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사이언스] 신약성서의 역사성을 입증하는 10가지 고고학 발굴들(상)
[WIKI 사이언스] 신약성서의 역사성을 입증하는 10가지 고고학 발굴들(상)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0.06.13 06:54
  • 수정 2020.06.02 0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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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아키알러지리포트가 성서의 고고학적 증거 10개를 제시해 관심을 끌고 있다. [BAR]
바이블아키알러지리포트가 성서의 고고학적 증거 10개를 제시해 관심을 끌고 있다. [BAR]

인류의 역사는 예수의 탄생을 기점으로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로 나뉜다. 말 그대로 B.C.란 '예수 이전의 역사'이며, A.D.란 주의 해(Year of the Lord)라는 뜻으로, 예수가 탄생한 해를 의미한다. 예수의 등장과 함께 기원 후의 역사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고고학계에서는 성서의 사실성과 예수의 존재를 둘러싸고 수많은 논란이 전개돼 왔다.

'신약성서 속 예수는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인가', '신약성서의 기술들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가', '성서에 기록된대로 예수가 펼쳤던 기적들은 사실인가', '예수는 십자가에 처형되고 사흘만에 부활했는가', '예수는 인류의 스승이었나, 구약성서에서 예언된 메시아였나'...   

이런 가운데 성서고고학을 전문으로 다루는 웹사이트 ‘바이블아키알러지리포트(BAR: biblearchaeologyreport.com)’는 최근 신약성경의 기록들이 실재했다는 고고학적 증거 10개를 제시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 기사는 연구자 브라이언 윈들이 그동안 밝혀진 고고학적 발굴들을 정리한 것이다. 

1) 십자가에 처형된 사람의 발꿈치뼈

로마의 십자가 처형을 가장 잘 입증하는 고고학 자료는 십자가에 처형된 사람의 발꿈치뼈이다. 요세푸스나 플라우투스, 그리고 세네카와 같은 여러 고대의 작가들이 십자가 처형과 관련된 글들을 남기고 있지만 못이 그대로 박혀있는 발꿈치뼈야말로 로마 사형제도의 형태를 올바르게 분석할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가 되고 있다.

1968년 건설 인부들이 이스라엘 주택부의 명으로 예루살렘 북동부에서 땅을 파다가 우연히 몇 개의 묘지를 파내게 되었다. 급히 투입된 고고학자들은 이 묘지들에서 수많은 납골함들을 발견했는데, 어떤 함 안에 십자가에 처형된 성인 남성의 뼈들이 들어있었다.

1. 1세기에 십자가에 처형된 저호하난의 발꿈치뼈. 발꿈치에 박힌 못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의 최후가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 출처 : Ferrell Jenkins)
1세기에 십자가에 처형된 저호하난의 발꿈치뼈. 발꿈치에 박힌 못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의 최후가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 출처 : Ferrell Jenkins)

납골함 외부에 새겨진 이 남성의 이름은 저호하난 또는 여호하난(Jehohanan, Yehohanan)이었으며, 그의 오른쪽 발꿈치에는 십자가 처형의 흔적인 듯 녹슨 못이 지금도 박혀있다. 못은 구부러져있는데, 이는 못이 십자가 나무에 박히는 과정에서 옹이를 만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처형 후 희생자의 가족은 발에 심각한 훼손을 입히지 않고서는 사체에서 못을 빼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못을 그대로 둔 듯하다.

