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케네디를 저격한 총탄은 과연 마법의 위력을 지녔을까?
[WIKI 프리즘] 케네디를 저격한 총탄은 과연 마법의 위력을 지녔을까?
  • 최석진 기자
  • 기사승인 2019-09-16 07:07:41
  • 최종수정 2019.09.16 0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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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환호를 받는 케네디 대통령(상)과 피격 직후의 모습. [ATI]
시민들의 환호를 받는 케네디 대통령(상)과 피격 직후의 모습. [ATI]

1963년 11월 22일, 리 하비 오스월드가 울린 총소리는 지금도 사람들의 귓전을 떠나지 않고 있다. 텍사스의 댈러스 도심에 위치한 ‘텍사스 교과서 창고’ 건물 6층 창문에서 발사된 수동식 카르카노 M 91/38 소총의 총탄들이 미합중국의 대통령을 죽였다.

그리고 누구에게 물어보느냐에 따라 답은 약간씩 다르겠지만, 그 총탄들 중 하나는, 우리가 익히 알 듯이, 물리학 법칙에 들어맞지 않았다.

오스월드가 첫 번째 또는 두 번째로 발사한 6.5밀리 구경의 탄환이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등을 통과해 척추의 오른쪽을 뚫고, 목의 앞부분을 거쳐 빠져나갔다. 탄환은 대통령의 목젖 아래, 넥타이 매듭 부분을 관통한 다음, 계속 진행해서 당시 텍사스 주지사였던 존 코널리의 등을 뚫고 들어가 오른쪽 다섯 번째 갈비뼈를 부숴버렸다.

이 총탄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코널리 주지사의 가슴을 빠져나가 그의 오른쪽 손목을 관통하면서 손목뼈를 더 부수고 왼쪽 넓적다리에 박혔다.

오스월드가 날린 세 번째 총탄이 결정타였다. 이 총탄은 케네디의 머리를 정통으로 맞히면서 역사를 영원히 바꾸어놓았다. 첫 번째인지 두 번째인지 정확하지 않은 총탄은 목표물을 벗어났다.

적어도 위의 설명이 1964년 9월 ‘워런 위원회(Warren Commission)’가 보고서를 통해 발표한, 정부의 인가를 받은 공식적인 결론의 전부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 들끓던 정부에 대한 불신 분위기와 대통령 암살에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도서들의 출판 붐 영향으로 ‘단 한발의 총탄(또는 마법의 총탄)’ 이론은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음모론자들의 인기를 끓었다.

‘워런 보고서(The Warren Report)’는, 일부 사람들이 ‘마법의 총탄 이론’이라고 부르는 단 한발의 총탄 이론에도 불구하고, 1979년 타당성을 재차 확인받았지만 정부가 제공한 가장 뜨거운 논란거리로 남게 되었다.

오스월드가 사용한 소총이 케네디 대통령과 코널리 주지사가 최초로 총상을 입고 괴로워하는 사이 연달아 총탄을 날릴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빠른 총기가 아니었으므로, 저격범은 한 명뿐이었고 그 저격범이 리 하비 오스월드라는 정부의 단정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이 음모론을 정확히 규명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 정부의 공식 발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이 음모론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게 하는 가장 밀접한 팩트를 점검해보자. 그것은 바로 단 한발의 탄환이 대통령과 주지사에게 총상을 입혔다는 주장이다.

마법의 총탄 이론

단 한발의 총탄 이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 이론을 ‘마법의 총탄 이론’이라고 부른다. 공개된 리무진 오픈카에 타고 있던 케네디 대통령과 코널리 주지사의 상대적 위치가 수십 년간 불러일으킨 오해 때문이다.

구글 검색기를 잠깐만 돌려봐도 물리학 법칙을 거스르는 탄도를 설명하는 그림과 도표들이 넘쳐난다. 케네디의 등 중간쯤을 뚫고 목젖을 관통한 다음 코널리의 등으로 들어간 후 손목으로 상향 전진하다가 직하로 방향을 틀어 왼쪽 넓적다리로 내리박힌 총탄을 설명하는 내용들이다.

