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짐바브웨 국민 평균수명 60세에서 37세로 떨어진 이유는?
[WIKI 프리즘] 짐바브웨 국민 평균수명 60세에서 37세로 떨어진 이유는?
  • 최석진 기자
  • 승인 2019.09.10 08:14
  • 수정 2019.09.10 0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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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평론가 로렌스 핀탁이 평가한 '독재자 무가베'
지난 6일 사망한 짐바브웨 독재자 무가베. [연합뉴스]
지난 6일 사망한 짐바브웨 독재자 무가베. [연합뉴스]

지난 6일 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불리던 로버트 무가베 전 짐바브웨 대통령이 95세로 사망했다. 주요한 뉴스들을 해설하는 사이트 복스(vox.com)는 정치 평론가 로렌스 핀탁이 과거 무가베가 백인 정권에 대항해 게릴라 활동을 벌이던 당시 그를 만났던 기억을 회상하는 칼럼을 실었다.

로렌스 핀탁은 워싱턴 주립대학의 언론학과 교수이자 ‘중동연구소(Middle East Institute)’의 비상근 연구위원이다. 그는 최근에 「미국과 이슬람 : 정치 선전, 자살 폭탄,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로 향하는 길」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다음은 이 칼럼의 전문이다.

“우리는 블랙 아프리카(Black Africa)의 다른 나라들이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겁니다.”

로버트 무가베는 1970년대 뉴욕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필자에게 이렇게 밝힌 바가 있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의 실수로부터 배울 겁니다.”

필자는 모잠비크에 있는 무가베의 게릴라군 사령부에서 그를 만났었는데, 당시 그의 게릴라 활동은 외견상으로는 로디지아 내의 소수 백인 정권에 대항해 끊임없는 전투를 벌이며 교착상태에 놓여있었다. 이 싸움으로 인해 약 2만명의 인명이 희생되는데, 사망자의 대부분은 흑인 민족주의자 게릴라들이거나 아프리카 민간인들이었으며, 백인 정권이나 게릴라 측이나 참혹한 폭정을 휘두르기는 마찬가지였다.

95세의 나이로 사망한 무가베는 다른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실수로부터 배우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실행(?)해가면서, 1957년 사하라 사막 이남에 아프리카 최초로 독립 국가가 들어선 이래 아프리카 국가들에 만연된 부패와 폭정을 일상으로 만들었다.

한 통계는 로버트 무가베가 자신의 국민들에게 저지른 악행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980년 독립을 성취했을 때 짐바브웨 국민들의 평균 수명은 약 60세였는데 2006년이 되면 이 수치가 남자는 37세, 여자는 34세로 떨어진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평균수명이다.

다음은 무가베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또 다른 내용들과 그가 남겨놓은 복잡한 유산들이다.

“수탉을 위해 한 표를”

영국 군대가 처음 도착한 1880년대부터, 저항 운동으로 점철된 영국의 로디지아 식민지 시대를 거쳐, 1980년 무가베가 정권을 잡을 때까지 이 국가는 백인들에 의해 백인들을 위해 운영되었다. 그때까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아프리카 흑인들은 고용된 노동자들에 불과했다.

목소리가 부드러웠던 전직 교사 출신의 무가베는 자칭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운동가로 모택동을 자주 인용했다. 그는 이안 스미스가 이끄는 백인 소수 정권과 아벨 무조레와 주교가 이끄는 단명했던 아프리카 흑인 정권(이 정권은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다)에 대항에 저항 운동을 벌이던 두 개의 게릴라 단체 중 한 곳을 이끌었다.

무가베는 1950년대부터 로디지아의 백인 식민 정권에 대항한 투쟁을 시작했고, 1960년 다른 흑인 지도자들과 함께 재야 정당을 설립했다. 무가베와 몇몇 동료들은 중국으로부터 훈련을 받은 민병대들이 정부군을 향한 공격을 개시한 후 몇 년 뒤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무가베는 결국 이웃 국가인 모잠비크로 망명을 선택했고, 그곳에서 그가 이끄는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동맹(ZANU)’은 백인 정권에 대항한 전면전에 착수했다. 그 사이 조슈아 응코모가 이끄는 연합 게릴라군도 로디지아의 서부 국경 지대에 위치한 짐바브웨의 근거지에서 함께 공격에 나섰다.

