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노예 제국을 건설하려했던 남북전쟁 당시 미국 황금 기사단
[WIKI 프리즘] 노예 제국을 건설하려했던 남북전쟁 당시 미국 황금 기사단
  • 최석진 기자
  • 기사승인 2019-08-19 07:50:59
  • 최종수정 2019.08.19 0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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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는 부족하다!’

알렉산더 대왕의 묘비명에 적혀 있는 문구이다. 그런데 19세기 중반 미국에서도 일단의 남부 사람들이 비슷한 목표 하에 ‘황금 기사단(The Knights Of The Golden Circle)’이라는 비밀 조직을 결성한 적이 있었다.

황금기사단은 미국 남부에서 남아메리카에 이르는 2,400평방 마일의 영토에 식민지 연합을 결성하고, 노예 제도를 지속시켜려고 획책했다.

노예 제도를 옹호하고 확대하려 했던 이 비밀 조직은 아마도 미국 역사상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에 속할 것이다. 이 기사단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이 많이 부족하고 역사적 흔적이 베일에 가려져 있기는 해도 이들이 추구했던 궁극적 목표만은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노예들의 피와 땀으로 담배, 면화, 설탕을 생산하는 제국을 카리브 해에서부터 태평양까지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 설립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노예 대제국을 꿈꿨던 황금기사단.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노예 대제국을 꿈꿨던 황금기사단.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황금 기사단’이 탄생하게 된 배경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 미국의 남부와 북부는 노예제도에 대해 완전히 다른 입장을 지니고 있었다.

북부 지역이 노예제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만은 않았지만 그들의 경제 제도는 흑인 노예들의 강제 노동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았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북부 주들이 노예 제도를 점차적으로 폐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남부에서의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노예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 착취가 남부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실제로 1860년에 실시된 인구조사에 따르면 남부 지역에서는 약 300만~400만의 노예들이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노예 제도를 두고 북부와 남부의 갈등은 자연스럽게 중대 국면을 맞게 된다. 급기야 1830년대에는 남부의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들이 노예 제도의 증진을 주장하며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긴장 관계는 미국에 새로운 영토들이 추가되는 19세기 전반부에 걸쳐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이른바 ‘1850년의 타협(Compromise of 1850)’ 안이 나오기는 했지만 오히려 정치적 갈등을 더욱 부채질하기만 했다. 노예 제도의 찬반양론을 절충하겠다는 이 타협안으로 인해 되레 긴장은 더욱 깊어만 갔다. 캘리포니아 주는 자유주가 되었으며, 유타와 뉴멕시코 주는 주민들의 여론(국민 주권)에 의해 결정하기로 했고, 워싱턴 D.C.에서의 노예 거래는 금지되었다.

이에 남부의 노예제 찬성론자들은 ‘도망 노예법(Fugitive Slave Act)’으로 맞섰다. 이 법에 따르면 노예 주인들은 탈출한 노예들을 다시 체포하거나 돌려받을 수 있었다.

1857년의 ‘드레드 스콧(Dred Scott)’ 사건이 발단이 되어 미국의 여러 주들에서 노예제 폐지 운동이 힘을 얻게 되자 많은 남부의 백인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부 백인들의 상당수는 노예제를 포기할 의사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노예제도를 더욱 강화해서 아예 노예들이 다시는 탈출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꿈을 꾸었다.

‘황금 기사단’ 연맹

조지 W.L. 빅클리는 이와 같은 노예제도 찬성론자 중 하나였다. 그는 말로만 노예제를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직접 나설 정도로 강성 인물이었다.

버지니아 주에서 의사, 모험가, 그리고 출판 일을 하던 빅클리는 미국 노예제도의 신새벽을 열고자 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이 필요했다.

‘텍사스 주 역사 연맹(Texas State Historical Association)’에 따르면 ‘황금 기사단’은 1854년 7월 4일 켄터키 주의 렉싱턴에서 시의 적절하게 출범하였다. 조지 빅클리는 뜻을 같이하는 5명의 회원을 모집했다. 그러나 이들 회원들의 이름은 후세까지 전해지지는 않고 있다.

빅클리가 결성한 이 비밀 조직의 포부는 원대하면서도 아주 단순했다. 노예 제도로 운영되는 ‘골든 써클(Golden Circle)’이라는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 제국은 직경 2,400마일의 면적을 지녔으며, 수도는 쿠바의 아바나에 두기로 했다. 또, 이 제국의 영향력은 북아메리카의 남부 지역을 넘어 중앙아메리카의 멕시코 영토를 침범하기까지 했다. 이 계획대로 된다면 카리브 해의 대부분이 포함되고 남아메리카의 북부까지 이르게 된다.

