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식 CJ그룹 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에 증인으로 설 의향이 있음을 밝힘에 따라 재판부가 증인으로 택할 것인지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손 회장은 25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한-아세안 CEO 서밋’ 행사장에서 취재진을 만나 “재판부에서 증인으로 오라고 하시면 국민 된 도리로서 가겠다”고 밝혔다.
앞서 이재용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지난 22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 심리로 열린 파기환송심 2차 공판에서 손 회장과 김화진 서울대 로스쿨 교수, 미국 코닝사의 웬델 윅스 회장을 증인으로 출석하게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 바 있다.
손 회장은 지난해 1월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1심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2013년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으로부터 ‘박 전 대통령 뜻’이라며 이미경 CJ 부회장의 퇴진압박을 받았다는 취지의 증언을 한 바 있다.
이 부회장 측은 당시 뇌물공여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가 기업에 직접적으로 압박을 가했다는 점을 호소하려는 것으로 관측된다. 뇌물공여 혐의에 대한 형량을 정할 때 박 전 대통령의 강요가 있었던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측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이하 영재센터) 후원금과 마필 구매비 지원과 관련해 "청와대(박근혜 전 대통령)의 강요와 협박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항소심 재판부 역시 삼성을 '절대 권력의 강요와 협박 피해자'라고 판단했다.
손 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 만큼 조만간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과 의견 교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손 회장은 “아직 (이 부회장 측) 변호인 등과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당초 오는 12월 6일 파기환송심 3차 공판 때 양형 판단에 관해 특검과 변호인단 양측 의견을 듣기로 했었다.
그러나 양형 심리가 예정된 3차 공판에서 재판부가 증인 채택을 수락할 경우 증인신문을 위한 별도의 기일을 잡을 가능성이 커져 일정에 변수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재계사에서 대기업들은 대통령의 눈 밖에 날 경우 상상 이상의 대가를 치르곤 했다.
전두환 시절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이 집안 문제로 청와대 초청 행사에 늦었다가 재계 랭킹 7위였던 그룹이 공중분해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1992년 대권 도전에 나선 이유에 대해 "5공화국 전두환 정권 아래서 힘들지 않았던 기업이 없겠지만, 아우 인영이(한라그룹 창업자)가 옥고를 치르면서 창원중공업을 강탈당했던 기막힌 사건은 잊혀지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나 자신도 5공 집권 초기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때문에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중 하나 포기 압력을 받았다”며 정치권으로부터의 압박이 정계 진출의 직접동기가 됐다고 공개했다.
고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은 지난 2016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 당시 "기업 입장에서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소신 발언을 하기도 했다. 기업 입장에서 대통령의 말은 곧 정부 정책으로 믿고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경련의 고위 관계자는 “한국의 대기업들은 정부와 긴밀한 협력 아래 경제를 발전시켜왔는데, 그 이면에는 대통령들이 보이지 않게 기업 총수들을 강압적으로 부담을 주곤 했었다”며 “지금까지 알려진 것들만 해도 그러한 말들이 추론이 아닌 사실이었음을 반증해주고 있는데, 이재용 재판부도 그런 점을 깊이 고려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한국= 정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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