이러한 투쟁은 마침내 백인 정권으로 하여금 영국이 주재한 협정안에 응할 수밖에 없도록 했고, 그 결과 짐바브웨는 1980년 4월 독립을 쟁취하게 되었다. 이후 무가베와 게릴라 활동을 함께 했던 경쟁자 조슈아 응코모는 서로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나섰고, 결국 연합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당시 정권을 잡기 위한 선거 운동에서 무가베의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동맹(ZANU)’은 ‘수탉에게 한 표를(Vote for the cock)’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승리를 거뭐쥘 수 있었다. ‘수탉’은 문맹률이 높은 아프리카 민중들에게는 힘을 상징하는 동물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무가베가 권좌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선거 전략 때문이 아니라 부족주의 때문이었다.

다수를 차지하던 쇼나 부족 출신의 무가베는 권좌에 오른 지 2년이 지나지 않아 독립전쟁의 동료였던 응코모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 응코모가 이끄는 게릴라 조직은 주로 응데벨레 부족 출신들로 구성되어있었다. 무가베는 응코모를 내각에서 숙청하고, 학살을 자행해 응코모를 따르던 부족의 무장 게릴라들을 2만 명이나 죽이고 권력을 공고히 했다.

엘리트 지배층에 속하지 못했던 짐바브웨 사람들에게 그 뒤로 끊임없이 지속될 악몽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백인 농부들은 자신들의 농토에서 쫓겨나고, 정치적 반대자들은 투옥되거나 살해되었으며, 언론에는 재갈이 물려졌다.

무가베는 국가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일에 착수했다. 기근과 질병, 그리고 폭정이 무가베 일인 집권 하에서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국가의 화폐는 가치를 상실하고 휴지조각이 되었으며, 병원들에는 의약품이 부족했다.

결핵과, 에이즈, 그리고 말라리아 같은 질병들이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콜레라로 인한 사망자 숫자는 국제 기준의 10배나 되었다. 창궐하는 부패와 무능 때문에 국제적 구호의 손길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민의 1/4이 국가를 탈출해 유량민의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총체적 난국에도 불구하고 무가베는 아프리카 권력의 전당에 오르는 영예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는 ‘남아프리카 개발 공동체’의 총제와 ‘아프리카 연합(African Union)’의 의장으로 선출되었고, 그러한 위선은 그가 국제보건기구(WHO)의 친선대사로 임명되었을 때 극에 달하게 되었다.

대다수의 아프리카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무가베는 아프리카로부터 식민지의 마지막 흔적을 몰아낸 혁명가였다. 다른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가베는 죽었지만 고난 계속되는 짐바브웨

‘나를 임명한 신만이 나를 끌어내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독재자는 2017년 군부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되었다. 하지만 무가베는 그가 사악한 지도자였기 때문에 권좌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었다. 그가 하루하루 연명하던 허약한 정권을 야심에 찬 젊은 부인에게 이양하려 했고, 그의 부인이 측근들을 소외시키자 군부가 들고 일어선 것이다.

독립전쟁 당시 무가베 휘하에서 활약했던 장군들 중의 하나가 주장하듯이 그는 ‘늙게 되자 권좌를 부인 주변의 날강도들에게 넘겨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면) 망명 생활로 생을 마감했던 축출된 다른 지도자들과는 다르게 무가베는 짐바브웨의 수도인 하라레에서 죽을 때까지 사치스러운 대저택에서 호화롭게 살 수 있었다.

정권의 변경과 무가베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짐바브웨 국민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찾아들지 않았다. 무가베의 자리는 그의 혁명가의 이미지를 흉내낸 에머슨 음낭가과가 차지했다.

오늘날 짐바브웨에는 또 다시 수백만 명이 기아 상태에서 허덕이고 있다. 경제는 다시 한 번 자유 낙하하는 중이다. 인플레이션이 175%에 이르고, 연료비는 연초 대비 거의 500%나 상승했다. 또, 전기와 식수 부족이 만연해 있으며, 국가의 휴대폰 기업이 도산 위기에 처해있다. 그리고 저항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해서 1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영국의 <텔레그래프> 지는 최근에 현재 짐바브웨는 ‘절대적 인플레이션 폭풍과 식료품 부족, 그리고 연료와 식수난으로 인해 1차 세계대전 직후의 독일이나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된 직후의 러시아에 비견될 정도로 최악의 상황에 처해져있다’고 보도한 바가 있다.

무가베는 1978년 당시 필자에게 자신은 ‘다른 블랙 아프리카 나라들이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었다. 필자는 그때 그가 국가를 위해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필자는 당시 젊었었다. 아마 필자가 너무 순진했던 모양이다.

[위키리크스한국=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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