이런 나름대로의 해석들은 인터넷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컨대, 올리버 스톤 감독이 1991년 제작 감독한 영화 <JFK>에서 케빈 코스트너가 역을 담당한 뉴올리언스의 지방검사는 넋이 나간 배심원들 앞에서 탄도를 재연한다. 탄도를 추정하는 도표를 뒤에 세워놓고, 지방검사는 ‘마법의 총탄’을 지칭하는 공식명인 ‘이그지빗 399(Exhibit 399)’ 또는 ‘CE399’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케네디와 코널리가 입은 총상의 탄도 궤적을 모두 그리기 위해 오른쪽으로 틀었다가 다시 왼쪽, 오른쪽, 그리고 또 왼쪽,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극적인 유턴을 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영화는 대흥행을 기록했고, 8개 부문의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며, 새로운 세대들 사이에서 ‘마법의 총탄’을 놓고 일대 격론이 벌어지도록 했다.

그러나 ‘CE399’가 주장하는 이른바 ‘뒤틀리고 방향을 바꾼 탄도’ 이론은 당시 케네디와 코널 리가 리무진 승용차에 어떤 식으로 앉아있었는지를 두고 완전히 잘못된 오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영화 <JFK>의 법정 장면에서 대통령과 주지사를 대신해 자리에 앉은 배우들은 높낮이가 같은 의자에 앉아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앞뒤로 나란히 앉아있다. 그러한 배치와 총상의 결과라면 총탄의 탄도가 물리학 법칙을 거스른다는 주장이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리무진 자동차에서 대통령과 주지사는 그렇게 앉아있지 않았다. 실제로는 코널리의 좌석은 케네디의 그것보다 낮고 왼쪽으로 치우쳐있었다. 그리고 현장의 사진과 비디오 증거물들을 보면 대통령은 줄곧 뒷좌석에서 오른쪽으로 치우쳐 앉은 상태에서 오른쪽 팔을 자동차 프레임에 걸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총탄이 계속해서 오른쪽 왼쪽으로 방향을 바꿔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대통령과 주지사의 위치만 올바르게 배치하기만 하면 그들의 총상 탄도는 거의 일직선을 그리게 된다.

게다가 ‘마법 총탄’ 이론가들은 총탄이 케네디의 재킷을 뚫고 들어간 위치가 목을 뚫고 나간 상처보다 아래에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위에서 아래를 향해 발사된 총탄이 대통령의 몸속에서 갑자기 위로 방향을 틀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 또한 잘못된 증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저격이 이뤄지기 전에 촬영된 사진들을 보면 케네디 대통령의 재킷이 목 쪽으로 말려 올라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총탄이 재킷을 뚫고 들어간 지점은 실제로 총탄이 등에 박힌 지점보다 낮게 맺힐 수가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케네디와 코널리에게 총상을 입히기 위해 ‘마법의 총탄’이 위아래, 좌우로 널뛰었다는 주장은 모두 거짓이다. ‘CE399’는 실제로는 대통령의 등으로부터 주지사의 넓적다리까지 줄곧 직선궤도를 그렸던 것이다.

후속 실험들

케네디 암살과 ‘마법 총탄 이론’은 ‘워런 위원회’의 결론에도 불구하고 식어지지 않았다. 이 이론은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정부와 독립적인 포렌식 전문가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실험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실험들 중 극비에 부쳐진 ‘1965년 3월(March 1965)’이라는 보고서가 있다. 이 실험은 메릴랜드 주에 있는 미군의 엣지우드 병기창에서 탄도 전문가들에 의해 실시되었다. 전문가들은, 케네디를 저격한 동일한 소총과 탄환을 이용해서 젤라틴 덩어리, 인간 두개골, 그리고 염소 가죽을 상대로 당시 총탄의 속도와 탄도가 인체에 미치는 결과를 실험했다.

그들은 실험 결과, 대통령에게 총상을 입힌 총탄은 주지가 입은 모든 총상을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 실제로 같은 탄환에 의해 총상을 입은 것인지 결론을 내리기에는 까다로운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 실험에 의하면 커널리 주지사의 등과 가슴의 총상은 대통령의 목을 관통한 총탄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별개의 총탄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만일 별개의 탄환이라면 대통령의 목을 관통한 탄환에 대해서도 설명이 되어야한다.”

