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노태악 대법관 후보 '긴급조치 발령은 합법' 판결... 文 대통령 임명동의요청서엔 "국민의 기본권 보장" 
[단독] 노태악 대법관 후보 '긴급조치 발령은 합법' 판결... 文 대통령 임명동의요청서엔 "국민의 기본권 보장"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0.02.12 13:55
  • 수정 2020.02.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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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임명동의 요청사유서, 과거 판결문 비교
"박정희, 긴급조치9호 발령은 불법아니다" 판결
긴급조치판결은 '양승태-박근혜 거래' 대표사례
국회 보낸 요청서엔 "재판 독립에 확고한 철학"
노태악 대법관 후보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한 노태악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노태악(사진) 대법관 후보자가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헌법의 수호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대통령 임명동의 요청 사유와 달리 '긴급조치 9호는 불법행위가 아니다'라고 다수 판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긴급조치는 유신독재 시절 영장 없이 사람을 체포하고 구금할 수 있다고 규정한 대표적인 '악법'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긴급조치 9호는 앞서 발표된 긴급조치 1~8호를 집대성한 '악법 중 악법'으로 꼽힌다. 긴급조치 발령은 헌법에서 보장한 영장주의에 어긋나 불법이라고 인정한 법관들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 양 전 대법원장과 인식을 같이한 판사를 대법관 후보자로 임명하겠다는 것이다.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관 청사 앞에서 유신정권 긴급조치 9호 피해자 이대수씨가 서 있다. 이씨 오른쪽 어깨 너머로 대법원 상징 단어인 '자유' '평등' '정의'가 각인된 정문이 보인다. [사진=윤여진 기자]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관 청사 앞에서 유신정권 긴급조치 9호 피해자 이대수씨가 서 있다. 이씨 오른쪽 어깨 너머로 대법원 상징 단어인 '자유' '평등' '정의'가 각인된 정문이 보인다. [사진=윤여진 기자]

12일 <위키리크스한국>이 입수한 긴급조치 9호 피해자 이대수(사진)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제19민사부(당시 재판장 노태악)는 2015년 4월 3일 1심에서 원고 승소한 판결을 취소하고 청구를 기각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사진)에서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라며 "대통령의 이러한 권력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재판부는 긴급조치 피해자가 국가배상을 청구한 다른 사건 4건에서도 같은 이유로 전원 기각했다. 

재판부 논리는 긴급조치 9호가 유신헌법에 근거를 둔 만큼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이 영구 독재를 꿈꾸며 1972년 개정한 유신헌법 제53조는 '천재지변, 재정·경제위기, 국가 안전보장, 공공의 안녕질서를 위해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긴급조치 9호가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당시 재판부 판단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앞서 내놓은 해석에 어긋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4월 18일 "국가긴급권에 관한 대통령의 결단은 헌법상의 발동 요건 및 한계에 부합하여야 하고"라며 "유신헌법 제53조에 규정된 긴급조치권 역시 예외가 될 수는 없다"는 이유로 긴급조치 9호 발령행위에 위헌·무효를 선고했다. 

전합 판결 취지는 긴급조치 9호가 유신헌법에 비춰봐도 위헌이라는 것이다. 헌법에 근거가 있는 국가긴급권 행사라도 '제한 요건에서 벗어나면 무효'인 까닭이다. 그런데 이 판결이 있고 2년이 지난 뒤 노 후보자가 속한 재판부는 '헌법에 근거가 있으니까 합법'이라는 정반대 판결을 내놨다. 

노 후보자가 이같은 판결을 내놓은 배경을 두고 대법관 후보로 분류되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로서 당시 제청권자인 양 전 대법원장 행보를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온다.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구속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 공소장에 따르면 '긴급조치 발령행위는 불법행위'라고 판단한 법관들은 '물의 야기 법관'으로 찍혀 분류됐다. 

검찰 수사 결과 당시 이 블랙리스트 문건에 최종 '브이' 체크를 한 인물은 양 전 대법원장으로 드러났다. 여기엔 이번 정부에서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된 김기영 당시 부장판사도 들어가 있다. 

2015년 9월 당시 서울중앙지법 민사11부 재판장이던 김 재판관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인용해 "긴급조치 발령 자체가 위법·불법행위"라며 국가배상을 인정했다. 이에 양 전 대법원장은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징계 조치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게 검찰 수사 결과다. 

검찰은 나아가 이같은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가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가 밀접하게 접촉한 결과라고 의심한다. 양 전 대법원장 지시로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는 '국정운영 협조 사례'로 긴급조치 배상판결이 포함돼 있다. 

이 문건에는 "긴급조치배상판결을 통해 국가배상 책임을 제한함으로써 5500억 원 가량의 국가예산을 절감하였는데 향후에도 계속하여 국정운영에 협조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양승태 대법원'이 긴급조치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연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 딸인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염두에 둔 행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 제출한 노태악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 요청사유서 일부.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 제출한 노태악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 요청사유서 일부.

그런데도 본지가 입수한 '대법관 임명동의 요청사유서'(사진)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노 후보자를 두고 "법관으로서 뛰어난 능력과 자질을 바탕으로 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헌법 수호의 의지, 합리적으로 공정한 재판을 통한 사법부 신뢰 회복 및 재판의 독립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대상자"라고 평가했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노 후보자가 기각한 긴급조치 국가배상청구 사건은 사법부가 상고법원 도입을 목적으로 독립하지 않고 행정부와 '권력융합'을 시도한 대표적 사례다. 이같은 공소사실을 애써 무시했다는 듯 임명동의 이유로 노 후보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법부 신뢰 회복'과 '재판의 독립'을 운운한 건 모순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헌법학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노 후보자 판결이) 법이론상으로는 나름의 근거가 있을지 몰라도, 유신 피해자 권리 보호에 역행한 것으로 적어도 민주화와 기본권 보장에 투철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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