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일본의 코로나 늑장 대응에는 '고질적인 관료주의'가 버티고 있다
[WIKI 프리즘] 일본의 코로나 늑장 대응에는 '고질적인 관료주의'가 버티고 있다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0.04.30 06:29
  • 수정 2020.04.30 0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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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붐비는 야간업소와 벚꽃놀이 인파...전문가들의 위기의식과 대중의 안이한 태도 사이에 여전한 차이 존재
외출 자제를 당부하고 나선 일본 관리들[사진 출처 : AP=연합뉴스·게티이미지뱅크]
외출 자제를 당부하고 나선 일본 관리들[사진 출처 : AP=연합뉴스·게티이미지뱅크]

일본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늑장 대처하며 의료시스템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비관적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워싱턴포스트>가 29일(현지 시간) 일본의 고질적인 관료주의가 사태의 한 원인일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다음은 이 보도의 전문이다.

일본의 코로나바이러스 전략본부는 마치 탐정 놀이라도 하듯이 감염군(感染群)들을 추적하는 데 주력해왔다. 감염에 취약한 소집단들을 선별적으로 추적해서 감염에 노출된 사람들을 격리하는 전략을 추구해왔다는 말이다.
 
그러나 일본의 감염통제센터를 맡고 있는 바이러스 추적팀은 자신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확진자들의 등장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난 3월 중순경 전통적으로 상류층 단골손님들과 샐러리맨들을 상대하는 도쿄의 호스티스 바와 나이트클럽에서 감염군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바들과 클럽들에 있던 사람들이 보건 조사관들에게 사실대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야간업소들은 신분이 높은 고객들과 부자 고객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감염통제센터의 일원인 도호쿠 대학의 다케아키 이마무라 교수는 공영방송인 NHK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업소의 직원들은 고객 보호 차원에서 어떤 것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누가 다녀갔으며,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등을 절대 말하지 않을 겁니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밝히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와 같은 상황은 도쿄의 어두운 이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바들을 찾는 남자들은 여성 종업원들과 술을 마시는 데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다른 업소들에서는 성적 서비스도 제공된다.
 
주점들과 클럽들, 그리고 도박장들이 코로나19를 통제하려는 일본 정부의 노력에 취약한 연결고리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훨씬 광범위한 이야기의 일부분일 뿐이다. 전면적인 봉쇄조치에 거부반응을 보이고, 바이러스 대처에 따른 경제 파급 효과를 최소화하는 데에만 매달리고 있는 정부 때문에 발생하는 이야기는 이보다 훨씬 많다.
 
▷ 비싼 수업료
일본 정부는 경제적 고통과 공중보건 사이를 저울질하며 몇 개월을 보냈다. 이 두 가지 대립 요소는 사회활동과 경제활동 재개를 놓고 현재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일본의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은 검사 능력의 부족 때문에 제한을 받아왔다. 또, 사태 발발 초기에 정부가 민간 분야에 대한 검사를 거부한 데에서도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정부 관리들은 대량 검사를 통해 바이러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델을 따라가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일본 감염통제센터의 책임을 맡고 있는 도호쿠 대학의 히토시 오시타니 박사는 감염군들에 선별적으로 접근하는 데 방점을 찍었던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감염자들이 아무한테나 바이러스를 전파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에 따른 전략이었다. 그 대신에 사람들이 밀집되고 폐쇄된 공간에서 소규모 집단이 슈퍼 전파자 역할을 한다는 이론을 말한다.
 
이러한 전략은 초기에는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 통제센터는 2월에 별다른 사회적 파장 없이도 24시간 감염군들을 추적하며, 중국과 다이아몬든 프린세스 크루즈 선에서 발생한 감염의 파고를 차단하는 데 성공했었다.
 
하지만 낙관은 일렀다. 강력한 이동제한 조치가 내려지기도 전에 유럽과 미국의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 파고가 일본에 밀려들자 정부의 전략이 꼬이기 시작했다.
 
3월 중순경, 감염자의 공식 숫자가 저조하다는 사실에 안전의식의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정상 활동으로 복귀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었던 정부 관리들은 바이러스에 덜 취약한 지역을 중심으로 학교들의 문을 다시 열자고 제안했다.
 
