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코로나 여파 '총선 연기론' 솔솔.. 실마리는 1994년 헌재 결정문
[WIKI 프리즘] 코로나 여파 '총선 연기론' 솔솔.. 실마리는 1994년 헌재 결정문
  • 윤여진 기자
  • 기사승인 2020-03-10 18:35:02
  • 최종수정 2020.03.10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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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지자체장선거 연기한 노태우 前 대통령
2020년 국회의원선거 연기권자 역시 文 대통령
"大選 직전 선거는 부담" 盧 판단에 헌재 '각하'
각하 이유 '與野 합의했다면' 28년 뒤에도 영향
총선 연기권자는 대통령이나 與野 합의 있어야
1992년 1월 10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그해 6월 예정된 첫 지방자치단체장선거 연기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MBC 화면 갈무리]
1992년 1월 10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그해 6월 예정된 첫 지방자치단체장선거 연기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MBC 화면 갈무리]

"저는 고심하고 고심한 끝에 올해로 예정된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연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 선거의 시기는 제14대 국회에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1992년 1월 10일 노태우(사진) 당시 대통령이 발표한 연두 기자회견문 일부다. 첫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일과 공고일을 각각 '1992년 6월 30일 이내'와 '늦어도 선거일 전 18일'로 정한 지방자치법은 이렇게 지켜지지 않았다.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3년 뒤인 1995년 6월 27일 치러졌다. 그리고 약 28년 뒤인 2020년 3월, 헌정사상 두 번째로 공직선거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 소수당이 연기론에 불을 지핀 이유 
박주현 민생당 공동대표는 지난달 27일 "선거를 20대 국회 임기 내에서 가능한 한 뒤로 연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오는 4월 15일이고, 20대 국회 임기가 5월 29일이니 한 달 반 정도 미룰 여유가 있다는 계산이다. 

과거 연기 배경엔 "1년에 4번씩이나 선거를 치르는 결과"라는 다소 정치적인 상황이 있었다. 1992년 12월에 예정된 대통령선거 전 지방선거를 치르면 중간평가 성격을 띠는 선거가 총선을 포함 두 번이나 있게 되는 까닭이다. 

2020년에 등장한 '선거 연기론'은 다소 다층적인 성격을 띤다. 일단 내세우는 명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공직선거법 제196조가 선거 연기 사유로 밝힌 '천재·지변 기타 부득이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같은 민생당 주장은 당 정체성을 두고 있는 '호남'에서조차 당선권 후보가 없다시피 한 정치적 상황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민생당 지지율은 지난 9일 기준 4.1%(YTN 의뢰 리얼미터 조사)에 불과하다. 

◇ 선거를 미룰 수 있는 자, 대통령
1992년 지자체장선거와 2020년 국회의원선거의 공통점이 있다면 '미룰 수 있는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이다. 과거 연기 방법이 대통령이 선거일을 공고하지 않는 식이라면, 지금은 정반대다.

연기된 선거 절차를 정한 공직선거법 제199조는 같은 법 제198조대로 천재지변 등을 이유로 미룬 선거는 "실시사유가 확정된 때부터 60일 이내에 실시"하고 "늦어도 선거일 전 50일까지 대통령이 공고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현행법 위반 여부다. 28년 전 노 전 대통령 결정은 "최초로 실시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장 선거일은 대통령이 공고한다"는 지방자치법 부칙 제6조를 위반한 것이었다. 선거를 치르려면 적어도 1992년 6월 12일엔 선거일이 공고했어야 했는데 노 전 대통령은 그러지 않는 위험 부담을 택했다.

◇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선거 미루기
1992년 6월 20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엔 청구인 명단이 기다랗게 늘어진 헌법소원 청구서가 제출됐다. 기초단체장(시장·군수·자치구청장)과 광역단체장(특별시장·직할시장·도지사)에 출마하려던 58명과 유권자 1명이 공동으로 기획소송을 낸 것이다. 

쟁점은 노 전 대통령이 법에서 정한 '선거일 공고 의무'를 지키지 않아 국민의 선거권과 정치인의 피선거권을 침해했는지였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는 '공권력의 행사' 뿐 아니라 '공권력의 불행사' 역시 헌법소원 대상이 된다고 정해 이런 헌법소송이 가능했다. 

기본권이 침해됐다는 헌법소원을 내려면 그 근거는 헌법 조문에서 찾아야 한다. 이들은 '지자체장 선임 방법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118조 제2항을 들었다. 대통령의 '선거일 미공고 행위'가 법률 위반을 넘어 헌법 위반이라는 취지다. 

