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인사이드] 우리에게 통일은.... 통일독일 30년 "아직 완전한 하나가 아니다"
[WIKI 인사이드] 우리에게 통일은.... 통일독일 30년 "아직 완전한 하나가 아니다"
  • 최석진 기자
  • 기사승인 2019-12-08 07:33:51
  • 최종수정 2019.12.08 0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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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장벽 위에 올라가 환호하는 동서독 시민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장벽 위에 올라가 환호하는 동서독 시민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분단 70년 역사의 우리나라에게 통일은 '숙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1020세대와 5080세대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생겨나고 있다. 5080세대에겐 어떤 희생을 무릎쓰고라도 이뤄야 하는 것이 '통일'이지만, 대부분 1020세대에겐 통일이 부담스러운 과제로 여겨진다는 통계들이 나온다. 

통일 30년을 맞은 독일은 어떨까. CNN은 최근 뉴스에서 "아직도 독일에는 눈에 띄지 않는 장벽이 여전히 가로놓여 있다. 갈등은 서서히 줄어들고는 있어도,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기사의 전문이다.

베를린 장벽은 30년 전에 무너졌다. 당시 지축을 흔들던 일대 역사적 사건의 충격파는 전 유럽을 휩쓸었으며 수백만 동독인들에게 희망의 불꽃을 전해주었다.

1989년 9월, 공산 독일 민주공화국(GDR)이 동독인들에게 내려졌던 여행 금지 조치를 해제한다고 발표하고 나서 몇 분 만에 기뻐 날뛰는 군중들이 동과 서를 나누고 있던 장벽으로 몰려들었다. 선전과 공포의 통치 시대가 자유와 통일의 시대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 독일에는 눈에 띄지 않는 장벽이 여전히 가로놓여 있다. 갈등은 서서히 줄어들고는 있어도,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공산권의 독일 민주공화국, 그리고 서방의 독일 연방공화국(FDR) 이렇게 두 나라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일 년이 채 못 되어서 한 나라로 재통일되었다.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사회학과의 스테판 마우 교수에 따르면, 특히 경제적 격차와 같은 많은 차이들은 좁혀졌다고 한다.

“그래도 정신세계와 행동 패턴에는 아직도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스테판 마우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구 동독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은 동서독 사이에 많은 차이가 있으며, 민주주의 제도와 사회의 엘리트에 대한 시각 또는 미디어,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태도도 동독 출신과 서독 출신 사이에는 격차가 존재합니다.”

심지어는 자신들 스스로나 국가를 바라보는 관점도 상이하다.

“대부분의 서독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차이는 없다고 말할 겁니다. 통합 과정을 거치면서 모든 격차가 씻겨나갔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대다수 동독 사람들은 동서 간에는 아직도 뚜렷한 격차가 존재한다고 말할 겁니다.”

스테판 마우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일부 여론조사 결과는 동독인들의 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2등 국민’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마우 교수는 말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장벽 붕괴 이후 동독 사람들은 아직도 서독 사람들을 따라잡으려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수십 년의 공산 치하 동안 동독의 경제는 망가졌고, 국민들은 가난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1991년 구 동독의 1인당 GDP는 현재 화폐의 가치로 환산했을 경우 9,701유로(10,717달러)에 머물러있었고, 서독의 경우는 22,687유로(25,062달러)였다. 이러한 격심한 격차는 지난 30년 동안 좁혀지기는 했어도 GDP와 국민 소득 분야에서 동독이 여전히 뒤쳐져있는 것은 사실이다.

‘베렌버그 은행(Berenberg Bank)’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홀거 슈미딩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동서독 간 격차의 핵심은 하나의 특별한 이슈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독일의 부호들 대부분이 서독에 산다는 사실이다.

슈미딩은, 생활수준 측면에서 동독 도시들이 서독 수준에 근접한 반면에 동독에서는 대형 기업들이나 고소득자들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할레 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 내 500개 대기업 가운데 오직 36곳만이 동독에 본사를 두고 있다고 한다.

슈미딩은, 동서독 간의 차이는 좁혀지고 있는 반면에 독일의 도시와 농촌의 지역 간 격차가 새로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농촌 지역은 동독에 더 많이 분포하기 때문에 새로운 경제 격차의 주 요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동독 지역에는 이들 낙후된 지역들이 더 많습니다.”

홀거 슈미딩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독일의 최고 엘리트에 속하는 자리들도 여전히 서독 출신들로 선점되어있다.

“동독 사회 지도급 자리들의 3/4이 서독 출신 사람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스테판 마우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동독은 면적에서도 서독에 비해 훨씬 적으며, 인구수는 말할 것도 없다. 베를린을 제외한다면 6,600만 명 이상이 서독에 거주하는 반면에 구 동독의 인구는 1,250만 명에 불과했었다.

이러한 차이는 특별한 통계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면, 독일의 최고 프로 축구 리그인 분데스리그에 속한 18개의 팀 중 단지 2 개만이 구 동독 출신이다. 또, 서독은 올림픽 메달에서도 단연코 우세하다. 하지만 이를 1인당 수치로 다시 계산하면 동독이 많이 꿀리지는 않는다.

