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범철 센터장 "정보 교환에 문제 있어 지소미아 체결했는데 협정 깨면 문제 없겠나"
윤덕민 前 원장 "천황 즉위식 계기 한일 정상회담, 지소미아 폐기 막을 마지막 기회"
정부의 한·일간 '군사비밀정보의 보호에 관한 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선언으로 당분간 한미 동맹의 균열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청와대의 설명과 달리 이번 결정에 앞서 한미간 사전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2일 지소미아 종료 발표 직후 "우리의 외교적 노력에 일본의 반응이 없다면 지소미아 종료가 불가피하다고 미국 측에 역설했고, 미국은 우리의 결정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 정부 소식통은 연합뉴스에 "(청와대의 설명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 소식통은 "그들(한국)은 우리와 협의했다고 반복해서 주장하지만 한 번도 우리의 '이해'를 얻은 적은 없다"며 "여기(주미 한국대사관)와 서울에서 항의했고,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한 우리의 불만족(unhappiness)도 표했다"고 했다.
미 고위급 정부 인사들이 밝힌 미 정부의 공식 입장 역시 한미간 사전협의가 부족했다는 방증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우리(미국)는 한국이 정보공유 합의에 대해 내린 결정을 보게 돼 실망했다"며 "(한일) 두 나라 각각이 관여와 대화를 계속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이스트번 미 국방부 대변인도 논평에서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일 관계의 다른 분야에서의 마찰에도 불구하고 상호 방위와 안보 결속은 지속돼야 한다"며 "일본 및 한국과 양자 및 3자 방위와 안보 협력을 계속 추구하겠다"고 덧붙였다.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등 미 정부 인사들은 지소미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줄곧 밝혀왔다.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당일까지도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에게 지소미아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동맹간 신뢰에 금이 가는 상황"이라며 "워싱턴 정가에 따르면 사드 배치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정부의 입장에 대해 격노했다고 한다. 지소미아 종료는 '한국은 우리 편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잘못된 결정이고, 한미 동맹에 대한 트럼프의 관점이 더욱 악화됐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윤 전 원장은 이어 "우리 정부가 한일청구권협정과 관련해 건설적인 대안을 마련해 일본과 갈등을 풀어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데, 미국이 나서 중재할 수 있는 여지가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외신들은 북한이 'KN-23 신형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신형 대구경조종방사포', '북한판 에이테킴스(ATACMS)' 등 신형 대남 단거리 타격전력 3종 세트를 급속히 전력화하고 있는 현재가 대북 감시전력이 가장 중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미 과학자연맹 앤킷 판다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에 "매우 위험한 시기에 미국은 두 동맹국간 중요한 원천을 잃게 될 것"이라며 "북한이 최근 6차례의 탄도미사일을 시험한 시점"이라고 강조헀다.
월스트리트 저널도 "북한은 물론 중국,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들에 대한 정보 전달을 위한 직통 채널이었다"고 우려했다.
대북 감시전력은 한일 양국의 협력과 신속한 정보 교환 없이는 제 역할을 다할 수 없다.
양국은 그동안 인적정보(HUMINT·휴민트), 통신정보(COMINT·코민트), 영상정보(IMINT·이민트), 신호감청정보(SIGINT·시긴트) 등으로 확보한 대북정보를 지소미아를 통해 교환했다. 한국의 강점은 탈북자 등을 중심으로 하는 휴민트(인적정보)와 지리 정보다.
일본의 강점은 정찰위성 6기, 탄도미사일을 탐지하는 이지스함 6척, 탐지거리 1000km 이상 지상감시레이더 4기, 공중조기경보기 17대, P-3와 P-1 등 해상초계기 110여 대 등으로 확보한 우수한 기술적 정찰능력이다.
지구의 곡률 상으로도 한일 간 정보 교환은 매우 중요하다. 북한이 동해 북동 방향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면 군의 탄도탄 조기경보레이더에 음영(사각) 지대가 생겨 한국은 탄착지점을 탐지할 수 없다. 반대로 일본은 초기단계는 탐지할 수 없지만, 탄착지점 탐지가 가능하다.
이러한 안보 우려와 관련해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한미일이 그동안 정보공유약정(TISA)를 통해 군사정보를 교환해왔으니, 지소미아가 종료된 후에도 크게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현실과 괴리가 있는 설명"이라며 "TISA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약정이고 지소미아는 협정이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보 교환에 문제가 있어 지소미아를 체결했는데, 지소미아를 깨도 문제가 없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신 센터장은 이어 "지소미아가 체결되기 전에는 미국을 통해 일본과 정보를 주고받았다. 다시 말해 한일 간 실시간 정보교환이 이뤄지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체결한 것이 지소미아"라고 설명했다.
제11차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을 앞두고 미국이 한국을 더욱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신 센터장은 "우리 정부의 결정에 대한 미국의 요구사항이 어떠한 형태로도 있을 거라고 본다"며 "미국이 한국 정부를 공개적으로 압박하진 않겠지만 물밑 차원에서는 보이지 않는 상당한 압력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음 달 24~30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와 오는 10월 22일 나루히토 천황(우리 정부가 사용해온 공식 호칭) 즉위식을 계기로 한일이 다시 한번 외교적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 전 원장은 "일본 천황의 즉위식이 지소미아 폐기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즉위식을 계기로 일본을 방문해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지소미아 종료 시한인 11월 22일까지 90일 동안 한일 간 접점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면 지소미아를 폐기시키지 않을 수 있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신 센터장은 이 해법에 공감하면서도 "(지소미아 종료는) 우리 정부가 국내 정치적으로 내린 결정일 가능성이 높다"며 "9월 유엔총회나 10월 즉위식을 계기로 문제를 풀기보다는 상황이 당분간 악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키리크스한국=조문정 기자]
supermoon@wikileaks-kr.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