이 보고서는 이렇게 끝맺으면서 다음과 같이 추천하고 있다.

“케네디 대통령의 등을 맞힌 총탄이 동승객들을 벗어나 차 밖으로 완벽하게 사라질 수 있는지 저격 상황을 매우 주의 깊게 재연할 필요가 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 조사 특별위원회(House Select Committee on Assassinations)’가 1979년 보고서를 통해 단일 총탄 이론에 대해 조사하기는 했지만 위와 같은 재연이 실제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가 않다.

위원회 자체도 같은 보고서를 통해, 세 발이 아니라 네 발이 발사되었으며 총탄들 중 한 발은 ‘텍사스 교과서 창고’에서 날아온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카퍼레이드가 지나던 딜리 플라자(Dealey Plaza) 지역의 개방된 공간인 이른바 ‘잔디 둔덕(grassy knoll)’에서 날아왔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들었다.

위원회가 이렇게 결론을 내리게 된 데에는 댈러스 경찰 당국의 오디오 녹취록이 큰 역할을 했다. 녹음테이프의 음향 분석을 통해 네 발의 총성이 확인되었으며, 그 중 한 발은 ‘잔디 둔덕’ 방향에서 날아온 음향 패턴을 보였던 것이다.

이 위원회가 보고서를 발간한 이후 ‘국립 과학 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Sciences)’도 이 녹음테이프를 자체 분석하고 의회의 오디오 분석은 결함투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네 번째 발사나 두 번째 저격범을 입증할 증거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의 호기심은 믿을 만한 조사 결과를 훨씬 벗어나고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

암살의 영향

케네디 대통령은 총을 맞은 그날, 1963년 11월 22일 파크랜드 메모리얼 병원에서 오후 한 시에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리 하비 오스월드는 한 시간 이내에 검거되었다.

오스월드는 기자들을 향해 자신은 총을 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생중계 되는 가운데 나이트클럽 소유자이자 경찰 정보원이었던 잭 루비에게 살해당했다. 그는 살해되기 전에 자신은 봉(鳳)이었다는 너무나도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가 살해됨으로써 진실은 영원히 침묵 속에 가라앉아버렸다.

한편 잭 루비는 케네디 일가에 대한 원수를 갚기 위해 오스월드를 살해했으며, 정부 내의 검은 그림자라는 등의 넓게 퍼져있던 음모론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로 벌어진 살인극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반신반의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단독 범행이라고 알려진 범인이 죽어버리자 ‘단 한발의 총탄’ 이론을 반박할 어떤 정보도 드러날 가능성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단 한발의 총탄’ 이론에 대한 회의론
‘워런 위원회’가 내린 결론이 폭넓게 받아들여진 적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는 연방 정부 내에서도 불신의 분위기가 팽배했다. 2013년 케네디 대통령의 친동생이었던 로버트 케네디 법무부장관이 ‘워런 보고서’를 ‘교묘하게 꾸며낸 조작’으로 여겼다는 사실이 폭로된 바가 있다. ‘워런 위원회’의 반수에 달하는 위원들도 단일 총탄 이론에 회의적이었다.

케네디 암살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던 언론인 필립 셰넌에 따르면, 케네디 일가와 가까웠던 아더 쉴레진저 주니어가 로버트 케네디는 ‘워런 위원회’의 단일 저격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쉴레진저는 1963년 12월에 로버트 케네디가 두려움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자신에게 오스월드는 ‘그 주체가 쿠바의 카스트로이든 조직폭력단이든 거대한 음모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었다.

쉴레진저는 나아가 ‘워런 보고서’가 출간되고서 2년이 지나서까지 로버트 케네디는 분명히 음모가 존재하며 자신이 언제까지 보고서를 두고 입을 다물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했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케네디가 ‘워런 보고서’를 엉터리라고 생각한 점은 분명해 보인다.

