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우 이사장 "북한이 과도한 기대를 건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천영우 이사장 "북한이 과도한 기대를 건 세 가지 이유가 있다"
  • 조문정 기자
  • 승인 2019.10.08 20:56
  • 수정 2019.10.08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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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롬 美北실무회담은 기선제압 위한 심리전"
"일차적으로 '완전한 핵물질 생산동결' 필요하다"
[사진=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KPFF) 이사장]
2007년 9월 3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6차 6자회담 2단계 회의 폐막식. 왼쪽부터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러시아 외교차관, 천영우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우다웨이 부부장,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국장. (직책은 당시 기준) [사진=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KPFF) 이사장 제공]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이 36년간 외교안보 현장을 누비며 쌓은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8일 외교안보 전문 유튜브 채널 '천영우TV'를 개국했다.

천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한반도평화교섭본부 본부장에 임명돼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로 북핵 협상을 이끌었다. 2007년 그는 '9.19 공동성명'의 구체적인 이행계획인 2.13 합의를 이끌어냈고,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에 올라 '아덴만의 여명' 작전과 '한미 미사일 개정협정', 'G20 정상회의' 등 굵직한 외교·안보 현안을 지휘했다. 

천 이사장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천영우TV'를 통해 시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복잡한 외교안보 현안을 풀어낼 계획이다. <편집자> 

 

"우여곡절 끝에 지난 토요일에 미북 실무협상이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재개됐습니다.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7개월 만이고 판문점 미북 정상회동 이후 3개월 만입니다. 이 회담이 끝나자마자 북한의 수석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오지 않고 빈손으로 왔고, 구태의연한 입장과 태도를 버리지 못해 회담이 결렬됐다'며 책임을 미국에 전가했습니다. 그러자 미 국무부는 '무슨 소리냐, 미국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져갔고 좋은 토론을 했다'며 전혀 다른 반응을 내놨습니다."

 

Q. 제1차 실무회담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첫 만남에서 큰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처음부터 기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1차 실무회담이라는 것은 서로 입장을 설명하고 상대방의 의중을 타진하고, 처음 만나는 수석대표의 스타일이나 내공을 탐색하는 자리입니다. 1차 실무협상에서 서로 입장이 합의되리라고는 전혀 기대할 수 없어요.

원래 첫 협상에서는 어느 쪽이든 어느 협상이든, 상대방에게 최대한을 요구하는 '맥시멀리스트(maximalist) 포지션', 즉 최고의 요구수준을 갖고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도 미국이 북한 마음에 드는 안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도 미국이 자기들이 원하는 입장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갔을 리가 만무합니다.

첫 협상에서는 서로 기선제압을 위해 심리전을 벌입니다. 지금 김명길이 하는 이야기는 협상 초기에 심리전 차원에서 상대방의 기를 누르기 위해서 하는 소리입니다. '당신들이 가져온 입장이 내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 '새로운 아이디어라고 가지고 왔을지 몰라도 우리가 기대한 것과 거리가 있다'고 처음에 포지션을 잡는 것이 협상에서 상식적인 일입니다.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실무회담이 미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질지는 이번 실무회담 한 번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 몇 차례 실무회담을 거쳐서 정상회담으로 갈 만한 합의사항이 나올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갈 수 있지 무조건 정상회담으로 갈지 안 갈지는 지금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Q. 이번 실무회담에 북한이 과도한 기대를 건 이유는?

이번 실무회담에 북한이 좀 과도한 기대를 하고 나온 것 같아요. 지난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지 않으면 협상에 안 나가겠다', '계산법을 바꾸라'고 요구해왔습니다. 이에 부응해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방법'을 언급했습니다. '새로운 방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해임하면서 '볼턴이 북한 비핵화 해법으로 리비아모델을 언급한 것이 큰 실수였다'고 했습니다. 현재 미북간 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는 책임을 존 볼턴에게 뒤집어씌워 북한이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는 존 볼턴을 해임했기 때문에 북한이 상당히 기대를 걸었을지 모릅니다.

북한이 기대를 걸었던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북한이 회담날짜를 발표하자마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즉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고 분명히 문제 삼을 만한 큰 도발인데도 미국은 문제 삼지 않고 예정된 협상에 그대로 나갔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국이 북한과 협상하면서 이렇게까지 굴욕적인 자세로 나간 적은 지금까지 별로 없습니다. 대개 회담 날짜를 정하고 북한이 미국 뺨을 한 대 때린다면 회담을 하더라도 며칠 미루든지 뜸을 더 들이고 나갈 텐데 미국은 북한에 뺨을 한 대 맞고도 북한이 '이래도 협상에 나오겠냐'고 하니 '안 아프다'고 하면서 협상에 나왔어요.

