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인사이드] 긴급조치 피해자가 장제원 의원에게 '고맙다' 말한 사연
[WIKI 인사이드] 긴급조치 피해자가 장제원 의원에게 '고맙다' 말한 사연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0.02.20 17:30
  • 수정 2020.02.2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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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노태악 대법관후보자 임명동의 국회 인사청문회 스케치
유신·박정희 비판했던 여당 '긴급조치 발령 합법' 판결엔 침묵
정작 비판은 미래통합당 장제원 "박정희 비판하면 잡아갔다"
노 후보자 "위로의 말씀은" 사과는 "불법행위를 당한"에 한정
노태악(왼쪽) 대법관 후보자가 19일 오전 9시 20분쯤 대법관후보자임명동의인사청문특별위원회가 열릴 예정인 국회 245호에 미리 들러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의 도움을 받아 '선서' 자리에 서보고 있다. [사진=윤여진 기자]
노태악(왼쪽) 대법관 후보자가 19일 오전 9시 20분쯤 대법관후보자임명동의인사청문특별위원회가 열릴 예정인 국회 245호에 미리 들러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의 도움을 받아 '선서' 자리에 서보고 있다. [사진=윤여진 기자]

"법관으로 연륜을 쌓아갈수록 재판이 보람보다는 적지 않은 부담과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기계적인 법 적용을 통해 형식적 결론에 이른 것은 아닌지..."

19일 오전 11시가 살짝 넘은 국회 245호. 노태악 대법관 후보자가 발언대에 서 미리 작성한 A4 용지 11쪽 분량의 '인사말씀'을 읽어내려갔다. 일제강점기 시절 비밀항일단체에서 활동한 조부 이력, 그에 더해진 염색공장에서 돈을 번 부친을 떠올린 기억은 인사청문위원 11명을 숨죽이게 했다. 이날 방청석에 앉은 이대수(64)씨도 몸을 꼼짝 않고 회의장 공중에 퍼지는 노 후보자 말을 모두 삼켰다. 그런 그가 몸을 움찔한 건 그때였다. "기계적인 법 적용" "형식적 결론" 이씨는 구제받지 못한 긴급조치 피해자다. 

◇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합니다"
지난 2015년 4월 3일 서울고법 제19민사부는 유신 시절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던 이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금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장 노태악 부장판사가 읊은 기각 이유는 간명했다. 

'대통령은 긴급조치권 행사로 국민 개개인에게 민사상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2014년 6월 이씨에게 77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배상하라고 한 1심 법원 판결은 그렇게 파기됐다. 1977년 체포된 이후 27년 만에 국가에게 받아낸 사과는 그렇게 없던 일이 됐다. 노태악 판사는 같은 이유로 긴급조치 피해자 5명이 다른 재판에서 청구한 손해배상을 모두 기각했다. 

1977년 당시 검찰이 이대수씨를 긴급조치 9호 위반 등 혐이로 재판에 넘길 때 작성한 공소장. 죄명란에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위반'이란 활자가 뚜렷하다. [사진=이대수씨 제공]
1977년 당시 검찰이 이대수씨를 긴급조치 9호 위반 등 혐이로 재판에 넘길 때 작성한 공소장. 죄명란에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위반'이란 활자가 뚜렷하다. [사진=이대수씨 제공]

◇ 그해 가을, 유신은 언론을 탄압하지 않았다
1977년 11월 29일 서울지방검찰청이 서울형사지방법원에 보낸 이씨 공소장 테두리는 누런 색깔을 입었지만 검정 활자만큼은 여전히 또렷했다. 검사가 박엽지에서 타자기로 친 이 공문서엔 이씨 혐의가 가득하다. 이씨를 재판에 넘긴 죄목은 '허위사실유포죄' 긴급조치 9호다.

