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히스토리] 이집트에서 400여년 노예살이... 이스라엘인들은 무엇을 했을까?
[WIKI 히스토리] 이집트에서 400여년 노예살이... 이스라엘인들은 무엇을 했을까?
  • 유진 기자
  • 기사승인 2020-06-09 13:47:46
  • 최종수정 2020.06.09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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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벽화에 그려진 벽돌 만드는 노동자들. [baslibrary.com]
이집트 벽화에 그려진 벽돌 만드는 노동자들. [baslibrary.com]

[편집자 주] BC 1,700여년 전, 이스라엘인들의 뿌리인 헤브라이 유목민들이 바빌로니아 땅에서 서쪽으로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이동했다. 기근이 심해지자 이들은 이집트로 이주해 고센 땅에 정착했다. 그리고 400년 이상을 이집트인들 속에 섞여 살았다.

이집트가 힉소스 족의 지배를 받는 동안에도 이들은 소유권도 박탈당하지 않은 채,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지냈다. 그러나 힉소스인들이 나일 강 계곡에서 쫓겨난 이후 헤브라이 백성들은 이집트인의 노예로 전락, 극심한 고통 속에 살아가야 했다. 이들의 고난은 BC 1,300년경 모세가 등장할 때까지 계속됐다.

일각에서는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건축하는 일에 동원됐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벽돌을 구워 신전이나 대규모 창고 등을 건축하는 일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이스라엘인들은 과연 이집트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세대를 이었을까. 

리버풀대학에서 이집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뱅쿠버신학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데이빗 포크(DAVID A. FALK) 박사는 성서고고학그룹(Biblical Archaelogy Society) 기고를 통해 이스라엘인들의 삶을 추적했다. 다음은 그의 기고 전문이다.

고대 이집트의 건물들은 돌이나 진흙 벽돌로 지어졌다. 신전들은 일반적으로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될 수 있는 석재로 건축됐다. 반면 궁궐은 낮에는 시원하고 밤에는 따뜻했던 흙벽돌로 안락하게 지어졌다.

한 유형의 건축에 노동했던 사람들은 다른 유형의 공사에 투입하지 않았다. 이는 전문성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성경은 피라미드가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지어졌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피라미드, 그리고 확실히 구 왕국시대의 유명한 기자 피라미드는 아브라함 시대보다 수백 년 전에 지어졌다. 게다가, 고고학 자료들은 피라미드가 돌 벽돌 건축에 특화된 이집트 원주민들에 의해 지어졌다는 것을 밝혀냈다.

성서의 본문은 이스라엘 노예들이 진흙 벽돌로 일을 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그들의 신 여호와를 예배하고 오겠다며 3일 간의 휴가를 요구하자 파라오는 이스라엘인들의 노동강도를 더 높이는 것으로 응수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인들의 노동을 지휘하는 감독관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너희는 더 이상 백성에게 이전처럼 벽돌을 만들 짚을 주지 말고, 그들을 보내 스스로 짚을 모으게 하여라. 그러나 그들이 이전에 만들었던 벽돌의 몫은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그들의 부담을 줄이면 안된다.” (출애굽기 5:7-8, NASB)

파라오의 이러한 말은 당시 노동자들이 진흙 벽돌을 만들 때 벽돌이 깨지지 않도록 짚을 넣었음을 시사해준다. 진흙 벽돌은 진흙과 모래로 이루어진 역암토와 나일 충적토로 만들어졌다.

그 혼합물 내의 점토의 비율은 진흙의 성질을 좌우한다. 점토의 함량이 비례적으로 높을때는 짚을 사용하지 않고도 벽돌을 만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점토의 함량이 낮을 때는 벽돌이 부서지지 않도록 짚을 첨가했다.

벽돌 노동에 대해 언급돼 있는 파피루스 문서.
벽돌 노동에 대해 언급돼 있는 파피루스 문서.

아나스타시 파피루스4(12.5-6)는 숙련된 노동력과 물자 부족에 대해 “나는 퀜퀜엔타에 살고 있는데, 벽돌이나 짚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이 지역에 없다“며 한 이집트 군인의 좌절감을 표현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건설 노동자라기 보다는 주로 벽돌공이었음이 확실했다.

출애굽기 5장 14절-19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매일 만들도록 요구된 벽돌의 할당량이 있었다는 것을 반복해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아나스타시 파피루스3(3.1-2)을 통해 이집트인들이 벽돌 제조업자들에게 할당량을 정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이 벽돌을 만들고 있다…그들은 벽돌의 할당량을 매일 만들고 있다.”

벽돌 제조는 고대 이집트의 노예들에게 규범된 특화 노동이었다.

기원전 15세기(이집트 18왕조)에 해당하는 레크미르(Rekhmire) 무덤에서는 레반트 아시아틱과 누비아 노예들이 벽돌을 만드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기원전 15세기(이집트 18왕조) 레크미르(Rekhmire) 무덤에서 발굴된 레반트 아시아틱과 누비아 노예들의 벽돌제조 모습.
기원전 15세기(이집트 18왕조) 레크미르(Rekhmire) 무덤에서 발굴된 레반트 아시아틱과 누비아 노예들의 벽돌제조 모습.