분석 결과 발꿈치뼈와 못은 AD 1세기의 것들로 판명되었으며, 저호하난은 십자가의 세로 기둥 측면에 발들이 걸친 상태에서 발꿈치의 못도 옆에서 박은 것으로 보인다. 뼈를 관찰하면 처형 당시 그의 다리가 부러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발견으로 발에 못을 박고, 다리가 부러지는 등의 성경에 묘사된 십자가 처형이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이와 더불어, 로마의 풍습에서는 십자가에 처형된 죄수는 정상적인 장례를 치를 수 없었기 때문에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 무덤에 묻지 못했을 것이라는 비평가들의 주장을 확실하게 잠재울 수 있는 징표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비평가들은 예수의 시신은 저주받은 주검을 처리하는 집단 매장지에 내버려졌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 발견 덕택으로 십자가에 처형된 희생자의 가족이 시신을 수습하고 가족묘지에 매장할 수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2.  ‘레일란드 도서관 파피루스 P52’는 요한복음서의 18장 31~33절과 37~38절을 담고 있는 파편(조각)이다. 이는 가장 연대가 오래된 신약성경 사본이다.(사진 출처 : JRUL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레일란드 도서관 파피루스 P52’는 요한복음서의 18장 31~33절과 37~38절을 담고 있는 파편(조각)이다. 이는 가장 연대가 오래된 신약성경 사본이다.(사진 출처 : JRUL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2) P52 사본(요한복음서 파편)

가장 연대가 오래된 신약성경 사본은 ‘레일란드 도서관 파피루스 P52(Rylands Library Papyrus P52)’라고 알려진 요한복음서의 파편(조각)이다. 이 사본의 파편은 줄여서 그냥 ‘P52’라고도 불린다. 이 파편은 가로 6Cm, 세로 8.9Cm의 크기로 한쪽 면에는 헬라어로 작성된 요한복음 18장 31~33절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다른 쪽 면에는 37~38절의 내용이 적혀있다.

이 파피루스 사본은 AD 125~175 시기에 작성되었다. 사도 요한이 AD 1세기 후반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복음서를 썼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본 파편은 요한복음 원본이 작성된 때로부터 100년이 채 되지 않은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P52’는 버나드 그렌펠이 1920년 이집트에서 구매한 파피루스 문서 더미 속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다가 1934년이 되어서야 다른 성서학자가 파편에 기록된 내용을 번역하고, 그것이 요한복음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마침내 파편의 내용이 완전히 번역되고 출판된 이후 사람들은 이 파편이 얼마나 중대한 발견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 사본 파편이, 요한복음서가 최초로 기록된 에베소서에서 꽤 멀리 떨어진 이집트에서 발견됨으로써 우리는 AD 2세기 초반부터 성경의 내용들이 베껴져서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나갔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레일란드 도서관 파피루스 P52’는 지금까지 발견된 5,800개가 넘는 헬라어 성경 사본(파편이든 완제품이든) 중의 하나이다.

한편, 지금까지 발견된 성경 사본들에는 라틴어로 작성된 1만여개의 사본과 다른 언어로 써진 9,300개의 사본들이 있다.

‘레일란드 도서관 파피루스 P52’는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을 원본과 연결시켜주는 가장 오래된 연결 고리에 속한다.

‘빌라도의 비문(Pilate Stone)’은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이었음을 입증한다. (사진 출처 : JRUL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빌라도의 비문(Pilate Stone)’은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이었음을 입증한다. (사진 출처 : JRUL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3) 빌라도의 비문(Pilate Stone)

신약성경 속에 등장하는 가장 악명 높은 인물 중 하나는 본디오 빌라도이다. 그는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다. 빌라도는, 복음서의 기록 뿐만 아니라 요세푸스나 타키투스, 그리고 필론 같은 고대의 저술가들도 언급했기 때문에 그의 역사성이 의심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빌라도의 실존은 고고학적 발견으로도 입증되었다. 1961년 가이사랴 마리티마(Caesarea Maritima) 인근 원형경기장 발굴지에서 돌에 새긴 비문이 출토되었다. 발굴된 석회석 벽돌은 ‘유대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 Caesar)에게 헌납한 봉헌물의 일부였다.

흥미로운 점은, 빌라도의 직함이 행정장관이 아니라, 알려진 바대로, 총독이었음을 빌라도의 비문이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55-120 추정)는 빌라도를 행정장관으로 잘못 지칭한 바가 있다.

총독과 행정장관은 임무는 비슷했지만 같지 않았다. 행정장관은 정치적으로 통치하는 민간인 관리로 임명되었으며, 일반적으로 재력 있는 민간인 중에서 선발되었다. 하지만 총독은 로마 제국 영토 내 일정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기 위해 언제나 군인 출신으로 선발되었다.