이때 아베 신조 총리는 ‘지속적인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총리의 이러한 메시지는 혼란을 부추길 뿐 아니라 무사안일에 빠져있는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21일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에서 코로나19 위기감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끼고 벚꽃놀이를 즐기고 있다. [EPA = 연합뉴스]
21일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에서 코로나19 위기감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끼고 벚꽃놀이를 즐기고 있다. [EPA = 연합뉴스]

▷ 벚꽃놀이 인파

3월 21일, 일본에는 추분을 맞아 3일 동안의 휴가 시즌이 찾아왔다. 태양은 밝게 빛나고 벚꽃이 만발하자 도쿄 사람들은 공원으로 몰려나와 소풍을 즐기고, 주점과 식당들을 가득 메웠다.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봉쇄조치로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모습은 초현실적 상황처럼 보였다.
 
하지만 일본이 그 대가를 치르는 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더 많은 감염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본 북동부 센다이의 한 주점에는 300명의 학생들이 몰려들었고, 도쿄 시부야의 한 나이트클럽이나 다른 식당들이나 주점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러자 3월 28일 마침내 오시타니 박사의 동료인 히로시 니시우라가 도쿄시에 보다 강력한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이틀 뒤 유리코 고이케 도쿄시장은 시민들에게 가라오케 룸과 공연장, 주점, 나이트클럽의 출입을 자제해달라고 권고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니시우라는 기자회견장에서, 새로운 감염자의 30%가 야간에 운영되는 업소들에서 나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감염자들의 상당수는 밀접 접촉자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도쿄에 퍼지고, 추적 불가능한 감염자들이 증가하고 있는데도 감염군을 중심으로 하는 접근법은 여전히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었다.
 
전략의 수정은 필연적으로 보였으며, 정부는 검사를 공격적으로 확대해야만 했다.
 
“분명하게 문제가 노출되었습니다.”
 
감염통제센터의 책임자 히토시 오시타니 박사는 NHK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정부 내의 전문가 집단은 검사의 확대를 줄기차게 주장해왔으며, 이제는 이 전략이 정부 정책의 일부분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검사소들이 그렇게 빠르게 효과적으로 신설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시타니 박사는 일본이 ‘재앙의 문턱’에 서 있다고 말했다. 의료시스템의 붕괴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말이다.
도쿄 번화가 긴자의 밤 거리. EPA연합뉴스
도쿄 번화가 긴자의 밤 거리. EPA연합뉴스

▷ 여전한 야간 인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의 밤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일본은 예외라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스크를 쓰고, 악수를 하지 않으며, 집 안에서는 신발을 벗기 때문에 감염률이 저조하다고 믿고 있다.
 
NHK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오시타니 박사와 같은 전문가들의 위기의식과 대중의 안이한 태도 사이에 ‘틈이 크게 벌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공영방송은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벌어진 틈’의 가운데에는 저비용을 추구한 초기 전략이 실패했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정부와 관료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전통적으로, 역사적으로 일본은 전략을 주정하는 데 익숙하지 못합니다.”
 
고베 대학의 감염병 전문가 겐타로 이와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일단 하나의 전략을 수립하고 나면 이것을 플랜 B로 바꾸는 데 능숙하지 못하며, 심지어는 플랜 B라는 생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플랜 B를 떠올린다는 것은 플랜 A가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지요.”
 
이와타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감염병 관리에 책임이 있는 많은 사람들, 특히 관료들은 실패의 가능성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이후 얼마 안 있어서 ‘일본 의료연맹’은 일본의 건강 관리 시스템이 붕괴 직전에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일본 집중의료학회’도 집중치료실의 병상과 간호사가 심각하게 부족하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4월 7일 드디어 일본 정부가 행동에 나섰다. 아베 총리가 일본 47개 현 중 7개의 현에 한 달간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4월 16일에는 이 비상사태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다. 나이트클럽들에는 휴업 권고가 내려졌지만, 주점들과 식당들은 저녁 8시까지는 영업을 할 수 있다.
 
시련을 거치면서도 모두가 다 교훈을 얻는 것은 아니다. 4월 9일, 야당 국회의원인 다카시 다카이가 도쿄의 가부키조에 있는 성매매 업소를 찾았다가 언론에 들통이 나서 사임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부에도 맹점이 있기는 마찬가지처럼 보였다. 정부는 경제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면서 처음에는 성매매 노동자들을 포함하지 않았다가 인권운동가들과 야당 정치인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그때서야 보상 대상에 포함하도록 정책을 바꾸었다.
 
도쿄의 지하철을 이용하는 통근객의 숫자는 60~70%까지 떨어졌으며, 번화가에 모이는 사람들의 숫자도 비슷한 수치로 떨어졌다. 하지만 사회적 접촉자의 수치가 80%까지 떨어지기를 바라는 당국의 목표에는 아직 미달이다.
 
일일 신규 확진자의 숫자는 안정을 찾았지만, 빠르게 줄고 있지는 않으며, 정부가 5월 6일에도 비상사태 선언을 철회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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