멕시코를 탈취, 노예제로 운영되는 여러 주로 나누어 임명된 국회의원들이 활동하게 된다. 미국 남부의 상류층에 의해 운영되는 이 제국은 전 세계적으로 담배와 설탕, 그리고 면화의 독점권을 가지게 된다. ‘황금 기사단’은 미국의 착취 제도 하에서는 태양이 절대 지는 법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이들은 노예제도를 기반으로 거대한 왕국을 성공적으로 설립하면 노예제도가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믿었다.

이 기사단의 임무는 대부분 또 다른 오래된 비밀 결사였던 ‘론 스타 기사단(Order of the Lone Star)’의 그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론 스타 기사단’의 목표는 미국을 위해 비공식 군대를 양성한 후 남아메카의 국가들을 침공해서 강제로 점령하는 데 있었다.

‘황금 기사단’ 내에는 세 가지 다른 형태의 회원 자격이 주어졌다. 군대와 재정 담당, 그리고 행정 업무, 이렇게 세 까지 역할이 나누어져 있었다. 이 중 행정 업무는 지도자급의 통치권에 속했으며, 군대와 재정 담당은 일반 회원들이 맡았다.

그러나 ‘황금 기사단’에게는 불행하게도, 노예제도를 둘러싼 긴장 관계가 곪아터져서 1861년 남부연합과 북부연맹이 남북전쟁을 벌이게 되자 그들의 목표는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

황금기사단 자격 리스트
황금기사단 자격 리스트

눈에 띄는 회원들

‘황금 기사단’의 회원들에는 텍사스 제3 기병대의 엘가나 그리어 대령이나 나중에 텍사스의 주지사가 되는 L. 설리반 로스 같은 유명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 나중에 그의 이름을 따서 휴스턴이라는 도시가 생길 정도로 유명했던 샘 휴스턴도 이 기사단의 초기 멤버였을 것으로 추정이 되지만, 이 기사단이 북부연맹으로 기울어지자 환멸을 느끼고 탈퇴한 것으로 보인다.

혹자들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암살범이었던 존 윌크스 부스와 악명 높았던 범죄자 제시 제임스도 이 기사단 소속이 아니었나 의심하기도 한다.

1858년이 되면 ‘황금 기사단’은 정관을 만들고, 의식을 치르고, 규칙도 만들게 되며, ‘성(castles)’이라고 불리는 하부 조직까지 갖추게 된다. 그리고 1860년대에 이르자 빅클리는 기사단의 회원수가 10만 명이 넘어섰다고 주장했지만, 이 숫자는 확실히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사단원들의 숫자가 1860년에는 5만 명에는 근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캘리포니아 주의 회원수가 16,000명, 그리고 텍사스와 켄터키 주의 회원이 합해서 8,000명, 또 앨라배마, 아칸소, 조지아, 메릴랜드, 미주리, 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 버지니아 주에 성(castles)이 결성된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여기에다 ‘론 스타 기사단’이 해체되자 ‘황금 기사단’에 새로 가입한 약 15,000명을 감안하면 이는 터무니없는 숫자는 아니다.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노리다

‘황금 기사단’의 본질적 목표는 노예 제국이기는 했어도 당장의 관심사는 멕시코에 있었다. 이 비밀 단체는 멕시코 반도 전체를 미국에 합병해서, 미국에서 건너간 이민자들 각각에게 640에이커의 경작지를 분배하고자 했다. 물론 노예제도를 바탕으로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 이민자들을 보호하고 멕시코와의 협정 준수를 지키기 위해 16,000명의 군인들이 파견되어 미국의 지배를 공고히 하도록 되어있었다.

멕시코에는 50개의 주를 건설한 후 본국에 50명의 상원의원과 60명이 넘는 하원의원들이 진출하도록 해서 남부의 이익과 권리를 위해 활동하도록 했다.

사실 그 정도의 국회의원 숫자라면 북부 주들의 노예제 폐지 운동을 무산시키기에 충분했다.

무산된 멕시코 침공 계획

‘황금 기사단’은 미국 노예제도의 결정적 종말을 가져온 남북전쟁 이전에 멕시코의 침공과 합병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기사단의 이러한 야욕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빅클리는 멕시코 침공 계획을 단 한 차례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기금 모금을 위해 자리를 비울 때면 기사단은 무주공산이 돼버렸다. 1860년의 뉴올리언스가 그랬다. 약 1000명 남짓의 뉴올리언스 기사단들은 빅클리가 자리를 비우자 큰 혼란에 빠졌다.

