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투데이] 동성애 혐오에 맞서 싸우던 이집트 동성애 여성의 최후
[월드 투데이] 동성애 혐오에 맞서 싸우던 이집트 동성애 여성의 최후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0.06.19 06:51
  • 수정 2020.06.19 0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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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헤가지는 이집트 동성애 공동체의 아이콘이자 동성애 혐오자들의 폭력의 목표물이기도 했다
사라 헤가지는 이집트 동성애 공동체의 아이콘이자 동성애 혐오자들의 폭력의 목표물이기도 했다

2017년 사라 헤가지라는 이집트 여성이 카이로에서 열린 콘서트 현장에서 동성애를 찬양하는 깃발을 흔들었다는 이유로 체포돼 고문까지 받았다.

CNN은 최근 30세의 이 여성이 캐나다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CNN은 이 여성과 관련된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 다음은 이 기사의 전문이다.

헤가지의 친구들은 그녀가 사망한 사실을 알리면서 그녀가 남긴 유서를 공개하고, 연대와 비통함을 담은 분노의 메시지들을 공유했다. 하지만 친구들의 우호적인 메시지들은 적의를 품은 동성애 반대자들의 목소리에 파묻혀버렸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헤가지의 죽음에 조의를 표하는 전통적인 문구인 ‘그녀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이라는 조의문(弔意文)이 올라오면 ‘그녀는 신의 가호를 받을 가치가 없다’는 비난의 문구와 그녀의 성 정체성을 저주하는 욕설들이 뒤따라 올라왔다.

이러한 온라인 상의 설전은 그동안 헤가지를 괴롭혀왔던 이집트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 간의 뿌리 깊은 반목을 반영하고 있다.

“헤가지는 페미니스트 운동과 정치, 그리고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많았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습니다.”

헤가지와 함께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이끌던 동지이자 친구이기도 했던 말락 엘카쉬프는 카이로에서 가진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헤가지가 깃발을 흔들면서 동성애 공동체의 아이콘으로 떠오르자 그녀는 국가 폭력의 목표물이 되었다.

전문가들은 이집트에서는 정부가, 사회적 규범에 따르지 않는, 성소수자 여성들이나 다른 국민들을 투옥하고 고문하고 재갈을 물림으로써 보수적 가치를 강요하는 일이 흔하다고 말한다.

금년 초, 이집트는 UN 인권위원회에 자신들은 ‘모든 국민들에게 차별 없이 똑같은 권리와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인권을 보호할 것이다’고 말한 바가 있다. 그리고 이집트는 나아가서 고문이 자행된 경우 모두를 철저히 조사하겠다고도 밝혔었다.

두 여성이 춤을 추고 립씽크를 하는 동영상들을 틱톡(TikTok)에 올리자 수십만 명이 이를 시청했으며, 이런 행위를 한 두 여성을 상대로 보수진영의 비난과 고소가 이어진 후 지난주 당국은 ‘가정의 원칙과 가치를 위반했다’는 애매모호한 이유를 들어 해당 여성들을 기소했다.

“권력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미디어와 이슬람 사원 같은 ‘태생적으로 종교적’일 수밖에 없는 도구들을 활용해서 이집트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도 종교와 사회 윤리를 엄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교도들과 우리들이 갈등을 일으켜야할 이유는 없습니다.”

헤가지는 2018년 지역의 독립 플랫폼을 통해 발표된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헤가지는, 이집트 정부와 정치적인 이슬람 운동가들이 오랜 불화를 잠시 내려놓고 개인적인 인권운동가들에게 재갈을 물리기 위해 증오와 편견을 뒤집어씌우는 데 힘을 합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이러한 정치 비평적 성격의 글들 때문에 그녀는 공개적인 여성 동성애자로서 투사로 각인되게 되었다.

저항

헤가지와 동료들은 2017년 9월 레바논 출신의 그룹사운드 매쉬루 레일라 콘서트에서 무지개 색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매쉬루 레일라 밴드는 동성애자임을 공개 선언한 남성이 이끌고 있다. 이날 헤가지는 지지자들에 의해 ‘침묵의 무수한 장벽을 깨부순 영웅’으로 칭송받았다고 그녀의 친구인 타렉 살라마가 말했다.

