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일본인도 군국주의서 해방" 광복절 경축사서 '新 대일 독트린' 천명한 文
[WIKI 프리즘] "일본인도 군국주의서 해방" 광복절 경축사서 '新 대일 독트린' 천명한 文
  • 윤여진 기자
  • 승인 2019.08.15 14:30
  • 수정 2019.08.1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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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시인 심훈 '그날이 오면' 인용해 광복절 74주년 축하 기념
한국인의 광복은 침략전쟁에서 벗어난 일본인의 해방으로 규정
과거사와 안보·경제협력 구분하는 '투 트랙' 대일 방침 유지
화이트리스트 제외엔 "성장하는 나라 사다리 걷어차지 말라"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 계기로 한일 관계 회복 시점도 제시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던 중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를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사진=연합뉴스]scoop@yna.co.kr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던 중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를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이 일본으로부터 국권을 회복한 지 74년이 되는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독립기념관에서 발표한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 이란 단어를 12차례 언급했다. 9차례 지칭한 북한보다 비중을 둔 것이어서 지난해 11월 강제동원 불법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 대응해 이번 달 수출 규제를 시행한 일본에 "대화와 협력의 길"을 제시한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하얀 도포 차림으로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열린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을 찾았다. 15년 만에 이곳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문 대통령은 제목 제외 7706자 분량의 경축사를 낭독했다. 도입부에서 시인 심훈이 1919년 기미독립선언의 11주년을 기념해 쓴 '그 날의 오면'(1930년)을 인용했다.

문 대통령은 저항 시인의 시에서 미래의 독립과 해방의 날을 표현한 "삼각산(옛 북한산 이름)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 대목을 빌렸다. 1936년 작고해 삼각산에서 식민지배의 아픔을 속풀이 하지 못한 심훈을 대신해 문 대통령이 '광복'(光復·빛을 되찾음)을 노래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인 권기옥(1901∼1988) 지사가 저항시인 심훈(1901∼1936) 선생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장(輓章). [사진=연합뉴스, 당진시 제공]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인 권기옥(1901∼1988) 지사가 저항시인 심훈(1901∼1936) 선생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장(輓章). [사진=연합뉴스, 충남 당진시 제공]

이날 경축사에서 최근의 대일 관계에 비춰 의미 있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은 한국인의 광복을 일본인과 동아시아의 광복으로도 해석한 부분이다. 문 대통령은 "광복은 우리에게만 기쁜 날이 아니었다"라며 1945년 8월 15일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까지 60여 년간의 기나긴 전쟁이 끝난 날"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일본을 상대로는 "일본 국민들 역시 군국주의의 억압에서 벗어나 침략전쟁에서 해방됐다"라고 해 군국주의 일본제국과 일본인을 분리했다. 2015년 안보법제를 제·개정해 집단 자위권 행사를 통한 정상국가를 모색하는 아베 신조 내각에 경고를 보낸 것이다. 

이같은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신군국주의를 꿈꾸는 아베 총리에 대항해 평화헌법을 지키고자 하는 다수의 일본 국민과 연대하겠다는 '대일 평화 독트린'(doctrine·국제 사회에서 한 나라가 공식 표방하는 정책과 원칙)으로도 볼 수 있다. 

지난달 21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상원)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일본 공영방송 NHK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일본인 비율은 29%에 불과했다. 아베 내각을 지지하는 49%에서 한창 모자란 것이다. 실제 아베 내각은 개헌 발의석인 164석에 4석이 부족한 160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15일 오전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15일 오전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한국이 역사 문제와 안보·경제협력을 구분해온 이제까지의 대일 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는 일본 정부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방침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일본과 안보·경제협력을 지속해 왔다"며 "일본과 함께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하고자 했고, 역사를 거울삼아 굳건히 손잡자는 입장을 견지해왔다"며 그간의 한일의 공동노력을 강조했다. 

일제강점기 피해자 고통을 치유하려고 시도한 한일 양국의 사례가 이번 경축사에서 특정되지는 않았다. 다만 한일 양국이 정부 차원에서 과거사 인식에 합의를 본 사례는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를 제외하면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 유일하다. 오부치 당시 총리는 이 공동선언에서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고 해 일제의 식민지배를 공식 사죄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같은 맥락에서 과거사 문제를 결코 일본에 양보할 수 없다는 원칙론을 내세웠다. 문 대통령은 "과거를 성찰하는 것은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는 것"이라 했다. 이어 "일본이 이웃나라에게 불행을 주었던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끌어가길 우리는 바란다"고 해 과거사 청산이 한일 양국의 공동번영과 같은 결임을 선언했다. 

문 대통령이 한일 공동번영의 길은 '국제분업체계'에 있다며 최근의 일본 정부가 강행한 수출규제 조치를 의식한 발언도 이어나갔다. 문 대통령은 "일본 경제도 자유무역의 질서 속에서 분업을 이루며 발전해왔다"며 "어느 나라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평화로운 자유무역 질서가 깨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방국을 상대로는 다소 농도가 짙은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는 표현을 쓰기까지 했다. 일본을 한국을 '걷어차는 국가'로 못 박은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일 한국을 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안이 상정된 각의에 입장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일 한국을 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안이 상정된 각의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베 내각은 지난 2일(일본 시각) 각의(국무회의)에서 오는 28일부터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국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이 일본에서 들여오는 전략물자를 다른 국가로 불법 반출한다는 명분으로 특정 품목을 수출규제한 것에 이은 두 번째 조치다. 일본 정부는 이 국가를 언론에 흘리는 방식으로 북한을 지목했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대진 못했다. 

일본 정부는 앞서 지난 1일 반도체 생산 단계에서 자국과 한국이 각각 우위를 점하는소재와 완성품 분업 체계를 외면한 결정을 전격 단행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에 필요한 핵심물질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감광액)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일본 기업을 규제하는 방식이다. 일본이 분업 체계에서 점하는 우위를 무기화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한일관계 회복의 계기로 내년에 개최되는 도쿄 하계올림픽을 골랐다. 일본에게 시간과 명분을 준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내년에는 도쿄 하계올림픽, 2022년에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린다"라며 "올림픽 사상 최초로 맞는 동아시아 릴레이 올림픽"이라고 소개했다. 이를 두고 "동아시아가 우호와 협력의 기틀을 굳게 다지고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갈 절호의 기회"라고 덧붙였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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