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69) 백악관 찾은 전두환…핵개발 포기 대가로 쿠데타 승인받다
청와대-백악관 X파일(69) 백악관 찾은 전두환…핵개발 포기 대가로 쿠데타 승인받다
  • 특별취재팀
  • 기사승인 2020-03-31 13:42:19
  • 최종수정 2020.03.3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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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2월. 미국 백악관에서 이뤄진 레이건-전두환 대통령 정상회담. [대통령기록관 제공]
1981년 2월. 미국 백악관에서 이뤄진 레이건-전두환 대통령 정상회담. [대통령기록관 제공]

“2월 1~3일 워싱턴을 방문해달라” (백악관 측)

백악관 초대장은 보통 1개월 이전에 상대국으로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관례를 깨고 불과 11여일을 앞두고 초청장이 날아왔다.

정권의 미국 승인을 학수고대하던 전두환 정권 입장에서는 이 ‘초단기 초청장’이 외교적 결례니 뭐니 따질 것도 없이 ‘가뭄의 단비’처럼 여겨졌다.

12-12사태 이후 지속돼 온 한미간의 불편한 관계를 씻어내는 계기가 된다는 생각에 전두환 정권은 다른 불평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특히 ‘미국 대통령 취임에 맞춰’ 조건을 내내 요청해왔던 터라 물리적 시간도 촉박했던게 사실이었다.

레이건 행정부 입장에서는 백악관을 방문하는 첫 외국 원수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국민적 홍보 요소가 될 것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2월 1일 워싱턴에 도착했다. 그러나 쿠데타와 유혈사태로 정권을 잡은 한국 대통령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접은 냉랭했다. 국빈방문(state visit)은 고사하고 공식방문(official visit)도 아닌 실무방문(working visit) 성격으로 강등됐다. 워싱턴 덜래스국제공항에서는 아무런 환영행사도 없었다.

정상회담 자리에는 공식 통영관도 없이 한국의 노신영 외무장관이 통역으로 배석했다. 그나마 두 정상이 마주앉은 시간은 단 10분에 불과했다. 양측의 통역시간과 회동 앞뒤의 의례적인 인사말을 빼고나면 길어야 5분. 서로 마주앉았다가 금방 일어난 꼴이었다. 두 대통령이 선물을 주고받는 시간도 배정돼 있지 않았다.

전두환-레이건 회담 소식을 전한 경향신문 1981년 2월 3일 자 1면. ⓒ경향신문

서러운 푸대접이 분명했지만, 전두환 입장에선 대접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에겐 공개적인 승인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를 얻어내는데는 상응하는 대가가 뒤따랐다. 당시 알렉산더 헤이그 국무장관과 노신영 외무장관 사이에 오간 대가의 내용은 (1)박정희 시대부터 추진해오던 핵개발 포기 (2)박정희시대부터 개발해오던 핵미사일 폐기 (3)F-16, 호크미사일 등 미국 무기 구매 (4)미국산 쌀 추가구입 등이었다. 대신 미국은 지미 카터 정권이 추진했던 주한미군 철수플랜을 백지화했다.

양측 합의에 따라, 미국은 국익을 얻었고, 정통성 없는 전두환은 미국의 승인을 얻게 됐던 것이다.

레이건은 국무부가 세심하게 준비한 축배 제의 연설을 제쳐두고 맥아더 장군의 연설을 인용했다. 국무부 관리들이 그렇게도 성취를 위해 진력했던 한국의 정치발전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레이건은 자유 신장과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공동투쟁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광주시민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주도했으며 한국의 대통령직을 탈취한 인물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무비판적인 태도를 취한 것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논란이 많았다.

특히 미국이 전두환 세력과 공모했다는 광주시민들의 그릇된 인식을 더욱 부채질했다.

1981년 2월 2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 중인 전두환 대통령 내외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내외가 백악관 오찬 행사장인 ‘스테이트 다이닝룸’으로 안내하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과 이순자 여사, 전 대통령과 낸시 레이건 여사가 각각 팔짱을 끼고 입장하고 있다. [레이건 기념관 제공]

당시 국내 언론은 전두환의 방미 결과에 대해 이런 분석적인 기사는 한 줄도 없이 ‘한미 새 동반자 시대’ ‘철군 불안에 깨끗한 종지부’라는 식의 찬미기사를 쏟아냈다.

어떤 신문은 전두환이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가진 기자회견의 본질 보다는 그 뒤의 유머를 두고 ‘위트로 이끈 오찬장 화기의 폭소’라는 박스기사를 식었다.

미국 기자의 질문에 남북한의 군사력을 자세히 설명한 전두환이 말미에 “지금까지 한 얘기는 한국에서 1급 비밀에 속하는 내용으로, 만일 위반하면 처벌을 받게 되니 보안을 지켜달라”고 덧붙임으로써 참석 기자들의 폭소를 자아냈다는 내용이었다.

미국 정부와 전두환 정권의 거래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인권(김대중)을 앞세웠지만, 결국은 무기 판매라는 실리를 취한 미국. 그리고 김대중과 달러를 주고 정권을 승인받은 전두환 정권.

전두환은 애당초부터 김대중을 처형하려 했을까?

전두환이 김대중을 겁박하는 선에서 그치려 했었는데, 미국이 김대중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했던 것은 아닐까?

전두환 정권은 미국의 승인을 받기 위해 김대중을 전략적으로 이용한 것일까?

전두환은 아직도 당시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고 있다.

진실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위키리크스한국=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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