그해 10월 18일, 연세대 3학년 이씨는 기독학생회 사무실에서 반정부시위가 열린다는 공고를 담은 '반체제 유인물'을 학내 여기저기 뿌렸다. 유인물엔 "언론 자유를 회복하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당시 전국 각지 대학에선 유신정권 반대 운동이 펼쳐졌고 이씨는 운동 거점 중 하나인 연세대에서 이 흐름에 동참했다. 대가는 영장 없는 체포와 구금, 그리고 '징역 2년' 판결문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근거로 선언한 긴급조치 9호는 허위사실유포를 처벌했다. 언론을 탄압한 유신의 속살은 거짓이어야만 했다. 

19일 노태악 대법관 후보자가 인사청문 절차가 종료된 후 야당 의원에 이어 여당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윤여진 기자]
19일 노태악 대법관 후보자가 인사청문 절차가 종료된 후 야당 의원에 이어 여당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속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이날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동의를 요청한 노 후보자가 생각보다 보수적이란 점에서 임명동의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여당 역시 청문경과보고서가 당일 채택된 것에 만족을 표했다. [사진=윤여진 기자]

◇ 장제원 "박정희 비판하면 잡아가는 게 긴급조치"
이날 청문회에서 유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건 역설적이게도 미래통합당 소속 장제원 의원이다. 미래통합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배출한 새누리당 후신이다. 그런 역사를 가진 통합당 소속 의원이 이날 청문회에서 유일하게 '박정희' 이름 석 자를 꺼낸 의원이라는 건 이례적이다. 그간 박정희 정권을 꾸준히 비판해온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입에선 나오지 않은 말이다. 

장 의원은 유신 시절 긴급조치 1~8호를 집대성한 긴급조치 9호를 두고 "강의 시간에 박정희를 비판하면 잡아가는 것"이라고 쉽게 규정했다. 너무나도 간단한 정의지만 그게 사실이다. 

방청석에 앉은 긴급조치 피해자 이씨가 실제 그랬다. 그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박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대학교 안에서 뿌렸을 뿐이다. 그게 전부인 이씨에게 노 후보자는 '고문과 불법 자백 강요가 수반되지 않는 수사와 재판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법관이 내준 영장 없이 체포돼 수사가 이뤄졌는데 불법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 '고문이 있어야 불법' 법리는 순수할까
영장 없는 체포는 불법일까 아닐까. 이씨가 청구한 손해배상 청구를 노 후보자가 기각하려면 '긴급조치 9호는 위헌이자 무효'라고 선고한 2013년 4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을 넘어야 했다. 전합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이 영장주의를 담은 유신헌법에 비춰봐도 위헌이라고 했다. 

노 후보자는 이씨 판결문에서 "긴급조치 9호가 사후적으로 법원에서 위헌·무효로 선언되었다고 하더라도"라는 전제를 붙였다. 위헌임에도 불구하고 불법은 아니라는 노 후보자 판결의 토대는 역시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전합 판결문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인 2015년 4월 26일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라고 판시했다. 긴급조치 위헌 선언과 불법행위 판단은 별개라는 뜻이다. 

이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이 내부 문건에서 자평한 '박근혜 정부 국정운영 협력사례'다.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면담한 자리에서 '긴급조치 국가배상 기각' 판결을 두고 "국가 예산이 절감됐다"며 사법부의 공을 드러냈다. 결국 긴급조치를 태동한 박정희 대통령을 의식한 제안으로 사용된 게 대법원 3부 판결이다. 

그런데도 이날 청문회 오전까지 노 후보자는 '왜 그렇게 판단했나'라는 대안신당 소속 박지원 의원 물음에 "(대법원이 긴급조치 9호를) 사후적으로 위헌으로 선언했다 해도 판례 법리가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본인이 모두발언에서 경계한 '기계적인 법 적용'을 굳이 변명하지 않는 태도였다. 

