재상고심 반대의견은 위와 같은 다수의견의 판단에 반대하면서 ‘조약의 문언에 부여되는 통상적 의미’에 따라 성실하게 해석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청구권협정 제2조를 그 문언에 부여되는 통상적 의미에 따라 해석하면, 제2조 1.에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은 대한민국 및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 및 일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과 일본 및 일본 국민의 대한민국 및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에 관한 문제임이 분명하고, 제2조 3.에서 모든 청구권에 관하여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이상,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라는 문언의 의미는 양 체약국은 물론 그 국민도 더 이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문장이나 문구의 그 의미를 흔들어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얼핏 대단한 논리전개가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실상은 궁핍한 논리의 자백인 경우가 많이 있다. 최초 제3심의 주심대법관이 판결문을 작성할 당시 건국하는 심정이었다는 것은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판결을 읽어보면 그 들인 노고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징용자들에 대한 연민 및 안타까움을 표현하여 판결에 반영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충정도 읽힌다. 그러나 건국하는 심정이 들 정도의 논리전개를 할 필요가 있었다면 그 논리전개가 자연스럽거나 합리적이지 않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 조약도 국내법인데 비통상적인 법률해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

헌법에 의하면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조약은 외국과의 약속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국내 일반 국민들에게는 적용될 여지도 없고, 따라서 필요하다면 우리나라나 우리 국민에게 얼마든지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체결·공포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이 이해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잘못된 해석은 국내법 전체에서 잘못된 해석을 용인할 위험성을 가지게 되고, 국내법과 다르게 해석하다가 국내법과 조약이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조약도 국회의 비준을 받기 때문에 국내법과 그 정당성의 정도가 동일하고 또 조약을 국내법으로 입법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그 둘의 충돌은 우리 법률체제 전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약은 국내 법률과 똑같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환송 후 제3심 반대의견은 청구권 협정과 관련하여 “일본 정부가 청구권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던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청구권협정을 체결한 것이 과연 옳았는지 등을 포함하여 청구권협정의 역사적 평가에 관하여 아직도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청구권협정이 헌법이나 국제법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볼 것이 아니라면 그 내용이 좋든 싫든 그 문언과 내용에 따라 지켜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조약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있다.

청구권협정의 옳은 것이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역사학계, 정치권, 국민 공론의 장 등에서는 논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사법부만큼은 그 정치적 의미에 천착하려 하기보다, 그 해석이 법의 일반원리에 위반되지 않게 하려는데 노력을 집중하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백히 대한민국 법률의 한 부분인 조약을 문언 자체의 통상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이례적으로 해석하여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더 나아가 민법의 보충적 법원칙인 신의성실이나 권한남용, 공서양속 등을 통하여 법의 일반원칙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는 것은 대법원 판결을 바라보는 심정이다.

그런 저런 방법을 통해 법의 일반 원칙을 비켜서라도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 국민 상당수의 감정이 위무되었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사법판결을 무기로 하면, 비록 가능성은 낮지만 일본의 사법부도 같은 방법을 쓸 수도 있는 것이다. 일본 패망 이후에 자국으로 돌아간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남겨놓은 그들의 재산에 대한 권리주장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군정이 몰수 했으니, 오래전 일이니 그리고 우리가 적산으로 처리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안심할 수 있겠나. 소멸시효는 신의칙으로 배척하고, 미군정의 몰수나 우리나라의 적산처리는 그들의 공서양속에 반한다고 하면 우리는 또 새로운 법 논리를 고민해보아야 한다. 판결을 내수용으로 쓸 수는 없는 것이다.

◎ 국가의 일괄처리협정을 통한 개인 청구권 제한의 합법성

개인의 청구권을 국가가 조약을 통해 일괄해서 처리해서 개인의 청구권이 막혔다고 잘못되었다고 하기도 어렵다. 이와 관련하여 환송 후 상고심의 반대의견은 충분한 설시를 하고 있고, 그 취지에 공감하므로 이를 그대로 인용한다. 

