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고도로 설계된 추미애 지시 "신천지를 잡아라"
[WIKI 프리즘] 고도로 설계된 추미애 지시 "신천지를 잡아라"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0.03.03 16:57
  • 수정 2020.03.04 0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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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 장관 '신천지 표적' 압수수색 지시
'대검→일선 검찰청' 없는 '윤석열 패싱'
'구체적 사건 지휘는 총장만' 위법 소지
"권한 밖 남용은 무죄" 판례 의식한 듯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치·외교·통일·안보에 관해 대정부 질문에 답한 뒤 국무위원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외교·통일·안보에 관한 대정부 질문'에 답한 뒤 국무위원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국 확진자 중 절반 이상과 관련된 특정 종교단체로부터..."

지난달 28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거부 대책으로 "압수수색을 비롯한 강제수사 착수"를 검찰에 지시하면서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중 일부다. 여기에서 언급한 '특정 종교단체'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일 수 밖에 없다. 이날 오전 9시 기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집계한 코로나19 국내 누적 확진자 수는 2022명인데 이중 신천지대구교회 관련 확진자 수는 절반에 가까운 840명(41.5%)인 까닭이다. 

이날 추 장관 지시를 전한 '법무부 알림'에는 '신천지'라는 말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확진자 중 절반 이상과 관련된"이란 표현은 특정 종교를 표적으로 삼아 수사하지 않았다는 일종의 '알리바이'인 것이다. 

신천지가 교인 명단을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보건당국이 방역을 제대로 할 수 없었는지는 추 장관 지시대로 "의도적, 조직적 거부·방해·회피 등 불법사례가 발생할 경우"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야만 따져볼 수 있다. 

실제 명단과 보건당국에 제출한 명단이 다르다고 해도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에 의해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신천지 교주 이만희 총회장을 처벌하려면 추가 단서가 필요하다. 이 총회장이 교인 명단을 사실과 다르게 작성하라고 지시했다거나 교단 지도부가 범행을 저질렀을 때 승인한 경우가 아니라면 피의자로 입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문제는 이같은 추가 단서가 있어야만 강제수사가 가능한데 추 장관이 직접수사를 지시했다는 점이다. 추 장관은 이날 "관계기관의 고발 또는 수사의뢰가 없더라도 경찰, 보건당국, 지방자치단체 등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라며 압수수색을 포함한 강제수사에 착수하라고 지시했다.
 
보건당국이나 지자체 수사의뢰가 없는 상황에서 신천지가 방역을 방해했는지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라는 건 모순이다. 압수수색영장을 법원에 청구하려면 '범죄가 의심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 상당한 이유를 찾기 위해서 압수수색을 하라는 모양새다. 

이같은 적법절차 문제는 수사개시 뿐 아니라 수사지시 과정에서도 존재한다. 추 장관은 "방역저해 행위 등에 대하여 압수수색 등으로 즉각적이고 강력하게 대처할 것을 대검찰청을 통해 각급 검찰청에 아래와 같이 지시하였음"이라고 기자들에게 알렸다. 각급 검찰청에 수사방침을 하달하려면 검찰총장의 별도지시가 있어야 하는데 건너뛴 것이다. 

검찰청법 제8조는 "법무부장관이 검찰사무의 최고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한다고 규정하는 동시에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제한했다. 장관 지시에서 언급된 범죄행위는 '방역저해 행위'이고, 그 주체는 사실상 신천지로 특정됐다. '신천지의 방역 저해'라는 구체적 사건에서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를 한 것이 아니기 어렵다.

추 장관은 신천지 압수수색 방침을 두고 '수사지휘' 대신 '지시'라는 말을 썼다. 검찰청법 위반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 표현이다. 향후 이 법 위반을 이유로 직권남용 시비가 일 때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을 남용했을 때 인정된다. 직권이 아니지만 지위 남용에서 비롯되는 불법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민간인 불법사찰'이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에 파견된 경찰관이 민간인을 상대로 조사한 게 문제가 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2013년 "민간인에 대한 조사는 지원관실의 직무권한에 속하는 일이 아니"라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 판례를 따른다면 설령 누군가 직권남용 혐의가 있다고 주장하며 추 장관을 고발한다 해도 '혐의없음' 처분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에겐 일반적으로 검사를 사무감독하고, 구체적으로 검찰총장을 수사지휘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을 뿐이다. 반면 각급 검찰청의 장을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검찰청법에는 어긋나지만 직권남용죄는 적용할 수 없는 추 장관 지시가 고도로 설계됐다고 읽히는 이유다. 

결국 "신천지를 잡아라"라는 '추미애의 지시'엔 정무적 판단이 깔린 셈이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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