“누군가 공개적으로 좌파임을 선언하고, 국가의 폭력에 반대한다고 말하며,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표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걱정을 동반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녀에게 매료되고, 내 자신이 비굴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살라마는 CNN에 이렇게 말했다.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눈에 띄게 펄럭이는 화려한 깃발이 담긴 사진은 방송 토크쇼 진행자들과 신문 칼럼니스트들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결국, 며칠이 지나지 않아 헤가지와 동료들은 체포되었다. 경찰은 콘서트가 개최된 다음 달까지 최종적으로 최소 75명을 구금했다. 이를 두고 이집트의 인권운동 단체는 ‘동성애자들이나 동성애자로 의심받는 사람들에 대한 유래 없이 강화된 일제단속’이라고 칭했다.

2001년에도 비슷한 동성애자들에 대한 일제단속이 있었다. ‘퀸 보트(Queen Boat)’라고 불리게 되는 이 사건에서 경찰은 카이로에서 수십 명의 남성들을 체포하고, ‘풍기문란’ 혐의로 기소했다. ‘풍기문란’은 성소수자(LGBTQ)들을 기소하는 데 동원되는 용어이다. 당시 공개재판에 회부된 남성들은 신분이 공개될까봐 얼굴을 가렸다. 이후 그들은 고문 후유증과 불명예 그리고 오욕으로 망가진 삶을 살아야했다.

이전의 동성애자들과 헤가지의 경험을 구별짓는 점은 그녀가 역풍을 무릅쓰고 자신의 얼굴을 공개했다는 사실이다.

“그 날은 이집트 성소수자 공동체의 해방 운동이 시작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엘카쉬프는 이렇게 들려주었다.

헤가지는 3달 동안 구금되어있었다. 그녀는 전기 고문을 받고 여성 간수에게 성폭력의 위협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이 여성 간수는 상관들의 명에 따라 행동했다고, 헤가지는 Daaarb.com에 폭로했다. Daaarb.com은 ‘사회주의자 동맹당’의 온라인 기관지이다.

이집트 당국은 감옥에서의 조직적인 고문 주장을 거듭 부인하면서도 헤가지의 주장에는 이렇다할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집트 정부는 CNN의 질의에도 즉각적인 답을 내놓지 않았다.

헤가지는, 항상 테러리스트와 고위층 정치범들만을 다루는 검찰 공안부의 조사에서 변호사의 팔을 붙잡고 구치소로 돌아가지 않게 해달라고 조르곤 했다고, 그녀의 변호사와 친구 모스타파 포아드는 CNN에 폭로했다.

헤가지는 경찰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삶의 세세한 부분을 캐물었다고, 기록으로 남겼다. 경찰은 그녀에게 왜 전에는 쓰던 이슬람 히잡을 당시에는 쓰지 않았는지를 물었으며, 그녀가 처녀인지 아닌지도 물었다고 한다.

헤가지는 ‘풍기문란’과 ‘공공의 평화를 위협하는 불법 단체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사회의 안녕을 위협한다는 혐의는 언제나 이슬람 운동가들과 재야인사들에게 씌워지는 굴레라고 포아드는 주장했다.

헤가지는 재판 때까지 임시로 석방되었지만, 그녀의 가족들과 이웃들은 그녀를 백안시했으며, 직장에서도 해고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그녀는 지난 3월 사회가 그녀의 이러한 처지를 은근히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Daaarb.com에 썼다.

“이집트의 중산층은 사회적 · 종교적으로 보수 우익으로 기울어져있다. 그들은 사회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는 국가의 결정을 지지한다. 그들은 가부장적인 억압 문화에 저항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사회적인 모욕주기를 남발한다. 이집트의 가부장 문화는 여성과 노동자, 그리고 종교적이고 성적인 소수자를 탄압하는 기반위에 군림하고 있다.”

헤가지는 이렇게 썼다.

“이집트 중산층은 사회에서 목소리가 가장 큰 계층이므로 그들을 드러내고 비판하는 것은 나의 의무이다.”

그녀의 워딩들은 그녀 생전의 투쟁을 짐작하게 하는 징표가 되며, 왜 이집트 사람들이 그녀의 죽음에 냉담한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있다.

“이집트 중산층은 증오와 심리적 · 물리적 폭력, 성폭력, 그리고 왕따시키기를 그 발판으로 딛고 있다.”

그녀가 이렇게 덧붙였기 때문이다.

