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포커스] 9.11 현장에서 마지막 운명을 맞게 되는 소방차의 사진 한 장
[월드 포커스] 9.11 현장에서 마지막 운명을 맞게 되는 소방차의 사진 한 장
  • 최석진 기자
  • 기사승인 2019-12-21 07:36:22
  • 최종수정 2019.12.2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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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 맥램이 찍은 '래더 118'의 마지막 질주 모습. '래더 118' 팀은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9.11 테러 현장에서 장렬하게 산화하게 된다.
아론 맥램이 찍은 '래더 118'의 마지막 질주 모습. '래더 118' 팀은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9.11 테러 현장에서 장렬하게 산화하게 된다. 멀리 배경으로 화염에 휩싸인 쌍둥이 빌딩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ATI]

2001년 9월 11일 첫 번째 비행기가 월드트레이드센터의 북쪽 타워에 충돌했을 때 아마추어 사진작가 아론 맥램은 브루클린 다리 근처의 작업장에 막 들어서는 참이었다.

18분 뒤 그는 10층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 창문을 통해 두 번째 항공기가 남쪽 타워를 뚫고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당시 나이가 20살이었던 이 아마추어 사진작가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현장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향해 뛰어갔다.

“눈 아래 펼쳐진 상황들이 꼭 비현실적 모습 같았습니다.”

그는 <뉴욕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화재로 물건들이 불에 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빌딩이 기울어지는 소리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들을 수 있었던 소리라고는 다리를 질주하는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뿐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진을 찍게 된다. 바로 마지막 길이 될 줄도 모르고 현장으로 달려가던 소방차 ‘래더 118(Ladder 118)’과 배경으로 멀리 바라보이는 불타고 있는 쌍둥이빌딩의 사진이었다.

9.11 직전의 ‘래더 118’

운명의 9월 11일 화요일 아침 소방관들은 미도 스트리트에 있는 소방서에서 임무 대기 중이었다. 두 번째 항공기가 충돌한 직후 재난 출동 전화가 걸려왔다. 소방관 버논 체리, 레온 스미스, 조이 아그넬로, 로버트 리건, 피트 베가, 그리고 스콧 데이빗슨은 재빨리 소방차 ‘래더 118’에 올라타고 현장으로 급파되었다.

이들 중 버논 체리는 그 해가 다 가면 퇴임할 작정이었다. 당시 49살이었던 버논 체리는 거의 30년 동안을 소방관으로 봉직하면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는 2001년 당시 뉴욕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흑인 소방관이었으며 재능이 출중한 가수이기도 했다.

‘래더 118’ 팀에서 인종 장벽을 깬 흑인은 한 명 더 있었다. 레온 스미스는 자신이 흑인 소방관들의 친목단체인 ‘불카누스 클럽(Vulcan Society)’의 일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언제나 사람들을 돕고자 했으며, 1982년부터 뉴욕시 소방국 소속으로 일을 해왔었다.

또, 조이 아그넬로는 ‘래더 118’ 팀이 긴급 출동 호출을 받았을 때 36번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있었다. 그는 어린 아들 둘을 둔 자랑스러운 아빠였다.

‘바비’라고도 불리던 로버트 리건 경사도 가정이 있는 가장으로 사회생활을 토목기사로 시작했다가, 딸이 태어나자 딸과 함께 시간을 더 많이 보내기 위해 뉴욕 소방국에 지원했었다.

로버트 리건 경사처럼 피트 베가도 인생의 첫발을 소방관으로 시작하지는 않았었다. 그는 미 공군에서 6년을 근무하면서 ‘사막의 폭풍’ 작전에 참여한 후 명예 제대했다. 그는 1995년에 소방관이 되었으며, 2001년에는 뉴욕 시티 칼리지에서 교양 예술 분야에 문학사(文學士) 과정을 수료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인기 스타 피트 데이비슨의 부친이기도 했던 스콧 데이비슨은 유머 감각과 고결한 정신의 소유자로 특히 크리스마스를 좋아했었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래더 118' 팀원들이 근무하던 미도 스트리트의 소방서 건물
2001년 9.11 테러 당시 '래더 118' 팀원들이 근무하던 미도 스트리트의 소방서 건물 [사진=ATI]

