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성경 사해사본이 기적적으로 잘 보존된 이유... 그리고 훼손의 역설
[WIKI 프리즘] 성경 사해사본이 기적적으로 잘 보존된 이유... 그리고 훼손의 역설
  • 최석진 기자
  • 기사승인 2019-09-17 17:38:49
  • 최종수정 2019.09.17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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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사본이 발견된 유대광야의 쿰란 동굴(왼쪽) [ATI]
사해사본이 발견된 유대광야의 쿰란 동굴(왼쪽) [ATI]

사해에 위치한 사원에서 발견된 성경 사해사본에는 특별한 소금 광물이 코팅되어 있었다. 두루마리로 된 고대의 성경 사본이 2000년이나 비교적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사해에서 발견된 두루마리 성경 사본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귀중한 역사적 가치를 지녔을 뿐 아니라 고고학적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1946년 유대광야의 쿰란동굴에서 인근에 살던 어떤 목동이 이 사본들을 최초로 발견하였을 때 이 고대의 신비로운 사본들에는 성경 구절과 달력, 그리고 천문학 도표들이 들어있었다.

과학자들은 이 역사적 발견에 경탄을 금지 못했으며 어떻게 고대의 문서들이 2000년이라는 모진 풍상을 비교적 잘 견뎌낼 수 있었는지 궁금해 했다.

발견된 문서들 중 1000여 종에 달하는 상당수는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품질이 현격히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고대 두루마리 문서들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보존 상태가 양호했다.

특히, ‘성전 두루마리(Temple Scroll)’라고 알려진 25피트 길이의 두루마리 문서는 너무나도 잘 보존된 채 발견되었다. 이와 관련해 과학자들은 최근에 또 한 번의 연구를 시행해 기적과 같은 보존의 비밀과 이후 벌여진 파괴에 대해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세계적인 과학 뉴스 웹사이트인 ‘라이브 사이언스(livescience.com)’에 따르면 최근에 연구자들이 다중 X-레이 툴과 라만분광법(레이저 빛을 활용해서 물질의 화학적 구성을 파해지는 기술)을 활용해 ‘성전 두루마리’를 새롭게 조사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성전 두루마리’의 양피지는 상당수의 두루마리 문서들과는 다른 기술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검사 결과 ‘성전 두루마리’들은 이전에 연구되었던 극소수의 다른 두루마리 문서들에서만 발견되었던 소금 광물 기법의 흔적을 보였던 것이다.

두루마리의 표면에는 유황, 나트륨, 칼슘, 그리고 다른 원소들로 만들어진 소금 혼합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소금이 강력한 보존제의 효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성전 두루마리’가 사막의 동굴 안에서 유해한 자연 요소들을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특별한 표면 소금 처리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과학적 분석 결과 사해사본에는 특별한 소금이 코팅되어 있었다. [ATI]

하지만 두루마리의 뒷면에 발라진 소금 코팅은 반대로 이 고대 문서의 파괴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두루마리의 표면에서 감지된 소금이 공기 중의 습기를 빨아들인 것으로 조사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적절하게 보관되지 않는다면 두루마리 표면의 소금 광물 때문에 문서의 품질이 급격하게 떨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과학자들에게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아있다. 도대체 이 소금 혼합물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두루마리의 표면에 코팅된 어떠한 구성 요소도 동굴 바닥이나 사해 어느 곳에서도 자연 상태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이번 연구 발표의 공동 저자 중 한 사람인 독일 함부르크 대학의 이라 라빈 연구원에 따르면 두루마리 표면의 광물 코팅은 양피지를 제조하는 서양의 전통과 일치한다고 한다. 서양의 전통 제조 기법으로 만든 양피지 문서는 동물 가죽을 전혀 무두질하지 않거나(untanned) 가볍게 무두질해서 만들어졌다. 이러한 서양식 제조 기법이 ‘성전 두루마리’가 발견된 지역에서 행해지는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양의 두루마리 용 양피지가 서양의 어떤 지역에서 사해 인근 지방으로 수출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사해 지역을 넘어서는 원대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라 라빈 연구원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잡지를 통해 출간된 연구 결과의 언론 발표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를 들자면, 중동 지역에서 양피지가 제작되던 초기에 몇 가지 기술들이 함께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이번 결과는 말해주고 있는데, 그러한 사실은 중세의 단일 기법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여준다 할 것입니다.”

라빈은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이번 연구는 또 양피지의 초기 가공에 대한 사실들도 드러내주는데, 이로 인해 역사가들과 유물 보존 전문가들은 사해 두루마리 문서 및 다른 고대 양피지들의 분류에 필요한 새로운 분석 도구들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전 두루마리’들을 대상으로 했던 이전의 연구들은, 다른 사해의 두루마리들과는 다르게, 사본들이 눈에 확연하게 띄는 층들을 이루고 있음을 밝힌 바가 있다. 대부분 염소나 양 또는 소가죽으로 만들어져서 양피지의 바탕 부분으로 사용된 유기층과 마무리 공정에서 문질러서 만들어진 광물의 무기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러한 양피지가 어떻게 제작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한데, 이를 통해 연구자들은 고대의 문서 제작 기법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고대 문서들의 계속되는 퇴화 과정을 방지하는 알맞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사해사본, 1946년 목동과 엘리에셀 수케닉 교수의 인연 

1947년 한 배두인 염소 치는 목동이 우연히 사해 두루마리를 발견했다. 그 염소 치는 소년은 염소를 찾으러 동굴에 들어갔다가 무엇에 걸려 넘어졌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지 못했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칸도라는 골동품 중개인을 소개받았고, 히브리 대학의 교수인 엘리에셀 수케닉(Eliezer Sukenik)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굉장한 관심을 보였다. 그 당시 유엔 투표건으로 인해 유대인과 아랍인 간의 갈등으로 인한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칸도와 만나 그 유품을 간단히 검사한 후, 나머지 두루마리들을 보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향했다. 그는 거기서 본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후에 엄청난 놀라움에 휩싸이게 된다.

“그 두루마리를 풀기 시작할 때 제 손이 떨렸습니다. 몇 줄을 읽었습니다. 고대 히브리어로 아름답게 쓰여 있었습니다. 언어는 시편의 그것과 같았지만, 내용은 제가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보고 또 보면서 저는 갑자기 이런 것을 느꼈습니다. 2천년이 넘도록 읽혀지지 않았던 이 히브리 사본을 마주하는 것은 내가 운명적으로 갖게 된 특권이구나...”

몇 차례 협상 끝에 그는 사본들을 갖고 돌아오게 됐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버스를 탔다. 아랍인들에게 둘러싸여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결국 무사히 집에 도착하게 된다.

“제가 이 귀중한 문서들을 관찰하고 있을 때, 라디오에서 뉴스가 나왔는데, 유엔이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할 지에 관해 그 날 밤 투표로 결정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 막내 아들 마티가 옆 방에 있었는데, 종종 라디오 채널을 돌려서 주파수를 맞추면서 거기서 나오는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제게 말해주곤 했습니다. 투표가 발표된 날 한밤 중이 지났습니다. 저는 그 사본 중에 특히 관심있는 구절을 몰두해서 보고 있었는데, 제 아들이 급히 달려와 소리치며 유대 국가 수립에 관한 투표가 통과되었다고 했습니다. 유대 역사 가운데 이 위대한 사건이 예루살렘의 저희 집에서 또 다른 사건과 함께 합쳐진 것입니다. 이 역시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나가 정치적인 것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문화적인 것이었습니다.”

[위키리크스한국=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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