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논란에도...교육부 성교육 체계 재설계 없어
'n번방' 논란에도...교육부 성교육 체계 재설계 없어
  • 강혜원 기자
  • 승인 2020.04.12 10:10
  • 수정 2020.04.12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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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텔레그램 등 메신저 앱을 통해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거래하는 디지털성범죄가 연일 공분을 사는 가운데 용의자 상당수가 10대 청소년이라는 사실이 충격을 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교육부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 감수성 교육 강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지만, 교육부는 성교육 체계 자체는 손댈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교육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인 이른바 'n번방' 사건이 터지자 지난달 23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만나 교육부가 새로운 성교육 방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에 정부는 국무조정실(국무총리실) 주관으로 n번방 관련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꾸렸고, 교육부도 여기에 참여해 여성가족부 등 유관 부처와 함께 관련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의 성교육 주무 담당자들은 이 TF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교육부에 성교육을 담당하는 과는 '학생건강정책과'와 '양성평등정책담당관' 2곳이다. 학생건강정책과는 성교육 체계 전반을 맡고 있고,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은 성교육 중 일부인 성폭력 예방 업무만 맡고 있다.

그런데 범정부 TF에는 양성평등정책담당관 직원만 참여하고 있다. 학생건강정책과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학생 건강 및 방역 관리 업무에 몰두하는 중이다.

n번방 등 최근 디지털성범죄 사건에 용의자 다수가 10대 청소년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성교육 체계 전반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센데도, 교육부는 성폭력 예방 교육만 일부 손질하는 수준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교육부의 성교육 담당 실무자인 학생건강정책과 최민애 연구사는 n번방과 관련해서 양성평등정책관 소관 업무라고 말했다.

그나마 성폭력 예방 부분이라도 챙겨야 할 교육부 양성평등정책관은 현재 공석이다. 외부 전문가를 채용하기 위해 공모를 진행 중이며, 4급 서기관이 직무를 대신하고 있다. 양성평등정책관은 일러야 6월 이후 채용 절차가 마무리된다.

전문가들은 전국 초·중·고등학교의 모든 성 관련 교육은 2015년 교육부가 개발·보급한 '성교육 표준안'을 밑바탕에 두고 있으므로 이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교육부 성교육 표준안은 성범죄에 관해 여학생에게만 '피해자 되지 않기'를 가르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교육부가 2017년 KT대전인재개발원에서 주최한 성교육 표준안 직무연수 자료를 보면, 표준안은 학생들이 성을 보호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명목으로 '대처 기술'을 가르치도록 명시하고 있다.

유치원에서는 '성폭력 상황이나 성적 강요에 대한 적절한 대처 행동', 초등학교에서는 '성폭력에 대처하는 능력과 바람직한 방법으로 거절하는 법', 중·고등학교에서는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는 법' 등을 가르치라고 제시한다.

고등학교 성교육 표준안에는 '수용하기 어려운 성적 요구에 대해 상대방을 이해시키면서 효과적으로 거절할 방법'을 가르치라는 내용도 있다.

이런 성교육 표준안은 지난 5년 동안 유치원과 초·중·고의 모든 성교육 및 성폭력 예방 교육의 기둥으로 자리매김했다.

'성교육'과 '성폭력 예방 교육'은 별개라며 담당 과를 따로 두고 있는 교육부 입장이 타당해지려면 성교육은 보건 교사 등 보건 전문가가 하고, 성폭력 예방 교육은 성폭력·젠더 전문가가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학교 실정은 그렇지 않다. 인력·예산 부족 등의 문제로 대다수 학교에서 일반 교사들이 성교육과 성폭력 예방 교육을 구분 없이 하고 있다. 외부 전문가를 성교육에 투입하는 학교는 극히 드물다.

교육부는 "성교육 표준안에 관한 지적이 많아서 전문가 정책연구를 세 차례 발주했으나 모두 유찰됐다"며 표준안 개정은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성교육 표준안 책임자인 조명연 학생건강정책과장은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성매매와 포르노그래피가 용인되는 남성 중심 사회가 어떻게 성착취·성범죄로 연결되는지를 가르쳐야 한다"며 "이런 문화나 범죄에 가담했을 때 어떤 처벌을 받는지, 묵인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성교육에 담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찰이 최근 디지털성범죄 사건 274건을 수사하자 검거된 피의자 221명의 29.4%(65명)가 10대 청소년이었다. 한 성착취물 공유방은 운영자가 만 12세로 밝혀졌다.

n번방·박사방 사건이 공분을 사자 10대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남성들이 뭐 XX, n번방을 내가 봤냐 XXX들아'라고 적힌 여성 비하 이미지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에 올리는 행위가 놀이처럼 번지기도 했다.

[위키리크스한국=강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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