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인사이드] "표심 따로 민심 따로" 비례연합정당 위헌 소지
[WIKI 인사이드] "표심 따로 민심 따로" 비례연합정당 위헌 소지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0.03.17 16:27
  • 수정 2020.03.17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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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전 헌재 '무소속 투표자' 게임이론 검토
지지정당 지역구 포기하면서 사·기권표 발생
비례 추천 포기 민주당 유권자 표도 마찬가지
플랫폼정당 참여 소수정당 1표 가치 6배 올라
과거 헌법소원 낸 장기표 "정당 득표율대로"
장기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영동 사무실에서 만난 장기표 전 전태열재단 이사장. 장 전 이사장 뒤로 상해임시정부가 사용한 태극기가 걸려있다.  [사진=최지환 기자]

"비례연합정당은 근본적으로 하면 안 됩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정당 득표율대로 하자는 거 아닙니까. 비례연합정당 안에서 각 정당의 지지율은 알 수 없습니다. 정당지지율에 따른 비례대표 의석 배분이 안 됩니다. 헌소 대상입니다"

16일 오후 경남 김해의 한 노인정에서 오는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예비선거운동을 하다 전화를 받은 장기표(사진) 전 전태열재단 이사장은 2002년 제16대 총선을 또렷이 기억했다. 20년 전만 해도 '소수정당 맨'을 자처하던 장 전 이사장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거대정당인 미래통합당에서 경남 김해을 공천을 받았다. 

2000년 2월 당시 신생정당 '청렴정치 국민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이던 장 전 이사장은 "1인 1표제를 규정한 공직선거법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당시 선거법은 지역구 의석 득표비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했다. 비례투표를 별도로 진행하지 않아 소수당으로선 당선자를 내기가 어려웠다. 

헌재는 총선이 있고 난 뒤 1년 3개월이 지나서야 장 전 이사장 손을 들어줬다. 당시 헌재는 재판관 전원일치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면서도 별도의 정당투표를 허용하지 않는 범위에서 헌법에 위반된다"며 선거법 해당 조항에 한정위헌을 선고했다. 한정위헌이란 법 자체를 없애는 대신 위헌적인 해석만을 제거하는 결정을 말한다. 총선에서 1인 2표제를 인정하지 않는 선거법은 위헌이란 얘기다. 그리고 이 위헌 결정은 19년이 지나 등장한 비례연합정당이 위헌이라 말한다. 

지난 15일 서울 안국동 운현하늘빌딩에서 정치개혁연합 중앙당 창당대회에 참가한 조성우(오른쪽부터), 김정헌, 신필균, 류종열 창당준비위원회 공동대표. [사진=연합뉴스]
지난 15일 서울 안국동 운현하늘빌딩에서 정치개혁연합 중앙당 창당대회에 참가한 류종열, 신필균 김정헌, 조성우 창당준비위원회 공동대표. [사진=연합뉴스]

◇ 민주당 "18일까지 하나 돼달라"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은 지난 15일 "원내에 진입하지 못한 원외 군소정당에 민주당과 함께 하는 기회를 열어두는 것으로 우리는 판단을 하고 있다"며 비례연합정당에 참가하겠다는 이른바 '플랫폼정당'에 "최소한 수요일(18일)까지는 합당 절차를 통해 하나가 돼달라"고 주문했다. 

지난 12일 전 당원 투표를 거쳐 민주당이 주축인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기로 한 원외 군소정당은 녹색당, 미래당, 기본소득당이다. 민주당은 이들과 함께 플랫폼정당을 자처한 '정치개혁연합'(가칭) 또는 '시민을 위하여'(가칭)를 통해 비례대표를 낸 뒤 민주당 몫을 다시 거둔다는 방침이다. 

각 정당이 파견 보낸 후보자에게 '비례대표 출마 기회' 플랫폼을 제공하는 비례연합정당은 합헌일까. 그 답은 20년 전 헌재가 내놓은 '위헌 결정문'에 고스란히 적혀있다. 

◇ 장기표 주장은 고스란히 헌재로 
헌재는 2001년 7월 19일 국회의원선거에서 지역구제와 비례대표제를 동시에 채택하면서 1인 1표를 규정한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당시 선거법은 각 정당이 전국 지역구에서 얻은 득표수대로 비례대표를 배분했다. 

