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60) 주한미대사, 전두환 대통령 은밀히 만나 워싱턴 메시지 전달하다
청와대-백악관 X파일(60) 주한미대사, 전두환 대통령 은밀히 만나 워싱턴 메시지 전달하다
  • 특별취재팀
  • 기사승인 2019-09-27 07:31:41
  • 최종수정 2019.09.27 0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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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한-미 정치 40년 비사 [청와대 백악관 x파일]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 대사는 며칠 후 국무부 동료들의 전화를 받았다.

카터 대통령과 머스키 장관이 김대중이 사형선고를 받으리라는 거의 피할 수 없는 전망 때문에 아직도 몹시 우려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글라이스틴 대사는 김대중이 사형선고를 받아도 전두환에 의해 감형될 것이라고 내심 예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바심이 난 미국 국무부 관리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전대통령에게 강력 전달하기 위해 제재 위협과 서울에 특사를 파견하는 등의 방법을 다각도로 고려하고 있었다. 특사로는 고위 장성이 유력시됐다.

대사는 머스키 장관과 크리스토퍼 부장관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김대중이 사형선고를 받을 가능성은 있지만 전두환에 의해 감형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미국 측이 보낸 메시지를 전두환이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확신하지만, 사형선고가 감형될 것이라는 사전 약속을 전두환에게서 받아내고 ‘사형선고조차 양국 간에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을 그에게 강조하기 위한 노력을 재차 시도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그 이상 사전 조정된 재판 결과를 요구하는 것에 강력 반대했다. 대사는 그런 노력이 제재 위협을 수반하면 워싱턴으로부터의 서면, 혹은 구두 훈령에 의해 제재조치들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한국 당국자들에게 분명히 밝힌 마당에 미국 대사로서의 위치는 ‘지탱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력 경고했다.

그는 “순전히 정치적인 메시지를 군인사를 통해 전달하는 것은 지난 여름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위험한 절차를 따르는 것으로 한국에 와 있는 우리 군인들 본연의 역할까지 손상을 끼치며 한국측에 의해 쉽게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카터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대사가 미국의 입장을 전달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당시 호주를 방문하고 있던 리처드 홀브룩은 카터 대통령과 머스키 장관의 관심사를 충실히 이행하던 평소의 태도와는 달리 사실상 대사를 지지했다. 그는 군인사를 사절로 파견하는 것에 대한 대사의 반대에 동의하면서 특사로는 맨스필드 주일 대사나 그보다는 자신이 더 적합하다고 제안했다.

홀브룩 특사안은 대사로서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지만 맨스 필드안은 그가 수락한다 해도 논란이 예상됐다. 그가 전설적인 정치인이었지만 당시 그는 전두환과 많은 한국인들이 악감정을 지니고 있던 나라에 주재하는 미국대사였기 때문이다.

글라이스틴 대사가 전두환을 만나는 드라마의 한 장면 [MBC 캡쳐]
글라이스틴 대사가 전두환을 만나는 드라마의 한 장면 [MBC 캡쳐]

워싱턴은 결국 대사가 제안했던 대로 전두환을 만나라는 훈령을 내렸다.

9월 16일.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을 은밀히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카터 대통령이 김대중의 처형이나 그가 사형선고를 받는 것조차 중대한 문제로 생각한다는 점을 전했다.

미국의 요구사항이 무엇이냐는 직설적인 질문에 대사는 사형 선고보다 낮은 형량이었으면 좋겠지만, 한국의 사법절차를 훼손하도록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에 김대중 사건이 대통령에게 넘어오면 정치인다운 자세로 그를 감형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전두환은 확실한 보장은 거부했지만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할 것 같은 뉘앙스만 풍겼다.

그는 “우리가 만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좋지 않은 영향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국민들은 외국의 간섭에 상당히 민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대사가 ‘우호적 카드’로 PL-480법에 의한 곡물판매와 대외군사판매 차관을 삭감하도록 미국 정부에 건의할 수도 있다고 한 말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전두환은 결론적으로 ‘여러 사항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압력 때문에 카터 대통령의 요망 사항을 수용할 자신의 능력이 감소되긴 했어도 대법원에서 그 사건이 자신에게 넘어오면 정치적 사항 뿐 아니라 사법적 사항까지 고려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 자신이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문제는 국내의 정치적 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권적인 측면과 김대중을 자신의 개인적 적이 아닌 고(故) 박정희의 적대자로 생각한다고 한 자신의 말을 염두에 두어 달라는 글라이스틴 대사의 요청을 수락했다.

[위키리크스한국=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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