복음서 저자들은 본디오 빌라도를 묘사할 때 그냥 ‘영도자(to lead)’라는 의미를 지닌 헬라어 ‘hegemanos’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총독 직책은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10 B.C.-A.D. 54) 때인 AD 40년대 초반 무렵에 폐지되었다. 그랬기 때문에 2세기 초반에 활약했던 타키투스가 어째서 그의 시대에 사용되던 용어인 행정장관이라는 용어로 잘못 사용했는지가 설명이 된다.

결국, 빌라도의 비문은 빌라도가 실제로 유대의 총독이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더욱 최근에는 빌라도라는 이름을 담고 있는 또 다른 유적이 발견되었다. 2018년, 이미 1968년과 1969년에 헤로디움(Herodium, 베들레헴 부근에 있는 헤롯 대왕의 요새 궁전) 터에서 발굴된 구리 반지를 깨끗이 세척하고 새롭게 사진을 찍고 분석한 결과 헬라어 비문인 ‘빌라도의(of Pilatus)’라는 문구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 반지는 당시 로마 군인들 사이에서 쉽게 발견되었는데, 빌라도라는 이름이 흔한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이 반지가 본디오 빌라도의 소유물이었거나 그의 하인 중 하나의 물건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빌라도의 비문이나 빌라도의 반지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한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역사성을 입증하는 고고학적 증거가 되고 있다.

그리스 델포이 신전에서 나온 ‘갈비오 비문’은 갈리오가 AD 52년 무렵 아가야의 총독이었음을 나타낸다. (사진 출처 : HolyLandPhotos.org)
그리스 델포이 신전에서 나온 ‘갈리오 비문’은 갈리오가 AD 52년 무렵 아가야의 총독이었음을 나타낸다. (사진 출처 : HolyLandPhotos.org)

4) 갈리오 비문(Gallio Inscription)

사도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 고린도에서 1년 반을 머물렀다. 사도행전 18장 12절에는 ‘그러나 갈리오가 아가야 주 총독으로 있을 때에 유대 사람이 한패가 되어 바울에게 달려들어, 그를 재판정으로 끌고 가서’라는 대목이 나온다.

‘델포이 비문(Delphi Inscription)’이라는 다른 명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갈리오 비문’은 그리스 델포이 신전에서 발견된 9개의 파편으로 구성된 유적이다. 이 비문은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10 B.C.-A.D. 54)가 기록했으며, 내용으로는 아폴로 신에 대한 신앙을 수호하는 글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나의 친구이자 총독인 갈리오(Junius Gallio)’를 언급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비문에는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AD 52년 1월과 8월 사이에 26번째로 최고사령관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다고 기록되어있다. 이와 관련해서 신학자이자 히브리어 교수인 앤드류 스테이만은 성서 연대기를 기록한 자신의 저서를 통해, 속주의 총독은 항상 5월 1일 취임해서 1년 동안만 역임하였므로 우리는 갈리오가 아가야의 총독으로 AD 51년 5월 1일 취임해서 52년 4월 말 퇴임한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언급했다.

위와 같은 사실들로 미루어 우리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던 시기를 콕 집어낼 수 있다. 바울은 AD 51년 중순경 유대인들에 의해 갈리오 앞으로 끌려갔을 것이다.

결국, ‘갈리오 비문’을 통해 우리는 사도 바울의 대부분의 사역과 초기 기독교 역사의 상당 부분을 정확히 추적할 수 있다.

1세기에 선포된 황제의 포고문을 담고 있는 ‘나사렛 비문’은 무덤에서 시신을 훔치는 자는 누구든지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진 출처 : Poulpy / Wikimedia Commons / CC-BY-SA-3.0)
1세기에 선포된 황제의 포고문을 담고 있는 ‘나사렛 비문’은 무덤에서 시신을 훔치는 자는 누구든지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진 출처 : Poulpy / Wikimedia Commons / CC-BY-SA-3.0)

5) 나사렛 비문(Nazareth Inscription)

1878년 뷜헬름 프뤠허는 나사랏에서 기록된 헬라어를 담고 있는 대리석판 하나를 습득했다. 이 석판은 프뤠허가 사망한 후 파리 국립도서관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가가 재발견되었다.