장 전 이사장은 이같은 선거방식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 결정문에 따르면 그는 "비례대표제는 각 정당이 득표한 유효투표수의 비율에 따라 전국구 국회의원 수를 할당하여야 하는 것"이라며 "현행 1인 1표제하에서는 일반 국민들은 오직 지역구 후보만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헌재는 장 전 이사장 주장을 그대로 인용했다. 9명 재판관 전원은 "유권자가 지역구 후보자나 그가 속한 정당 중 어느 일방만을 지지할 경우 지역구 후보자 개인을 기준으로 투표하든, 정당을 기준으로 투표하든 어느 경우에나 자신의 진정한 의사는 반영시킬 수 없"다고 결론을 내놨다.

헌재는 그 배경으로 정당투표 성격의 비례대표선거와 인물투표 성격의 지역구의원선거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했다. 헌재는 "비례대표의원의 선거는 지역구의원의 선거와는 별도의 선거이므로 이에 관한 유권자의 별도의 의사표시가 있어야 함"이라고 판단한 이유다. 정당이념이 자리잡치 못한 국내 현실에선 지역구선거로 비례대표선거를 대체할 수 없다는 현실 독해다. 

헌재는 나아가 헌법원칙인 직접선거원칙을 비례대표 선출의 대전제로 못 박았다. 유권자가 아닌 정당이 뽑는 비례대표의원은 헌법적 근거가 없다는 얘기다. 헌재는 "결국 비례대표의원의 선출에 있어서는 정당의 명부작성행위가 최종적·결정적인 의의를 지니게 되고, 선거권자들의 투표행위로써 비례대표의원의 선출을 직접·결정적으로 좌우할 수 없"다며 위헌이유를 밝혔다.

◇ 헌재 "내가 만약 무소속 투표 유권자라면"
헌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평등선거원칙을 꺼내 들었다. 헌재가 풀어낸 방식은 독특하다. 1인 1표제 국회의원선거에서 예상되는 경우의 수를 그린 뒤 유권자가 합리적인 선택을 할 것이란 일종의 '게임이론'이다. 

헌법재판관들은 본인이 유권자라고 가정했다. A 선거구에 거주하는 유권자 B는 C 정당을 지지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C 정당이 A 선거구에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결국 A 선거구에 출마하는 후보는 C 정당과 실질적 경쟁 관계인 D 정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 E다. 이럴 경우 유권자 B는 선거 당일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 

재판관들은 B가 무소속 후보 E에 투표하는 경우를 예상했다. 이렇게 되면 E가 득표한 유권자 B 표는 비례대표 의석 배분 때 '사표'(死票)가 된다. 1인 1표제에선 정당이 지역구선거에서 얻은 표만 비례대표 의석에 반영되는 탓이다. 

유권자 B와 반대 성향인 유권자 F는 지역구선거에서 D 정당 후보자를 찍었다. F 표는 그대로 비례대표 의석 배분 때 D 정당 지지율에 반영됐다. 유권자 B가 사실상 한 표만 행사했지만 F는 두 표를 행사한다. 

◇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
헌재는 유권자 B 행동을 두고 '강요당한 것'이라 했다. B가 'D 정당 후보자 당선보다 차라리 무소속 후보자 당선이 낫다'는 마음으로 행동에 옮긴 전략적 투표를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헌재가 내린 게임이론 결론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자신의 지역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무소속후보자에게 투표하는 유권자들로서는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투표 가치의 불평등을 강요당하게 되는바, 이는 합리적 이유 없이 무소속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유권자를 차별하는 것이라 할 것이므로 평등선거의 원칙에 위배된다"

◇ 플랫폼정당에 투표하지 않을 권리
헌재가 19년 전 가정한 '지지하는 정당이 지역구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은 경우'는 2020년 민주당이 구상한 '지지하는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은 경우'에 그대로 적용된다. 

현행 선거법에서 정한 총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비례대표의원은 47명이다. 이중 총원에 정당 득표율을 곱한 뒤 지역구 의석수를 빼고 재차 연동률 50%를 곱하는 '연동형 비례의석'은 30석이다. 나머지 17석은 정당 득표율대로 배분된다. 

지역구에서 후보를 추천해도 당선이 어려운 소수당이 1석을 얻으려면 약 0.7%의 정당 득표율을 획득해야 한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14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포인트)해 16일 공개한 원외정당인 '기타 정당' 지지율은 1.6%로 집계됐다. 2석 정도 얻을 수 있는 지지율이다. 

