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67) 머스키 장관, 주한미대사에게 전두환의 잘못에 대한 질책을 퍼붓다
청와대-백악관 X파일(67) 머스키 장관, 주한미대사에게 전두환의 잘못에 대한 질책을 퍼붓다
  • 특별취재팀
  • 승인 2020.02.05 11:36
  • 수정 2020.02.0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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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청와대 백악관 x파일

1980년 11월 28일.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당선자 캠프의 리처드 앨런을 정권 인수팀 사무실에서 만났다.
 
앨런이 무척 바쁘다는 점을 강조했기 때문에 대사는 레이건 대통령 당선자가 김대중의 처형에 강력 반대한다는 점을 전두환에게 전해줄 것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을 최대한 간략하게 절제해 말했다. (앨런은 레이건 정권 출범 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직을 맡게 된다.)

앨런은 “그 문제라면 나도 이미 알고 있다”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는 어떻게 대처하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무슨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는 듯 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머스키 장관 및 크리스토퍼 차관과도 기억될 만한 미팅을 가졌다. 리처드 홀브룩이 잠시 합석했지만, 그 외에 배석했던 사람은 없었다.

머스키가 대사를 보자고 청했는데, 대사는 잠시 동안이나마 동거동락했던 노고를 치하하며 등이라도 두드려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머스키 장관은 대신 전두환의 모든 잘못에 대한 질책을 대사에게 퍼부으며 김대중의 사형선고를 공개적으로 비난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다시 한 번 따져 물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성난 어조로 공개적인 비난 성명이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올 이유를 설명했다.

미국 정부가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자제해왔고 전두환이 미국의 침묵을 바라는 중대한 시국에 비난 성명을 내는 것을 옳지 않으며, 선거 패배로 물러나는 행정부의 때 늦은 공식성명으로 인권단체들의 환심을 살수 있을지는 몰라도 새로 출범하는 정부의 김대중 구명 노력을 매우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빈정거리는 듯한 대사의 말이 크리스토퍼 차관까지 자극하는 바람에 이들은 거의 2시간이나 입씨름을 벌였다. 한참 동안 언쟁이 있은 뒤, 답답한 심정을 털어낸 머스키 장관은 평소의 친근한 매너를 되찾으며 대사의 노고를 치하했다.

대사는 훗날 “그 일은 약간 놀라운 사건으로, 내가 그간 신중한 논거에 입각해 국무장관에게 보낸 그 모든 보고서는 읽어보기나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내가 워싱턴에 돌아오기 직전 보낸 상황판단 보고서 서두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쓴 내게도 책임이 있는지 모른다. 어쨌든 아무런 공식성명서가 발표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최근까지도 그런 자제의 자세를 유지하도록 머스키 장관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랬기 때문에 리처드 앨런의 글을 읽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머스키 장관은 다음달인 12월 앨런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자리에서 한국 측이 김대중을 죽이려 하니 자신과 함께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일에 동참해줄 것으로 앨런에게 청했다. 그러나 앨런은 대통령 당선자와 상의한 후 그 제안을 거절했다.

윌리엄 글라이스틴 대사, 전두환 대통령, 리처드 앨런 보좌관,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 (왼쪽 위부터)
윌리엄 글라이스틴 대사, 전두환 대통령, 리처드 앨런 보좌관,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 (왼쪽 위부터)

워싱턴에서 일련의 회담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온 글라이스틴 대사는 세 방면의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주로 전대통령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정권교체로 권력이 분산된 본국의 사정 때문이기도 했다. 일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불확실성을 감수하면서 그의 노력이 주효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쪽에 힘을 쏟았다.

특히 전두환을 상대로 한 카터 행정부의 마지막 호소 실현에 박차를 가하고 김대중의 사형선고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려는 도쿄와 워싱턴의 집요한 압력에 계속 반대했다.

그는 서울에서는 레이건 대통령 당선자가 김대중의 처형에 강력 반대한다는 입장을 확실히 표명하도록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절감하고 있었다.

카터 행정부의 마지막 조치에 대해 전 대통령은 미련 이상의 관심을 갖고 있었다. 김대중 문제에 대해 카터 대통령이나 머스키 장관이 공개적인 비난의 포문을 연다면 한국 군부와 일반 대중에 미칠 잠재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전대통령의 결정을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있었다. 전두환은 글라이스틴 대사에게도 이 문제에 관해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두환은 워싱턴의 충동적인 행동을 잠재워 준 대사의 역할을 치하했다. 더욱이 그가 자신의 정권에 대한 레이건 대통령 당선자의 승인을 최우선적으로 바라고 있음에는 틀림없었지만 카터 행정부가 최후 순간에 정책을 유화시켜 주는 것으로 그런 문이 열린다면 한국에 미칠 효과는 한층 커질 것이었다.

그런 생각에서 대사는 해럴드 브라운 국방장관이 특사로 서울을 방문해 김대중의 사면을 위한 카터 대통령 최후의 노력을 대신하도록 워싱턴에 건의했다. 워싱턴에 머무는 동안에도 그런 생각을 적극 추진해 브라운 장관의 지원 약속을 받아냈었다.

대사는 서울에 귀임하자마자 그 의견을 정식으로 제안했고 본국에서는 즉각 전대통령에게 브라운 장관의 방한 의사를 전달하라는 훈령이 왔다. 대외적으로 브라운 장관의 방한은 정례적인 안보협의회의 참석이 아닌 쌍방의 안보문제협의를 위한 것으로 돼 있었다. 그러나 한국측은 브라운 장관이 카터 및 머스키와 조율을 거친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위키리크스한국=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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