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58) 미국의 협박 “김대중 처형하면 한미관계 심각해질 것”
청와대-백악관 X파일(58) 미국의 협박 “김대중 처형하면 한미관계 심각해질 것”
  • 특별취재팀
  • 승인 2019.09.06 10:00
  • 수정 2019.09.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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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청와대 백악관 x파일

8월 하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 대사가 서울로 귀임하기 전 워싱턴에서 마지막 업무 협의를 갖게 됐다. 리처드 홀브룩은 크리스토퍼 국무장관대리에게 김대중 문제와 관련된 핵심 관리들의 회의 소집을 요청했다. 회의 참석 관리들은 미국이 김대중의 구명을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참석자 한 사람이 “김대중 구명 노력이 향후 몇 달에 걸쳐 우리의 최우선 목표가 돼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글라이스틴 대사는 “현재 구금돼 있는 다른 인사들 문제도 다뤄야 하며 정치개혁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할 과제도 안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사는 김대중 문제에 지나치게 편중할 경우 전두환과 신군부세력에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거론했던 것이다. 대사의 주장에 동의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김대중에 미국 정부의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회의 며칠 전. 글라이스틴 대사는 머스키 장관과 거친 언쟁을 벌였다. 홀브룩과 함께 한자리에서 머스키 장관은 한국의 군인들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그의 스타일에 익숙하지 못한 대사가 무심코 그의 생각을 말하자 장관은 벌컥 화를 냈다. 홀브룩이 대사의 발언을 제지하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잔뜩 불쾌해진 머스키 장관은 앞에 놓여 있던 서류들을 들어 흔들면서 잠시 격한 어조로 분통을 터트린 후 흥분을 가라앉혔다.

대사는 결국 대세를 따르기로 했다. 그 날 회의의 결정사항으로 인해 대사의 활동이 제약을 받지는 않았지만, 서울로 귀임하자 대사는 김대중 문제에 지나치게 몰입하면 일이 복잡해지고 때로는 심각한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워싱턴에서 8월말 회의가 있기 전 미국 정부는 이미 김대중 구명운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80년 5월 17일 그가 체포된 직후 우리는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와 계엄사령관 및 최대통령에게 강력 항의했다. 그 이래 김대중 문제는 글라이스틴 대사가 전두환 장군을 10여 차례 만났을 때 주요, 혹은 유일한 의제였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공판에 나온 고 문익환 목사(左)와 김대중 전 대통령. [연합뉴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공판에 나온 고 문익환 목사(左)와 김대중 전 대통령. [연합뉴스]

미국 관리들은 한국의 주요 인사를 만날 때마다 김대중 문제를 거의 빼놓지 않고 거론했다.

위컴 장군과 보브 브루스터, 그리고 대사관 간부들의 도움으로 미국 관리들은 접촉망을 다수의 한국의 고위 관리들에게까지 펼쳤다. 그 중에는 군부 인사들도 포함돼 있었지만 그들 중 다수는 김대중의 처형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미 관리들은 미국 의회가 제재조치의 위협을 동원하는 것은 반대했지만 행정부의 노력에 대한 의원들의 지원을 환영했고, 재계 인사들에 대해서도 한국당국에 그들의 견해를 전달하도록 요청했다.

미국의 관리와 지식인들 중에는 지도자로서의 김대중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여러 반공 보수주의자들까지 포함돼 있었다. 그들은 그가 처형될 경우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위험할 정도로 손상될 것으로 보았다.

미국의 노력은 여러 단계를 거쳤다.

첫째는 항의와 성사되지 않은 김대중의 석방 노력이었고, 그 다음은 부당한 처우에 대한 항의와 재판절차의 공정성 유지 요구가 뒤따랐다. 그동안 미국은 전두환에게 김대중이 어떤 식으로 재판을 받든 미국 국민들은 깊은 관심을 쏟을 것이며 그의 처형은 한미 관계를 ‘심각하게 손상’시킬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결과 운운한 것은 미국이 전두환에 대해 동원한 가장 강력한 경고였다.

두 번째 단계는 재판 중 있었던 일로, 선고 결과에 대한 우리의 논평을 어떻게 해야 할지와 전두환에 대한 압력을 강화해야 할지의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글라이스틴 대사의 경우, 서울에 주재하면서 전두환과 직접 접촉하던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이 자제하는 것만이 전두환에게 자신의 진영 내 반대파들을 설득하고 그가 겪고 있던 마음 속의 갈등을 다스릴 여유를 주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성공의 보장도 없는 얇은 빙판을 걷고 있었으며 실패할 경우 1980년 선거의 열기가 한창인 때에 카터 행정부에 치명적인 손상을 끼칠 것이 분명했다. 그는 더 이상 속태울 것 없이 ‘합리적’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워싱턴은 글라이스틴 대사가 전두환의 대리인이라도 되는 듯 애먹이는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결국은 대사를 지원했다.

9월 3일 전두환과의 만남이 있는 직후 글라이스틴 대사는 워싱턴에 보고서를 보냈다.

대사는 김대중에게 사형이 선고될 경우 강경한 비판성명을 내라는 정치적 압력이 있을 것임을 예상하면서 ‘자제’를 촉구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오히려 미국의 김대중 구명 노력을 위태롭게 하고 ‘한국의 사법절차를 간섭할 의도가 없다’고 한 카터 대통령의 친서 내용에 위배될 뿐 아니라 다른 우방국들과는 달리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그런 대우를 한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여론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적시했다.

그는 보고서와 함께 미국 정부의 성명서 초안도 동봉했다. 표현은 절제된 것이었지만 일부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위키리크스한국=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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