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작품값 100억원과 연봉 100만원의 간극... 예술가를 위한 나라는 없다?
[포커스] 작품값 100억원과 연봉 100만원의 간극... 예술가를 위한 나라는 없다?
  • 최종원 기자
  • 기사승인 2020-01-26 08:01:17
  • 최종수정 2020.01.26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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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김환기 화백의 대작 '우주'가 국내 최초 작품값 100억원을 돌파했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서 132억원 낙찰된 한국 미술품 최고가 '우주'는 김환기 작품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두 폭은 254×254㎝이며 다양하고 깊은 빛의 푸른 점·색조의 시각적 울림이 세계 시장에서 한국미술 존재감을 입증받은 것이다. 해당 작품은 한국인이 아닌 신원미상의 외국인 구매자에게 낙찰됐다. 

# 칸 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가정부 '문광' 역할을 맡은 이정은 배우. 그는 지난 11월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자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인신매매범이라는 섬뜩한 배역으로 연기에 입문한 이정은 배우는 얼마 전까지도 아르바이트와 연기를 병행했다고 한다. 그는 "1년 연봉이 20만원에 불과한 연극배우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자 눈물의 수상소감을 밝힌 이정은 배우. [SBS 캡처]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자 눈물의 수상소감을 밝힌 이정은 배우. [SBS 캡처]

"돈이 논의될 때 예술은 불가능하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지난 2011년 미국 월 스트리트 근처 주코터 공원에서 70명의 시민들이 '1% vs 99%'를 구호로 시위에 나섰다. 99%의 미국 시민들은 세계 금융위기의 주범 '월 스트리트'의 탐욕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와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도래한 세계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낳은 양극화의 폐해를 느끼게 하는 데 충분했다.

예술계도 이런 양극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상위 1% 예술가들의 삶만 보면 매우 화려해보인다. 유연한 근무 시간과 그들만의 예술 철학은 대중들이 예술을 우러러보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문제는 그 밑에 위치한 예술가들이다. 직업에 대해 자부심 있게 '아티스트'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취재진이 만난 예술가들의 경우 자부심이 높아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흔히 그려지는 '서민'의 모습에 가까웠다. 미술이 좋아서 일을 시작했지만 노동 강도에 비해 벌어들이는 수입은 처참했다.

기자는 지난 23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문래 창작촌'을 찾았다. 이곳은 과거 철강산업 메카로 각광받던 문래동 철강단지로, 궁핍한 예술가들이 값싼 임대료의 사무실을 얻기 위해 이곳으로 이주해오며 창작촌이 형성됐다. 

허름한 철강단지 내 창작촌 건물. [최종원 기자]
허름한 철강단지 내 창작촌 건물. [최종원 기자]

철강단지 내 창작촌 건물은 매우 허름했다. 한창 용역 작업으로 소란스러웠던 해당 건물의 2층에 올라가니 복도 한편에는 담뱃재가 가득 쌓여있었고, 작업장 밖으로 블루투스 스피커로 튼 해외 음악이 흘러나왔다. 작업장 안에는 작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채색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벽화를 그리듯 거대한 도화지에 과감하게 덧칠을 시작했다. 취재진이 다가가자 그는 살짝 경계하는 몸짓을 취했으나,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누면서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다.    

그는 '진마이어스'라는 회화 작가의 작품 채색을 돕는 스태프였다. 그는 "순수하게 창작 활동으로 버는 돈은 정말 적다"며 "재료값, 기타 비용을 정산하면 남는 게 거의 없어 투잡, 쓰리잡을 뛰는 작가들도 많다"는 현실을 폭로했다. 작업이 보통 야간에 진행되는 이유도 일이 끝난 뒤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그는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담배를 구매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담배가 기호품이듯 작품 감상도 기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작품을 소장한다는 것은 예술이 기호를 벗어난다는 점에서 다른 문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유명한 작가가 아닌 이상 전시만으로 돈을 벌기는 매우 힘들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온전히 예술성에 심취해 작품을 구매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정 씨는 “현대미술 작품은 순수한 예술성보다는 투자 정체성이 더욱 강하다”며 “얼마 전 최고가에 거래된 김환기 화백의 ‘우주’도 투자 관점에서 이뤄진 것일 뿐 그 예술성을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는 시각이 대다수”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환경은 예술의 양극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작품 채색을 돕고 있는 보조 스태프. [최종원 기자]
작품 채색을 돕고 있는 보조 스태프. [최종원 기자]

“제가 아는 작가 중에는 수입이 연 100만원인 분도 있어요. 월급이 아니라 연봉입니다. 본인이 이 분야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 이상 개인적으로 전업 작가는 말리고 싶어요.”

정 씨는 아티스트가 낭만적인 직업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미술을 정말 좋아해서 일을 시작해도 수입이 없으면 싫증이 나고, 예술 자체에 대한 흥미도 잃는다는 것이다. 또 월급 150만원 정도를 보장받는 기관별 ‘전속작가’도 있지만 지원자가 매우 많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형편은 정부가 3년에 한 번씩 하는 '예술인 실태조사'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 2015년 전국 5000명을 조사했더니 예술 활동 수입이 월평균 100만원을 겨우 넘긴 수준이었다. 건축·방송·영화인들이 평균을 웃돌았고 문인은 월 20만원에도 못 미쳤다. 응답자 3분의 1은 예술 활동 수입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대부분 아르바이트나 부업으로 생계를 해결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도 사실 예술인 복지법이 있다. 이는 한 예술가의 생활고에 따른 죽음 이후에 만들어진 법인데, 실질적으로 혜택을 받은 예술인 또한 드물며 정해진 일정 부분의 창작 활동에만 국한돼 있어 조건 또한 매우 까다로운 편이다. 일반 사람들도 생활고로 힘든데 예술인들의 생활고에 지급되는 부분에 대한 불만적인 목소리도 터져 나와 예술인들의 생활은 여전히 녹록치 않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예술가들은 시위도 안하고 조용한 것 같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시위는 결국 서로 으쌰으쌰 해보자는 건데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고 답했다. 이어 “일당이 만원이 채 안되고 인턴십도 무급인 경우가 대다수라 시위로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위키리크스한국=최종원 기자]

sus@wikileaks-k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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