하지만 민주당 포함 플랫폼정당에 이들 원외정당이 참여하면 말이 달라진다. 민주당은 '비 연동형 비례의석' 17석에서 득표할 수 있는 7석만을 가져가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민주당 지지자 입장에선 자신들 표가 대부분 원외 군소정당으로 가게 된다. 유권자가 아닌 플랫폼정당이 의원을 선출하는 구조로 '유권자가 직접 의원을 뽑는다'는 직접선거원칙에 어긋난다. 

평등선거원칙 위반도 문제가 된다. 플랫폼정당이 민주당 지지율 80%를 가져간다고 가정하면 리얼미터 기준 플랫폼정당 득표율은 41.5% 곱하기 80%인 33.2%다. 준연동형 적용 30석과 비적용 17석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각각 14석과 5석이 나온다. 합계 19석에서 민주당 몫 7석을 빼면 원외 군소정당이 가져가는 의석은 12석이다. 

이 과정에서 원외 군소정당에 투표하는 유권자 투표 가치는 '1인 1표'(2석)에서 '1인 6표'(12석)로 변한다. 투표가치 불평등이 발생한다. 비례대표 의석을 얻으려면 최소 정당투표율 3%를 얻어야 한다는 선거법상 봉쇄조항까지 감안하면 투표가치 불평등은 그 이상이다. 

지난 12일 진행한 민주당 전 당원 투표에서 플래폼정당 불참을 밝힌 25.94%가 실제 총선에서 어쩔 수 없이 플랫폼정당에 표를 주면 다음과 같은 게임이론 결론이 나온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플랫폼정당에 투표하는 유권자들로서는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투표가치의 불평등을 강요당하게 되는바, 이는 합리적 이유 없이 플랫폼정당에 투표하는 유권자를 차별하는 것이라 할 것이므로 평등선거의 원칙에 위배된다'

결국 준연동형제가 적용되는 국회의원선거에서 비례연합정당이 가능하다고 현행 선거법을 해석하는 한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영동 사무실에서 만난 장기표 전 전태열재단 이사장. [사진=최지환 기자]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영동 사무실에서 만난 장기표 전 전태열재단 이사장. [사진=최지환 기자]

◇ 독일과 한국은 다르다
장 전 이사장은 민주당에 앞서 위성정당 계획을 세운 통합당 결정을 두고 "기본적으로 옳지 않다"고 했다. 다만 "(통합당 현 정당지지율 수준인) 30%를 가져가는 게 잘못된 건 아니냐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장 전 이사장 말은 2001년 헌재 결정문 취지가 실제 정당이 득표한 만큼 비례대표를 가져가라는 것인 만큼 '연동형 비례의석' 30석에서 획득 자체를 어렵게 한 현행 선거법은 오히려 위성정당이 필요한 이유가 된다는 얘기다. 

이같은 논리를 따르면 '민주주의 선진국인 독일에서도 선거제를 연동형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여권 주장은 더는 존립하기 어렵다. 

총원을 고정하지 않은 독일의 경우 대략 국회의원 수는 700명 전후다. 이중 비례의석이 400석 정도다.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 비율은 3대 4다. 반면 한국은 각각 253석과 57석으로 4.43 대 1이다. 

독일 같은 선거법 제도에선 비례의석수가 충분해 거대정당이라도 지역구 의석이 많다는 이유로 '연동형 비례의석'을 챙길 수 없는 사례가 발생치 않는다. 한국과 같은 위성정당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조성복 독일정치연구소장이 대표적으로 이같은 주장을 편다. 

장 전 이사장은 "연동하려면 철저하게 해야 한다"며 30년 정치 인생을 터 잡은 소수정당을 키우는 방법은 완전연동형 선거제를 채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인생을 함축하는 말이 있다면 '소수'다. 1966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장 전 이사장은 전태열 열사 분신사건을 계기로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19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유신독재 반대 시위, 민청학련 사건으로 복역했다. 

현실정치에서도 '마이너리티 정신'은 이어진다. 장 전 이사장은 1990년 민중당 창당 때 4인방이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이재오 전 특임장관,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는 달리 쉽게 거대정당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1992년 14대 총선(민중당), 2000년 16대 총선(민주국민당), 2004년 17대 총선(녹색사회민주당), 2012년 19대 총선(정통민주당)에서 줄곧 소수정당으로 출마해 모두 낙마했다. 그가 결국 거대정당을 택했다고 해서 소수정당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의심할 수 없는 이유다. 

"(완전)연동형을 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등가성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성입니다. 다양성의 시대인데 다당제를 유도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다당제가 되면 우리 사회 고질적인 문제인 지역주의도 완화되지 않겠어요?"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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