현대의 기술 발달과 ‘마법 총탄’을 지지하는 또 다른 이론들
‘마법의 탄환’에 대한 논란은 최근 들어 3D 기술 발전 덕분에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케네디 암살이 벌어진 지 정확히 50년이 지나서 어떤 부자지간으로 이뤄진 포렌식 팀이 첨단 기술을 활용해 ‘단 한발의 총탄’ 이론을 더욱 엄격하게 실험하였다. 오스월드가 발사한 총탄의 탄도를 과거 어느 때보다 정확히 추적에 나선 것이다.

마이클 해그는 CBS와 가진 인터뷰에서 ‘범죄 현장을 과거보다 더욱 생생하고 더욱 완벽하게 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범죄 현장에서 많은 정보를 채집한 후 이후 컴퓨터 앞에 앉아 그 범죄 현장을 반복적으로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루크 해그는, 한 개의 총탄도 두 사람을 손쉽게 뚫고 지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이 문제의 비정상적인 총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의 몸을 떠나 어떤 일을 했는지 이해하기만하면 납득은 쉽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믿지를 않았고, 지금도 안 믿는 것이지요.”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총탄이 몸속에서 여러 과정을 거쳐 몸 밖으로 나올 때는 변화를 일으킨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지사에게 향한 것이지요. 마치 잘못 던져진 풋볼 공과도 같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직선으로 날아가지요.”

“이 총탄이 대통령의 몸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탄도를 지닌 매체라면 대부분 …… 방향이 기우뚱해지면 변화를 겪습니다. 코널리 주지사가 최초 총상을 입은 지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흔들린 총탄의 결과이기 때문이지요. 어떤 이유에서든지 총탄의 움직임이 불안해지는 겁니다.”

이렇게 첨단 기술이 뒷받침된 재평가는 당연히 수십 년 전 알렌 스펙터 검사가 범정에서 행한 탄도 시연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당시 리무진 차량의 상황을 재연하기 위해 단순히 두 사람을 앉혀놓고 막대기를 이용해 탄도를 시연했던 상황은 루크와 마이클 해그 부자의 연구 결과에 비한다면 너무 원시적이어서 의심을 재기하기조차 무색하다.

한 발의 총탄이 1963년 그날 댈러스에서 목격된 총상을 입힐 수 있는지 질문을 받자, 마이클 해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통령 목의 총상과 주지사의 총상에서는 분명하게 그렇습니다.”

그는 또 오스월드가 명사수가 아니라는 말은 또 하나의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덧붙였다. 루크 해그에 따르면 오스월드의 소총은 많은 음모론자들이 말하듯이 그렇게 부정확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가늠자만 좋다면 그것은 훌륭한 소총이고 명사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케네디 대통령에게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말입니다.”

“여러 발이 발사되었다는 문제,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을 관통하고 ‘단 한발의 총탄’이 되어버린 총탄의 궤적 등은 사람들이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었기 때문에 논란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과거에도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지금도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위스콘신 주 마케트대학교의 정치과학자이자 케네디 암살 전문가인 존 맥아담스는 해그 부자의 견해에 동의할 것이다.

토마스 캐닝은 ‘케네디 대통령 암살 조사 특별위원회’를 위해 단일 총탄의 탄도를 연구한 나사(NASA)의 과학자였다. 그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1979년 의회 위원회가 뒷받침한 이론에 대해 언급했다.

“결과는 케네디의 목을 관통해 코널리의 어깨 쪽 등을 타격한 총탄을 설명하는 배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존 맥아담스 교수도 1990년대부터 총탄의 탄도를 컴퓨터로 재연하는 연구를 시행했다.

‘실패 분석 연맹(Failure Analysis Associates)’은 미국 변호사 협회를 위해 1992년 실시한 모의재판에서 탄도를 연구하기 위해 3D 컴퓨터 애니메이션과 모델링 기법을 활용했으며, 단일 탄도 이론이 근거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자신의 국가를 증오한 정신 나간 외톨이 마르크스주의자 말고 무언가가 더 있다고 생각합니다.”

루크 해그는 이렇게 말했다.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유명한 검사였던 빈센트 버글리우시는 이런 말을 했지요. ‘농부 한 사람이 왕을 쓰러뜨릴 수는 없다’라고.”

[위키리크스한국=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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