'노태악 대법과 후보 국회 임명동의안 심사를 위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야당 간사인 장제원 미래통합당 의원이 청문회 도중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문구를 조율하고 있다. 이날 노태악 후보자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법무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수사·기소 검사 분리 제도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면서 통합당은 임명동의에 찬성하는 것으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통합당은 지난 2015년 긴급조치 국가배상청청구사건 기각 판결에 사과하면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할 수 있다고 노 후보자에게 엄포를 놓기도 했다. 임명동의를 위한 일종의 '출구전략'으로 읽힌다. [사진=윤여진 기자]
19일 '노태악 대법과 후보 국회 임명동의안 심사를 위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범계(왼쪽에서 두번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야당 간사인 장제원 미래통합당 의원이 청문회 도중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문구를 조율하고 있다. 이날 노태악 후보자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법무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수사·기소 검사 분리 제도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면서 통합당은 임명동의에 찬성하는 것으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통합당은 지난 2015년 긴급조치 국가배상청청구사건 기각 판결에 사과하면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할 수 있다고 노 후보자에게 엄포를 놓기도 했다. 임명동의를 위한 일종의 '출구전략'으로 읽힌다. [사진=윤여진 기자]

◇ '보고서 채택' 엄포에 고개 숙인 노태악
이날 청문회에서 오전 내내 '고문은 없었으니까 합법'이란 명제를 굽히지 않던 노 후보자는 "사과할 일 있으면 사과하고, 판결이 옳았다고 생각하면 옳았다고 얘기를 해야 청문보고서를 채택할 수 있다"는 장 의원 엄포에 "알겠다"며 태도를 바꿨다. 

통상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에 반대하는 제1야당은 본회의에 올라온 동의안 투표에 불참하거나 반대한다. 대법원장 제청 대법관 후보가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해 낙마한 사례는 없다. 노 후보자로선 청문회에서 잇따른 질타보다 임명동의안 부결이 더 감당할 수 없는 불명예였을까. 

이씨 청구를 기각한 건 대법원 판례를 따른 것에 불과하다는 노 후보자 발언에 장 의원은 "이것이야말로 기계적이고, 법적 재단이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발언에서 노 후보자가 준비한 말을 그대로 돌려준 것이다. 이 대목에서 노 후보자는 고개를 숙이고 눈길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마이크를 바로 잡았다. 수긍을 표현하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 노태악 "위로의 말씀은 드린다" 
다음은 노 후보자가 긴급조치 피해자에게 사과한 전문이다. 

"예 알겠습니다. 존경하는 의원님들께서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 권위주의 시대에 그렇게 가혹한 불법행위를 당하고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은 전해드립니다. 그리고 그 판결에 대해서는, 제가 사실은 그 당시는 물론, 대법원 판결에 따른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의원님 지적하신 부분들, 제가 만약에 또 제가 그런 사건들을 하게 되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노 후보자 사과는 두 가지인데, 한정적이면서 미래지향적이라 복잡하다. 먼저 유신 정권 시절 긴급조치 피해자들에게 영장 없이 재판이 진행된 것은 일단 사법부 일원으로 사과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위로의 말씀은"이라는 한정적 어법을 썼다. 이마저도 불법행위를 인정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 

두 번째는 본인이 재판한 사건에서 대법원 판례를 들어 불법행위를 인정하지 않은 판단을 재고해보겠다는 뜻이다. 이대로라면 불법행위를 재판에서 인정받지 못한 이씨는 사과를 받은 게 아니다. 

19일 국회에서 인사청문 절차가 종료된 후 노태악(가장 오른쪽) 대법관 후보자가 회의장을 빠져나가려던 차에 긴급조치 피해자 이대수(가장 왼쪽)씨로부터 건네받은 명함을 들여다 보고있다. [사진=윤여진 기자]
19일 국회에서 인사청문 절차가 종료된 후 노태악(가장 오른쪽) 대법관 후보자가 회의장을 빠져나가려던 차에 긴급조치 피해자 이대수(가장 왼쪽)씨로부터 건네받은 명함을 들여다 보고있다. [사진=윤여진 기자]

◇ 판사와 피고, 다시 만나다
이씨는 노 후보자 사과를 받아들였을까. 이날 오후 6시쯤 노 후보자는 "대법관으로 임명된다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다짐으로 모든 발언을 마쳤다. 회의장 밖으로 발걸음을 떼는 노 후보자를 따라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이 뒤따랐지만, 이 행렬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방청석으로부터 뻗어오는 손길에 가로막힌 까닭이다. 

