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IT·가전 업계의 핵심 키워드는 ‘감성’이다. 특히 개성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뉴트로’ 열풍이 계속되면서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제품들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보이고 있다.

복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의미를 가진 뉴트로 제품은 촌스러움과 세련됨의 사이에 있는 파스텔톤이나 과감한 단색 색상을 사용하고, 1990년대에나 등장했을 법한 디자인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2020년표 뉴트로의 현주소를 체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트렌드는 최근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몰아치고 있는 ‘폰꾸’ 열풍에서 확인된다.

폰꾸는 폰꾸미기의 줄임말로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에서 파생됐다. 현재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에서의 최대 유행이 바로 삼성전자 ‘갤럭시 Z 플립’의 폰꾸다.

‘#Z플립꾸미기’, ‘#갤럭시Z플립꾸미기’, ‘Z플립’ 등의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다양한 스티커를 활용해 다이어리를 꾸미듯 Z플립 케이스를 꾸미며 ‘복고 바이브’를 뿜어내는 많은 젊은 세대들의 작품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

사실 Z플립은 출시 이전부터 폴더블폰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으며 소비자들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Z플립을 거머쥔 구매자들 사이에서는 유일한 단점이 과거 폴더폰처럼 ‘달칵’하는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밀레니얼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학창시절을 보내며 다꾸에 열광한 세대로, 이를 통해 개성을 드러냈다. 이들이 ‘다꾸 감성’을 ‘폰꾸 감성’으로 탈바꿈시키며 각종 스티커로 꾸며진 Z플립 케이스를 통해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뽐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 키링이나 스마트폰 목걸이까지 활용해 아날로그 감성을 입히는데 열중하고 있다.

AV기기 시장에서도 아날로그 감성 트렌드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뉴트로로 중무장한 밀레니얼 세대들은 LP판이 턴테이블 바늘에 긁히는 ‘지지직’ 소리, 테이프가 늘어지는 소리, 흐릿한 화질에까지 열광했고 이는 LP턴테이블과 CD플레이어, 카세트 플레이어의 인기와 재출시로 이어지고 있다. 빔프로젝트의 재유행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AV업계의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나만의 공간을 꾸미는 것에 대한 관심 증가 또한 이런 아날로그 제품의 인기에 힘을 보탠 것으로 보인다”며 “내 공간에 나만의 감성을 담을 수만 있다면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흔쾌히 감내할 수 있다는 게 밀레니얼 세대”라고 설명했다.

레트로 디자인이 적용된 가전제품들이 전혀 복고스럽지 못한 가격에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탈리아 가전업체 스메그(SMEG)의 레트로 라인 냉장고가 그 실례다. 웬만한 양문형 냉장고보다 비싼 대당 150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에도 품절된 상품이 있는가 하면 물량이 부족해 예약 후 제품을 받기까지 8~10주일을 대기하는 고객들도 상당수다.

냉장고와 같은 대형가전에 더해 커피머신, 믹서, 토스터 등 소형가전들도 아날로그 DNA가 이식되는 순간 주방 인테리어 포인트 제품으로 SNS상에서 주목을 받으며 판매에 가속도가 붙기 일쑤다.

국내 기업으로는 위니아대우가 합리적 가격에 레트로 디자인을 채용한 ‘더 클래식’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등을 연이어 선보이며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신기능이 소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시대가 지나고 디자인이 새로운 차별화 포인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에 대한 궁금증과 과거에 대한 향수로 시작된 뉴트로 열풍에 힘입어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제품 출시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한국=정예린 기자]

yelin.jung032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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