(베를린 EPA=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독일 통일 30주년을 기념해 베를린 '6월 17일 거리'에서 '독일 통일의 날'(Day of German Unity) 축제가 진행되고 있다.(연합뉴스)
독일 통일 30주년을 기념해 베를린에서 '독일 통일의 날'(Day of German Unity) 축제가 진행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전반적으로 동독은 노령 인구가 많고, 더 가난한 사람들이 많으며, 여자보다 남자의 수가 많다. 이러한 결과는 장벽 붕괴의 결과 동독 영토를 벗어나려는 대이동 사태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동서독이 통일되고 난 이후 대략 2백만 명이 서독을 목표로 동독을 떠났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 이동 인구 중 2/3가 여자라는 사실이다.

스테판 마우 교수는, 동독을 떠난 사람들 중 여자들의 숫자가 훨씬 많은 이유는 구 동독 시절 누리던 여자들의 강력한 사회적 지위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녀가 상당히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 반면에 이혼도 매우 빠르게 했습니다. 구 동독의 이혼율은 매우 높았습니다.”

마우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여자들의 지위는 매우 독립적이어서, 남자들 경력이나 뒷받침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여자들은 스스로의 사회 경력을 쌓는 자신만만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동독 출신 여성들은 서독 사회로 편입되는 데에도 훨씬 능률을 발휘했다고, 마우 교수는 말했다. 상당수 남성 이주자들이 동독으로 귀환한 반면에 여성들은 그렇지 않고 스스로 훌륭하게 자리 잡았다.

동독 남성들은 잘 적응을 못했다. 오늘날 동서독 커플의 2/3는 동독 여성과 서독 남성 커플로 구성되어있다.

“동독 여성들은 성공적입니다.”

마우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공식적으로 등록된 독일의 30대 대기업 이사회 임원 약 200명 중 오직 4명만이 동독 출신이데, 그 4명 중 3명이 여성이라고, 마우 교수는 말했다.

여성 취업률은 서독보다 동독이 지금도 높으며, 남녀 간 임금 격차도 눈에 띄게 적다.

“동서독 간에는 직장 문화가 매우 달랐습니다. 동독은 여성들의 사회생활에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홀거 슈미딩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무료 육아 서비스를 제공하고 여성들이 빨리 직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에서는 항상 동독이 훨씬 앞서 갔습니다.

“구 동독의 교사들을 이념 선동가라고 비난할 수는 있어도 동독에서는 적어도 자녀가 유아일 때부터 돌봐줄 누군가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홀거 슈미딩은 이렇게 말했다.

30년의 통합 기간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교육에는 아직도 불평등이 존재한다. 동독의 학생들은 독해와 수학에서 최고점을 기록한다. 또, 고등학교 졸업시험의 경우 동독 학생들이 서독 학생들보다 우수한 성적을 보인다.

교육 제도를 비교함에 있어 권위를 보이고 있는 OECD는 학교 제도는 동독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긍지를 느낄 만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OECD는, 구 서독은 학생들을 초기부터 능력별로 나눠서 교육한 반면에 동독의 교육 제도는 더욱 평등 지향적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 동독은 모든 것을 서독을 쫓아하느라 바빴다. 교육 부문에서조차 그랬다. 옥스퍼드 대학의 배스티안 배타우저 연구원은 이러한 서독 따라하기 결과 동독의 교육은 더욱 불평하게 변해버렸다고 주장했다. 상위권 학생들은 여전히 우수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뒤처질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다.

“통일 전에는 동독의 누구도 10학년을 마치기 전까지는 학교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9학년 제로 바뀐 지금은 정규 교육을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의 숫자가 훨씬 많아지고 있다. 특히, 노동 계급 출신의 학생들이 더욱 그러하다.

“서독 사람들은 언제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과거의 동독을 돌아보는 정서가 있지만, 저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들 들어, 동독에서는 교육의 평등이 보장되었다는 점입니다.”

배타우저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다.

“현재의 결과를 자유에 대한 정치적이고 개인적으로 치러야할 어쩔 수 없는 비용으로 받아들여야할까요? 분명히 그렇기는 할 겁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별도의 시각도 지니고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으로는 독일은 아직도 분열되어있다. 과거 공산권에 속했던 지역 유권자들은 독일의 극우 대안 정당 ‘AfD(Alternative für Deutschland)’를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스테판 마우 교수는 그 이유로 과거의 트라우마를 꼽았다. 대부분의 동독 사람들은 독일 재통일 후 사회가 너무 전광석화처럼 변화하는 바람에 힘든 삶을 살았다.

“많은 사람들이 실업을 겪고, 긴 세월 동안 불안한 상태로 살거나, 심지어는 존재 자체를 위협받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이 보수적이고 방어적이며 사회 변화를 거부하는 쪽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마우 교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다른 차이들도 존재한다. 공식적 통계는, 서독 사회는 더욱 보수적이고 종교적으로 변모하는 반면에 동독에서는 미혼 커플 사이에 태어나는 아이들의 숫자가 증가함을 나타내고 있다. 서독에서는 자식을 낳지 않는 여성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

서독 사람들은 더 많은 차를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 시장조사기관 GfK에 따르면 서독 사람들은 소규모 상점을 더 자주 찾는 반면에 동독 사람들은 쇼핑 횟수가 많지 않으며 주로 대형 슈퍼마켓을 선호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입맛도 다르다. 독일 사람들은 아직도 과거 동독 시절의 상표들을 잊지 못하고 있다. 코카콜라의 동독 버전인 ‘비타 콜라(Vita Cola)’가 그 대표적 예이다.

독일 농식품부에 따르면 동독 사람들이 육류를 더 많이 섭취한다고 한다.

그리고 시장조사기관 GfK의 자료에 의하면 독일 사람들은 거품 목욕을 더 많이 즐긴다고 한다.

wiki@wikileaks-k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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