노 후보자가 그 손길로부터 받은 건 이씨가 건넨 '사단법인 긴급조치사람들 사무처장 이대수' 명함이었다. 개인이 아닌 피해자를 대표한 자격으로 청문회를 지켜봤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이씨가 노 후보자를 향해 꺼낸 말은 건조하고 절박했다. '긴급조치 피해자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노태악 대법관 후보자 국회임명동의 인사청문특별위원회'가 19일 채택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여기엔 노 후보자을 두고 "긴급조치 9호 관련 판결에서 권력의 불법적 탄압으로 침해받는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보다는 기계적인 법리에 따라 소신 있는 판결을 하지 못한"이란 부정적 평가가 들어갔다. [사진=윤여진 기자]
'노태악 대법관 후보자 국회임명동의 인사청문특별위원회'가 19일 채택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여기엔 노 후보자을 두고 "긴급조치 9호 관련 판결에서 권력의 불법적 탄압으로 침해받는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보다는 기계적인 법리에 따라 소신 있는 판결을 하지 못한"이란 부정적 평가가 들어갔다. [사진=윤여진 기자]

◇ 청문보고서 "긴급조치 판결에 기계적 법리"
노 후보자는 245호 밖 복도에서 '사과 대상이 긴급조치 불법행위를 당한 사람이던데, 재판 당사자들에게도 사과한 것인가'라는 기자 물음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 여럿은 "질문은 의원들이 하는 거고"라며 답변을 기다리는 기자를 손으로 제지했다. 인사청문특별위원회는 노 후보 마무리 발언이 있은 지 4분 만에 보고서를 채택했다. '긴급조치 9호 관련 판결에서 권력의 불법적 탄압으로 침해받는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보다는 기계적인 법리에 따라 소신 있는 판결을 하지 못한'이란 평생의 딱지가 붙었다. 정성호 위원장이 산회를 선포하자 이씨는 회의장 출입구 앞으로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씨가 기다린 사람은 장 의원이다. 그는 장 의원에게 "고맙습니다"라며 머리를 숙였다. 장 의원은 "예예"라며 화답했다.

노태악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끝난 19일 오후 저녁 유신정권 긴급조치 9호 피해자인 이대수씨가 국회를 바라보며 '국가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생각이 잠겨있다. [사진=윤여진 기자]
노태악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끝난 19일 오후 저녁 유신정권 긴급조치 9호 피해자인 이대수씨가 국회를 바라보며 '국가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생각이 잠겨있다. [사진=윤여진 기자]

◇ "사람을 구속한 건 사법부다"

자택인 경기 군포로 돌아가는 길, 이씨 발걸음을 잠시 멈춰 세우고 '노 후보자 사과엔 만족하느냐'라고 물었다. 이씨는 청문회 내내 굳어있던 표정을 풀며 "그래도 이 정도면..."이라며 기자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다음은 이씨와 묻고 답한 내용이다. 

▲노 후보자가 사과는 했는데.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계속 문제를 제기하니까 (노 후보자가) 당황했다. '위로를 드린다'는 사과는 충분치 않다. 그래도 야당 의원들이 질의를 잘 해줬다. 특히 장제원 의원이 그랬다. 민주당 의원들이 그 문제에 한마디도 하지 않은 건 서운하다. 

▲장 의원 질의 중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나.
=국가폭력에 정부와 법원이 제대로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 게 기억이 남는다. 

