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72) 전두환 정권에 맞선 김영삼의 단식투쟁… 민주화의 물꼬를 트다
청와대-백악관 X파일(72) 전두환 정권에 맞선 김영삼의 단식투쟁… 민주화의 물꼬를 트다
  • 특별취재팀
  • 기사승인 2020-05-29 15:07:36
  • 최종수정 2020.06.02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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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청와대 백악관 x파일

전두환 정권에서 국회는 거수기 역할 이상을 할 수가 없었다.

제1야당인 민주한국당도 사실은 안기부의 자금을 지원받아 창당된 관제야당이어서, 민정당의 2중대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국회까지 손에 넣은 전두환 정권은 철저하게 군국주의식 통치를 펼쳐갔다.

대학가에 대한 집회규제를 완화하기는 했지만 대학을 벗어난 시위는 용납하지 않았다. 정권은 학생, 노동자들이 산발적으로 저항할 때마다 공권력을 가장한 폭력으로 제압해나갔다.

국민과 지식인들은 광주 민주화운동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 조작됐다는 심증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고,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 숨죽이면서 살아가야 했다.

지식인들은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이 영원한 군사독재 국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면서도 체제에 대항할 수단이 없어 연일 울분을 삼켜야 했다.

5공의 철옹성을 향해 죽창을 든 것은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였다.

신군부의 강압에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김영삼은 1983년 5월 18일, 5.18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이하여 5.18영령들을 추모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인다.  ⓒ 김영삼 회고록
신군부의 강압에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김영삼은 1983년 5월 18일, 5.18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이하여 5.18영령들을 추모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인다. ⓒ 김영삼 회고록

김영삼은 1980년 군사쿠데타에 의해 타의로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3년째 자택에 연금당한 상태였다.

목숨을 내놓고 정권에 저항하기로 결심한 김영삼은 1983년 5월 2일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했다.

김영삼은 ①구속인사의 전원석방 ②전면해금 ③해직교수 및 근로자, 제적학생의 복직, 복교, 복권 ④언론자유 ⑤개헌 및 국가보안법의 개폐 등 5개항을 요구했다.

군사정권이 김영삼의 요구를 수용할 리가 만무했다.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요구 수용 불가’ 통보를 받자 김영삼은 5월 18일 상도동 자택에서 단식에 돌입했다. 

김영삼은 단식에 들어가면서 밝힌 <단식에 즈음하여> 성명을 통해 "나는 오늘 민주화 투쟁에 대한 나의 뜻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단식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나의 단식은 군사 쿠데타에 의해 민주주의가 송두리째 파괴되고 부정당함은 물론, 민주화를 요구하던 수백, 수천명의 민주시민이 광주에서 무참히 살상당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데 대한 자책과 참회의 뜻올 표시하는 것이며, 비극적인 광주의거로 목숨을 잃은 영혼과 거기 서 살상된 민주시민들과 그 가족이 겪은 고통에 동참하는 기회이며 동시에 반민주적인 독재권력의 강화와 인권유린 및 정치적인 탄압에 대한 항의와 규탄의 표시이자 민주정치의 확립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나마 시급히 강구되어야 한다는 나의 정치적 요구의 표시입니다.”

김영삼은 "나의 단식은 앞으로 우리가 전개해야 할 민주화투쟁은 생명을 건 투쟁이어야 하며, 생명을 건 투쟁만이 민주화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께 알리면서 나의 투쟁 결의를 굳건히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삼은 "나에 대한 어떠한 소식이 들리더라도 그것에 연연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오히려 민주화에 대한 우리 국민의 뜨거운 열정과 확고한 결의를 보여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1983년 6월 김대중-문동환이 미국 현지에서 김영삼 단식을 지지하는 활동을 함께하는 모습.  ⓒ 김대중평화센터
1983년 6월 김대중-문동환이 미국 현지에서 김영삼 단식을 지지하는 활동을 함께하는 모습. ⓒ 김대중평화센터

단식투쟁은 국내-외에 예상을 뛰어넘는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단식 이틀째인 19일 전 신민당 소속의원, 재경지구당위원장, 지도위원 등 20여 명은 긴급 모임을 갖고 대책을 논의하여 '김영삼총재 단식대책위원회 6인소위'를 구성하고 국무총리의 면담을 요구키로 했다.
 
단식이 이어지면서 김영삼의 건강을 걱정하는 국민들의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당황한 전두환 정권은 단식 8일째가 되자 경찰을 통해 김영삼을 서울대 병원으로 강제이송시켰다. 정보기관원들이 감시하는 가운데 본관 I2층에 입원했으나 김영삼은 단식투장을 계속했다.

민한당의 유치송 총재, 윤보선 전 대통령, 김수환 추기경, 유진오 전 신민당 총재 등이 5월 29일부터 차례로 김영삼과 면담, 단식중단을 종용했다.

하지만 김영삼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특별취재팀= 최석진, 박성준,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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