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초대석] 日와다 하루키 교수 "한일병합조약은 무의미한 연극"
[WIKI 초대석] 日와다 하루키 교수 "한일병합조약은 무의미한 연극"
  • 윤여진 기자
  • 승인 2019.08.26 10:45
  • 수정 2019.08.2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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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지소미아 파기는 신중했어야 했다. 한반도 평화의 주도권은 한국에 있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81·사진) 도쿄대 명예교수가 25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진행된 위키리크스한국과의 인터뷰 도중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최지환 기자]
와다 하루키(和田春樹·81) 도쿄대 명예교수가 25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진행된 위키리크스한국과의 인터뷰 도중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고 턱을 괴고 있다.  [사진=최지환 기자]

와다 하루키(和田春樹·81·사진) 도쿄대 명예교수는 25일 위키리크스한국과의 인터뷰에서 '군사비밀정보의 보호에 관한 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한 한국 정부에 "지금 북한 상황을 생각한다면 한일 관계가 이렇게 돼도 괜찮은지 묻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소미아 기간을 연장하지 않아 한·미·일 삼각공조를 원하는 미국을 자극해 대북 정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취지다. 북한 정치와 한일 관계를 주제로 다수의 저작을 펴낸 와다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북화해 노선과 대일외교에서 일본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료한 설명을 해줬으면"이라는 바람을 전했다.

와다 교수는 일본 정부를 향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달 25일 동료 78명과 함께 인터넷 사이트(https://peace3appeal.jimdo.com)를 열고 '한국은 적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올린 그는 아베 신조 총리에 "한국을 무시하는 것으로 일관하는 게 걱정"이라며 "한일 양국 국민 사이를 갈라놓는 행동을 그만두면 좋겠다"고 했다. 아베 총리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년을 맞은 2015년에 발표한 담화에서 '러일전쟁이 식민지배하에 있던 아시아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는 퇴행적인 인식을 보인 것엔 "역사의 한 부분에 집착하는 인식으로 역사를 총제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와다 교수는 전쟁범죄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이 한국인을 강제동원한 것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에 대해선 "많은 일본 사람들은 강제동원된 한국 사람들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줬다는 역사적 인식을 갖고 있다"면서도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형태는 일본 사람들에게 부담을 준다고 생각한다"는 다소 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 시작점으로 볼 수 있는 1910년에 체결된 한일병합조약의 성격에 대해서 와다 교수는 "한일병합조약이 완전히 무의미한 작문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조약이 절차적으로 불완전하게 체결됐다는 이유가 식민지 지배 그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는 논리로는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이 부분은 정말 복잡하다. 잘 검토해봐야 한다"고 해 학자로서의 고민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한시간 가량 진행한 인터뷰엔 지난 2000년 일본 도쿄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와다 교수 밑에서 한국전쟁 당시 기지 국가로서의 일본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은 남기정(55)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가 동석했다. 통역은 도쿄대에서 교육학 박사 과정을 거쳐 도쿄이과대에서 조교수를 역임한 정윤정씨가 맡았다. 다음은 와다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강제동원 불법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엔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같은 인식에 동의하나. 

"식민지 지배를 불법이라고 봐 그 당시 불법행위에 책임 추궁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있다. 실제 많은 일본 사람들은 강제동원된 한국 사람들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줬다는 역사적 인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식민지 지배 시절 일본의 모든 행동에 책임을 추궁하고 배상 책임을 요구하는 흐름은 한국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일본의 상황을 보면 현실적이지 않다. 식민지 지배가 끝난 지 70년이 넘은 지금, 일본 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1945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 대부분인 까닭이다. 모든 것에 책임을 지라는 요구는 이들 전후 세대 일본 사람들에게 부담을 준다. 한국의 대법원 판결을 보고 (일본 사람들은) 어떤 불안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대법원 판결 요지는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에 강제동원에 대한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권인 위자료 청구권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거다. 청구권협정에 대한 아베 총리의 생각은 뭔가. 

"한일청구권협정은 두 정부의 거래이자 흥정이었다. 그런 탓에 식민지 지배가 불법행위인지에 대해서는 최종적으로 합의하지 못했다. 아베는 청구권협정을 통해 청구권 문제는 모두 해결됐다고 주장하기 있으며,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베로서는 한국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은 당신을 '일본의 양심'이라 부른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을 지급한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아시아 여성기금)에 참여한 전력을 불편하게 보기도 한다. 

"인간의 도덕적 관점으로 보면 식민지 지배는 부당하고 용서할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일본이 1995년에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정부는 보상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끝났다는 입장이어서 국가가 보상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본 국민들이 돈을 모았다"

아시아 여성기금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정부를 대신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화해를 시도한 와다 교수는 당시 기금을 "사실상의 보상금"이라 칭했지만 이내 일본 주류는 "위로금"이라 달리 불렀다. 가해자가 위로한다는 작명은 피해자의 분노를 일으켰고 기금 사업은 중단됐다. 와다 교수는 기금 측에선 애초 '속죄금'(atonement) 개념을 의도했지만 일본 언론이 '위로금'이라는 왜곡된 용어를 사용했고, 이것이 한국사회에서 공분이 일어나는 이유가 됐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22일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 2일 '수출무역관리령 별표 제3의 국가군'(백색국가 목록)에서 한국을 제외한  아베 내각에 대한 대응 차원이다. 

