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사명변경 러시...‘경영쇄신’ ‘위기극복’ 출발점 될까?
재계, 사명변경 러시...‘경영쇄신’ ‘위기극복’ 출발점 될까?
  • 양철승 기자
  • 승인 2020.02.11 13:52
  • 수정 2020.02.1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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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합병, 글로벌화, 사업확장 등 이유 제각각
리브랜딩, 마케팅 비용 수십~수백억원 달해
진정한 경영혁신 없이는 ‘약’보다 ‘독’ 될수도

 

재계에 사명 변경 바람이 거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20여 개사가 사명을 변경했거나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중소업체를 포함하면 30여 개사를 훌쩍 넘는다.

인수합병, 경영혁신, 글로벌화 등 사명변경의 변(辯)은 다양하지만 이들 기업은 하나 같이 혁신과 변화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진정한 혁신 없는 사명변경은 불필요한 비용 증가와 정체성 혼동을 초래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사명변경은 전 산업계의 트렌드

한화솔루션(한화케미칼), 코웨이(웅진코웨이), 하나은행(KEB하나은행), 메디앙스(보령메디앙스), SK렌터카(AJ렌터카), LG헬로비전(CJ헬로), SK디스커버리(SK케미칼), 던킨(던킨도너츠), 카카오페이증권(바로투자증권), 교보자산신탁(생보부동산신탁), 비욘드자산운용(유리치자산운용), BYN블랙야크(블랙야크), 디앤액트(화승).

올해 들어 사명을 변경한 주요 기업들이다. 이외에도 SK텔레콤을 필두로 한 SK그룹 계열사와 HDC현대산업개발(아시아나항공), 현대상선, 한국콜마, 신일산업, 한솔씨앤피, 메리츠종금증권 등의 기업들이 사명변경을 사실상 결정지은 상태다.

새해가 시작된 지 이제 1개월여 남짓한 시점임을 감안하면 가히 역대급이라 할 수 있다. 분야도 화학, 조선, 건설, 식품·유통, IT, 금융, 제약, 아웃도어 등 전 산업계를 망라한다.

사명변경의 이유는 제각각이다. 한화솔루션, 코웨이, SK렌터카, LG헬로비전, 카카오페이증권, 현대산업개발 등 인수합병에 따른 후속조치가 가장 많고 SK텔레콤, BYN블랙야크, 던킨, 디앤액트, 한국콜마, 신일산업 등은 사업확장이나 제2의 도약, 세계시장 공략을 표방하고 있다.

또 하나은행은 그룹 브랜드 일원화, 메디앙스는 계열분리, 메리츠종금증권은 종금업 라이선스 만료가 핵심 동인이다. 현대상선과 SK디스커버리의 경우 각각 인수합병과 지주사 전환이 표면적 이유지만 경영악화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생긴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하는 효과도 노렸다는 분석이다.

이중에서도 SK는 그룹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사명변경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최태원 회장이 이천 포럼에서 “기업 이름으로 ‘에너지’, ‘화학’ 등을 쓰게 되면 근본적 변화를 꾀하기 힘들다”고 피력한데 따른 것이다.

현재 SK텔레콤, SK종합화학, SK인천석유화학, SK브로드밴드 등이 새로운 사명에 대한 내부 의견을 수렴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 지주사인 SK가 특허청에 ‘SK센트라(centra)’, ‘SK넥스트림(nextream)’, ‘SK뉴웬(newen)’, ‘SK엔솔브(ensolve)’ 등의 상표를 출원함으로써 상반기 중 사명변경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각 계열사가 참고하는 모범답안은 SK이노베이션이다. 미래 지향적이고 사업 확장에도 유연한 사명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11년 사명변경 이후 기존 주축사업인 정유와 석유화학을 넘어 배터리, 소재 등의 분야로 영토를 확장하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불투명한 경영환경을 타개하라