뉴올리언스의 기사단들이 해체되어버리자 뒤이어 1860년 3월 멕시코 국경에 모인 또 다른 비상 기사단들은 혼란에 빠졌다. 침공 임무를 맡은 기사단의 병력들이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가르는 리오그란데 강을 넘어 진격해 들어가기로 되어있었던 것이다. 이 계획은 처음에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상황을 한 신문 기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 일대가 이상한 조직에서 파견한 병력들로 채워졌으며, 낮에 새로 도착한 인력들로 인해 매일 밤 야영지의 불꽃들이 늘어갔다. …… 300명이 이 일대에 진을 치고 있거나 골리아드로 진격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 오늘은 볼티모어에서 필립 중위의 인솔 하에 30명이 새로 도착했으며, 토요일에는 또 다른 병력들이 도착했었다.”

그러나 이 폭도(?)들의 인근에 주둔 중이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미군 하나는 개인적 서신을 통해, 이 사람들이 모이기는 했는데 의도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으며, 질서가 없이 산만하다는 소식을 알렸다.

“3~4백 명 정도의 사람들이 캠프를 치고 있는데 ‘황금 기사단’이라고도 하고 멕시코를 쳐들어가는 용병들이라고도 한다. 나는 이 사람들의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들이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우리가 곧 이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받을 것으로 예측한다.”

멕시코 국경 지대에 황금 기사단원 수백 명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침공은 일어나지 않았다. 자금 부족, 또는 빅클리의 지도력에 대한 신뢰 부족, 혹은 일부 사람들이 추측하듯이 조직력의 부족으로 멕시코를 합병하겠다는 ‘황금 기사단’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남북전쟁과 ‘황금 기사단’의 와해

‘황금 기사단’이 ‘모건의 침공(Morgan’s Raid)’이라고 알려진 악명 높은 남부연합의 침공 작전에 연루되었다는 소문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모건의 침공’이란 남부연합 기병대가 북부의 인디애나와 오하이오 주를 상대로 벌인 양동작전을 말한다. 게다가 ‘모건의 침공’ 자체도 ‘황금 기사단’의 작전처럼 실패했었다.

물론 미국 노예제도를 놓고 실제로 전쟁이 벌어진 전장은 1861년부터 1865년까지의 남북전쟁이었다. 남부연합은 북부연맹에 패했고, 이로 인해 노예제는 종말을 고했으며, ‘황금 기사단’의 꿈도 좌절되었다.

‘황금 기사단’의 많은 회원들이 남부연합을 위해 싸웠다. 빅클리 자신도 군의관으로 참전했다가 간첩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뒤이어 1867년 사망했다.

노예제도의 폐지와 남부연합 주들이 북부연맹에 다시 통합되면서 ‘황금 기사단’은 달성될 수도 있었던 명성을 잃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사실로는 ‘황금 기사단’이 아직도 비밀리에 활동 중이라는 오늘날 일부 사람들의 음모론을 다 지우지는 못하고 있다.

보물들, 그리고 음모론과 유산

아마도 사람들을 더욱 감질나게 하는 것은 ‘황금 기사단’에는 오늘날까지 발견되지 않은 보물들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일 것이다. 아마도 이 보물은 또 다른 남북전쟁을 대비해서 모금한 것이 아닐까한다.

실제로 이러한 보물 은닉 장소가 1934년 볼티모어의 소년 두 명이 오늘날 가치로 100만 달러에 달하는 5,000개의 금화를 발견하면서 드러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미국 전역과 잠재적으로는 캐나다에 걸쳐 더 많은 보물들이 숨겨져 있다고 믿고 있다.

이 보물의 전설은 밥 부르어라는 인물을 너무나도 매료시킨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선조들이 아칸소에 보물을 숨겼을지도 모른다고 믿고서 전 생애를 보물 탐사에 바치고 있다. 그는 1977년 해군을 제대한 후 이 문제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전문가가 되었다. 그는 이 보물을 소재로 한 영화 ‘내셔널 트레져 : 비밀의 책(National Treasure: Book of Secrets)’ 제작에 자문역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르어는 이 전설이 허황되지만은 않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1991년 그는 400달러의 가치에 달하는 1800개의 동전을 찾아내기도 했다.

이 보물의 19세기 당시 가치는 약 200만 달러인데, 이 신비의 황금을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무려 1억6000만 달러에 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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