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총수 공백' 면했지만… 사법리스크 악순환 우려는 지속
삼성 '총수 공백' 면했지만… 사법리스크 악순환 우려는 지속
  • 정예린 기자
  • 승인 2020.06.09 20:39
  • 수정 2020.06.10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법원 "구속 필요성 소명 부족"
"수사심의위 위원 구성 객관적이라면 불기소 권고 내릴 것"
사법 리스크 연장으로 부담…'뉴삼성' 행보 제동 우려
8일 오후 9시 20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수송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정예린 기자]
8일 오후 9시 20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호송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정예린 기자]

삼성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으로 총수 공백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영장 재청구 가능성이 남아있음은 물론, 검찰이 끝내 기소를 강행할 것으로 보여 삼성은 여전히 끝을 알 수 없는 사법 리스크 속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악순환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기각 사유 놓고 해석 공방…"검찰, 결국 기소 강행해 재판 갈 것"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9일 오전 2시께 이 부회장, 최지성 삼성 옛 미래전략실 전 실장(부회장), 김종중 옛 미전실 전략팀장(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날 재판은 이 부회장의 영장 심사에만 약 8시간 30분이 소요됐다. ‘최장 기록’으로 남아있는 국정농단 사건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장 심사 시간인 8시간 42분의 뒤를 잇는 기록을 세워 최종 결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재판이 마무리된 지 약 5시간 만에 기각이 결정되면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법원은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이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면서도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 소명이 부족하다”고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사실관계가 소명됐다”는 것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법원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및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객관적인 사실관계만 인정했을 뿐이라는 입장이 우세한 가운데 관련 의혹에 이 부회장이 개입해 혐의가 있다는 검찰의 주장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되며 양측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영장전담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현재로서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다. 사실관계 소명은 합병 등에 국한된 것”이라며 “검찰이 주장하는 사실관계가 여러 증거들에 의해 인정되지만, 검찰에서 적용하려는 법규를 위반한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도 “이번 영장 기각 사유를 살펴보면 한마디로 ‘검찰의 주장이 무엇인지 알겠다. 그런 주장이라면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염려가 없으니 불구속으로 재판을 하라’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통상 영장 기각 사유에 ‘범죄 사실은 소명되나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제시하는 것과 달리 이 부회장의 경우를 살펴보면, ‘범죄 사실’이나 ‘혐의’라는 단어는 언급되지 않았다. 검찰이 범죄 혐의를 입증하지 못해 죄가 성립됐다고 보기 힘들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구속 영장이 최종 기각되면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이하 수사심의위) 부의 여부와 권고에도 이목이 쏠린다. 서울중앙지검은 오는 11일 부의심의위원회를 열고 해당 안건이 심의 대상인지 판단할 예정이다. 

수사심의위 소집이 최종 결정되면 기소 또는 불기소 의견을 제시하게 되는데 일각에선 불기소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법원이 영장 재판에서 혐의를 인정했기 때문에 불기소 권고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검찰이 수사심의위의 권고를 무시하고 기소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수사심의위의 의견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심의위는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지만 이 부회장 측이 이를 신청한지 이틀 만에 구속 영장을 청구하며 자체 개혁안을 스스로 무력화했다는 비판과도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최준선 교수는 “수사심의위는 틀림없이 열릴 것이고, 검찰은 수사심의위의 권고에 구애받지 않고 무조건 기소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이 부회장 측이 신청하기도 했고, 검찰이 무리하게 구속 영장까지 청구한 상황에서 이마저도 열지 못하게 하면 비판이 쏟아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라도 하겠다고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수사심의위서 불기소 의견이 나오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지만 결국 불기소 의견이 나올 것으로 본다”며 “위원 구성을 어떻게 하는지가 문제인데 위원 구성을 객관적으로만 한다면 불기소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앞으로 삼성이 갈 길이 굉장히 멀고 수많은 곡절이 있을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2015년 시작된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도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재판까지 더해져 자꾸 삼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100대 국정 과제 중 재벌 개혁이 있는 만큼 이번 정부가 있는 한 관련 고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재판이 파기환송심처럼 4년 이상 이어질 가능성도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오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오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법 리스크 속 불확실성 가중…"이제 시작"

햇수로 5년째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는 삼성은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 영장 기각에 한숨 돌렸지만 여전히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본격적으로 재판이 시작되면 짧게는 2~3년, 길게는 4~5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릴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제 시작”이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 가운데 ‘뉴삼성’을 가속화하던 이 부회장의 행보에 또다시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의 총수 공백은 피해 이 부회장이 경영 활동을 이어갈 수는 있겠으나, 정상적인 기업 경영과 달리 사법 리스크 해소에 신경이 곤두서있어 인적·물적 자원 투입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삼성의 경쟁사들은 최고경영자를 중심으로 앞다퉈 대규모 M&A(인수합병)과 투자 계획 등을 발표하는 반면 삼성은 국내외 경제 위기 속 구심점이 돼야 할 총수가 사법 리스크의 중심에 놓이면서 성장 발판은 커녕 위기 대응 조차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외신들도 계속되는 사법 리스크로 삼성과 이 부회장이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고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부회장의 영장 기각 직후 “지난 3년간 이 부회장의 법적 문제로 회사는 거의 마비 상태에 놓인 것이나 다름 없었다”며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헤쳐 나가야 하는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에게는 사법 리스크가 연장돼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장세진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에 따르면 이번 사건처럼 검찰의 공세가 수년간 이어진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덧붙였다.

블룸버그도 “법원의 이번 결정은 이 부회장의 승리”라면서도 “이 부회장 부재 시 M&A 또는 전략적 투자 등 중요 의사결정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이 부회장에 대한 사법 리스크는 여전히 삼성에 큰 우려로 남아 있다”고 전했다.

[위키리크스한국=정예린 기자]

 

yelin0326@wikileaks-kr.org

기자가 쓴 기사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127, 1001호 (공덕동, 풍림빌딩)
  • 대표전화 : 02-702-2677
  • 팩스 : 02-702-16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소정원
  • 법인명 : 위키리크스한국 주식회사
  • 제호 : 위키리크스한국
  • 등록번호 : 서울 아 04701
  • 등록일 : 2013-07-18
  • 발행일 : 2013-07-18
  • 발행인 : 박정규
  • 편집인 : 박찬흥
  • 위키리크스한국은 자체 기사윤리 심의 전문위원제를 운영합니다.
  • 기사윤리 심의 : 박지훈 변호사
  • 위키리크스한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위키리크스한국. All rights reserved.
  • [위키리크스한국 보도원칙] 본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립니다.
    고충처리 : 02-702-2677 | 메일 : laputa813@wikileaks-kr.org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