재계는 이 같은 사명변경 러시가 국내 산업계의 현 경영위기를 여실히 증명한다고 말한다. 한 관계자는 “경영혁신, 사업확장, 글로벌 진출 등 대다수 기업들이 내세운 사명변경 사유는 불투명한 경영환경을 혁신과 변화를 통해 타개하기 위한 위기감의 발로와도 같다”며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활발한 인수합병과 산업구조 재편 역시 경쟁력을 키워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절대다수의 전문가들도 올해의 경영환경이 절대 녹록지 않다는 것에 동의한다. 지난해 많은 기업들을 힘들게 했던 미중 무역분쟁과 한일 경제마찰의 여파가 여전한데다 연초부터 미국-이란 충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쇼크까지 대형 악재가 연이어 발발하며 올해 글로벌 경제 전망을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공개한 ‘KDI 경제동향’ 2월호에서 “신종 코로나에 따른 대외 수요 위축이 수출 회복을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글로벌 경기 개선 가능성을 시사하는 지표가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경기 하방 압력이 확대돼 글로벌 경제 회복을 제약할 가능성을 배제키 어렵다”고 밝혔다.

무디스 애널리틱스도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보고서를 내고 올해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경제 성장률을 2.8%에서 2.5%로 낮췄고, 영국 경제분석기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2.5%에서 2.3%로 하향 조정했다. 영국 싱크탱크인 해외개발연구소(ODI)는 신종 코로나에 따른 글로벌 경제 손실액이 약 3,600억 달러(약 426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사스(SARS) 때의 약 500억 달러(약 59조2,000억원) 대비 7배나 큰 경제적 피해가 세계 경제에 가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업계는 이 같은 위기상황 속에서 시도되는 사명변경이 기업 내부적으로 분위기를 쇄신해 구성원들의 혁신 의지를 결집·고무시킬 수 있고, 외적으로도 기존의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혁신을 추구할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NHN만 해도 과거 한게임에서 NHN엔터테인먼트로, 다시 지난해 NHN으로 사명을 바꾸면서 게임회사,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이미지를 벗고 인공지능(AI), 핀테크,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기업으로서 입지를 다졌다”며 “사명변경을 염두에 둔 기업들이 SK이노베이션과 함께 본받아야 할 사례라고 본다”고 전했다.

◇실제적 혁신으로 부가가치 창출해야

문제는 실질적 혁신과 투자 의지 없이 보여주기식 사명변경을 추진하는 경우다. 이는 장기적 경영적자에 빠진 상장기업들이 주가부양을 위해 자주 범하는 실수로, 자칫 어렵게 쌓아온 인지도만 날리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섣부른 사명변경의 최대 부작용은 비용이다. 사명변경에는 수십~수백억원의 비용이 투입된다. 로고와 간판부터 사내에서 사용하는 종이봉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교체해야 하는 탓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영상황에 이런 추가 비용부담은 경영실적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그나마 B2B 기업은 나은 편이다. B2C 기업의 경우 일선 대리점(점포)을 일시에 리모델링해야 해 비용부담이 훨씬 크다.

실례로 지난 2018년 ING생명이 현재의 오렌지라이프로 사명을 변경할 때 책정한 리브랜딩 비용이 215억원이었고, BGF리테일은 2012년 훼미리마트를 CU로 변경하면서 전국 점포의 간판과 인테리어 리모델링에 약 500억원을 사용했다. 지난 2005년 그룹 로고를 교체한 SK는 SK텔레콤 대리점과 SK주유소의 간판 교체에 들인 비용만 1,000억원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재계 관계자는 “여기에 기존 인지도 상실과 새로운 사명 홍보비용까지 감당해야 한다”며 “실제적 경영혁신을 이뤄 그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사명변경은 득보다 실이 많은 장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사명변경은 기업의 정체성을 뒤흔들 수 있다. 사명변경 이후 고객에게 그에 합당한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거나 야심 차게 도전한 신규 사업이 실패하는 경우에 그렇다.

재계 관계자는 “결국 사명변경은 기업에게 있어 양날의 검과 다를 바 없다”며 “그럼에도 올해 국내외 경영환경상 다양한 이유로 사명변경에 나설 기업들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한국=양철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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