▲청문회가 끝나고 노 후보자에게 명함을 줬는데.
=긴급조치 피해자인 동시에 저항자라는 사실을 밝힌 행위다. 명함을 건넸지만 별말이 없었다. 

▲피해구제가 있으려면 결국 대법원에서 판례변경이 있어야 하는데. 
=지난 12일 대법원에 빨리 전원합의체를 열어달라고 청원했다. 지금 1심에서 '3.26 판결'(긴급조치 사람들은 2015년 3월 26일 대법원 3부 판결을 이렇게 부른다)과 상충하는 그런 소신 판결들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3.26 판결이 '뭔가 잘못됐다'고 대법관들도 생각하는 게 아닐까. 예전 같았다면 본안 심리를 않는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했다. 

▲최근 하급심에서 '3.26 판결'을 따르지 않는 판결이 나오는데.
=소신 있는 판결들이 중요하다고 본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제103조에 따른 헌법 정신이라고 본다. 과거 같으면 대법원이 그런 판결을 못 하게 찍어눌렀다. 최소한 지금은 그런 분위기는 없어졌다. 소신 있는 하급심 판결이 대법원에 영향을 준다고 판단한다. 

▲노 후보자는 '3.26 판결'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 사건 주심인 권순일 대법관에게 할 말은. 
=대법원 3부는 역사적으로 가장 궤변인 판결을 했다고 본다. '위헌이지만 불법은 아니다'라는 고도의 정치적인 판단을 했다. 이 판결이 반드시 전원합의체에서 바로 세워져야만 '국가가 폭력을 행하면 반드시 보상과 배상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남는다. 

▲긴급조치 국가배상 기각은 사법행정권 남용이라는 큰 틀에서 벌어졌다. 법원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정의롭지 않은 판결을 내릴 수 있다.
=해방 이후, 60~70년대 이어진 공권력의 남용을 최종적으로 확정해준 건 사법부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들을 구속하고, 징역을 선고한 건 사법부다. 암묵적이고 소극적인 동의였다. 법원 구성원 전체적으로도 법에 대한 정의로운 인식이 부족하다고 본다. 

▲국가폭력 피해자를 구제하는 문제는 대의기관인 국회도 나서야 하지 않나. 
=물론이다. 유신 시대 총칼로 해산된 게 국회다. 국회를 해산한 헌정문란을 진상규명하고, 국가폭력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특별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국가폭력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는 것이다. 유엔인권이사회엔 '전환기적 정의'라는 개념이 있다. 전쟁이나 독재 시기에서 평화로운 시기로 이행할 때 국가가 취해야 할 원칙이다. 여기엔 네 가지 원칙이 있다. 진실 규명, 형사적 정의, 배상, 재발 방지. 대한민국 국회도 그 길을 따라가야 한다. 

'사단법인 긴급조치 사람들'이 19일 낮 국회 앞에서 노태악 대법관 후보자 국회 임명동의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왼쪽이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이대수씨. [사진=윤여진 기자]
'사단법인 긴급조치 사람들'이 19일 낮 국회 앞에서 노태악 대법관 후보자 국회 임명동의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왼쪽이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이대수씨. [사진=윤여진 기자]

긴급조치 사람들은  
대법원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긴급조치 1호, 4호, 9호가 위헌이자 무효라고 차례로 결정했다. 긴급조치 피해자들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자연스럽게 '긴급조치 재단' 창설을 논의했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하면 받는 배상금으로 재단을 꾸리는 밑천으로 쓰자는 얘기였다. 그 계획은 장래에 국가폭력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과거 국가폭력이 제대로 기억되고 기록돼야 한다는 소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하지만 2015년 양승태 대법원에서 '긴급조치 국가배상 청구 기각' 판결을 박근혜 정부 국정협력 수단으로 여기면서 이 소망은 산산조각이 났다. 결국 피해자들은 사업이 아닌 투쟁을 위해 단체를 꾸렸다. 2018년 7월 '사단법인 긴급조치 사람들'이 발족한 배경이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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