이집트인 관리자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짚을 주지 않으면서 그들의 할당량을 맞추도록 강요했고, 그것은 결국 구타할 구실을 줬다.

출애굽기 5장 14절에 따르면 이집트 감독관들은 이스라엘 현장 작업반장들을 먼저 때린 후 취조하곤 했다. 용의자들을 심문하기 전에 두들겨 팼던 이 심문 기법은 람세스 9세 시대에 일어난 무덤 도굴 사건에서도 사용됐다.

이집트인들은 용의자들이 심한 구타를 당한 후에야 비로소 질문에 진실하게 대답하게 된다고 사고했다. 

파피루스 BM 10052(15.21-23)는 이러한 질문들 중 몇가지를 기록하고 있다.

“심판을 보겠다. 외국인 네크의 아들 아하티누페르가 출석했다. 그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어요, 전혀 없어요'라고 외쳤다.”

파피루스 애머스트(3.6-7)에서 우리는 이런 매질이 매우 심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몽둥이로 두들겨서 심판을 받았고, 그들의 발과 손은 뒤틀렸다.”

몽둥이로 심하게 맞은 후 이뤄진 심문에서 그는 무죄임이 밝혀졌다.

테베에서 발굴된 카르낙 신전. 신전 옆에 곡식저장고 등 부설건물들이 웅장하게 들어서 있다.
테베에서 발굴된 카르낙 신전. 신전 옆에 곡식저장고 등 부설건물들이 웅장하게 들어서 있다.

출애굽기 1장 11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의 국고성(곡식을 저장하는 창고도시)를 건설하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힘든 일을 시키기 위해 그들 위에 일을 시키는 관리인을 임명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파라오의 곡식 저장 도시인 비돔과 라암셋을 건설하게 했다.”

이 두 도시는 돌로 된 사원을 포함한 다양한 건물들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 도시들은 단순히 곡식을 저장하는 의미 이상의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비돔과 라암셋은 창고도시라고 불리기에 적절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이 구절은 아마도 이 도시들 내의 구조물들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즉, 신전 옆에 대량의 곡물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일련의 진흙 벽돌 창고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성경이 이러한 구조물을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성(도시)으로 지칭하는 것은 이들 사업의 규모가 매우 큰 프로젝트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 창고들은 때로 신전이 차지하는 면적을 초과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라메세움과 같은 몇몇의 장제전(葬祭展)을 둘러싸고 있는 창고들의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장제전이란 고대 이집트에서 국왕의 영혼을 제사하던 숭배전이다. 국왕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기도와 관존의 예의로 공양의식을 올리곤 했다.

사원들에게 그런 창고가 필요한 이유는 당시 이집트가 화폐를 사용하지 않고 곡식 등을 직접 교환하는 ‘물물교환’ 경제 시대였기 때문이다.

최근 복원된 하쳅수트 장제전.
최근 복원된 하쳅수트 장제전.

신전 숭배는 제물을 만들고 사제들을 먹여 살리는 음식이 있는 한 지속되었다.

신전이 계속 운영되려면 제물을 위한 식량을 저장하는 것이 필수적이였다. 이집트의 많은 신전들은 왕이 죽고 나면 국가의 지원에 의존할 수 없었고, 특히 왕실의 장제전인 경우 더욱 그랬다.

왕이 사망하면 대부분의 왕실 건축 프로젝트와 제물을 위한 식량의 수집은 바로 중단됐다.

예를 들어, 투탄카멘에서 시작된 룩소르 신전 주랑의 부조는 왕의 사망으로 인해 원래 계획대로 완료되지 않았다.

한 왕이 관심을 갖고 추진하던 일이 다음 왕으로 자동으로 승계되지 않고, 새 왕의 뜻에 따라 새로운 프로젝트를 전개하곤 했기 때문이다.

이는 카르낙신전 등 행정 중심지 역할을 했던 주요 기관의 신전들이 영속적 토지 무상 불하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지원됐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창고 도시들은 왕의 장지와 그의 사후 특별 이익 숭배자들을 위한 지속적인 헌납을 보장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파라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러한 저장고를 짓도록 강요한 것은 단순한 노예 노동 그 이상을 의미했다. 

여호와가 택한 백성들을 여호와 이외의 신들에게 봉사하고 섬기도록 하는 명령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의 고통은 BC 1,300년대로 추정되는 모세의 등장과 출애굽(Exodus)로 인해 막을 내리고, 이스라엘 역사는 40년 광야생활에 이은 가나안 정책으로 이어지게 된다.

[위키리크스한국= 유진 기자]

▣ 화보로 보는 모세와 출애굽(이집트 탈출)

갈대상자에 실려 떠내려온 아기 모세. 이집트 공주가 건져올려 양자를 삼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탈출하는 모세.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탈출하는 모세의 뒤를 이집트 군대가 쫓아오고 있다.
홍해 바다 앞에서 여호와에게 기적을 기도하는 모세.
홍해 바다 앞에서 여호와에게 기적을 기도하는 모세.
갈라진 홍해바다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뒤를 쫓아오다 바다에 수장되는 이집트 군사들.
모세가 시내산에서 여호와로부터 십계명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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