마지막 사진

 ‘래더 118’ 팀이 화마의 현장으로 달려가던 순간에 아론 맥램은 여화와의 증인 시설물에서 성경책을 인쇄하던 자신의 일을 잠시 멈추고 연기가 도시 전체에 번져나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우리는 무언가 의도적인 행위가 저질러졌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다 테러리즘(terrorism)을 나타내는 ‘t’라는 첫 글자를 떠올지는 않았지만 계획적인 어떤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젊은 청년이었던 아론 맥램은 소방관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미도 스트리트에 있는 소방서에 멈춰 서서 소방차들을 바라보는 일이 잦았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소방차가 다리를 가로질러 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옆 동료에게 ‘저기 118이 지나간다’고 소리쳤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소방차가 빠르게 지나가면서 시내에 진입하기 직전 소방차의 붉은 섬광을 찍을 수가 있었다. 당시에는 그는 그 사진이 9.11 테러에 초기 대응하다 순직한 수백 명의 희생자들을 대표하는 사진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래더 118’ 팀의 마지막 순간

아론 맥램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래더 118’ 팀의 마지막 활약상을 영원히 기념하게 되었다. 하지만 ‘래더 118’ 팀의 6명 중 어느 누구도 그날 테러 현장의 잔해를 이기고 살아남지 못했다.

‘래더 118’ 팀은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고 나서 소방차를 그 운명의 매리어트 월드트레이드 호텔 앞에 세웠다.

6명의 대원들은 계단으로 올라가서 공포에 절어있는 수많은 투숙객들의 대피를 도왔다.

호텔의 기계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바비 그라프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빠져나갈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그들은 적어도 2백 명의 목숨을 구했을 겁니다. 물론 제 목숨도 그들이 구해주었지요.”

결과적으로 그날 900명이 넘는 투숙객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쌍둥이 타워가 마침내 붕괴하자 소방대원들도 호텔과 함께 스러져버렸다. ‘래더 118’ 팀원 6명을 포함한 수백 명 소방관들도 함께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몇 개월이 지나서 한 명을 제외한 ‘래더 118’ 팀원 5명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신들은 몇 피트씩 떨어진 채 누워있었다. 현재 아그넬로와 베가, 그리고 체리는 브루클린의 그린우드 묘지에 서로 인접해서 매장되어있다.

이를 두고 조이 아그넬로의 아내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 가까운 곳에 누워 숨졌습니다. 그들이 가까운 곳에서 영면에 드는 것은 당연하지요.”

9.11 테러 현장의 잔해 더미에서 슬픔에 젖고 있는 소방관
9.11 테러 현장의 잔해 더미에서 슬픔에 젖고 있는 소방관 [사진=ATI]

스러져가 영웅들이 남긴 유산

9.11 테러 공격이 있고 일주일이 지난 후 아론 맥램은 그날의 현상된 사진들을 소방서로 가지고 갔다. 브루클린 하이츠에 남아있던 소방관들은 사진들을 보고 ‘래더 118’의 사진이 맞다고 확인해주었다.

“그것이 우리 대원들을 찍은 사진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서는 우리는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은퇴한 소방관 존 소렌티노는 <뉴욕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소감을 밝혔었다.

맥램은 <뉴욕데일리>에 그 사진들을 기부했고, 며칠 후 그 사진들은 신문의 전면을 장식했다.

9.11 테러를 찍은 다른 유명한 사진들과 마찬가지로 비운의 소방차 사진은 현재 애국심과 그날의 비극을 전하고 있다.

“사람들은 한 장의 사진이 천 마디 말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들을 합니다.”

소렌티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사진을 묘사할 어떤 언어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날의 테러 이후 많은 생존자들이 자신들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젖어있는 가운데 아론 맥램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은 ‘래더 118’ 팀이 그날을 어떻게 기억해야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래더 118’ 팀이 속해있던 오래된 소방서에는 그날 9월 11일 아침 이후 상황판이 손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다. 임무에 배치된 6명의 대원들의 이름들이 분필로 아직도 그대로 적혀있는 것이다.

그들의 사진도 그대로 걸려있다. 그 사진들에는 같은 날 순직한 다른 두 명의 대원인 로버트 월래스와 마틴 에간의 사진도 함께 걸려있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인기 스타 피트 데이비슨은 그의 아버지 스콧 데이비슨이 테러 현장에서 순직했을 때 겨우 7살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소방관 배지 숫자인 8418을 문신으로 새기고 있다.

전직 소방관이었던 소렌티노도 말했듯이, 그날 일어났던 일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며, 그날 숨져간 영웅들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911 테러 사진 [ATI]
911 테러 사진 [ATI]

 

dtpcho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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