북한은 '이렇게까지 미국이 협상에 매달리며 절박해 하는 것을 보니 우리가 좀 더 세게 쳐도 미국이 양보할 수 있겠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나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북한이 그런 기대를 안고 실무회담에 응했는데 가서 보니 북한이 기대한 것과 너무 거리가 머니까 북한은 미국에 '숙제를 안 해왔다', '연말까지 숙제를 제대로 안 해오면 장거리 미사일도 발사할 수도 있고 핵실험도 다시 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고 미국을 겁박한 셈입니다. 북한이 무슨 배짱으로 미국에 이렇게 기고만장하고 갑질하듯이 나오는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Q. 북한이 기고만장한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실험 중단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중단을 지금까지 자기 공이라고 자랑해왔습니다. 사실 북한은 더는 핵실험이 필요 없을 만큼 충분히 핵실험을 했고 장거리미사일 발사도 더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북한은 할 실험을 다 하고 회담에 나왔는데도 트럼프는 '자기가 대통령이 안 됐다면 미북간 전쟁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미사일 발사 안 하고 핵실험 안 하는 것만 해도 자기 공이다'라고 떠벌려놨지 않습니까.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크게 약점 잡힌 것입니다. 트럼프가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치적을 계속 유지하느냐, 박탈당하느냐가 김정은에게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은 핵실험도 장거리미사일도 실험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트럼프를 협박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한 셈입니다.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내 마음에 드는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지 않으면 당신 대선을 앞두고 당신의 공적을 다 박탈할 수 있다. 좋게 이야기할 때 숙제를 제대로 해오라’고 협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트럼프가 국내 정치적인 이유로 그런 카드를 김정은에게 안겨줬습니다. 북한은 지금 그 카드를 믿고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미국이 대북 제재 등 여러 협상수단을 갖고 있으면서도 미북협상에서 북한에 저렇게 당하고 밀리고, 오히려 북한이 갑질하는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미국 대선까지 '당신이 나한테 고분고분하게 양보하지 않으면 나는 당신 대선까지 영향을 미칠 힘이 있다'는 것을 미국에 상기시킨 것입니다. 북한이 그런 카드를 가지고 미국과 협상하고 있다는 것이 좀 걱정되는 부분입니다.

Q. 비핵화 달성을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조치는?

앞으로 비핵화 달성을 위해 해야 할 조치가 무엇인가를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제일 시급한 것은 핵무기 추가 생산을 막는 것입니다. (판문점 깜짝 회동을 포함해) 미북간 정상회담이 세 번 열렸지만 북한은 열심히 계속 핵무기를 만들고 있어요. 핵무기를 줄이기는 고사하고 계속 핵무기를 증강해왔습니다. 핵무기 증강을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핵무기의 원료인 핵물질, 즉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HEU) 생산을 막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일차적으로 해야 할 일은 '완전한 핵물질 생산동결'입니다.

두 번째로는 이미 생산해서 보유하고 있는 핵물질, 핵무기, 장거리미사일 등을 다 폐기하고 반출하는 것이 진짜 비핵화이고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세 번째는 핵무기, 핵물질을 다 반출한 후에도 계속 핵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북한이 보유하게 두지 않는 것입니다. 핵물질 생산시설을 다 폐기하든지 불능화해야 합니다. 

중요한 핵물질 생산시설로서 영변에는 5MW 원자로, 재처리 시설, 삼중수소 생산시설, 우라늄 농축공장 등이 있고, 영변 밖에는 우라늄 농축시설과 수소폭탄을 만드는 데 필요한 리튬-6 생산공장이 있는 것으로 미 정보당국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어떤 시설은 당장 폐기 가능합니다. 우라늄 농축시설은 방사능 오염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1~2주면 물리적으로 폐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5MW 원자로나 재처리시설은 워낙 방사능 오염이 심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해체하는 데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시설은 해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가동이 불가능하도록 영구불능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시설은 바로 폐기하고 어떤 시설은 영구불능화한 후 폐기는 비핵화가 다 완료된 다음에 10~20년에 걸쳐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네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북한이 신고한 모든 핵물질과 핵무기, 생산시설이 정확한가, 누락하고 숨긴 것은 없는지를 확인하는 단계가 '신고와 검증'입니다. 북한이 처음부터 모든 핵물질과 핵무기, 핵물질 생산시설을 다 신고하고 바로 사찰받으면 다행이지만, 미국에 대한 북한의 불신 수준으로 봐서는 북한이 한꺼번에 모든 것을 신고하고 검증받기를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폐기하기로 약속한 것, 당장 폐기하기로 한 시설과 물질은 그 전에 다 신고하고, 신고한 것 중 누락된 것이 없는지를 확인하는 검증과정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신고와 검증도 한꺼번에 되면 제일 좋지만, 비핵화가 몇 단계로 나뉘듯이 신고와 검증도 몇 단계로 나눠서 할 가능성이 큽니다."

[위키리크스한국=조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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