선거가 3년이나 미뤄진 결과와 달리 헌재 심판은 싱겁게 끝이 났다. 결론은 7대2로 각하다. 각하는 '위헌 아님'이란 기각과 달리 헌법소송을 갖추지 못할 때 헌재가 내리는 결정이다. 

헌법재판관 7명이 합류한 다수의견은 1994년 8월 31일 결정문에서 "단체장 선거시기 자체가 정치적으로 여야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이라며 선거일을 지정하지 않은 노 전 대통령 행위를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고 했다. 선거를 미루고 안 미루고는 대통령의 통치 영역인 까닭에 헌재가 위헌 여부를 따질 수 없다는 얘기다. 

선진 법치주의 국가 다수가 폐기한 '통치행위' 이론을 다수의견이 꺼낸 근거는 '여야 합의'다. 당시 집권여당인 민주자유당과 제1야당인 민주당은 1992년 8월부터 1994년 3월까지 1년 7개월에 걸친 협상 끝에 첫 지자체장선거를 1995년 6월 27일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여야 협상 결과 개정된 자치법에선 '1992년 6월 30일 이내 선거한다'는 옛 자치법 부칙이 삭제됐다. 이를 두고 다수의견은 "심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피청구인의 이 사건 부작위로 말미암아 생겼던 위법상태는 모두 해소되었다"고 해석했다. 불법을 규정한 근거가 사라졌으니 더는 헌법적 판단도 필요하지 않다는 결정이다. 

◇ 헌법심사 피하려면 답은 '여야 합의'
공직선거법은 선거 연기 조건인 '천재·지변 기타 부득이한 사유'를 구체적으로 풀어내지 않았다. 선거를 연기하려는 쪽은 코로나19가 이제껏 다른 전염병과 달리 천재지변인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문제는 또 있다. 여야가 합의하지 않았는데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경우다. 공직선거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선거를 연기할 수 있는 권한'은 절대적이지 않다. 그 전례가 바로 지자체장선거 연기 사건이다. 헌재는 여야 합의가 있다면 위헌인지 판단하지 않겠다고 했다. 여야 합의가 없는 선거는 헌법심판 대상이란 결론이 나오는 이유다. 

만일 소수당인 민생당이 아니라 여당이나 제1야당이 총선 연기를 주장하고 대통령이 이 요구를 받아들이면 반대편에 의해서 헌법소원이 제기될 수 있다. 

이때는 과거와 다르게 본안 판단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지자체장선거 연기 사건에서 헌재가 각하를 내린 배경엔 여야 합의가 있다. 대통령이 선거일 공고 의무를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여야가 뒤늦게 선거 일자를 다시 잡았으니 굳이 헌법 위반 문제는 따지지 않겠다는 취지다. 

이와 달리 코로나19를 이유로 한 선거 연기의 경우 여당과 제1야당은 반대편에 설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사태 책임이 정부 쪽에 기운다면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을 연기하는 게 정치적 이익이다. 

반대로 코로나19 관련 책임이 정당 지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미래통합당은 당장 밀리는 지지도를 만회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총선 연기가 그 수단이 될 수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달 24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총선을 연기한다고 해서 20대 국회의원들의 임기를 연장하는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달 24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총선을 연기한다고 해서 20대 국회의원들의 임기를 연장하는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文의 시간은 '3월 말, 4월 초'
여권에서 총선 연기를 주장해도 그 시기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총선을 연기한다고 해서 20대 국회의원들의 임기를 연장하는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총리 발언은 만약 총선을 연기한다고 해도 그 시기가 20대 국회 임기인 오는 5월 29일 이후가 되긴 어렵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입법부 부재 상태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으로 한다"고 선언한 헌법 제42조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그렇다면 총선이 연기된다고 해도 그 시기는 5월 중순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개원 준비에 적어도 2주 정도가 물리적으로 필요한 시간이라 하면 미룰 수 있는 기간은 한 달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상 재투표 공고일은 선거일로부터 50일 전이다. 이 계산대로라면 선거를 미룰 수 있는 대통령의 시간은 '3월 말에서 4월 초'다. 

대통령의 시간이 오기까지 남은 날은 20일 남짓. 총선 연기를 두고 여야가 협상한다면 이때일 가능성이 높다. 이 기간 이제껏 발견되지 않은 코로나19 대규모 지역감염 사례가 발견된다면 총선 연기에 필요한 모든 변수가 결정된다. 

결국 '5월의 총선'은 여야 합의를 거쳐야 가능하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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