캐나다 망명길에 올라 어느 정도 안전이 보장되었지만 헤가지는 그녀에게 가해진 폭력의 후유증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친구들을 말하고 있다
캐나다 망명길에 올라 어느 정도 안전이 보장되었지만 헤가지는 그녀에게 가해진 폭력의 후유증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친구들을 말하고 있다

망명

헤가지는 석방된 후 몇 달 뒤 캐나다로 여행을 떠났지만, 자신의 처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헤가지는 2년 전에 이집트를 떠났지만, 이집트와 그녀의 트라우마는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친구인 살라마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캐나다로의 망명이 투옥의 위협에서 안전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또 다른 시련들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암으로 사망했다. 그녀는 당시 어머니와 형제들 곁에 함께 할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괴로워했다고 살라마는 말했다.

살라마는 헤가지가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그리고 공포와 외로움으로 고통을 받았다고 들려주었다. 헤가지는 카이로와 토론토에서 받은 전기 충격요법 치료의 후유증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2018년 마다 마스르(Mada Masr)에 썼다. 그녀는 말을 더듬고,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가지는 글을 올리고, 활동을 계속했으며, 억압과 구속의 위험에 처한 친구들을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벌였다.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운동에서부터 이집트에 투옥되어있는 친구들과 시리아 이들리브 갈등에 갇혀있는 수백만 피난민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포스팅과 함께 PTSD 환자들에게 인내를 당부하는 글들도 들어있다.

“그녀는 강한 여성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사회가 그녀를 파괴시켜버렸습니다.”

포아드는 스스로 선택한 망명지 터키에서 이렇게 자세히 설명했다.

“그녀는 나에게 네 번이나 자살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었습니다.”

그는 울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헤가지가 사망하자 온라인에서의 공격과 평론가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그들은 헤가지의 성소수자의 인권 운동은 그녀 자신의 ‘사악한 성 정체성’보다 더 위중한 범죄라고 주장했다.

“헤가지는 동성애를 지지하고 자신의 성 정체성과 무신론을 자랑함으로써 종교와 사회에 대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어떤 페이스북 사용자는 이렇게 썼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신으로부터 거부당하고 지옥에서 썩을 것이라고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다. 이집트의 트위터 세계에서는 헤가지라는 이름은 쿠란에서 동성애자들을 지칭하는 ‘부패할 인간(People of Lot)’이라는 용어와 함께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녀의 죽음과 관련해서 가장 참담한 측면은 이 죽음을 은근히 고소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헤가지의 친구 아무르 모하메드는 페이스북에 올려진 동영상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헤가지에게 적의를 품을 사람들을 지칭하며, ‘그녀는 갇히고, 고문당하고, 배척당한 뒤 죽었습니다. …… 죽은 사람을 모욕함으로써 당신의 종교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마지막 남긴 인스타그램 포스팅에 “하늘은 땅보다 아름답습니다. 나는 지상이 아닌 하늘을 원합니다.”라고 썼다.
그녀는 마지막 남긴 인스타그램 포스팅에 “하늘은 땅보다 아름답습니다. 나는 지상이 아닌 하늘을 원합니다.”라고 썼다.

찬사

죽기 하루 전 헤가지는 밝고 푸른 하늘 아래 녹색의 잔디밭에 누워있는 사진 한 장을 올렸다.

“하늘은 땅보다 아름답습니다. 나는 지상이 아닌 하늘을 원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그룹사운드 매쉬루 레일라의 리드 싱어 하메드 시노는 그녀가 남긴 이 말을 그녀에게 바치는 음악에 넣어 동영상으로 만들었다.

“그녀의 피는 당신들의 손이나 마찬가지로 나의 손에도 묻어있습니다. 그 감옥에는 내가 들어갔어야 합니다. 그들이 언젠가는 우리들을 인간으로 대우할 것이라는 희망을 주었다면 그건 제 잘못입니다.”

그 또한 스스로 선택한 망명길에 올라있는 하메드 시노는 이렇게 썼다.

헤가지가 사망한 후 오래되고 널리 알려진 그녀의 사진 한 장이 온라인에 회자되고 있다. 이 사진에서 그녀는 친구의 어깨에 목말을 타고 무지개 깃발을 두르고 있다. 2017년 그룹사운드 콘서트 장에서 촬영된 이 사진에서 그녀는 군중들과 함께 해맑게 웃고 있다.

시노는 이 사진을 올리면서 ‘그대의 영혼이 자유롭기를...’이라고 썼다.

사망 직전에 남긴 유서에서 헤가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형제들이여! 나는 살려고 발버둥 쳤지만 실패했다. 나를 용서해다오. 친구들이여! 나는 너무 잔인한 경험들을 했다. 그리고 나는 저항하기에는 너무 연약했다. 나를 용서해다오. 세상이여! 그대들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그렇지만 나는 용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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