"지소미아를 파기한 한국 정부에 아쉬움을 느낀다. 확실히 일본 정부는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경제적 조치를 처음부터 단행했다. 백색국가 목록에서 제외했고, 반도체 수출품도 규제했다. 지소미아 종료로 한국이 서로 주고받은 것으로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지금 북한 상황을 생각하면 한일 관계가 이렇게 돼도 괜찮은지 묻고 싶다. 지소미아 파기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만 주장하게 되면,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한국의 역할이 제한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일본을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한국과 일본이 대립하는 걸 원치 않는다. 일본이 한국에 부당한 행동을 한 것이고, 한국은 일본이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상황이라면 한반도 평화 주도권은 한국에게 있다"

남 교수는 와다 교수가 언급한 '북한 상황'이란 "남북한 화해 국면에서 지금 외교적으로 부담되는 사안을 전면에 끌어내는 것이 과연 좋았느냐는 문제제기"라고 해설했다. 미국을 지렛대 삼아 대북 정책의 대원칙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전하기 위해선 일본 정부와의 마찰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지소미아 종료 전 한국은 두 번이나 외교 시그널을 보냈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 10주기였던 지난 18일엔 당정청이 일제히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꺼내 들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일본은 한국이 '적당히' 하고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광복절 경축사에선 일본에 대해 대화 가능성을 열고 있으면서도 뭔가 구체적인 내용이 전달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한국 정부가 '일본 태도가 바뀌면 우리는 협력할 의지가 있다' 정도가 아닌, 지금 당장 문제가 되는 쟁점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오부치 전 총리는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했다. 아베 총리 역시 이 선언을 평가한다고 알고 있는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아베 총리의 생각은 분명하지 않다. 1993년 고노 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승인하면서도 2010년 간 나오토 담화는 인정하지 않는다. 가령 아베 총리는 2015년 자신이 내놓은 아베 담화에서 '러일전쟁이 식민지배하에 있던 아시아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는 인식을 보였다. 아베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인식은 뭐랄까. 부분에 집착하는 사관으로 역사의 핵심을 관통하는 생각은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아베 총리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인정한다해도 당장 한일 관계에 큰 도움은 되지 못할 것이다" 

1993년 8월 당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일본군의 요청에 의해 위안소가 설치되고 관리됐다는 '국가의 관여'를 인정했다.(고노 담화) 2차 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은 1995년 8월 15일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일제의 아시아 식민지 지배를 사죄했다.(무라야마 담화) 한일병합 100년에 즈음한 2010년 8월 10일 간 나오토 당시 총리는 식민지 지배 과정의 강제성을 시인했다. 

-엄밀히 따지면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도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한 건 아니다. 결과적으로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데 대해 사죄한 것뿐이다. 한일병합조약이 적법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일본 정부는 1910년에 체결된 한일병합조약은 유효하다고 해석한다. 무효가 된 시점은 한국이 광복된 이후다. 아마 그 관점이 아직도 변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무라야마 전 총리와 간 나오토 전 총리는 한일병합조약에 군사적 침략이라는 요소가 있다고 명확히 말했다. 일본 정부 입장이 조금은 동요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일병합조약이 '무의미한 연극'이었다고 생각한다. 

-강제동원에 대해 일본최고재판소는 2007년 징용과 징용행위는 적법, 그 가운데 발생한 개별적 가혹행위는 불법행위라고 나눠 판단했다. 일본에 이같은 이원적 접근이 최선인 건가.  

"일본 정부는 한일병합조약이 불법이라고, 조선을 강제로 식민지 지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라야마 담화에선 조금 바뀌었다. 그렇다고 해도 조약이 불법이니까 식민지 지배도 불법이었다고 연결되지는 않는다. 나는 한일병합조약이 완전히 무의미한 작문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었음을 법적으로 간단히 입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 지식인 사회를 대신해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문 대통령에겐 남북 관계나 대일외교와 관련해서 일본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조금 더 명료한 설명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 정책은 일본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한국과 문 대통령을 매우 무시하는 것으로 일관하는 게 걱정이다. 아베 총리 자신이 한국에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 해도, 한일 양국 국민 사이를 갈라놓는 행동을 그만두면 좋겠다" 

시계 방향으로 윗줄 왼쪽의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 교수,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윤여진 기자, 정윤정 통역가. [사진=최지환 기자]
시계 방향으로 윗줄 왼쪽의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 교수,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윤여진 기자, 정윤정 통역가. [사진=최지환 기자]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 남 교수는 26일과 27일 이틀에 걸쳐 와다 교수와 논의를 통해 일본어가 한국어로 옮겨지는 과정 특유의 어감 변화를 지적했고, 본지는 이를 바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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