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프리즘] 檢 반부패수사부 겨냥한 법무부 인권규칙
[WIKI프리즘] 檢 반부패수사부 겨냥한 법무부 인권규칙
  • 윤여진 기자
  • 승인 2019.10.24 19:30
  • 수정 2019.10.24 1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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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표 검찰개혁안' 사지선다 객관식 문제
반부패수사부 수사대상 됐다 사라진 직군들 
"국민인권보호" 목적으로 만든 규칙서 부활

다음은 '조국 표 검찰개혁안'에 관한 문제다. 보기 ①~④ 중 맞는 것을 모두 고르시오. 

ㄱ. 공공단체·국영기업체 임직원     ㄴ. 학교재단 이사장, 대학 총장과 교수     ㄷ. 변호사, 기타 법률사무 종사자     ㄹ. 유가증권시장(코스피시장) 상장 주식회사     ㅁ.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30대 대규모기업집단(대기업) 소속 회사

① 반부패수사부 수사 대상은 ㄱ, ㄴ, ㄷ, ㄹ, ㅁ이다.
② 반부패수사부 수사 대상에서 법제처가 제외한 직군은 ㄱ, ㄴ, ㄷ, ㄹ, ㅁ이다.
③ 고등검사장이 보고받아야 하는 사건은 ㄱ, ㄴ, ㄷ, ㄹ, ㅁ이다.
④ 고등검사장이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할 수 있는 사건은 ㄱ, ㄴ, ㄷ, ㄹ, ㅁ이다.

지난 14일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이 경기 정부과천청사에서 특별수사부 명칭 폐지 등 검찰개혁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4일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이 경기 정부과천청사에서 특별수사부 명칭 폐지 등 검찰개혁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퇴임 직전 조국의 '반부패수사' 넣고 빼고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4부 소속 검사 39명 중 이 문제를 맞힐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검찰청 내부규정을 달달 외운다는 검사시보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풀기 어려운 문제다. 정답은 ①을 뺀 ②③④ 셋을 골라야 맞다. 

①과 ②는 1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22일부터 시행 중인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에 관한 내용이다. 옛 특별수사부 이름을 '반부패수사부'로 바꾸고, 전국 7개 검찰청에 있는 특수부를 서울중앙·광주·대구지검에만 두며, 특수부 수사 대상을 공직자 직무와 중요 기업범죄에 한정하는 게 바뀐 규정의 핵심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이 내용을 14일 오전 11시에 발표하고 정확하게 3시간 뒤 장관직에서 내려왔다. '조국 표 검찰개혁'으로 쓰고 '특수부 개혁'으로 읽는 이유다. 

조 전 장관이 취임에서 사퇴한 이날까지 36일을 버텨 만든 검찰개혁안은 '특별수사부 명칭 폐지 및 축소 직제 개정 시행'이라는 제목의 4장짜리 보도자료에 담겼다. 여기서 특별수사 내지 반부패수사 대상을 "공무원 직무 관련 범죄, 중요 기업범죄 등"으로 좁혔다. 그런데 '등'이라는 여지를 남겨 추가로 어떤 사건을 반부패수사부가 수사하는지 궁금증을 낳았다. 소관부처인 행정안전부도 입법예고를 생략하면서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15일 법제처 심사를 통과하기 전 제출된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 중 반부패수사부(옛 특별수사부) 수사 대상 부분. 
15일 법제처 심사를 통과하기 전 제출된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 중 반부패수사부(옛 특별수사부) 수사 대상 부분. 

<위키리크스한국>이 입수한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사진)에 따르면 '등'은 ㄱ+ㄴ+ㄷ+ㄹ+ㅁ로 구체화됐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된 게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의 이목을 끌만한 중요범죄"다. 하지만 이 여섯 가지는 모두 15일 법제처 심사 과정에서 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법률이 아닌 하위규정에서 특정 직군을 직접수사 대상으로 둔 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22일 시행과 함께 외부에 공개된 이 규정에서 '등'은 '그 밖에 공무원의 직무 관련 범죄와 중요 기업범죄에 준하는 중요범죄'로 변경됐다. 

◇ "국민을 위하여" 인권규칙에서 등장하는 반부패수사부

반부패수사 대상을 직업군으로 나열하는 조 전 장관의 구상은 이렇게 미완으로 그치는 듯했다. 적어도 법무부가 15일부터 18일까지 입법예고한 '인권보호 수사규칙 제정안'이 알려진 16일 전까진 그랬다. 이 규정엔 검찰권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인권을 두텁게 보호"라는 제정이유와 거리가 먼 내용이 들어가 있다. 특정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는 수사를 개시하거나 종결할 때, 영장을 청구할 때 고검장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다. 이 조항은 피의자로 입건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겠다는 것과 결이 다르다. 피의자가 일반 국민이 아닌 'ㄱ+ㄴ+ㄷ+ㄹ+ㅁ'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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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15일부터 18일까지 입법예고한 '인권보호 수사규칙 제정안' 중 반부패수사부 사건을 고검장 보고 대상으로 규정한 부분. 

'인권보호 수사규칙' 제정안(사진) ③과 ④엔 특별수사나 반부패수사라는 말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반부패수사부'라는 단어를 숨긴 대신 그 수사 대상을 나열하는 게 이 규정의 특징이다. 이 대상을 반부패수사부 검사가 입건해 잡음이 일면 고검장은 수사 종결 6개월 내에 사무감사에 착수할 수 있다. 이 내용은 그대로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된다. 고검장 권한으로 반부패수사부를 견제하겠다는 숨은 목적이 이 규정에 있다고 의심하는 이유다. 이대로 규정이 확정되면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한다"는 검찰청법 8조는 그 의미가 사라진다. 세월호 사건에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처럼 법무부를 통해 일선 수사에 개입할 수 있는 틈이 공식적으로 벌어지는 탓이다.
 
심야조사 금지, 장시간조사 제한, 별건수사 금지는 그 타당성과 별개로 피의자 인권과 관련이 있다. '인권보호 수사규칙'에 들어가는 게 자연스러운 이유다. 이와 달리 검찰청법에도 없는 고검장 권한을 이용해 반부패수사부를 견제하는 게 인권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쉬이 알기 어렵다. 설사 관련이 있다 해도 고검장 보고 대상에 반부패 사건은 넣고 형사 사건은 빼는 걸 설명하기는 더욱 어렵다.

'조국 표 검찰개혁'을 한 차례 걸러냈던 법제처가 이번엔 어떤 판단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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