1930년 프랑스 학자 프란츠 쿠몽이 이 석판의 내용을 번역하고 출판하자 학계에서는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이후 ‘나사렛 비문’이라고 불리게 되는 이 석판은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의 통치 시기(41-54 AD)로 추정되는 때의 ‘황제의 칙령’을 담고 있다.

이 칙령에는 이스라엘에 사는 누구든지 가족 묘지에서 시신을 옮기다가 붙잡히는 경우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있다. 특히 예수의 무덤처럼 입구를 봉한 무덤에서 시신을 옮기는 경우 그 죄가 더욱 중하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 비문을 대상으로 한 어떤 연구에서 학자들은 이 포고문은 특히 유대 사회를 겨냥한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 비문이 돋보이는 이유는 로마 황제가 처음부터 그러한 포고를 내릴 필요를 느꼈다는 사실 때문이다. 고대에는 무덤 도굴꾼들이 묘지를 약탈해서 귀중품들을 파가는 행위는 빈번했지만 시신을 가져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경에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가 부활하자)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훔쳐냈다는 거짓말을 교묘히 날조해서 퍼뜨린 것으로 기록되었다(마태복음 28:13-15). 이러한 소문은 의심할 나위 없이 새로운 기독교 운동을 불온한 움직임, 즉 반 로마 운동으로 보고 있던 로마 황제의 귀에도 들어갔다. 노스웨스턴 컬리지에서 고대 역사를 가르치는 클라이드 빌링톤 부교수는 이 비문을 연구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나사렛 비문에는 분명히 이방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유대인을 향한 내용이 들어있다. 그리고 이 비문은 거의 틀림없이 유대인의 왕인 나사렛 예수의 부활 소문에 대처하기 위해 클라우디우스 1세가 선포했음이 분명하다.’

[첨언] 고고과학회지의 가장 최근호에 발표된 연구 논문은, 무덤에서 시신을 훔치는 행위에 사형을 언도한다는 황제의 칙령을 담고 있는 ‘나사렛 비문’이 애초에 나사렛 예수의 부활에 대처하기 위해 선포되었다는 설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연구진들은 프랑스 국립도서관 측으로부터 이 대리석판 이면에서 뜯어낸 작은 조각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이 석판 가루에 탄소 동위원소 측정법을 대입한 결과 석판이 그리스 남부 코스 섬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 결과 연구자들은, 이 비문이 주전(主前) 수십 년 전인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코스 섬 사람들이 폭군 니키아스(Nikias)의 묘를 약탈한다는 고대 시에 묘사된 이벤트를 방지하기 위해 선포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연구자들은 ‘나사렛 비문’을 처음 구입했던 뷜헬름 프뤠허가 돈을 더 받아내기 위해 비석의 출처를 거짓으로 꾸며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연구에 동원된 진보된 과학 문명의 결과 대리석 거래의 과정을 엄밀히 추적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연구 결과와 관련해서 몇 가지 주목할 점들이 드러났다.

첫째, 이 연구는 비문에 사용된 대리석이 코스 섬에서 출토된 것이라는 점만을 알려줄 뿐이라는 점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거의 모든 대리석들이, 자체 조달이 어려워, 모두 수입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리석 그 자체가 나사렛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니다.

둘째, 역사적으로 그리스의 코스 섬과 갈릴리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헤롯 대왕과 헤롯 안티파스 두 사람 다 코스 섬의 비문들에서 명예롭게 등장하고 있다. 이는 두 지역 사이에 정치적·경제적 교류가 있었음을 입증해주는 증거이다.

마지막으로, 클라이드 빌링톤 교수가 지적하는 나사렛 비문과 관련된 두 측면의 기록을 주의 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 기록들에서 비 유대인, 즉 이방인의 표현에는 어울리지 않는 6가지 특질을 강조하고 있다.

[시리즈 이어집니다]

☆신약성서 10가지 고고학적 발굴들(하) http://me2.do/GJ3E9F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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