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넷플릭스 시대의 문화 산업, 아우라의 종말을 고하다
[기자수첩] 넷플릭스 시대의 문화 산업, 아우라의 종말을 고하다
  • 최종원 기자
  • 승인 2020.02.21 11:17
  • 수정 2020.02.2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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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로고.
넷플릭스 로고.

한국 1020세대들은 하루 평균 약 2시간 정도를 '넷플릭스(Netflix)'와 '유튜브(Youtube)'에서 콘텐츠를 시청하는 데 할애한다.

앱/리테일분석을 제공하는 '와이즈앱'의 자료에 따르면(지난해 8월 기준) 우리나라 10대의 경우 하루 평균 1시간 23분, 20대는 하루 평균 1시간 2분을 유튜브에서 소비했다. 전체 연령대로 넓혀도 한국인의 유튜브 사용 시간(모바일, 12월 기준)은 월 489억분으로, 카카오톡(226억분)과 네이버 앱(155억분) 이용 시간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190여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OTT 선두 업체로, 지난해 4분기 기준 전세계 유료 구독자는 1억 6700만명에 달했다. 닐슨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넷플릭스 순 이용자 수(모바일)는 355만명으로 SK텔레콤과 지상파3사 합작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Wavve)'보다 낮았지만(403만명), 월 평균 이용 시간은 넷플릭스(1149분)가 웨이브(478분)를 제쳤다. 넷플릭스에서 하루 평균 40분을 소비한다는 수치다.

넷플릭스의 성공은 세계를 호령하는 다국적 기업들을 OTT 플랫폼 경쟁 속으로 불러들였다. 지난해 초 OTT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던 디즈니는 지난 11월 12일(미 현지시각) 디즈니+를 출시하며 OTT 전쟁에 정식으로 참전했고, 같은 달 1일에는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애플이 '애플TV+'을 출시하며 경쟁의 도화선을 당겼다. 미국 2위 통신업체 'AT&T'와 NBC유니버설의 모회사 '컴캐스트'도 'HBO 맥스'와 '피콕'이라는 이름으로 올해 중 관련서비스 출시를 예고했다.  

넷플릭스는 어떻게 OTT 시장에서 지금과 같은 헤게모니(패권)를 확보할 수 있었을까?

모바일 산업이 본격 태동하기 전, 넷플릭스는 고객이 원하는 영화를 정확히 추천하기 위해 '시네매치(Cinematch)'라는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을 도입했다. 초반에는 고객의 시청 데이터를 분석해 개개인의 취향을 파악하고, 취향이 비슷한 이용자들이 높은 별점을 매긴 콘텐츠를 추천하는 정도였다.

넷플릭스는 이후 추천 알고리즘의 고도화와 동시에 데이터를 최대한 세분화시켜, 방대한 양의 콘텐츠를 수만 개의 장르로 구분했다.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이라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이를 통해 콘텐츠 정보를 더 이상 불가능한 수준까지 쪼개는 '양자 이론'을 창시하며 완전히 개인화된 미디어로 우뚝 섰다.

추천 알고리즘의 고도화를 통해 '몰아보기(Binge-watching)'도 화두로 떠올랐다. 과거 DVD 시장에서 성행하였던 시리즈 몰아보기는 넷플릭스의 주된 시청 방식이 되었다. 긴장감이 넘치는 스릴러, 액션, 공포와 같은 몰입도가 높은 장르나, 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콘텐츠물은 시청자의 흥미를 자극해 ‘한 편만 더 볼까?’라는 심리도 유도한다.

이렇게 넷플릭스가 촉발시킨 OTT 전성시대에서 필자는 불현듯 독일 출생의 유대인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떠올랐다.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이라는 걸출한 저서를 남긴 벤야민의 '기술복제'와 '아우라'라는 개념은 지금의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듯 하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 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오른쪽)와 막스 호크헤이머(왼쪽).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 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오른쪽)와 막스 호크헤이머(왼쪽).

벤야민을 이야기하기 전에 아도르노, 마르쿠제와 같은 걸출한 철학자들이 포진해있던 프랑크푸르트학파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1930년대 전체주의가 성행하던 시기에 혁명 의지를 잃어 버린 노동자 계급을 관찰하며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이들은 지배계층에게 핍박받는 노동자들이 왜 사회주의 정당이 아닌 파시스트 정당을 지지했는지 설명하고자 했다.

이와 관련해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신랄히 비판했던 것은 대중매체의 문화 산업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 산업'은 막대한 자본을 필요로 하며 대량 재생산 기술을 사용해 상품으로 생산된 '문화'를 가리킨다. 즉 대중들이 만든 자발적인 문화가 아니라, 자본 논리에 의해 대량 생산되는 문화라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지배계급들이 문화 산업을 통해 대중들의 허위 의식을 조장해 전체주의 체제에 대항할 힘을 앗아갔다고 보았다. 이러한 문화 산업이 일상 속에 깊게 자리잡으면 대중들은 더 이상 창조적인 문화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내 방송사도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비판했던 대중매체의 본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박정희 정부 시기 언론 탄압부터 이명박 정부 시기 미디어법 개정, 현재의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도 권력의 핵심인 ‘방송’ 주도권을 쥐기 위해 수많은 논란들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독점자본과 독점권력 앞에서 대중들이 크게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없어 보였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결국 대중들이 현실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적당히 안주해버린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벤야민도 이러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이었지만 그가 제창한 이론은 조금 다르다. 그는 대량복제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예술의 아우라가 사라져 대중들이 비판적으로 작품을 수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벤야민은 먼저 전통적인 예술 작품이 본래 '아우라(aura)'를 가지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신비적 체험이나 신과의 일체감을 맛보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보았다. 예술 작품이 아우라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복제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작품 앞에서 사람들이 신비한 경외감에 사로잡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이 이루어지면서 상품의 대량복제가 가능해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공산품을 넘어 문화 상품까지 대량복제가 가능해졌고 우리는 현재 모바일 산업이 주도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가 콘텐츠를 접하는 스크린도 점점 작아지고 있다. 초기의 컴퓨터는 큰 방 하나를 가득 메울 정도로 거대한 규모였지만, 이후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거쳐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서 콘텐츠를 주로 소비하고 있다. 아우라가 상당 부분 파괴된 상태이다.

지금의 넷플릭스 시대는 벤야민이 주장한 ‘기술 복제’ 시대의 절정이다. 복제 기술의 발달로 유일무이한 작품이라는 개념은 사라졌고, 동시에 작품의 주술적이거나 신비적인 가치도 사라졌다. 이러한 아우라의 파괴는 대중이 예술 작품에 대해 예전보다 훨씬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미디어가 추구하는 가치와 자신의 가치관과 거리를 두는 ‘거리두기’ 현상을 심화시켰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콘텐츠를 수용하는 것을 넘어 생산에도 관여하는 ‘프로슈머’ 역할도 하고 있다. 

대중들이 단순히 '허위 의식'만 가진 소극적인 수용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창조자 역할도 할 수 있다는 벤야민의 주장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미디어에 의해 지배받는 삶을 살지, 적당히 거리를 두며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수용할지는 전적으로 수용자의 태도에 달려 있다.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위키리크스한국=최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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