“국제법상 전후 배상문제 등과 관련하여 주권국가가 외국과 교섭을 하여 자국국민의 재산이나 이익에 관한 사항을 국가 간 조약을 통하여 일괄적으로 해결하는 이른바 ‘일괄처리협정(lump sum agreements)’은 국제분쟁의 해결․예방을 위한 방식의 하나로서, 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국제관습법상 일반적으로 인정되던 조약 형식이다[국제사법재판소(ICJ)가 2012. 2. 3. 선고한 독일 대 이탈리아 주권면제 사건(Jurisdictional Immunities of the State, Germany v. Italy : Greece intervening), 이른바 ‘페리니(Ferrini) 사건’ 판결 참조]. 청구권협정에 관하여도 대한민국은 일본으로부터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포함한 대일청구요강 8개 항목에 관하여 일괄보상을 받고, 청구권자금을 피해자 개인에게 보상의 방법으로 직접 분배하거나 또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한 기반시설 재건 등에 사용함으로써 이른바 ‘간접적으로’ 보상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청구권협정은 대한민국 및 그 국민의 청구권 등에 대한 보상을 일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조약으로서 청구권협정 당시 국제적으로 통용되던 일괄처리협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판결이 활용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징용된 사람들에 대한 보상의 필요성에 대하여서는 비록 이견을 있을 수 있으나, 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렇게 공감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담아 판결하고 싶은 충동이 드는 법관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못하는 것은 법률과 일반 법원칙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상고심 판결 이후에는 대법원의 판결의 취지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지만 그것은 내가 그 대법원의 판결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하급심이 상급심에 기속되어야 하는 심급제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판결을 이용해 판사가 의도하는 바, 또는 판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현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판결이 법관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것이다.

판결을 통해서 이상을 구현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평생 판결에 묻혀 지내는 판사들의 좁은 시야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판결이 사회의 분쟁을 해결하는 중요한 수단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세상의 분쟁은 당사자들의 협상, 정치적 타협, 국회의 입법, 정부의 정책, 외교적 협상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해결된다. 판결을 통해 바람직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생각되더라도, 그것이 법의 일반원칙에 따라서 불가능한 것이면 법관은 그냥 그 일반원칙에 따라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법이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은 사회 일반의 다른 분쟁해결 방법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세상 대부분은 법관 아닌 사람들에 의하여 움직여 가고 그들의 지혜가 결코 법관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대법원은 2012년 상고심을 통해서 보충적인 법원리 등으로 원칙을 무너뜨리는 해석을 하였다는 생각이다. 원고들의 억울한 사정이 풀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의 기본원리가 상당부분 흔들리게 되었다. 그 상고심 판결이 결국 일반 국민 모두에게 공통되게 적용되고, 향후 벌어질지 모르는 또 다른 역사적 사건에 대한 분쟁에 기준이 된다는 것에 주의하며 더 엄숙하고 신중하게 하였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고통을 받았던 많은 국민들 중에서 원고들과 같은 입장이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미 보상을 받았던 사람도 그 형평성을 문제 삼아 다시 법적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수십만이 될 수도 있다. 6.25.사변으로 고통 받았던 사람들도 기존 보상체계를 문제 삼으면 정서적 형평성을 고려하여 달리 보아야 할 수도 있다.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의 문제도 남아있다. 향후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에 남북한 국민 사이에 분단으로 왜곡되었던 재산권 분쟁을 일으킬 경우에 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그 복잡한 내용들은 결국 법률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데 그 법률을 민법의 보충원칙 등으로 흔들어 버렸다는 생각이다.

일각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 중에는 대법원이 외교부 등 행정부와 의견조율이 없이 판결을 하여 국제법에서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한목소리 원칙(One voice doctrine)’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한 비판에 반대하지 않지만, 법의 일반원칙만 지켰어도 그러한 원칙을 차용함이 없이 정상적인 판단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대법원의 2012년 최초 제3심 판결로 어찌 보면 법원은 감당하기 힘든 실수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제3심 판결이 환송 후 제2심의 판결을 거쳐 다시 대법원으로 올라왔을 때에는 대법원이 종전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수용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인식했을 수가 있다. 그래서 판결 이외의 정책적 외교적 해법을 기대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 시간이 흘러갔고 결국 대법원은 정권과 재판거래를 했다는 오명을 쓰고 당시의 사법부 수장이 구금되는 참담한 지경으로까지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유사한 미국의 판례 하나를 소개하고 글을 마치려 한다. 1941년 12월 경에 남태평양전쟁에서 포로가 된 당시 20세의 James King이라는 미군병사가 종전까지 낮에는 철강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고통 받으면서 지내다가 종전과 함께 석방되었는데, 그를 포함한 피해자들이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일본 회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서 미국 연방법원은 판결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일본과의 평화협정이 원고들이 주장하는 주장을 막고 있으나, 그를 통해 원고가 받아야 할 충분한 보상은 앞으로 올 평화와 교환되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원고들이 받은 고통에 대한 보상이 부정되었고, 전쟁포로였던 사람들과 헤아릴 수 없는 전쟁생존자들도 그러하지만, 그들 자신과 그들의 후손들이 자유롭고 더 평화로운 세계에서 살아가는 무한한 포상은 그러한 빚을 갚을 만한 것이다[In re World War II Era Japanese Forced Labor Litigation
114 F. Supp. 2d 939 (N.D. Cal. 2000)].” 원고들의 희생에 무한한 감사를 표하면서도, 그들의 청구는 기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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